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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기도
이유
그가 내 인생에 끼어들게 된 것은 내가 그의 자서전을 대필하기로 하고부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훨씬 전에 내가 그의 인생에 끼어들었는지도 모른다.
2009년 10월,
태양은 온누리에 황금빛 융단을 깔아놓았다. 여름 내내 푸른빛을 뿜어내던 나무들은 비로소 제 빛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지 끝에서부터 붉게 물들어가던 단풍나무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은행나무 이파리도 노란 힘줄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 시간 10분 전에 호텔리베라에 도착했다.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1층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임시로 영업 중인 14층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혹시 의원님이 먼저 오셨나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다.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노부부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부였다.
나는 입구에서 잘 보이는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계는 6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박의원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당숙은 소개하면서 의원이라고만 했을 뿐 궁금한 것은 직접 만나서 물어보라고 했다.
30분이 지나도 손님이 나타나지 않자 나는 전화를 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커피숍 밖으로 나가 공중전화를 걸었다.
“김지수예요. 지금 오시는 중이세요? 네? 커피숍이라구요?”
나는 종종걸음으로 다시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멀뚱멀뚱 커피숍 안을 두리번거리자 일본인 관광객이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나도 상냥하게 인사를 받았다. 젊은 남자는 여전히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박세진 의원님을 찾는다고 말했다. 직원이 나를 젊은 남자에게 안내했다.
나는 아들인가? 비서인가? 궁금해 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김지수예요.”
“아, 반갑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받았다. 키가 보통보다 컸다. 나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전에 볼 일이 있어서 온 김에 들른 건데요. 뭐.”
나는 그가 자리에 앉자 따라 앉으며 물었다.
“아드님 되세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휴대폰 좀 가지고 다니세요. 이쪽에서 전화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신문만 들여다보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정중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죄송한 일은 아니죠.”
그는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왼손을 턱에 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커피숍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는 메뉴판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키위주스를 시켰다. 그는 아메리칸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직원이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나는 재차 물었다.
“의원님과는 어떤 사이세요?”
그는 내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내게 물었다.
“커피 싫어하나요?”
나는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 단호하게 말했다.
“제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으셨는데요.”
“하하하…….천천히 얘기합시다.”
그는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가수를 보았다. 아직 대학생티를 못 벗은 아가씨가 예스터데이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채근하듯 물었다.
“당숙 말씀으로는 자서전을 내겠다는 분이 직접 내려오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요?”
그는 어떤 결심을 하기라도 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제가 박세진입니다.”
“네? 박세진 어른 요?”
나는 그의 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뇌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으로 머리가 멍했다.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얼른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직원이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교육을 잘 받은 직원답게 공손하게 행동했다. 직원은 내 앞에 주스 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고, 그 앞에 커피 잔을 놓은 다음 계산서를 놓고 갔다. 나는 그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는 나를 빤히 보았다. 나도 그를 빤히 보았다.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무슨 말이든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말을 했다.
“오시는 길, 차는 밀리지 않던가요?”
그는 유성IC 부근에서 조금 막혔다고 했다.
내가 주스를 다 마실 즈음 그가 다정하게 물었다.
“커피는 안마시나요?”
“네, 카페인 부작용이 심하거든요. 녹차, 홍차, 초콜릿, 콜라도 못 마셔요.”
“심각할 정도인가요?”
“네, 그런 편이에요. 식사부터 하고 커피를 마셨어야 했는데 순서가 바뀌었네요. 회 좋아하세요?”
“음식은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아는 횟집이 있으니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따라 일어섰다.
호텔에서 나와 큰길 건너에 있는 유성참치 횟집으로 그를 안내했다. 안면이 있는 횟집 매니저가 나와 그를 정중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참치정식을 주문했다. 술은 매취순을 시켰다. 매니저가 들어와 나와 그에게 술을 한 잔 씩 따라주고 나갔다. 나는 내가 모시고온 손님을 정중하게 대하는 매니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나를 친구 대하듯 편안하게 대했다. 매취순 석 잔을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는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내가 차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후식으로 나오는 과일을 먹고 있을 때, 나는 화장실을 간다고 나왔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음식 값을 계산하고 들어갔다.
“원고료는 마음에 드세요? 이건 선금입니다.”
그가 선금 삼백 만원을 내밀며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300페이지 책 1권 기준으로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동성이 있으니까 원고 분량에 따라 나머지는 탈고할 때 주시면 됩니다.”
그는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그가 내민 봉투를 가방에 넣고 시계를 보았다. 그가 먼저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얼맙니까?”
“계산 끝내셨는데요.”
매니저가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나를 장난스럽게 째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대전에 오신 손님이니 제가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횟집을 나오며 스승이 제자에게 훈계를 하듯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나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코믹하게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가 가지런했다.
밤바람이 상쾌하게 쌀쌀했다. 나는 그와 나란히 걸으며 네온사인들로 눈앞이 현란한 유성의 밤거리를 구경했다. 가로수의 잎이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을 받아 오색의 신비로운 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나는 호텔리베라 앞에서 그와 헤어졌다.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몸이 무거워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일거리를 맡고 보니 걱정이 되었는지, 신경이 쓰였는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설핏 잠이 들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박세진입니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네, 가시는 길이세요?”
“유성입니다. 내려온 김에 관광이나 할까하는데 시간 되시면 가이드 해주시겠습니까?”
“제가요?”
“녹음할 준비해서 나오세요. 바쁘세요?”
“아니에요. 바쁜 건 아니지만 의원님이 바쁘신 분이라 바로 올라가실 줄 알았거든요.”
“그럼, 허락 한 겁니다.”
나는 한숨 푹 자고 싶었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 입장에서는 그를 많이 알면 글 쓸 때 도움이 되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호텔리베라 커피숍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전 팔경을 그에게 설명하며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학창시절 계룡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면서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평일이어서인지 교통의 흐름은 좋았다. 유성IC로 들어가는 차들이 많은 구암역 부근과 동학사 입구에서 조금 밀렸을 뿐, 교통은 원활했다. 동학사 입구에 줄지어선 벚나무의 이파리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차장은 관광버스들로 꽉 차 있었다.
내가 입장권을 끊으려하자 그가 먼저 끊었다. 그는 남자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그의 태도와 말투에서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닫고 수긍했다.
그는 동학사를 대충 둘러보고 남매탑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하며 천천히 올랐다. 나는 그의 말을 잘 녹음하기 위해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등산객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로 산은 고요를 잃고 있었다. 천천히 올랐지만 경사가 심한 돌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찼다. 그는 내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넓적한 돌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녹음기의 테이프를 갈아 끼웠다. 그는 내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날씨는 산을 오르기에 적당했다. 나뭇잎이 햇빛을 가려주어 선선했다. 남매탑에 올랐을 때는 바람이 제법 심했지만 몸속의 찌꺼기들을 다 쓸어가는 바람이었다. 탑 2개가 나란히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들려주는 남매탑에 얽힌 전설을 인상 깊게 들었다.
그가 먼저 내려갔다. 나는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밧줄을 잡고 내려왔다. 내가 자꾸 뒤처지자 그가 한마디 했다.
“평소에 운동 안 하죠? 업어줄까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와 깔깔거리며 의원님이나 업히지 말라고 했다. 그도 헉헉거리며 겨우 올라갔기 때문이다.
산 입구까지 내려오자 오른쪽에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는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계곡으로 내려가 맑은 계곡물에 손을 씻으며 나에게 물을 뿌렸다. 나는 피하다 넘어질 뻔 했다.
그는 도토리묵과 더덕 동동주와 파전을 시켰다. 나는 더덕 동동주가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반잔만 마셨다. 그는 두 잔을 비우고 동학사 입구에 있는 벚꽃이 활짝 필 때 산행 오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꼭 오시라 했다. 그는 살아있는 한 반드시 오겠다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에 도장을 찍으며
“그 전에 하느님께 문안드리시게요?”
그의 농담을 받았다.
일주일 후,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고무장갑을 낀 채 전화를 받았다.
“박세진입니다. 지금 출발해서 안성등기소로 오세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안성등기소? 왜?’
나는 다른 사람에게 걸어야할 전화가 나에게 잘못 걸린 거라 생각했다.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나는 안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김지수입니다.-
한 시간쯤 흘렀다. 그에게서는 응답이 없었다.
‘문자를 못 보았나?’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시하고 내 일을 보기에는 그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불안해졌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꺼져 있었다.
‘할 일 없는 사람이 장난한 것도 아닐 테고……. 무슨 일 있나? 속는 셈 치고 가봐야 하나?’
갈등하다 출발했다. 가면서 휴게소마다 들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통이었다.
안성등기소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등기소 직원들은 식사를 하러 갔는지 접수계 직원만이 앉아 있었다. 망설이다가 혹시나 해서 접수계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역시 엉뚱한 질문이었다. 등기소 마당에 있는 공중전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꺼져 있었다. 대기실에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가 전화를 잘못 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발길이 돌려지질 않았다. 이왕 왔으니 통화가 될 때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처럼 반가운 적도 드물었다. 그는 일방적으로 점심을 먹자며 식당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래도 되는 거야? 의원이면 다야?’
마음은 그냥 돌아가 버리고 싶었지만 점심도 먹어야 하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가 말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스럽게 사과했다.
“어이구~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의 태도는 한바탕 따지려는 내 말을 막았다. 그의 표정은 정말 미안한 얼굴이었다. 나는 화를 내려다 그의 얼굴이 너무 창백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우선 자리에 앉았다. 그도 조금 전에 왔는지 테이블이 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가 시켜준 스테이크를 먹으며 그가 오라한 용건을 말하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안성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시라 했는데 계획이 수정되었다며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다.
나는 분명하지 않은 그의 해명에 은근히 속이 상했다. 장난 한 건데 왔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사람으로서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생각이 없다며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약이 올라서
“배라도 든든히 채워야지 속이 허전하네요.”
꾸역꾸역 다 먹었다.
대전으로 출발하려는 내 차에 그가 올라탔다. 대전에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볼일이 있으시면 기사를 부르라고 빈정거림이 섞인 투로 말했다. 그는 어린애처럼 사정했다. 안성 시청에 잠깐 들렀다 같이 가자고 억지를 썼다. 나는 그가 허리까지 굽혀 인사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허락했다.
안성시청은 등기소에서 가까운 언덕배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성 시가지가 다 내려다 보였다. 안성은 생각보다 넓은 도시였다.
그가 시청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언덕배기에 피어있는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코스모스 한 송이를 따서 꽃잎을 한 장 한 장 바람에 실어 보냈다. 태양의 온기가 몸을 나른하게 했다.
잠시 후 그는 노신사와 함께 나왔다. 둘은 무척 가까운 사이 같았다. 그는 나를 노신사에게 소개했다. 노신사는 자기도 자서전을 내고 싶다며 후에 도와주었으면 했다. 나는 예의상 하는 말로 들려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의 낯빛은 여전히 창백했다.
대전으로 오는 동안 그는 기자시절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나는 말할 기분이 아니어서 그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속으로는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그의 말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튿날,
그는 전화를 걸어 어제 못 올라갔다며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고 호텔리베라로 갔다.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호텔 현관에서 기다렸다. 호텔 정문 입구에는 택시 두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북 번호판의 택시 한 대가 들어와 손님을 내려놓고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돌아가는 택시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한 푼 줍쇼~”
‘???’
돌아서던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는 양복 상의를 뒤집어 입고, 한 쪽 팔을 묶어서 왼팔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마에는 넥타이를 동여맸고, 바지는 돌돌 말아서 정강이까지 걷어 올렸다. 낡은 벙거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자에는 ‘나 거지’라 쓰여 있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는 나를 보며 그도 싱글싱글 웃었다.
“이제 화 풀리셨죠? 어제일 용서하는 겁니다.”
나는 배를 잡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양복을 벗어서 바로 입고, 머리에 둘러맨 넥타이를 풀어 양복 주머니에 넣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죄 짓지 말아야지 지수씨 기분 어떻게 풀어주나 고민하다 날 샜시유~”
나는 그의 입장에서 무시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내 기분까지 생각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는 아침을 못 먹었다며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친한 친구 손을 잡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잡고 지하 1층 뷔페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내가 손을 빼려고 하자 그는 더 꼭 잡았다.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띄어 의원님 신상에 문제가 생겨도 난 모른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의 요청에 따라 장태산으로 향했다. 장태산은 유성에서 40분 거리에 있었다. 늘씬하게 뻗은 메타쉐콰이어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숲에서 풍겨오는 나무냄새가 상큼했다.
포장된 길을 따라 산책로를 오르는 중간 중간에 시가 적힌 푯말들이 있었다. 그는 운율을 살려 시를 낭독했다. 내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박수를 쳐주자 신이 나는지 올라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등산로는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만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대화를 하거나 녹음을 하기에는 적합했다.
40분쯤 오르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등성이에 의자가 있었다. 평평하게 다듬고 잔디를 깔아놓아 소규모 모임이나 게임을 하기에 적당해보였다. 먼저 올라온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인 네 명이 평상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는 상의를 벗어 팔에 걸고 심호흡을 했다. 내려다보이는 호수는 산그림자와 하늘을 품어 푸르고 고요해 보였다.
정자까지는 더 올라가야 해서 나는 앞서서 올라갔다. 경사가 심한 콘크리트길이었다. 정자 앞에는 이동통신 안테나가 우뚝 솟아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장비를 점검하러 왔는지 철문을 열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돌아갔다. 정자에 오래 머물기에는 바람이 너무 찼다.
내려올 때는 다른 길로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과 거리는 거의 비슷했지만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방갈로가 휴양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방갈로를 유심히 살피며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지내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웃기만 했다.
구불구불 포장된 길을 내려와 연못을 지나자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금불초가 들국화와 어우러져 있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소풍을 왔는지 노란색 원복을 입은 서너 살 꼬마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지어 가고 있었다. 나는 목이 말라 음료를 구하려 했지만 매점이나 자판기가 없어서 참아야 했다.
두 달 후,
나는 수정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추가할 내용이 더 있다며 통화를 자주 하자던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어디를 어떻게 수정해야할 지 몰라 그가 보내준 테이프를 들어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원고를 쓰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의 목소리의 변화가 느껴졌다. 책을 읽는 것 같은 말투도 있었고, 혼자 넋두리를 하는 것 같은 말투도 있었으며, 나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말투에서는 정감이 묻어나기도 했다. 나는 테이프를 모두 반복해서 들어보았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그의 목소리는 힘이 빠져있었다. 환자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답지 않게 노인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는 테이프를 처음부터 다시 들으며 목소리의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확실히 힘이 빠지고 있었다.
‘왜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을까? 왜 환자 목소리처럼 들리는 걸까?’
궁금증은 풍선처럼 커져갔다.
나는 안폰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김지수입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전화주세요. 추가할 내용 테잎으로 보내주셔도 좋고요.-
한나절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더 참지 못하고 당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수, 그 친구 지금 병원에 있어.”
“왜요?”
“간암이야. 몰랐나? 그 친구가 말을 안 한 모양이네. 자서전 빨리 마무리 하는 게 좋을 거야.”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렸다. 남매탑을 오를 때 젊은 남자답지 않게 힘들어하던, 살아있다면 벚꽃이 필 때 산행 오겠다던, 안성에서 화를 내지 못할 만큼 창백했던 그의 안색이 스쳐갔다. 그동안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친정엄마한테 애들을 맡기고, 노트북과 옷 몇 가지를 챙겼다. 병원에 있으면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서울에서 수정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병실 문에는 ‘문병사절’ 팻말이 걸려있어서 나는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밖에서 머뭇거렸다. 그때 간호사가 드레싱카를 밀고 왔다. 나는 간호사와 함께 들어갔다. 병실은 특실이었지만 생각보다 좁아서 그가 누워 있기에는 답답할 것 같았다.
“왔어요? 환자복 입은 모습 보이기 싫었는데 들켰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같이 웃을 수 없었다. 건강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노트북을 펼쳤다. 그는 추가할 내용을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이 떨리며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침착하려 애썼지만 자꾸 오타가 나왔다.
1989년 3월,
기자를 꿈꾸던 나는 국문과 3학년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점관리는 뒷전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노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내게 신입생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녀와 수업을 같이 들을 때면 그녀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나는 틈만 나면 그녀의 눈앞에서 얼쩡대며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늘 청바지에 T셔츠 차림의 그녀는 나와 마주쳐도 무심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쌩하니 가버렸다. 나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가 지나는 길목에서 앞을 가로막아보기도 하고, 그녀를 따라가며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지 마세요’ 라는 말을 들릴 듯 말 듯 뱉었을 뿐,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차 한잔 하자, 밥 같이 먹자, 영화 보러 가자 거의 구걸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내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어떡하면 그녀와 친해질 수 있을까 궁리 하다가, 봄 학기 종강을 앞두고 용기를 내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할까봐 절박한 심정이었다.
강의실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꽃다발을 준비했다.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자꾸 오줌이 마려워 잠깐 화장실 다녀 온 사이에 꽃다발이 없어졌다. 찾아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박세진입니다. 커피 드실래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마실 게요.”
그녀는 강의가 끝날 때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고, 내가 준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녀의 연락처라도 알아두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그녀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도 전에 다른 사람과 부딪혀 내 몸으로 그녀를 밀치고 말았다. 나는 넘어진 그녀를 일으키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그녀는 죄송하다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내 마음에서도 떠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그녀는 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기회가 된다면 내가 준 커피를 왜 버렸느냐고, 내가 그렇게 싫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간암 진단을 받고, 죽기 전에 자서전을 내고 싶었다. 내가 죽으면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자서전이라도 남기고 싶은 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아는 김의원님이 시간이 부족한 나를 도와줄 작가를 소개했다. 비서가 그녀의 약력을 들고 왔지만 그녀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호텔리베라 커피숍에서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신문을 보는 척 슬쩍슬쩍 그녀를 곁눈질 했다. 그녀가 분명했다. 설마 그 작가가 그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20년 전의 나를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녀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갈등 했지만 편안하게 나를 대하는 그녀를 보고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를 안성으로 부른 날,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고 부모님께 그녀를 소개할 계획이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가족에 대해 조사했다. 내가 그녀에게 남편 분은 무슨 일 하시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을 피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간 그늘을 보았다. 내 눈에 그 그늘은 단순한 그늘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힘들게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신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20년 전의 그녀를 잊지 못해서라고 알고 있다. 그동안 내가 입버릇처럼 그녀를 들먹였기 때문이다. 꼭 그녀를 잊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기자로, 정치가로 내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 40을 훌쩍 넘긴 것뿐이다.
그녀에게 사실을 미리 말하면 그녀는 분명 안성에 오지 않을 것 같아 편법을 썼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내 자신을 망각한 행동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안성 시청에 근무하는 작은아버지를 찾아갔다. 나는 그녀를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었던 마음을 그렇게라도 달래야 했다. 나는 내가 처한 입장이 있어서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은 안성까지 부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내게 실망한 눈치였다. 나는 더 일찍 그녀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내 마음을 털어놓지 않은 덕에 그녀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몇 번 더 가질 수 있었다. 죽음을 앞 둔 나로서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마지막 축복이라 믿었다. 그리고 내 개인의 무한한 행복이었다.
나는 내 자서전을 20년 전의 그녀가 대필했다는 것을 내 자서전을 읽는 독자에게 알린다. 하느님은 내 편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실 수 없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커피를 권하지 않기를, 그녀의 앞날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빌어주길 바란다.
그의 누나가 문병 왔다.
“누님, 제가 말한 그 작가예요.”
“그때 그 아가씨?”
그의 누나가 나를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별 말 없이 수술을 거부하는 그를 야단치다가, 눈물을 찍어내며 사정하다가 돌아갔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맑았다. 그는 누나가 돌아가자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러나 20년 전의 일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에서 애틋하고 고독한 사랑을 보았다. 나는 가슴이 아렸다.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간호사는 링거에 주사약을 넣고 조금 있으면 저녁이 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가 식사하는 동안 저녁을 먹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순두부찌개를 시켜서 거의 다 먹었을 때 그의 비서가 내려왔다. 비서는 눈치가 빨라보였다. 내 앞에 앉아서 북어 해장국을 빠르게 먹었다. 나는 비서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수저를 놓지 않았다. 비서는 의원님이 참 답답하다고 했다.
“강제로 수술 시키고 싶어요. 죽을 목숨 살렸다고 설마 절 죽이기야 하겠어요? 까짓것 죽이면 죽죠 뭐. 원래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렇데요. 수혈도 받지 않는다더군요. 참 답답한 사람들이죠. 책임질 가족이 있으면 달라질지도 모르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말리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비서는 나와 그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년 전 이웃에 살았던 지은이 엄마가 떠올랐다. 난산인데도 끝까지 수술을 거부하다가 아기와 산모가 죽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병실로 올라갔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하늘 날리는 눈발 사이로 20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열아홉 살의 지수는 대학에 들어가면 미팅도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창시절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생계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지수 앞에 나타난 키가 유난히 큰 선배는 부담스러웠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수는 겨우 책값과 교통비만 해결하고 학교를 다녔을 뿐,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영화 보러 다닌다는 건 마음뿐이었다. 관심을 보이는 부잣집 아들로 보이는 그는 버거운 상대였다. 속으로는 바보, 등신, 멍청이 하며 소심한 자신을 탓했지만 막상 그가 다가오면 피하기부터 했다.
지수는 그가 커피를 내밀었을 때 마실 걸, 죄송하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웃어줄 걸, 그가 떠오를 때마다 후회했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넘어질 때 다친 손목의 통증은 오래갔다. 지수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초라해졌다. 하지만 지수 가슴 속에 있는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지수는 그날 그가 꽃다발을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지수는 그 꽃다발의 주인공이 자신일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꽃다발은 다른 여학생 손에 들려있었다. 그 여학생은 평소 그와 같이 다니던 선배였다.
그날 이후 지수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그가 링거걸이 바퀴를 굴리며 병실로 돌아왔다. 환자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러한 내 마음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그는 안쓰럽게 웃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난 슬프지 않아요. 다 하느님의 뜻이에요.”
그의 얼굴은 속세를 초월한 듯 편안해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내 등을 토닥이다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올렸다. 눈이 서로 마주쳤다. 그는 키를 낮추어 내 입술에 그의 입술을 살며시 대었다. 나는 그의 숨결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나는 호텔리베라 커피숍에서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20년 전의 그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도 나를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가 20년 전 얘기를 꺼내지 않아 나도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가능한 편안하게 대했다. 나는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배려라 판단하고 글을 쓰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지금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중이다. 내일은 내 간을 그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잡혀있다. 물론 그는 자신이 수술을 받는 다는 것도, 내가 기증자라는 것도 모른다. 나는 그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