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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전설만 같았던 42.195Km라는 어마무시한 거리....
그 끝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노력이 필요했던가....
다시금 42.195Km라는 지점을 너머서기까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번뇌를 거듭했던가....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마라톤 풀코스를 꼭 달려보자....!
그 길 막바지에 올라섰을 때 더 이상은 없는 듯 여겼습니다....
아니 더 이상 없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올라 더 먼 곳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아득한 곳에 보이는 여러 봉우리들....^^
감히 엄두도 못낼만큼 엄청난 도전을 이어가시는 분들....
이렇게 가까이에 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후로도 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거듭 이어갈수록....
채워지고 당당해지는 자신을 만나기보다는 뭔가를 비워가면서 더욱 겸허해진다고 할까요....
같은 거리를 달려도 같은 출발선에서 함께 나아가도....
세세한 조건에서 불가능을 의심하는 것이 잘못이 아닐 듯한 분들....
완주의 안도감에 멈춰서 뒤돌아서는 자들을 남겨둔 채 저멀리 사라져가는 분들....
대회가 끝나도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이다....
그분들은 도대체 어디로 달려가고 계신걸까....?
그 이야기 역시 어럼풋이 전설처럼 전해듣습니다만....
이번에 또 한 번 더 그런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도 될까....?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 지우고 다시 답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끝에 닿겠지....
그래도 너무 멀리 나아가기는 부담스럽고 조금만 살짝 더 넘어보자....
20%정도 더 달린다면야 뭔 일이야 있겠어....?
이런 마음 저런 마음, 갈등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빨리 접수하고 묻어두기....!
조용히 준비하면서 기다리다가 찾아가기....
함께 뒤섞여 나아가고 힘겹더라도 서로를 바라보며 달려가기....
그리고 그 끝에서 정말 말로 나누기 힘든 벅찬 감동을 입가에 한아름 머금기....
장마전선과 태풍 할룰라가 경합이라도 하듯....
한반도 상공을 차지하려 다투는 때....
대회 당일인 토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오후되면 멎겠지, 해가 지면 멎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밤에 출발하는 대회를 위해....
오전에 늦게 일어났다가 점심 먹고 졸려서 자고....
잠시 깨었다 저녁 먹고 억지로 또 누워 자다가....
저녁9시 자명종에 눈을 뜹니다....ㅎ
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찜찜하던 마음마저 살짝 개인 듯....
서둘러 마라톤 가방을 챙기고 차를 몰아 여의나루역으로 갑니다....
대회출발장소는 마포대교 아래 넓디넓은 서울色공원....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준비를 시작합니다....
대회를 위해 모인 인원은 대략 500명....
비가 와도 모든 인원을 수용하고도 넉넉한 공간....
처음 출전해보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
무엇이 다를까 주위를 둘러봅니다....
일단 기다란 간이매트를 깔아놓은 풍경이 특이하네요....
길지만 자그마한 대회니만큼 배번호는 현장 수령....
배번호를 받아드는데 기념품으로 핸드립 커피와 수건을 함께 받습니다....
잠시 차에 돌아가 신발을 신고 배번호도 달고 달리기배낭도 챙깁니다....
한여름 장마철....
하루 종일 비가 내려 한강변에 자전거가 좀처럼 보이지 않아요....ㅎ
제 자전거에 달린 깜빡등을 떼서 가져오려다가 관뒀습니다....
여의도와 강남 그리고 잠실 일대 한강변....
너무나도 잘 아는 길을 왕복해오는 코스....
별다른 준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어요....
길이 비에 젖어 웅덩이도 많을 터....
신발은 가장 낡은 것으로 택하고....
바지는 싱글렛 대신에 타이즈를 입습니다....
가방을 둘러메고 달려야 하니까 티셔츠 차림....
대회 현수막 아래서 출발전 인증샷을 담아봅니다....
지난 5월 바다의날마라톤 대회 이후로 간만에 인증샷....
6월은 메르스 때문에 완전히 쉬었고....
이제 드디어 다시 출전이구나....!
출발시간은 오후 11시....
울트라는 누워서 대기하는 게 좋나....?
특별히 신경 쓸 것은 없는 듯한데....
잠을 충분히 자고 나온 것 같아 삼가고....
마라톤 선배님들 여러분 뵈옵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걱정보다는 흥겨움이 묻어나는 대화....
그러다가 혹시나 하고 출발 직전 커피 한 잔 마셔봅니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설탕프림 가득한 커피....ㅎ
한귀퉁이에서 서성이다가 11시 정각 출발 신호가 울리고....
울트라 경험이 있으신 선배님과 함께 동쪽으로 나아갑니다....
단체로 우루루 몰려가니 시작은 느릿느릿....
선두가 치고나가니 서서히 거리가 벌어집니다....
원효대교를 지나서 여의도를 벗어날 즈음....
예상했던 초반 페이스에 다다르고....
울트라 선배님 바로 뒤를 따라 달려갑니다....
한강철교 한강대교를 지나 동작대교에 이르는 길....
너무나도 익숙한 제 달리기의 본거지죠....ㅎ
습도 100%를 꽉 채운 대기....
열대야는 아닌 그냥 한밤이라 다행히 습식사우나스럽지는 않은데....
그래도 달리는 시간이 점점 1시간에 육박하니 몸에 열이 솟습니다....
이날 나의 첫 울트라 마라톤 계획은 어떻게 세울까나....?
42Km + 8Km로 할까....?
8Km + 42Km로 할까....?
아니면 스타일대로 7Km씩 6등분에 플러스 8Km....?
반포대교를 지나면서 첫 7Km는 40분 안에 달렸으니 계획대로 착착....
이미 대회는 시작된지 오래고....
설마 지금까지 몸풀기는 아닌 것 같고....ㅎ
그런데 주위에 달리시던 분께서 나누시는 말씀이 들립니다....
성수대교까지 1시간 10분에 지나야 해....!
생각해보니 성수대교까지 12.5Km, 그러니까 1/4지점이네요....
그래 그 정도야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지....^^
무계획이 제일 좋은 계획이라 닥치는대로 돌파하는 거야....!
앞으로 몸이 더욱 힘들어질텐데 머리 속까지 복잡해지면 되나....ㅋ
한남대교로 나아가는데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마구마구 열받았다고나 할까요....
머리끝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
너무 더워서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뜁니다....
조금 나아지려나 하는데 서서히 기운이 빠지네요....
급히 주변 급수대 수도꼭지에 머리를 처박고 한참 물세례....
그러는 사이 울트라 선배님께서는 저멀리 치고 나가시네요....ㅋ
일단 10Km를 1시간 안에 넉넉하게 달렸으니 무리하지 말고 나아가자....!
그런 생각으로 성급하게 쫓아가는 것은 포기하고....
주위에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시는 분들 틈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동호대교 지나 살짝 언덕지점에 올라 다음 다리인 성수대교를 보며 달립니다....
1/4지점까지 1시간 10분 안에 가는 거야 문제 없지....!
그런데 일견 생각해보면 반환해서 돌아올 때는 여기가 37.5Km지점....?
과연 나는 여기를 네 시간 안에 다시 지날 수 있을 것인가....?
6월말에 동작대교에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달려본 적이 있어요....
일요일 오후 뜨거운 태양 거리에 뙤약볕 작렬할 때 나선 길....
정말 죽을 지경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예상밖의 고전으로 힘겹게 걸어서 당도했던 아픔....ㅋ
그래도 한밤중에 달리니 이번에는 무난하게 탄천을 건너 종합운동장 옆을 지납니다....
동으로 동으로 25Km지점에 있는 반환점을 향해 가는 길이지만....
일단 하프 거리는 2시간 안에 당도해야지 않겠어....?
그런 생각으로 담담하게 달립니다....
이제는 참가자들이 각자 페이스대로 엄청 늘어섰는지....
앞서 달리시는 분도 잘 보이지 않네요....
자정을 넘은 시간 고요한 한강변....
비 내려 더욱 적막한 듯 심리적으로 뭔가 위축되는 시간....
묵묵히 달려가노라니 잡생각을 잡아내기도 힘듭니다....
다소 긴장된 듯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주위를 살필 뿐....
다행히 비는 소강상태라서 발 아래 물웅덩이만 피하면서 달리니....
신발이 그렇게 젖는 것도 아니라 괜찮은데 너무 덥습니다....
아리수 급수대를 만날 때마다 물 마시고 머리까지 적시고....
너무 많이 마시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빈번히 샘솟는 급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네요....
이 고독한 행진에 나를 기다리며 반기는 이는 수도꼭지뿐이련가....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는 별따로 급수대가 없네요....
이 대회도 반환점에 지정된 급수대가 설치되어있다고 공지되었을 뿐....
각자 가방에 음료수와 먹거리를 챙겨서 나서야 하는 길....
저녁을 엄청 든든하게 먹어둬서 그런지 허기가 지지는 않은데....
습기 가득찬 날임에도 자꾸 물만 쓰이네요....
18Km지점 잠실대교를 지나는데 급수대가 있습니다....!
주최측에서 설치한 곳은 아니고....
이 대회에 회원님들께서 대거 참가하신 '월곡마라톤클럽' 자봉단께서 마련하신 곳....!
일단은 초반이라 물만 얻어 마시고 수박 한 조각 베어물고 떠납니다....
반환점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개인적인 체크포인트인 하프지점에 제 시간에 가야겠기에 서두릅니다....
잠실철교를 지나고 올림픽대교 아래에 이르렀는데....
봉고차 한 대에서 맥주와 콜라를 나눠주고 계십니다....
어디 클럽인지 모르겠으나 저도 그냥 냉수 한 사발 또 얻어마십니다....
그때 벌써 반환해온 선두주자가 옆으로 휘리릭 달려가십니다....!
아아~ 나도 뒤돌아서서 달려가고파라....
하프지점인 광진교까지 서둘러 가야하는데....
점점 페이스가 꺼져가는 것이 완연히 느껴집니다....ㅋ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마음이 급해집니다....
다행히 20Km지점은 2시간 안에 통과했으나....
하프까지는 2시간 안에 정복하지 못했어요....ㅋ
허탈했을까....
김이 빠졌을까....
뭔가 원기가 달아난 느낌....
반환점 25Km지점까지 2시간 30분 안에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충분히 갈 수도 있겠는데 힘이 붙지 않습니다....ㅎ
이제 시계바늘은 새벽 1시를 통과했고....
웬만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저는 한강변 그것도 광진교 지나 외진 자전거도로로 접어들면서....
급격한 체력저하와 의욕상실에 시달립니다....ㅋ
페이스가 꺼지니까 제 곁을 스쳐지나가시는 분들도 많아지네요....
억지로 쫓아가려고 팔다리에 힘을 써보지만 힘겹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두꺼비 소리인지 맹꽁이 울음인지....ㅋ
점점 크게 들려오니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래서는 안 돼....!
반환점까지 꼭 2시간 30분 안에 가야해....!
몸이 싱싱하게 나아갈 때는 될대로 되려니 무계획적으로 달려오다가....
몸에 추를 단 듯 지쳐오니 계획을 더욱 세우며 다짐을 하게 되네요....ㅎ
다짐을 거듭하며 안깐힘을 쓰고 내달려봅니다만....
24Km지점에서 완전히 퍼져버리네요....
아리수고개 오르는 길에서 고개 떨구고 하염없이 땅만 처다보며 다리를 끌며 오릅니다....
계획보다 7분이나 늦게 도착한 반환점 CP....
배번호와 기록을 체크하네요....
돌아서자마자 자봉요원께서 다가와 종이컵을 건네십니다....
시원달콤 화채가 들었어요....
한 컵 더 비우고 콜라까지 한 잔 추가해 마시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기념촬영을 합니다....
아리수 고개를 다시 내려오면서 작전 계획을 짜봅니다....
7분 늦었다고 30분 늦겠냐....?
본디 목표완주시간은 5시간 30분이었지....ㅎ
2시간 50분이면 충분히 여의도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내리막을 힘차게 달음질칩니다....
맞바람이 차갑네요....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싹 달아납니다....
내가 왜 이럴까....?
500m 정도 달려봅니다....
다시 걷습니다....
500m 정도 또 달려봅니다....
또 다시 처벅처벅....
새벽 달밤에 나홀로 인터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몸이 밑도 끝도 없이 내려앉는 이 알 수 없는 기분....
내가 이런 새벽에 달린 적이 있었던가....?
울트라 도전자들은 나랑 비슷한 느낌일까....?
낮에 잠을 충분히 더 잤어야 했나....?
나는 야행성은 결코 안 되는 인간인가봐....?
허기사 밤새워 공부도 절대 안 하는 내가 뭔 숙제를 한다고 이 밤중에 달리고 있나....?
갖은 생각을 담았다 버렸다 달렸다 걸었다 반복합니다....
하지만 버린 생각이 더 많고 걸은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어떻게 걷고 또 걷다보니 다시 당도한 올림픽대교 아래....
봉고차 자봉님께서는 철수하신 듯 보이지 않으십니다....
30Km지점을 무려 3시간 20분에 통과....ㅎ
솔직히 30Km까지는 세 시간 안에 도착하리라 확신했었는데....
우중주 속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가는 것인가....
그래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떠올리며 차근차근 앞길을 개척해가야 하는 법....!
4시간이 지나 새벽 3시쯤 되면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탄천은 건너야겠지....!
다시금 힘을 모아봅니다....
마음만 그럴 뿐입니다....ㅋ
잠실대교 아래 월곡마라톤클럽 자봉팀께서 아직 계시네요....
막걸리도 있던데 취해서 길거리에 혹시 잠들까봐....ㅎ
그냥 방울토마토 두 개만 집어들고 떠납니다....
밤안개는 아니고 물안개라고 해야하나....
잠실에 100층 높이 솟은 빌딩은 끄트머리만 반짝반짝....
종합운동장 곁을 지나지만 어두컴컴해 잘 보이지도 않고....
이제 내리막 향해 좀 다시 또 뛰어볼라다가 이내 지치고....ㅋ
그래도 탄천은 다행히 네 시간 안에 건넜네요....
그러고도 아직 15Km가 넘게 남은 게 걱정 태산이지만....ㅎ
나는야 한밤에 엉터리 인터벌 훈련중....?
반환점을 돌아서고나서 제가 하고 있는 달리기가 한심합니다....ㅋ
그래도 여의도까지는 걸어서라도 가야하는 법....
530목표는 이미 물 건너갔고 Sub-6도 포기했지만....
대충 계산해도 제한시간 7시간 안에는 도달할 것 같아 그나마 다행....ㅎ
끝까지 걷더라도 이대로 가자....!
영동대교 근처에서도 힘내어 질주해보지만....
1Km를 조금 넘으면 이내 지칩니다....
몸에 특별히 통증이 느껴지는 곳은 없는데....
팔다리가 푹 꺼져 땅바닥에 늘러붙는 느낌....
이제는 3/4지점이 된 성수대교로 향하는 길에 다시 힘을 내봅니다....
4시간 30분 안에 통과해보기 미션 성공....!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실행가능한 계획과 실천....
이제는 소박한 행진을 이어가는 모양새....
성수대교를 지나는데 드디어 허기가 집니다....
급히 가방에서 연양갱 하나 꺼내 물고 걷습니다....
생수병에 물도 다 떨어졌군요....ㅋ
아껴 마시며 다음 아리수 급수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동호대교 지나 한남대교 어귀까지 가야 급수대가 있는데 마음이 급해지네요....
동호대교 지나면서부터 또 달려봅니다....!
반가운 아리수 급수대를 만나러 뛰어갑니다....ㅎ
다행히 갈증이 몸을 휘어잡기 전에 도달해 생수병을 채우고 또 마시고 전진....
40Km지점인 한남대교를 지나는데 4시간 45분 경과....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다섯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할수 있다 없다를 떠나 그냥 더 이상 달리기가 싫어집니다....ㅎ
걷기도 이제 짜증나는 마당에 달리기는 무슨....
걸어가도 제한시간 안에 도착한다는 방만함이 몸과 마음에 엄습....
뛸 생각은 하지도 않고 걷기만 하니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르네요....
잠수교에 이르니 풀코스 거리가 되었습니다....
5시간 3분이 경과한 시간....
정말 간만에 마라톤 풀코스 Sub-5도 못하다니 어처구니없네....ㅋ
잠수교 건널목에서 야밤에 무단횡단....
또다시 허기가 지길래 연양갱 하나 더 꺼내먹습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
밤이 깊고 낮이 가까운 시간....
세상은 이제 어두움을 벗을 것인가....?
생수병에 준비해간 커피믹스 하나 투여해서 먹고 싶어지네요....
그간 빗줄기 세례없이 다섯 시간 가량 잘 지나왔는데....
동이 트기 전 개벽의 전주곡일까나요....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며 온몸을 적십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달리기도 힘든 시간 빗줄기가 내리치니....
그저 살포시 눈감은 듯 어렴풋한 불빛 윤곽만 살피며 달리라는 것인가....
커피로 목을 홀짝홀짝 축이며 달립니다....
굵어지는 빗줄기에 온통 물범벅인 세상....
이제는 물웅덩이를 살피기도 어려워지네요....
그냥 물밭을 마구마구 차며 달립니다....
재미지네요....^^
그런데 42.195Km를 넘어선 지점....
추가 8Km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힘이 솟습니다....!
커피 때문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ㅎ
커피 한 병 다 비우고 생수병 버리고 힘껏 뛰어봅니다....
놀랍게도 뛰어집니다....
동네앞 늘 달리던 길....
신이 나서 더 폴짝폴짝....
앞서가는 분들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서래섬 지나 갈랫길에서 길을 잘못 들고 계신 분들을 돌려세워 함께 갑니다....
늘 즐겨 마시는 아리수 급수대에서 최종급수를 하고 내뺍니다....
동작대교를 지나는데 빗방울이 더욱 거셉니다....
그럼 어떼 늘 밟던 그 길인데....ㅎ
더욱 힘차게 달려 반포천을 건너고 재빨리 노량대교 아래로 피해야지....!
기나긴 노량대교 아래를 지납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네요....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느긋하게 나아가는 시간....
풀코스 거리를 뛰어넘으면 늘 이런 기분일까....?
고작 8Km 정도 더 달리는 울트라 대회라 깊이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풀코스르 달리고 나서도 아직 힘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기방기....
그냥 커피를 빨리 마실 껄 그랬나....?
자전거도로 외에 비를 피해 노량대교 아래로 계속 달립니다....
이 한밤중에 낚시대 여러 개 걸쳐놓고 밤을 보내시는 강태공들께서 많으시네요....ㅎ
서로 처음보는 광경에 서먹서먹....
하지만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을 이렇게 밝히는 만남이 마냥 진기할 따름....
즐겁게 다시 달려지기 시작하면서 목표는 수정되었습니다....
무조건 Sub-6....!!!
45Km지점을 지나면서 30분여 남았기에....
당연히 페이스 맞춰서 여섯 시간 안에 마포대교에 당도해야죠....
한강철교를 향해 나아가는데 이제는 비를 피할 지붕이 없습니다....
신발을 두세 켤레 겹쳐 신은 듯 발이 무거워집니다....
뭔가 발등도 발가락도 팅팅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시간....
그러니 더욱 빨리 달려서 마포대교 아래에서 쉬어야죠....ㅎ
비가 심하게 내리니까 불꺼진 63빌딩마저 어렴풋이 보이네요....
한 분 두 분 만나고 떠나가고 만나고 떠나가고....
여의도로 접어들어 갈랫길에서 경로를 잘못 드신 분들을 불러세웁니다....
방향을 바로 알려드리고 혼자서 원효대교로 내뺍니다....
물텀벙놀이는 계속 이어집니다....
마치 이제는 물 위를 걷는 듯, 그 위를 달리는 듯....
여의도로 돌아와 달리는 최종 1Km가 이렇게 흥겨울 줄이야....^^
메르스 때문에 연기된 새벽강변대회가 여의나루에서 개최 예정....
새벽을 접고 들어가려는데 새벽을 여시는 분들이 다시금 여의도로 몰려들겠군요....
그 옆을 지나니 마포대교 아래 서울色공원이 환하게 다가옵니다....
최종 극적으로 또 한 분 추월하면서 Sub-6로 골인....!
기록측정은 누가 하시나 둘러보는데....
자봉요원의 인도로 일단 기념촬영부터 합니다....
울트라의 기념촬영이라는 이런 것이군요....ㅎ
꽃다발 손에 들고 피니쉬라인 앞에서 담아보는 인증샷....!
마라톤 시작한지 3년이 넘었지만....
화환을 손에 들고 사진 담아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물론 저만을 위한 꽃은 아니라 완주자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요....ㅎ
다시 기록 확인하시는 분을 찾습니다....
일일이 수기로 적으시던데 5:59 숫자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쉽니다....
모퉁이에 멍하니 앉아 쉬다가 다시 일어섭니다....
기록증 또한 손으로 직접 적어주시네요....
비닐파일에 넣어서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둔 것....
찾아서 소중히 감싸안아 재빨리 車로 돌진....
기록증 젖을쎄라 고이 모셔두고....
눈을 감고 잠시 차 안에서 숨을 돌립니다....
섣부른 도전이 끌고 나온 몸....
한밤에 희한한 행동을 하면서 나는 또 뭔 드라마를 쓰는 걸까....?
리얼리티 다큐 제작하듯 홀로 연출하고 출연하고....ㅋ
묘한 상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심리를 담아내려 애쓴 걸까....?
사랑하게 되든 미워하게 되든 우선 몸을 움직여 느끼고 생각해봐야 할 일들이 많지....
결국 삶의 체험이란 살아있는 몸을 더욱 움직여....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거듭 만들어내야....
고통이 뭔지 행복이 뭔지 진정 깨닫겠지....
아아~ 끝나고 나니 만 가지 느낌이 머리속을 가득 채웁니다....
피곤해집니다....
얼른 자고 싶습니다....
일단 끝이 났는데 끝은 아니지....ㅎ
카메라 찾아들고 다시금 마포대교 아래로 옵니다....
10Km 지점 이후로 벗고 달렸던 모자....
반환점에서 가방에 넣었었는데....
다시 쓰고 옷매무새 가다듬고....
무려 두 달만에 다시 담아보는 거울샷....!
마라톤 모임도 나가고 훈련도 하지만....
대회가 아니면야 담지 않는 저의 완주인증샷....ㅎ
꽃다발 들고 담은 사진 못지 않게 귀중한 한 컷....^^
서울색공원에 다시 도착했을 때....
찬란한 조명이 반겨줘서 기뻤는데....
5시15분이 되니까 갑자기 소등을 해버리네요....ㅎ
누가 심술이 나서 그랬다기보다는 시간이 되어서 자동적으로 꺼졌겠죠....
순간 깜놀했으나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볼 일을 봐야죠....
일단 생수 한 병 원샷 해주시고....
먹거리를 찾아나섭니다....!
마라톤 대회장을 찾으면 본의 아니게 낮술을 하게 되는데....
새벽에 끝난 대회는 뭔 술이라고 불러야 할지....ㅋ
그냥 지난밤의 연장이라고 해야겠죠.....ㅎ
차를 몰고 갔으니 가볍게 막걸리 한 잔만 할랬는데....
이미 막걸리가 동나버렸습니다요....!
내가 그렇게 늦게 들어왔나 의아해지는 순간....
어제밤 인원보다 절반도 아직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그 많던 막걸리는 누가 다 해치웠을까나....^^
42.195Km를 넘으면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하지만....
거리도 주로도 다양해서....
명확하게 규정된 양식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처음 경험한 50Km 울트라는 '하프 울트라'고나 할까....ㅎ
25Km반환점에 간식이 주어지고....
끝난 후에 급식이 이뤄집니다....
아침식사하는 대회는 또 처음....!
국도 있고 반찬도 세 가지나....^^
오징어숙회와 부침개는 마라톤 대회장에서 신선한 만남이네요....
금새 후루룩 삼켜버린 밥과 반찬....
생수병이냐 소주병이냐....?
그냥 생수나 들이키고 귀가해야....ㅎ
그런데 소주병이 이슬이도 있고 처음이도 있는데....
몇몇 병들의 라벨이 이상합니다그려....^^
꺼내서 살펴보니 사진도 붙어있고....
이름도 좀 긴 것이 난생 처음보는 놈....ㅋ
해피레그처럼....!!!
이날도 안전하게 완주해서 무척 행복합니다....!
두 다리로 맛보는 보행의 자유를 힘찬 뜀박질로 더욱 승화시킨 사람들....
함께 달려 더욱 값진 걸음, 해피레그....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그 이름....
아마 광화문페이싱팀과 더불어 가장 인상깊은 주로의 꽃....
적절한 페이스로 이끌어주고 장시간 함께 달려주고....
누구도 그 도전에서 소외되거나 낙오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아무나 할 수 없는 값진 동행....
최선을 다해 돕는 손길 발길 그리고 온몸짓....
그런 분들이 주최한 대회에서 첫 울트라를 경험하게 되니 감개무량입니다....
이날의 신비로운 경험....
42.195Km를 지나친 질주....
한여름밤....
비내리는 주로....
2015년 어느날....
이렇게 길게 적어서 고이접어 유리병에 담아....
망망대해 인터넷의 바다에 떠나보내는 또 한 편의 편지....
어느 순간 어느 곳에 닿아 애틋한 눈길 한 번 받기를 바랍니다....
물론 제가 5년 10년 혹은 20년이 지나....
다시 이 글을 기억에서 건져올리게 된다면....
아련한 세월을 거스르는 깊은 감동의 물결이 마음에서 솟구쳐 흐르겠죠....
한반도의 대표 주로 어느 곳이나....
거기서 펼쳐지는 마라톤마다....
반드시 함께 달릴 이름....
해피레그....
그와 함께 했던 첫 경험....
울트라 마라톤 50Km의 대장정....
영원히 추억될 드라마는 결코 막을 내리지 않는 법이랍니다....!
마라토너 베르디안~
PS. 최대거리 기록갱신....!
이 기록을 다시 깨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
올해는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 듯....ㅋ
첫댓글 후기 넘 상세하게 재밌게 쓰시네요
전 잠수교 지나 아리수 급수대에서 같이 물보충 하던 사람입니다 슬럼프를 이겨내고 힘찬 발검음을 하셨다니 진정한 마라토너임엔 분명 하시네요 다시금 감동에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브6로 완주하신것 축하드립니다 ...후기도 잘 쓰시고 잘 달리셨다니 다행입니다 ^^
역시 소문대로 후기글 너무 잘쓰시네요ㅎㅎ
완주 축하드리고 글 잘읽었습니다
리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같은 테마를 공유하고 있어서 여러번 빵~~ 터졌네요.
그 심정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요 ㅎㅎ
마지막으로 추월 내드린
사람이 저 인 듯 합니다
전6.00 이니까요 ㅎㅎ
멋진 글 솜씨^^다시한번 그길을 따라 달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