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년 여름 낙양의밤 172년초여름 낙양에 밤이내렸지만 궁성 깊은곳은 대낮처럼 등불이밝았다 향란전에서 관현악소리가 흘러나오는가운데 새로들어온 어린환관이 동료에게 조용히물었다 오늘밤은 또몇명을 뽑는답니까 돌아온 대답은이랬다 폐하께서 많을수록 좋다고하셨네 이짧은 두마디가 당시동한 최고의전각에서 벌어지던 일의성격을 그대로보여준다 그해 즉위4년차였던 유굉 곧 한나라영제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겉으로는 소년 황제였지만 궁정의판세는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소년 황제의계산 환관과 미색으로 짠그물 당시 외척의힘은 약해졌고 환관들이덩굴처럼 전각을 휘감고있었다 주도권을잃으면 언제든 옥좌에서 끌려내려올수있는 처지였다 조종당하는 운명을 벗어나기위해 영제가 택한방법은 역설적이었다 환관을 몰아내는대신 오히려 환관을이용하고 여기에 미색까지동원해 더큰 그물을짜기로 한것이다 먼저 내정을확장했다 기존의 장락궁과 미앙궁으로는 야심을 담을수없다며 서북쪽에 화려한 누각을짓게하고 서원이라 이름붙였다 정원이 완공되기도전에 채녀사가 먼저 간판을걸었고 각주군에 해마다 열여섯살이하의 여성 열다섯명을 바치라는 조서가내려갔다 각지의 호족들이 앞다투어아첨하니 낙양으로 향하는 수레와말이 하루도 끊이지않았다 관직을파는시장 서원 더놀라운일은 그다음이었다 서원한쪽의 빈터에 울타리를치고 낮에는 관인을진열하고 밤에는 등불시장을 열었다 은과비단을 낼수있으면 시어사부터 군수까지 살수있었다 환관 장양이 좌판앞에서 장부를넘기며 웃었다는 말이전해진다 폐하는 돈을원하시고 나는 인심을원하며 매수자는 관직을얻으니 모두가 만족하지않는가 중생들 정신안차릴래 그러다간다가 이렇게 노골적인거래는 역사상 유례가없었지만 당시에는 버젓이 이루어졌다 매관으로 거둬들인 금과비단은 대부분후궁으로 흘러들어 새로만든교방과 야연사 운영에쓰였다 가무와 벼슬길이 하나로묶이고 여기와 관인이 서로교환되면서 하나의 완결된 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 학문과재능으로 입신하려던 청류 사대부들은 자리가 이미명찰붙은 가격표로 팔려나간뒤라 탄식만 삼킬수밖에없었다 직언하는 자는쫓겨났다 물론 승복하지않는 이들도있었다 장균은 상소를올려 조정이 어찌 저잣거리가 될수있느냐고 직언했다 그러나상소는 전각앞에서찢겼고 환관조충은 냉소했다 폐하께서천하를 안정 시키려하시는데 그대가 안정시킬수있는가 이튿날 장균은지방으로 좌천되었고 사마직 채옹도함께 관적을삭탈당했다 이후조정에서 청류의목소리는 모기 소리만큼작아졌다 그사이 재해는이어졌다 177년 회북에 메뚜기떼가일고 179년에는 제와 노지역에 큰가뭄이들어 곡가가 두배로뛰었다 그런데 조정은오히려 제재특부라는 새로운 세금을더걷었고 백성들은 견디지못해 밤낮으로 유랑길에올랐다 영제는 새로걷은세금을 후궁수리에 계속투입했다 서원의 높은담장에 금칠이 더해지는동안 성밖에는 난민이 들판을덮었다 가장 위험한균열은 믿음에서벌어졌다 183년겨울 태평도라자칭하는 무리가 제북과동군에서 포교를 시작했고 교주장각은 창천은 이미죽었다고 외쳤다 비바람속에서 농민들은 몽둥이를쥐고 그를따랐다 조정이자신들을 구제해줄것이라 믿는사람은 더이상없었다 184년정월 황건의 난이일어나 한달만에 일곱주로번졌다 그제야 영제는 후궁의가무로는 봉화를 끌수없다는것을 깨닫고 북군오영을 출동시키고 건석에게 무기제작을 감독하게했다 그러나 병마는많아도 대부분 돈으로자리를산 기름진자들이라 십만 황건군을마주하자 깃발만보고도 낯빛이변했다 전선은늘어지고 산동과 예주의주현이 잇따라 함락되었다 그런데도 궁중의밤연회는 여전했다 술이 세순배돌자 영제는 탁자를치며 말했다 하찮은도적떼가 어찌감히 짐의강산을 어지럽히겠는가 장양은웃으며 맞장구쳤지만 뒤로는 금과은을 더서둘러 긁어모으게했다 이불이번지면 가장 먼저타는것이 자신의 문이라는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물은 왕조를받쳐주지 못했다 189년4월 영제는 서른셋의나이로 병사했다 영구가 식기도전에 동탁이 낙양에들어와 천자를끼고 제후를호령했다 금빛 찬란하던서원은 군마에짓밟혀 폐허가되었고 그토록 비싸게팔리던 관인들은 진흙바닥에 흩어졌으며 궁녀들은흩어지고 환관들은 도륙되거나 강에몸을던졌다 권력과 색으로짜올린 그거대한 그물은 결국흔들리는 왕조를 받쳐주지못했다 이이야기가 흥미로운것은 영제의 행동이단순한 방탕이아니라 나름의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이다 그는환관과 매관과 후궁을엮어 자신을 지킬구조를 만들려했다 다만 그구조의재원이 백성의 세금이었고 그대가가 인재의이탈과 민심의 상실이었다 자기를 지키려고만든 시스템이 지켜야 할나라를 갉아먹은것이다 앞서살펴본 동탁이 이폐허위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왕조는밖에서 무너지기전에 언제나 안에서 먼저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