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책문화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동기는 바로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 베스트 25“에 이름을 올린 베이터우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건물이 아름답고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도서관, 도서관의 자료운영과 이용자 서비스가 훌륭한 도서관, 그 나라와 국민정신을 대표하는 도서관처럼 여러 가지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겁니다. 그가운데 건축물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특히 보는 이의 마음을 뛰게 합니다. 그토록 아름답다는 도서관이 마침 가까운 아시아에 있으니 꼭 한 번 가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본 베이터우 도서관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은 신베이시립도서관의 베이터우 분관으로 2006년에 지어졌습니다. 베이터우 온천지구라고 하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온천 공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데요. 자연과 조화된 친환경 생태건축물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철골 구조물로 중심을 잡고 목재로만 지어진 이 건물은 거대한 ‘트리 하우스’ 같기도 하고, 얼핏 보면 동화책에서 만나는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하 1층과 지상2층의 구조에 최대한 실내에 햇볕을 끌어들여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했고, 옥상에는 태양광 집열판과 잔디를 깔아 에너지 효율을 높였습니다. 빗물 저장탱크를 통해 저장된 물로 정원과 화장실에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3면의 유리창을 통해 하루종일 빛이 들어오고요, 특히 중심 공간이랄 수 있는 계단형 로비는 하루 종일 거의 전기를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빛의 중심에 자리합니다. 해가 깊게 들어오는 남향으로는 사무공간을 배치하고, 직사광선의 영향을 덜 받는 북향으로는 서가를 배치해 강한 빛으로부터 장서를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서가는 모두 높이가 110센티미터를 넘지 않게 해 바깥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했네요. 어른이 서있을 때 서가 너머로 도서관을 둘러싼 나무와 숲, 빛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장서는 약 8만 권인데 하루 방문객이 7-8천 명을 넘고, 주말이면 2만 명까지도 찾아온다고 하니 이곳의 번잡함, 혹은 분주함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역주민 중심으로 조용히 책을 읽는 곳이라기 보다는 ‘관광형 도서관’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었습니다. 유치원부터 성인까지, 내국인부터 우리같은 외국인까지 끊임없이 단체 방문객이 찾아오니 북적북적한 느낌이 있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보다 우리처럼 서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은...어쩌면 지역주민들로서는 이런 점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또 한 편으로 이 도서관이 지역주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지하1층은 어린이 자료실)
‘베이터우’라는 이름은 원주민어로 ‘마녀’라는 뜻이랍니다. 그들은 뜨거운 온천물과 그로 인한 물안개를 마녀들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각했다지요. 이곳이 관광상업지구가 된 것은 1894년 독일 광산업자가 온천을 개발하면서 시작되었고, 1896년 일본인이 온천여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 온천 관광지로 변모하게 됩니다.
도서관 담당자에 의하면 식민지배 당시 이곳은 일본인 전용 거주 지역이었다고 해요. 풍광좋고 온천 좋은 곳에 자리잡고 지배계급의 호사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지금은 온천 주위로 호화 리조트와 위락단지가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관광지구입니다.
베이터우 도서관에서 몇 가지 생각을 합니다. 우선 주위 경관과 어우러진 건축물의 아름다움. 무엇보다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 생태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요. 그 건축물이 다름아닌 도서관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이 도서관에 수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것. 공간이란 사람의 정신을 담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건축물 하나가 온전히 스스로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중요합니다.
영국 국립도서관을 갔을 때, 국립도서관을 짓기 위해 수 십 년간 수많은 논의를 거쳐 먼저는 여기에 어떤 정신을 담을지 충분히 공유하고, 그 정신을 담기 위해 어떻게 건물을 지어야 하는가 고민했던 흔적들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나라의 정신이 담겨있는 국립도서관이란, 바로 이렇게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건축물 스스로가 자신을 말하도록 말이죠. 우리나라에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담을 수 있는 “기적의 도서관”을 짓기 위해 고 정기용 건축가가 건물의 내용성을 고민했던 그런 흔적들 말입니다.
아쉬웠던 건, 관광형 도서관이 되다 보니 도서관 운영과 이용자 서비스는 아무래도 부실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장서의 배치라든가, 주제 전시라든가, 이용자의 독서증진을 위한 주제서가의 운용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내 눈에도 부실해 보였습니다. 지하에 자리한 어린이 자료실의 구성도 건축물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역할들을 해내기에 이곳은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공간이 그리 크지는 않아 사서 7명 정도면 감당이 가능한 규모이지만, 하루에 만 명씩 사람들이 들고 나면 어떤 능력자도 그걸 조정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수 십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해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일반 이용자에 비해 관광객 이용자가 월등히 많을 경우, 일상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 짐작되었고, 이것 또한 이 도서관의 운명일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드네요.
도서관은 저마다 자기 운명을 가지게 마련이니까요...그런 점에서 다음 번에 소개할 “국립대만도서관”(National Taiwan Library)은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를 정말 잘 보여주고 있는 아주 훌륭한 사례입니다.
(화장실 수전이 붓 모양으로 되어있는 게 재미있어서 한 컷!)
(도서관 견학을 담당하신 분은 자원활동가라고 하시네요)
(열심히 적고 또 적고....찍고 또 찍고....사전 견학 신청자에 한해 사진을 찍을 수는 있는데 도서관 내에서
인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찍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다른 사람 뿐 아니라 우리 셀프 컷도 찍지 말라고...)
(도서관 직원, 그리고 자원활동가 분들의 도움에 감사드리며 모든 도서관 견학 때 서울에서 갖고 간 맛있는 강정과자와
책 선물을 드렸습니다)
(대학생들이 졸업앨범 사진촬영을 왔네요...청춘 !! 고통스러운 현실일지라도 자연 속에서 젊음은
푸르게 빛납니다)
(정문...이곳은 포토존!!)
(베이터우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한 정거장...도서관과 온천이 있는 신베이터우까지 가는 기차는
관광열차답게 이렇게 예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