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경험의 변화에 대한 이해와 대처 (교과서적 설명)
환자의 지각장애 중에서 ‘환각’이 워낙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에 가족이나 전문가는 기타의 지각장애를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조현병의 핵심적인 문제는 ‘사고장애’라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지각장애가 조현병의 일차적 문제라고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대다수 환자들이 지각장애를 경험하고 있으며, 지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각경험에 변화가 오면, 사고의 혼란이 오고, 대응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망상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지각경험이 변화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사고의 혼란’ 역시 변화된 지각경험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① 민감성의 증가
대다수 조현병 환자들은 감각 자극이 지나치게 강렬하게 경험된다고 보고한다. 즉,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색깔들은 더 진하게 보이며, 빛은 더 밝게 빛난다. 그리고 바닥은 매우 반들반들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정말 그림자도 없앨 만큼 무시무시한 전기 불빛을 밝힌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반들거리며 인공적이었는데,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광물처럼 너무나 뾰족하고, 너무나 빛나고 너무나 긴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서 나는 대단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정신분열증 소녀의 수기」, 19쪽, 47쪽)
“모든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동생이 머리를 말리는 동안 드라이기 소리가 귀에 찢어지는 듯이 들렸습니다. 동생이 수건을 벽에 걸다가 떨어뜨렸는데, 그 소리가 쿵하는 소리로 들려서 화를 냈습니다.
당시에 저는 3일간이나 웅크린 채 잠을 잤습니다. 방바닥이 너무 반들반들하고 미끄럽게 느껴져서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눕게 되면 끝없이 미끄러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저자가 상담한 환자의 경험)
조현병 환자들에게 모든 것이 얼마나 강렬하게 보이는가 하는 것은 반 고호의 작품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반 고호는 조울병 환자였는데, 그의 작품들은 그가 조증상태에서 경험한 정신병 환자들의 지각방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이글거리는 태양, 붉은 대지, 새파란 풀잎들이 잘 대비되어 있다.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색깔들이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에 흠칫흠칫 놀라게 되며, 빛이 너무나 밝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소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며, 방바닥이 너무나 반들반들거리기 때문에 미끄러워서 누울 수가 없다. 책을 보면, 종이가 너무나 밝게 반짝이기 때문에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가족들이 보기에는 환자가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놀라거나, 신경질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별 것 아닌 자극들이 그들에게는 매우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이 그러한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② 크기와 형태의 왜곡
일부 환자들은 자극이 단순히 더 강렬하게 경험될 뿐만 아니라 그 모양과 크기가 다르게 보인다고 보고한다.
“내 친구 중에 한명이 나에게 접근하였을 때는 건초더미처럼 친구가 자꾸 커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내 방이 거대하여지고, 기울어지며, 벽이 반들반들하게 되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 목소리가 음색도 음향도 없는 금속성 같았습니다. 갑자기 하나의 말만이 다른 말에서 마치 칼로 절단된 것 같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 말이 내 머리 속에서 반복되었습니다.
...... 나는 그녀의 눈, 코, 입술을 보았습니다. 나는 낯선 이의 얼굴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때 날 쳐다보는 갈색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부분 부분이 마분지로 장식된 인형을, 내 옆에 있는 조각상을 보았습니다. 아! 나는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불안했던가!” (「정신분열증 소녀의 수기」19쪽, 23쪽, 28쪽, 29쪽)
흔히 환자들은 ‘엄마가 가짜 엄마’라고 주장하는데,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환자의 눈에는 엄마가 이상하고, 달라져 보일 수 있다. 이렇듯 환자들에게는 가족의 얼굴이 달라져 보이고, 거리의 풍경이 달라져 보이며, 사람들이 이상한 몸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모든 사물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모양과 크기가 달라져 보이면 환자는 세상이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지며, 마치 전혀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이러한 느낌을 비현실감이라고 하며, 이때 환자는 강한 공포감을 경험한다.
③ 자극의 통합성 결여
환자들에게는 때때로 입력되는 자극이 통합성을 상실하고 각각 별도로 지각된다. 아래의 예는 회복된 환자가 자신의 증상경험을 묘사한 그림인데, 당시에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지각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 6-3>. 통합되지 않은 지각경험 (그림 생략)
환자들의 회복수기에도 자극이 각각 분리되어 지각됨으로서 그들이 어떤 곤란을 겪었는지가 묘사되어 있다.
“나는 사물들을 머리속에서 종합해야만 했다. 손목시계를 볼 때면, 시계줄과 시계판과 시계침과 손목을 따로 보았으며, 그리고는 머리속에서 그것을 하나로 짜맞추어야 했다.” (토레이의 책 15쪽)
“텔레비젼을 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화면보기와 소리듣기를 한꺼번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듯 동시에 두가지를 소화해 내지 못했는데, 특히 하나는 시각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각적인 것일 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한번에 너무나 많은 것이 들어 와서, 자극을 감당할 수 없었고, 자극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토레이의 책 15쪽)
우리가 세상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지각경험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세상에 대한 ‘안정감’과 ‘예측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만일 세상이 시시때때로 그 모습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갑자기 사물의 모양이 바뀌고, 반들거리고, 날카롭게 느껴진다면... 더욱이 사물이 통합적으로 보이지 않고, 부분 부분이 각각 따로 떨어져서 보인다면... 환자들이 이처럼 심한 지각장애를 경험할 때, 세상은 일관성이 없고, 예측불가능하며, 안정감을 상실한다. 이때 환자들은 심한 불안감, 공포감, 고독감을 경험한다.
첫댓글 "정신분열병과 가족" 책의 116-118쪽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