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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 |
분류 | 고무로 만든 신발 |
연혁 | 1919년 이하영(李夏榮)이 대륙고무주식회사를 처음 창설 |
1921년 김성수(金性洙)가 중앙상공주식회사, 김동원(金東元)은 정창고무공장을 평양에 설립 | |
폭이 넓고 굽이 낮으며 덮개가 반만 되어 있으며 남자 고무신은 갖신을 본떴고, 여자의 것은 당혜(울이 깊고 코가 작은 가죽신)의 한 가지를 본떠서 만들었음 | |
초반에는 농한기에 짚신을 만들어 팔던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불매운동 등이 일어났으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공장이 설립되면서 이내 주류 신발로 자리 잡았음 | |
고무신은 이전에 짚신이나 갖신보다 방수가 잘 되어 실용적이며 잘 헤어지지 않고, 미투리의 25전인 데 대하여 40전으로 가격도 비싸지 않아 널리 보급되기 시작함 | |
1922년 경표(京表), 상표(上表), 별표, 대륙표(大陸表) 등의 고무신공장이 난립하여 구두형이 아닌 현재와 같은 고무신을 다량 생산 | |
1937년 중·일 전쟁 발발로 물자가 귀해지자 1938년 총독부가 고무신 제조를 금지하기도 했으나 고무신의 인기는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짐 | |
1960년경부터 고무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발의 피부와 위생학적인 면을 고려하여 만든 운동화의 대중화 및 구두의 생활화로 그 선호도가 날로 저하됨 | |
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순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