詩
삽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내 나는 내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정진규
말년이다 돌담을 쌓는다 서로 다른 돌들이 서로 만나 서로 든든하다 비인 틈을 용케 닮은 것들이 서로를 채운다 더군다나 소색인다 햇발이 소색이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돌들이 소색인다 속삭인다가 아니라 소색인다 더 은근하고 부드럽다 소리로 서로 만진다 여러 곳에서 발품 팔아 주워 온 강돌들이다 쌓는 정성도 정성이었지만 여러 강물로 씻긴 것들이어서 소색이는 물소리가 다르다 흐르는 굽이가 서로 다르다 빛깔도 다르다 이 소리들로 이 굽이들로 이 빛깔들로 나는 한 소식 할 작정이다 연주회를 열 작정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소리를 내고 있으니 실체의 발견發見이다 아직 덜 받아 적었다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햇살 속에서 내는 한 소리만 영랑께서는 결로 보이며 햇발같이 적어 주셨지만 한밤의 소리를 받아 적노라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몸이 가볍다 새벽 먼동으로 몸이 트인다 촉촉하게 담을 넘는다 젖어 있는 햇발을 새벽에 보았다 촉끼라는 말씀을 비로소 만졌다 보은 송찬호네 대추 마을 앞 강물 것도 있고 이성선이 밟으며 떠난 설악 계곡의 것들도 있고 담양 소쇄원 앞 강물에서 댓잎 바람 솔리로 씻기던 것들도 있으며 내 생가生家 마을 보체리 앞개울, 한 겨울에도 맨발 벗꼬 건너던 막돌들도 있다 당신의 꿈결을 흐르던 강물에서 건져진 것들도 있다 태胎 끊고 맨몸으로 태어난 것들도 있다 다만 나의 돌탑 안에 모옥茅屋 세 칸 반 들이고 내 신발 한 켤레 댓돌 위에 벗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