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들이
☞모처럼 우리 내외의 나들이다.
결혼 30년이 넘도록 공식적인 틀에 짜인 나들이 아닌 자유롭게 홀가분한 해방감으로는 손꼽을 정도이니, 어린애처럼 기쁠 수밖엔, 더구나 아내는 피 붙이인 친언니가 사는 곳 가니 나보다 더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가 연이어 그칠 줄 모른다.
☞동서 내외는 작년 8월 현대인의 수족이 되어버린 자동차 홍수 덕분에 매연으로 찌들고, 콘크리트 빌딩이 하늘을 가로막는 숨 막히는 서울을 떠나, 경기도 용인 남사면 조그마한 촌락 산세도 그리 높지 않고 물 좋고 공기 맑은 아담한 산자락으로 이질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훌쩍 안거 하였다.
☞2개월 전 처형 회갑이라 처가 권속과 함께 갔을 때 “자식들 공부시켜 놓고는 우리도 시골에 와서 지낼 생각이라”고 한 말에 호감 가졌는지, 일주일이 멀다고 전화로 주고받은 짧은 정담이 아쉬움이었는지, 앞으로 우리 계획에 보탬이 되지 않을 가 하는 뜻이 있어서인지, 아무튼 서로 끌어당기는 매력에 마음이 동하여 도착하게 되었다.
☞오 육십호 되는 촌락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온화한 마을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겨우 칠팔호에 노틀들만 옛날을 더듬으며 지킬 뿐이다.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산업화 물결이 몰고 온 이농현상의 심각성이 어제와 오늘이 아니지만 이로 인하여 농촌 빈집의 흉물이 범죄 발생과 은닉처라니, 그대로 방치된 현장을 보는 심정 왠지 못 마당하다.
몇 일전 신문기사에, 6,70년대 근대화 에너지로 한 몫을 담당했던 석탄이 문명의 뒤안길이 되면서 전국 각지에 폐광이 그대로 방치 되어 환경에 치명타를 주는 수질오염의 주범은 방관한 체, 수십 년 넘게 자란 나무를 마구잡이 잘라버리고 골프장 건설이라니, 너무나도 대조적인 현실상을 말해 주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배고파하든 시절은 지났으니 뒤돌아보는 여유로운 잣대로 내일을 염려하는 게 어떠할는지?
☞자연을 등지고 살 수 있다는 현대인, 자연의 법칙 진리를 헌신짝처럼 동댕이치듯 이삼십년 수출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생산에만 치중한 지금의 환경은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예로부터 삼천리강산을 금수강산으로 불렀고 지금도 말로는 부르고 있다. 동방의 낙원이라고 대륙은 물론이고, 심지어 섬나라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침을 삼켜 우리 선조들의 끈질긴 수호로 반만년을 이어온 지금, 우리의 옥토가 우리의 손에 의해 폐허 되어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보면서도 서로 방관하여 코로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닌가 한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속에 문명의 발달 형성 조화가 시급히 마련되지 않는 한 금수강산이란 말은 우리 곁에서 영원 사라지지 않을지 하는 두려움을 개탄하며 가슴 아프게 여긴다.
☞동서가 산자락에서 채취한 영지버섯으로 담은 술과 정성으로 기른 토종닭 백숙 안주는 우리네 고유한 맛과 향 그대로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흐뭇한 마음의 위안 삼으며, 이젠 자취도 없는 어릴 적 시골풍경을 더듬는 추억이 휘감는다.
인정이 넘실넘실 타오르는 모락모락 밥 짓는 저녁연기, 양지 바른쪽 개나리 밭에 어미닭 품속을 못 벗어나는 갓 깐 병아리의 아기자기한 모습, 외양간에 “음매”하며 가로 세로 뛰는 송아지와 흑염소의 장난질, 겨레의 소박한 여인상처럼 초가집 지붕 위 하얀 박꽃, 빨간 댕기 양 갈래 머리카락이 허리춤에 닿으며 물동이 이고 싸리문 들어서면 삽살개가 꼬리 살래살래 흔들며 치마폭 물고 반기는 광경, 화롯불에 고구마, 감자, 밤 구워주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긴 그 맛, 숨 가쁘게 몰아쉬면서 돌담길을 무리지어 보리피리 불던 일, 자치기, 구슬치기, 재기차기, 연날리기, 등등... .
☞어제만 같은데 벌써 지천명이 되어 주마등처럼 잊어지지 않고 새롭게 찾아오지만 쉽게 편하게 살자는 요즈음 세상에 모두가 사라지고, 그 향수에 젖어 형님 한 잔, 아우 한 잔, 주거니 받거니 정겨운 덕담 속에 한 겨울밤이 다 가는 줄 모르고, 미루나무 둥지에서 날개 펴는 까치 소리 더불어 먼동이 트는 자연의 섭리가 그래도 자연은 인간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감싸고 있다는 사실에 武陵桃源(무릉도원)에 있는 듯 1박 2일의 짧은 나들이는 그저 행복 했었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을 떠난 인간은 물에서 떠난 물고기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란 구절되되새기면서 대자연 섭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특이한 결혼식
★ 60년 초 2월이었다.
요즈음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상례화 되었지만, 그때는 유명 인사 자녀나 극소수 예식장을 선호하였을 뿐이고 대개가 구식 혼례식이었다.
입춘이 지나서인지 활짝 갠 하늘이 금시라도 개나리 꽃망울이 터질 듯 바람 한 점 없는 따스한 봄날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신랑과 함께 함진아비로 온 경남 창녕들은 동 서 남 3면이 시원스럽게 펼치어 있고, 북쪽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자락에 150호가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에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11시기 임박했다. 온 동네 남녀노소가 잔칫집으로 인하여 마음이 희희낙락에 서로 돕고 서로 나눠먹는 훈훈한 시골인심이 넓은 마당, 뜰. 방 없이 하객들로 인산인해이다.
★ 도착한지 몇 십분 지나서이다.
“새신랑이 증발했다.”며 여기저기서 웬 변이야고 숙덕숙덕 야단이다.
함진아비 겸 신랑 친구로 온 김 군과 나는 함 실랑이가 막 끝난 뒤, 잠시 휴식하는 사이 돌발한 것이라서 첨은 설마하고 믿지 않았다. 신부 집에서 미신 처방이 아닌가 여겨 대수로이 생각했다. 그러데 시간이 흐를수록 심상찮은 분위기에 안채 쪽에서는 울음소리 들리는 심각한 상태는 극도에 도달한다. 모두가 즐거움에 부풀어 있던 기쁨이 삼삼오오 짝 지어 웅성대는 불길함이 최고조이다.
“사모관대 쓰고 어딜 갔다는 거야”
“삽짝 밖에 좀 나갔겠지”
“새신랑이 사모관대 쓰고 삽짝 밖이라고”
“혼례식 시간이 지났잖아”
“혼례가 문제람, 새신랑이 없어졌는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다 있담”
도깨비시장은 저 가라 할 정도 우왕좌왕이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없는 분위기는 지속될 뿐 새신랑 없는 잔칫집은 뾰족한 묘안이 없다. 새신랑이 나타나기까지는 별수가 없지 않는가 말이다.
“새신랑이 어떻게 된 게 아냐” 김 군은 나를 보고 오른 손으로 머리를 지적하면서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이럴 수 없다는 뜻이다.
“사리분별 못하는 이군이 아니잖아, 부친께서는 구학에 손꼽는 분이시라 가정교육 너도 잘 알잖아”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뚱딴지 같이 어딜 갔다는 거지”
고등학교 시절을 거처 대학생활 절반이 넘도록 너무 잘 아는 사이에 일어난 항당한 행동이니 더욱 어안이 벙벙하다.
★ 새신랑이 증발 된지 한 시간이 지나 두 시간이 다 되어서이다.
“새신랑이다.”
“새신랑이 왔다.” 잔칫집은 한 숨 돌리는 것 같더니만, 다시 왁자지껄 야단이다.
“아이고 이걸 어쩔거나, 새신랑이 00댁 아들이잖아”
“무슨 이런 일이 있담”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보니 친구가 쓰고 있을 사모관대는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진 낮선 청년이다. 그리고 장가 온 친구 녀석은 그 옆에 서서 소란한 군중 속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한 모습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으니, 탐험소설 읽는 듯이 머리가 어리둥절하다.
“어이 친구야, 어찌 된 일이야” 난 가까이 가서 다그쳤다.
“미안하네, 조금만 지켜봐” 짧게 말하곤 소란한 군중 앞에 나간다.
“저로 하여 소란이 있었다는 것을 사죄부터 드립니다.” 군중을 향해 정중히 고개 숙이고 계속 입을 연다.
“오늘 박 희정 양과 혼례식을 할 신랑은 저가 아니고 한 동네 20여년 이상 함께 살아 온 김 종렬 군입니다. (사모관대를 쓴 김 종렬을 바라면서) 하객 여러분께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마시고 이 혼례식을 성대히 거행해 주시고 두 분의 앞날을 축복하여 줍시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던 군중들은 다시금 소란과 아우성으로 떠들썩하다.
“세상 오래 살다보니, 별꼴 다 보는구먼, 장가 온 신랑이 신부와 혼례식은 않고 자청하여 다른 사람을 소개하다니, 변이야 변 쯔쯔” 또 다시 삼삼오오 모여 귓속말도 수군거리고 잔칫집 분위기는 혼탁한 아수라장이다.
혼례식을 할 수 없다느니, 해야 된다느니, 여론이 분분하여 하객들끼리 언성이 높아지고 입씨름은 한 치 양보라곤 없는 극성이었으나, 신부 혼주의 말 한마디 승낙으로 두 사람 혼례식은 그 와중 교배잔이 오가고 하여 한 쌍의 부부가 탄생 된 뒤 하객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사퇴가 다시 전계 된다.
★ 장가 온 새신랑이요 친구인 이 종찬 군이 다시 사모관대를 쓰고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저도 이 자리에서 혼례식을 올려야 되겠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하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또 무슨 해괴한 장난이 있는가 여겨 이 종찬 군을 뚫어지게 주시한다.
“저는 경주 이가며 나이는 24세에 총각입니다. 처녀면 누구나 족합니다. 저와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줄 분은 서슴없이 나오시면 저의 배필로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하곤 혼례식을 기다리는 새신랑차림은 늠름하기도 하다.
잔칫집에 온 하객들은 물론이고 창녕들마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도깨비 같은 장단에 춤을 추워 얼빠진 체 멍하고 있는 순간 드라마에 나오는 출연배우가 등장하는 듯, 각본에 짜인 듯, 댕기머리 길게 한 처녀가 수줍어 어찌 할 바를 모르면서 안채에서 뜰로 사뿐 내려오더니
“이 소녀가 청혼에 따르려고 하오니 승낙하여 주서요”
얼굴이 앵두 빛처럼 빨갛게 된 체 낭랑한 목소리로 한 마디하고 고개 숙여 있는 모습은 한 떨기 장미 꽃 마냥 아름답기 그지없다.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태양마저 놀라는 듯이, 반가운 듯이, 두 청춘남녀 백년해로를 축복하는 듯 방긋 웃어 주었고, 창녕 산자락 150호는 공교롭게 맺어진 특이한 두 쌍 혼례식이 톱뉴스로 그 혼탁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멋진 사나이야”
“한 마디로 재미 콜콜 나는 친구야”
“창녕뿐만이 아닌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으로 칭송받고도 남겠는 걸”
★ 나와 김군은 이군 부친의 간곡한 당부로 이 사실을 당분간 입을 함봉하여야 했다. 왜냐 하면 신행 당일 여러 잡음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이군 부친의 뜻이기에 그대로 따르기로 한 것이다. 3일 뒤 신랑 댁에서 예정대로 신부가 바뀐 사실을 모른 체 하객들 축복 속에 성대히 폐백절차도 끝났다.
★ 이 사연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처럼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 대구 00 신문사에 근무하는 A기자가 이 종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그도 쾌히 응하였다.
“김 종열군과 박 희정양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언제 알았습니까?”
“혼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였조”
“그때를 소상히 말하여 주시겠습니까?”
“중매 혼인이라 박양을 몇 번 못 만났지만 활발한 성격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이면에 어두움이 엿보여 고심하든 중, 그날따라 역시나 반가이 맞아는 주는데 진실성이 미흡함을 직감하고 장모 될 분께 술과 안주를 부탁하여 박양과 뒷산으로 산책을 가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어떤 연유에서 양보의 미덕을 결심 하였습니까?”
“4년간 사랑을 단순히 홀아비 자식이고, 가난뱅이란 구실이 부모님의 결사반대에 혼자서 애간장 끓이면서 말 못하고 부모님의 순종에 따른 갸륵한 마음이 연민의 정에 깊은 감회가 동기가 되었든 거조”
김 종열씨와 사전 교감은 언제였습니까?“
“박양을 통하여 이름을 알았을 뿐 혼례식 당일이 첫 대면이지요”
“왜 사모관대를 쓰고 갔습니까?”
“김 종열씨에게 장가 온 신랑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요”
“김 종열씨가 이 종찬씨 생각대로 순순히 응하든가요”
“사모관대를 쓴 나를 보곤 몹시 당황한 모습이었으나 자초지정을 얘기 하였더니, 수응이 가는지 큰 의견충돌 없이 합의 하고 흡족하게 고맙다고 하며, 일사천리로 잘 성사 되었지요”
“김 종열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합니까?”
“박양을 통해 들은 바도 훌륭한 분이었는데, 잠깐 대화로 박양의 말대로 실감이 가든군요, 물론 저도 그 사람 뒤 서라면 섭섭하지만” 주위에서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연극 드라마 같은 각본은 언제 결심 했습니까?”
“박양과 뒷동산에 갔다 온 후 괴로움에 발부등치며 고통과 번뇌에 벗어나지 못해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보냈지요. 김 종열씨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여야 순리대로 잘 될 수 있는 여권 조성에는 암담한 난관에 봉착한 체 현지에 도착했지요, 겉으로는 태연하였으나 허공에 뜬 구름처럼 된 상태에서 사모관대를 쓰는 순간 나 자신도 모르는 즉흥적인 행동을 한 것 뿐 이지요“
“친구와 나눌 생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 왜 하지 않았겠습니까만 나로 인해 오히려 필요 없는 지나친 부담감이 될 뿐 결정적 해결책엔 묘안이 막연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부인과는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나요”
“천만에요, 혼례식 그날이 첫 대면이었어요”
“그렇다면 규수로써 그런 과감한 용기로 행동으로 옮기기엔 좀 그렇지 않아요”
“박양을 통하여 뒷동산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듣고는, 나에 대해 참으로 괜찮은 분이라고 마음 속 동경하던 차, 혼례식 날 나의 행동에 완전히 매혹되어 부끄러움을 떠나 바로 저분이 영원한 동반자라 여기고 돌연히 나타났다고 첫날밤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든군요”
“부인과 인연이 된 소감을 부탁한다면”
“그지없이 행복합니다. 박양과 김종열씨 두 사람 앞날에도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우리도 앞으로 남에게 칭송받으며 알토란같은 삶을 위해 열심히 뛰려고 합니다.”
“앞날에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면서 인터뷰에 응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대구 00 신문사 A기자는 약 30여분의 인터뷰를 끝내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촘촘히 사라진다.
★ 그 다음날 일간 신문 사회면에 “박력, 용기 넘치고 너그러운 양보의 청년 혼례식”이라고 대문짝 같은 큰 글씨 밑에 그 동안의 사연을 소상히 실리니, 갑자기 더 유명해진 이 종찬은 대학가에서 원더플(wonderful), 원드플, 이 종찬 원드플. 한동안 우러러보는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 ♥ ♥
대전문학 2013, 가을호 제61호 특집,
제2에 한강의 기적
☀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노력하면 안 되는 일 없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너도 나도 다 함께 즐겨 부르던 대중가요 선풍이 귓전에 선명하게 숨 쉬고 있다.
☀ 우리 지난날을 돌이켜 더듬어 보자.
먹어야 산다고 먹을 것이 없어 헤매든 그 높은 고개 보릿고개로 허리끈 조이고 조아서 부석부석 누렇게 뜬 얼굴로 가난의 탈 벗어 던지려고 너와 나 하나가 되어 앞만 보고 뛰든 그때 우리 서로 刻苦(각고) 끝에 얻은 보배가 오늘과 같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것을 부인은 못할 것이다.
☀ 고난의 역경을 우리 스스로 변혁시킨 그때, 그 함성이 지구촌은 감동하여 조용한 동방의 나라 한강의 기적이다. 우리의 슬기, 우리의 힘, 우리의 저력에 온 세계는 원더플(Wonderful), 원더플, 코리아 원더플, 한 마디로 우리 긍지 높인 그날이 아득한 옛날이 아인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그 바탕 위에 그 덕분에 풍요로움을 마음껏 만끽하며, 주말과 휴일엔 스키장으로, 해수욕장으로, 꽃놀이, 단풍놀이로 연중 자동차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어 전 국토 동맥은 제 기능을 잃어도 자동차는 갈수록 더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내일을 위해서 분수에 맞는 피서고 휴가라면 뉘가 감히 말 하겠는가?,
이 짓도 부족하여 물질만능에 파묻혀 호화 해외관광에 과소비, 더구나 몸에 좋다면 쌍불 켜고 심지어 살아있는 곰쓸개까지 뽑아 먹는 잔인성, 몇 백 년 살겠다고 왜들 이러는지,
이것뿐이랴 자만심에 가득 차 성급히 터뜨린 샴페인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것 즉 3D (Dirty, Difficult. Dangerous)는 서로들 기피하고, 쉽게, 편하게 한탕주의에 독사가 되다 보니 개인주의 극치로 오렌지족, 야타족이 등장하더니, 이젠 지존파, 막가파, ...까지,
그 훈훈했던 흐뭇한 우리의 정 어디로 가고, 사람과 사람의 적대감은 높아만 지고, 밤거리는 흥청망청 주정뱅이들 아수라장으로 탈바꿈 된지 예사이고, 허가 난 싸움터로 변신해 버린 국회는 구습을 못 버리고 서로 당리당략에 국민만 우롱 당하고, 매스컴에서는 구역질나서 상 찌푸리게 하는 사건들만 봇물처럼 쏟아지는 지금, 경제난국이라고 목청 높이여도 어느 개가 짖느냐는 식이니, 어찌하다 이런 지경(꼴) 되었는지.
☀ 우리 진정 이대로 가려고 합니까?
역사의 뒤안길에서 뒷짐만 지고 머물려고 합니까?
세계는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한가로이 안일하게 보고만 있으려고 합니까?
우리 서로 자숙하여 생각을 바꿔 현명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 되는 시점이라 생각 됩니다.
우리에겐 오늘에 만족에 흡족하지 않고 내일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잠재력이 다분히 있습니다. 온 지구촌을 놀라게 하던 비법을 우리 안방 장롱 속 자물쇠로 깍 잠겨두지 말고 바깥으로 발산하고, 곪아가는 그릇된 악습의 부위를 저물어가는 제야의 종소리와 더불어 아픔을 무릅쓰고 깨끗이 도려내어 치유하고, 97년 새해는 싱그러운 태양과 더불어 신바람 나는 행군을 합시다. 새 발판, 새 출발로 힘차게,
우리는 위대한 민족
☯ 저무는 97년 겨울이 유난히도 추운가 보다.
겨울비마저 지루하게 3일째 내리니 더욱 그러하다. 몸과 마음 꽁꽁 동여매는 소리가 매스컴에 시간마다 유가인상에 따른 모든 생필품 인상이 또 우리 가계부에 주름살을 한층 더 늘게 해준다. 정말 고물가시대가 왔다. 기업 연쇄부도에 IMF 파장에 이젠 금융계까지 강타하여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시점이다.
☯ 그런데도 대선후보들은 “내가 대통령이 당선되어야 경제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한 목소리로 야단이다. 이 경제 한파에 이르게까지 한 주역들은 누구인지?, 국민인가?,
이 나라 영도자가 되시겠다고 하시는 후보자님들 정신 좀 차리셔요, 국민의 따가운 시선 아랑곳하지 않은 채 허가 난 싸움터에서 당리당략에 혈안이 되 버린 찌던 구태 여전히 못 벗고 설상가상 서로 상대방 비방에 흑색선전까지 거리낌 없는 지금의 현실, 어이 이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가?. 얼굴 두껍게 감히 선량한 국민을 우롱하다니, 한심하고 답답한 심정 복받쳐 올라 우리는 가슴만 두들긴다.
☯ 부디 무당굿에 짜증나게 하지 말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람직하고 솔직 담백한 정책비전이 어깨 축 처진 유권자에게 활력소가 될 폭염 속 소나기 같은 시원한 달램은 못 줄망정 더 실망 주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의 꼬리가 한마디 던진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온 국민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 서로 반성하자,”는 목소리 들리지 않는가?. 귀머거리는 아닐 터인데,
☯ 우리는 향시 어려울 때 숨겨 둔 잠재력의 위력을 다분히 발휘 하곤 하였다.
우리 민족의 장점 중에 하나다. 이것을 우리 너도나도 달궈지는 용광로로 불 집혀서 국난극복에 선조들께서도 그렇게 하셨든 정신 이어받아 남녀노소가 하나 되어 “위기의 경제를 살리자”고 대선 후보자 유세보다 더 뜨겁게 곳곳에서 갖가지 운동을 전계하며 경제침체 쇠사슬에서 탈출키 위해 안간힘을 다 쏟고 있다.
심지어, 외국 동포들까지 외화 모금 전개하여 송금운동에 적극적이라니 고맙고 한편 부끄러움이 앞선다. 먼 불모 외지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 선 장한 이들에게 무어라고 말하면 좋을지 막연히 고개만 숙일 뿐이다.
☯ 이것이 바로 위대한 우리 민족 독특한 기질이고 보물이다. 어제의 그릇됨을 뉘우치고 지난날을 거울로 삼아 그 늪에서 탈출하여, 다시 불 꺼지지 않는 용광로로 향해 손 굳게 맞잡자. 좀 쉬었으니 걷지 말고 뛰자, 우린 이겨낼 수 있다. 좌절은 금물이다. 옥에도 티 있는 법이니 소수의 몰지각한 무리에 관심 쓰지 말자, 가다보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니 옆보지 말고 앞만 보고 뛰자. 우리에겐 환한 미소가 반길 그날이 꼭 오리라 확신한다.
삶이란 다 이런가
※ 산 넘어 산이란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물가는 하늘 따라 오르고 실업자로 백수건달이 부지기수이니 IMF가 서민들만 울리는 게 아닌가 한다.
※ 작년 11월 부도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보았으나, 경제침체로 늘어나는 부도에 속수무책이니, 몸으로 때운 건설현장 날품팔이에 희망을 걸고 살아온 모든 것이 오리무중 된 허탈과 나 믿고 일한 동요들께 얼굴을 들 수 없다.
더구나 해마다 동절기엔 서리 맞는 직업이 건설 현장이라 약 3개월 동안 동면하는 개구리마냥 두문불출로 주름진 살림에 뻐걱거림을 자린고비로 연명하는 지혜밖에 없다. 연년이 닥치면서도 못 버리는 직업을 탓하며, 다른 쪽으로 전환도 몇 번을 시도 해 보았으나 자본 탓에 몸으로 때우는 것을 배운 이것밖엔 별도리가 없어 진저리나도록 겨우내 구들장 신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본래 직업은 금형설계로 잔뼈가 굵어 한. 일 합작회사 설립에 이르려 대망의 꿈에 혼신을 다 해 왔건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광주사퇴로 국가 운명이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려운 실정이 되니, 일본인은 모든 것 포기하고 “난 모르겠다”고 현해탄으로 줄행랑 치고 말았으니, 난 닭 쫒던 개 울 처다 보듯 반평생을 다 바친 사업이 하루아침에 풀잎에 이슬처럼, 아니 청청한 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과 다를 바가 없고, 허공에 배 띄운 격이 되어 버렸으니, 불혹의 시기에 빈털터리 신세 전략은 당해 보지 않은 이는 그때 그 심정은 모를 것이다. 모든 게 싫어 주정뱅이로 세상을 원망하는 나날로 신세타령을 지켜보던 아내가 ‘몸 성하면 무엇을 해서라도 살 수 있으니 다시 재기하자’는 끈질긴 설득과 위로에 씻을 수 없는 체읍을 몇 권의 책으로 엮어도 부족할 갖가지 사연을 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착한 것이 83년 초 대전으로 와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내년이면 회갑 나이에도 천직이라 여기고 남 못지않게 뛰었다. 발등에 불을 끄기 위해 다른 사람 걸어도 난 뛰었다. 그런데도 의식주와 자식 교육에 허덕이다보니, 남들은 휴가 내어 피서도 가곤 하건만, 내겐 어느 천년 되어야 꿈꿀지 아득한 얘기 거리로 들릴 뿐이었는데도 오늘이나 어제나 향시 가정형편은 그 모양 그 꼴 벗어나지 못한다.
※ 해마다 1,2월이면 대학생을 둔 부모는 크나큰 부담에 허리가 휘청거림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 후세를 위한 거룩한 부모 마음이 아닌지.
여기에 나도 같은 대열 속에 몸부림쳐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 못지않게 뛰어야 했다. 그 보람이 한 녀석은 졸업해 유치원 교사로, 한 녀석은 간호과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내 고집이 국립대학 선택이 외지가 되어 이중 살림살이에 남의 자식들처럼 편케는 커녕 오히려 이중고에 가슴앓이를 안고 살아야 했다.
예상한대로 막둥이 아들이 대학에 합격 되니, 세상을 다 얻은 듯 훨훨 날아가는 행복감을 무어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마냥 함박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 기쁨도 등록금 마감 날짜로 목을 조인다. 임금 부도에, 겨우내 백수건달에, 남매 등록금만 오백 만원이 넘으니 어쩜 좋아, 통장에는 일백 만원도 없으니 앞이 캄캄하다.
※ 거리를 무작정 배회도 수십 번, 뒷산에 올라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수십 번, 내가 감당키 어려운 이 순간을 아니 진구렁 속을 빠져 나와야 하는데 누구 하나 내 손을 잡고 당겨 줄 사람이 없다. 지금 나에겐 너무나 벅차서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는데... .
장한 아버지는 못 될망정, 못난 아비란 오점만은 남기지 않으려는 것 때문이다.
장차에 “다들 보내는 대학 부모 잘못 만나 가고 싶어도 못 다녔다”는 말 상상만 하여도 옥죄어 오는 가슴 어이 터지지 않으리오. 제아무리 머리를 동여매고 해결책을 강구해 보아도 갑자기 오백 만원이란 거금에 짓눌린 지옥의 나날로 금시라도 쓰러질 듯 초라한 모습이다.
※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려운 살림살이로 인하여 남은 것이라곤 종합병원이 된 나의 영원한 동반자요, 평생 곁에 있게 될 친구인 아내가 어려운 역경 속에도 아들 앞으로 교육보험 증서를 내놓는 순간 아내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인지, 고마운 눈물인지, 소리 내어 울어야 하던 찰나의 감격,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는 잊을 수 없을 게다.
또 몇 해 전 결혼한 맏딸이 인천에서 전화로 내 예금계좌에 내게도 거금이고 딸에게도 거금인 일백 만원을 부쳤다는 것이다. 사위마저 IMF로 실직이 된 타간 생활에 부모로 도움은 주지 못할지라도 오히려 도움을 받는 신세가 되니, 부모 된 수치가 앞을 가로 막는데 흐뭇한 보탬이 되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하니, 한편은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로써 대신하게 된다.
※ 먹구름만 맴돌든 나날이 생기가 돋는 희망 길이 보이니 나도 모르게 축 처진 어깨가 펴진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매의 등록금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의 길은 모색 되었으니 말이다. 교육보험에서 일백 오십 만원 받고, 대출로 다시 일백 오십 만원으로 아들 것은 해결 되고, 딸 등록금은 국민은행 학자금 융자로 우선 충당하고, 맏딸이 준 것으로 딸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터진 봇물을 막고 숨을 돌리고 나니, 대구 아우 내외가 왔다.
원이 입학금을 다 부담 못해 미안하다며 일백 만원을 내놓았다. 모두 해결 되었으니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작년 xx식품 일억 오천 만원 어음부도에 마음뿐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한 형으로써 받을 수 있겠느냐며 한사코 거절 했으나, 기어이 받아야 한다는 옹고집에 형 도리가 이래야 되는가 여기니, 쑥스러움과 혈육의 정에 넘치는 고마움이 멀어지는 아우 내외의 뒷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아야 했다.
※ 그렇게 마음 조이게 애태우던 일이 주위 따스한 도움의 손길로 꺼져가던 연약한 내 생명에 활력소로 샘물처럼 솟구치게 한 고마운 보답을 위해, 아니 더 나아가 내가 뿌린 씨앗을 내가 거둬야 된다는 소임에 다시 한 번 힘껏 뛰리라.
예년 같으면 여기저기서 사람 포섭에 혈안이 되어 야단인 요즈음일터인데, 아직 건설 경기는 기침소리도 없다. 불경기 적신호가 언제쯤 그칠지 모르지만 앞으로 찾으리라, 내가 설자리를, 어떤 고뇌에도 주어진 일에 최대 최선의 열의로.
※ 새봄과 더불어 높은 산 쌓인 눈 사르르 녹고, 함초롬히 돋아나는 새싹과 함께 희망의 3월부터 해맑은 햇살로 늘 만끽 될 날 위해 나의 모든 것 불사르리.
어디가나 어느 때나 잊을 수 없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인 나의 아내의 쾌유를 두 손 모아 빌면서.
한권의 책
☎ 대구 질녀가 한 권의 책과 카드가 함께 보내왔다.
카드엔 한 해를 보내면서 늘 사용하는 글귀와 큰아버지 글 쓰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월간지 일 년 정기 구독을 신청하여 함께 보낸다는 갸륵한 마음이 흠뻑 젖어있는 사연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때 취업에 신경이 쓰일 터인데, 한 마디 위로 전화도 못해 준 마음이 왠지 쑥스럽기 그지없다.
☎ 삼풍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 생매장 되어 참담한 죽음을 앗아갔다.
그 후속 조치의 하나로 좀 떫은 수작 같은 맛 남기게 하는 부실공사 추방 위함이라며, 동절기 건설공사 중단이 시달 되어, 겨우내 소득 없이 두 손 놓을 수밖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계 주름살이 커져 마음이 무거울 때엔 늘 아버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십전 자식이요, 삽 십전 재물이라는데, 넌 부합 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소문난 잔칫상 먹을 것 없다 하듯 너 보고 하는 말이구나,” 아버님과 마주 앉을 때마다 현실에 맞는 삶의 지표를 열어 주시곤 하시든 아버님마저 7년 전 진달래꽃 향기 그윽한 다사한 봄 사월, 하시고 싶은 일 체 마무리 못 하시고, 저희들 아쉬움에 한이 되어 몸부림마저도 못 본 척 무정하게 다 버리시고 영원 뵈옵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제야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 위에 미혼 딸, 옆 돌볼 틈 없이 벌어도 한창 자라나는 자식 뒷바라지에 시원찮을 판국에, 책 한권 내가 직접 사서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곤 생각지도 못한다. 이런 실정을 질녀가 알아서 인지는 몰라도 고맙기 활량이 없다.
☎ 불혹이 되도록 삶의 모퉁이에서 유치원생 그림 그리듯 마구잡이식 글 쓰는 것이 유일한 안식처로 여기고 왔었다. 그러하던 중 몇 해 전 우연히 해정문학 회장의 주선으로 회원이 되어, 회원 간의 친목과 의견소통으로 글쓰기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문학 동요들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문학지 4,5호 발간에 회원으로써 사명을 하게 되니 소수의 후원자 격려가 더욱 용기가 되었다.
☎ 질녀가 보내 준 하찮은 책 한권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동내 방내가 떠들썩하게 야단이라며 코웃음을 칠지는 몰라도, 지금 나에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소중하고도 값진 것이 아닐 수 없고, 더 넓은 시야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라 여기니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가.?
시가 무엇인지, 수필이 무엇인지, 獨步(독보) 하기엔 힘겹지만 이 기회를 거울삼아 3,4월 따사로운 봄날 아지랑이 아롱아롱 춤사위에 보일 듯 잡일 듯 그리움의 날개 달고 꽃향기에 취해 감로수로 목마름을 달래보려고 한다.
“인간은 언제나 미완성의 길을 출발하기 위해 온갖 정열을 바치는 것을 한평생 희망이다”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무튼 더 분발하여 나를 아는 모든 이에 기대 어긋나지 않게 혼신의 힘을 쏟으리라. 그리고 성큼 다가온 “문학의 해”를 맞아, 보람 있는 한 해가 될 것을 다시금 다짐하면서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티 없이 맑고 고운 질녀의 마음에서 울어나는 정성에 감탄사가 어이 전화로 대신하랴만 벅차오르는 이 기쁨을 속히 질녀에게 알리고 싶고, 그 동안 뜸했던 정다운 대화 나누지 못한 벽 허물기도 할 겸이다.
“큰아빠는 제일 소중하고 최고로 값진 선물을 받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 .”라며 질녀와 실마리가 되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다정다감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역사 숨결에 자연히 肅然(숙연)해지고
금산을 드나드는 일이 빈번하나 금산 입구에 위치한 七百義塚(칠백의총) 옆을 스칠 뿐 관람할 틈이 없었다. 다행이 우리의 큰 명절의 하나인 설을 맞아 노임관계로 금산에 갔으나 두 시간 뒤로 미루어 기회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나지막한 산자락 전체가 아담하게 조경 되 서향을 지켜보고 있다.
맞은편 들녘에는 88올림픽을 승리로 이끌게 한 주역의 모체 역할을 한 몫 담당한 금산 중계소가 그날을 상기 시키듯이 한층 운치를 더해준다.
경외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정성이 어린 백합, 배통나무, 석류, 모과,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잘 가꿔진 체 한 겨우내 움츠러진 모습 벗어나 줄기마다 용트림할 미동의 생기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아마도 계절 앞에는 이길 장사 없나 보다. 입춘이 지나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의 순리에 감동할 수밖엔 없는 것도 인간 마음도 같이 느끼게 한다.
경외 맞은쪽엔 순의탑이 장엄하고 정숙히 그날을 상징이라도 하듯 들녘을 묵상하고 있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1592년) 조현선생과 승장 靈圭大師(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의병이 오직 충정과 신의로 뭉쳐 금산의 왜적을 무찌르다 전원이 장렬히 순결한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신 묘역이다. 1647년에 종용사로를 건립하여 칠백의사와 고경명선생, 변응정선생, 그 막좌 시졸 등의 위패를 모셨는데, 일제하에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경역이 황폐 된 것을 1952년부터 의총 보수 확장공사를 계속 하였으나 여일치 못하든 중,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분부로 1976년에 현제의 시설로 경역을 재 확장 조경하여 성스럽게 정화하여 사적 105호로 지정 되었다.
경내입구를 들어서면 우측에 한글 순수비, 그 옆에는 왜놈들의 혹독하고 잔악함을 말해주는 파손 된 순의비(1647년 세운 비)가 동강동강 난 조각들로 진열 된 것도 우리 선조들의 끈질긴 호국정신으로 몰래 숨겨 두었다가 이곳의 복원으로 옮겨 놓았다니,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겐 감회가 깊어 숙연해지고 가슴이 뭉클하여 진다,
계단을 오르면 살신보국의 칠백의사가 잠든 거룩한 민족의 제단이 엄숙히 자리하고 그 뒤편에 칠백의병 전원의 순결한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신 묘역에 고이 잠들고 계신다.
기념관은 경내입구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조현선생이 태어나시어(옥천에서 출생) 1592년 금산 延崑坪(연곤평)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적과 싸우다가 순결한 최후의 장면까지 일생 총 망라가 상세히 기록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그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중흥을 이룩하는데 귀감이 될 자료라고 여겨진다.
이제 새봄과 더불어 우리네 가슴이 울렁일 것이다.
산, 강. 바다로 나들이가 우리네 생활에 필수가 된 요즈음 돈 많이 쓰는 것보다 알뜰하게 대전 근교에 있는 문화 유적지 같은 조상들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주위에도 많이 있다.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네로써 자라나는 청소년과 함께 가족 동반하여 선조의 숭고한 정신 더듬어 보는 산교육도 어떤 나들이 보담 흐뭇한 하루가 될 것이라 믿는다.
참조 :조현 호 : 重峯(중봉), 시호 : 文烈(문열), 1544년(중종39년) 옥천에서 태어남.
1567년(명종22년)문과 급제 校音館(교음관), 定州敎授(정주교수)
1592년 8월1일 일천 육백여명 의병과 영규대사가 이끈 일천 여명 의병과 합세 하여 청주성 탈환, 1592년 8월 18일 금산 연곤평에서 칠백의병과 함께 최후 장 열한 순결, 유품으로 조현전집 10권.
오늘에 만족에 그치지 말자.
♧ 먼저 자랑스러운 내 질녀의 대학 졸업을 축하한다.
연초에 세운 꿈은 제자리를 맴도는데 벌써 2월도 다 가는구나,
나 같은 이들은 가는 세월 막을 수가 없어 한이고, 네와 같은 젊은 세대는 세월이 빨리 가야 더 성숙하고, 더 완성 되고, 더 좋은 날이 많아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기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막연한 바람이라 해야 하나, 희망사항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이지만 좀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그래도 구속이란 굴레는 곧 보호란 온실 속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학창시절의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기자기한 맛에 젖어 평생 가슴 속에 머무는지 모른다. 물론 학창시절의 사연도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름다운 그리움은 세대차와는 별개가 아닌가 한다.
♧ 달덩이마냥 복스럽고 탐스럽게 자란 사랑하는 질녀 순임아 !
오늘 졸업이 이젠 다 배웠고, 다 알았다고는 생각지 않겠지, 지금부터가 이젠 너 혼자 네가 가는 길 시발점인 게야, 지금까지 배우며 갈고 연마한 것을 더 할 때는 더하고, 뺄 곳이 있으면 빼가며, 네게 맞는 맛을 가미해야 하는 시작이야. 직선적으로 말하면 지금부터는 인생 공부를 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이 길을 잘 선택하는 지혜로움이 인생의 앞날의 성패 갈림길이 된다는 거라 하겠지.
♧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사랑하는 내 질녀 순임아 !
오늘 같은 날이 있게 한 것은 네 엄마 아빠의 피와 땀에 의한 결실이란 걸 잊어서는 아니 된다. 물론 너도 모든 역경을 딛고 앞만 보고 달려온 오늘이란 걸 왜 몰라, 그렇지만 너희들 어린 3남매 아니, 더구나 빨가숭이 승화를 엎고 팔달시장 난전장사 한 네 엄마와 녹이 쓴 자전거로 눈비 맞기를 부잣집 외아들 쌀밥 먹듯 골목길 누비며, 목이 터지라고 소리소리 외친 네 아빠의 보람은 오늘의 만족에 그치지 않을 게야. 아마도 이화 여대를 지금처럼 반석 위에 자리 잡게 한 세계 여성의 선구자인 김활란 박사와 같은 여성이 되는 것을 기대 걸고 젊음을 송두리 체 바친 게 아닌가 한다.
♧ 학교란 테두리 벗어나는 사회인의 첫발인 이 기쁜 날, 혹시나 너 마음 울적하게 한 게 아니야, 저 높은 창공을 신바람 나게 마음껏 날아가는데 기분 잡치게 한 것 같아 미안구나.
“젊음은 향상 머물지 않고 시간과 더불어 가 버린다.” 네게 꼭 하고픈 말이야.
젊은 청춘을 톡톡 튀는 슬기로 삶의 영유가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정열적이고 더 빛나는 너의 앞날을 믿으며 이렇게 축복해 주잖니.
1996, 2, 24,
밝은 네 모습 상기하며 큰아빠가.
파자마 벗기든 소동
♨ 고교시절 꿈이 많아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로 호기심 가득 찬 청소년 적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구의 여름은 유별나게 덥다. 그때는 먹고 사는데 급급해 지금처럼 문화생활은 상상할 여유로움이란 없었다. 라디오가 서민에겐 재산목록 1호로 여길 정도였으니, 더위를 달래는 유일한 것이 부채이었고 그래도 참기 어려우면 수돗물도 아낀다고 샤워를 하지 못하고 등목으로 더위를 달랬다, 지금은 별천지 삶을 영유하는 게 아닌지 본다.
하루 종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그 열기는 밤에도 한증막을 방불하게 해 사통오달로 튀인 사거리 코너 좁은 들마루가 더위 식히는 장소로 재격이었다.
♨ 우리 또래 10여명은 매일 저녁 먹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파자마바람으로 들마루가 있는 곳으로 모여 웅성거리곤 하였다. 한정 된 자리라 서로 앉으려고 밀고 당기고 뺏고 뺏기는 자리다툼이 더위를 잊는 하나의 방편이 되기도 했었다. 또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달아나고 뒤쫓는 우리의 세상을 누구도 소란스럽다고 나무라고 꾸짖기는커녕 지켜보는 어른들께서는 오히려 흐뭇하게 여겼다. 그래서 늦은 밤이 된 예비 통금 사이렌이 울려야 그때 제각기 헤어지곤 했다.
♨ 그날 밤에도 여느 때나 다름없이 같은 장난이 반복 되 달아나는 쌀가게 아들인 K군을 잡으려는 것이 파자마를 잡는 순간 파자마와 팬티가 동시에 무릎 아래로 훌러덩 벗겨져. 보고 있든 우리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든 사람들(여학생도 포함)까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로 골목이 요란스럽게 벅적이었다.
이것이 시발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파자마 벗기는 경쟁이 거리는 시끌시끌하다.
다른 또래는 파자마만 무릎 아래로 벗기 것만, 특이하게 K군은 팬티까지 동시에 벗겨져 모두들 호기심으로 어떻게라도 그 광경을 더 보려고 하는 중 내가 K군 몰래 뒤로 가서 파자마를 벗기었더니, 역시나 팬티도 동시에 훌러덩 벗겨져 또 다시 박장대소로 다들 연이어 참을 수 없었다. 그중 나는 더욱이 입이 바소쿠리처럼 벌리고 있는데 딱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당나발 되고 윗니 하나가 어디론지 달아나 버렸다.
순간적으로 격분이 난 K군이 나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넋을 빼고 웃고 있었든 것이 불상사를 초래하였다. 모든 게 정도가 넘치면 결과가 좋게 끝나지 않는 한 사례가 된 한 본보기다. 계속 흐르는 피를 가까스로 지혈을 시키곤 그날 밤은 일직이 각자 뿔뿔이 헤어졌다. 아버지께는 놀다가 넘어진 게 이렇게 되었다고 얼버무리며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더니 그만하기 다행이라며 나를 꾸짖지 않고 위안 해 주셨다.
♨ 그 이튿날, 날 밝기를 기다렸다면서 K군 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자기 아들이 저지른 일이니 책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아버지께서는 싸워서 다쳐도 커가는 자식들 그러리라 여기며 탓 하지 아니 함인데, 하물며 장난치다 그러한 것이고, 또 아는 사이 그렇게까지 심려치 말라며 오히려 내 아들로 인해 잠시나마 마음 끓게 하여 미안스럽다고 하시며 와 준 호의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뒤 월말이 되 쌀값 외상거래를 지불하려고 갔으나 한사코 받지 않아(4식구 1개월 쌀값) 같이 저녁 먹으면서 술 한 잔 나뉘며 서로가 밀고 당기를 반복한 끝에 쌀값의 반을 받기로 합의 하였다며 K군 아버지의 갸륵한 마음씨를 치하 하셨다.
♨ 그 시기는 서로가 없이 살아도 이웃끼리 서로 오순도순 훈훈하고 끈끈한 정이 물씬 풍기는 50~60년대가 살맛나는 때라고 사료 된다. 요즘은 모든 생활환경이 풍요로움으로 넘쳐 편하게 사는 현실이지만 갈수록 각박한 세태를 한스러워하며 거울 앞에 앉아 지금의 나를
비웃으며 그때의 흔적을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에 잠겨 본다.
대전문학, 2013, 겨울호, 특집,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옛 속담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자꾸 들으면 실증이 난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천만번 들어도 실증은커녕 들을 때마다 언제나 따습고 포근하여 평화로움이 깃들어 숨 쉬는 곳, 그 속으로 당기는 자력의 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의 힘을 지닌 분이 어머니의 품안이고 마음이 아닌가 한다. 난 불행하게도 감수성과 야망이 불타든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여윈 그때의 戰慄(전율)로 세상을 다 잃어버린 슬럼프에서 헤쳐 나오지 못했고 공부마저 중도하차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비운을 남보다 일찍이 격어야 했다.
젖은 손 마를 날 없이 자식에게 바치는 그 정성 그 높고도 끝없이 넓은 사랑 !
‘부모 마음을 만분지일을 알 수 있는 자식이라면 효자다.’ 했으니 어머니께서 가신 뒤 뉘우침은 영원 불효자식으로 낙인 됨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 있으리. 어머니 가슴에 눈물만 높게 한 이 자식, 무지하고 둔탁했든 이 자식, 천추의 한이 응어리로 남아 쌓이는 그리움만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잠 못 이루고 깊은 감상에 젖어 들곤 할 때가 비일비재이었으니 ... .
가난을 깔고 앉은 둥지에 지나온 가난 우리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우리를 위해 손끝 마디마디 피멍 맺어 두꺼비 등 된 손으로 우리를 쓰다듬으면서 자애로운 눈빛으로 다독이며,
“배고픈 것이 제일로 서럽다. 먹을 것 다 먹고는 남 못 준다.” 하시며 평생 어머니 입은 말라도 남 입엔 침 돌게 주고 또 주고도 마음이 왠지 못내 아쉬워 어찌할지 모르고 애달아하신 어머니, 허리 피고 좀 살맛이 나자 회갑마저 멀리 둔 체, 우리를 살찌운 그 손, 우리를 축복 받게 한 그 손을 잡아 달라며 “할 일 다 못했는데 ... .” 모기 같은 연약한 목소리로 마지막 남긴 말씀, 우리 위한 여음에 몰아닥친 맺힌 한 산더미 되 흐느낄 수밖엔 없었든 슬픔, 온 누리 비 내려 강물 되 흐르든 그날 잔잔한 호수 따라 자꾸 들리어 온다.
세상에 어머니들은 세월에 바랜 흰 머리카락이 머리 다 덮어도 때가 되면 둥지 떠나는 자식 보낸 아픔에 견디며 자식 위해 빌고 있는 마음이 어머니다. 날씨가 더워도, 추워도, 사시사철 도회지로 떠난 자식 걱정에 눈 무르도록 기다림에 지쳐 꼬부라진 허리 펴지 못한 체, 명절이 오면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우며 있는 것, 없는 것, 찾아 정성 드려 먹을 것 만들어 놓고, 삽짝문밖 넘어다보며 안절부절 자식 기다리는 분이 어머니다. 이렇게 늘 무상의 희생, 대가 없는 헌신, 한없는 염려로 기원하는 초라해진 어머니 모습, 광야 같은 자애로 갚음 모르는 사랑이 바로 어머니 사랑이다.
미국인인 밀러는“지금까지 행하여진 가장 용감한 싸움, 그것은 당신은 세계 역사 속에서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머니들에 의하여 행하여진 싸움이다”라고 했고, 홍윤숙 여사는 “어버이의 정은 무한히 주는 일광의 빛이라고 하면 자식은 그 빛을 받아 피어나는 꽃처럼 오직 피어주는 것만으로 어버이의 기쁨이 되며 보답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갚음 없는 사랑을 이어받은 이름 없는 사랑의 상속자들, 나로 인해 섭섭했든 어머니의 슬픔을 내가 이어받고, 또 그 슬픔 내 자식들이 이어받음으로써 우리는 그 슬픈 어머니의 영혼에 속죄하는 것인지 모른다.”했으니, 공자의 生而知之(생이지지)며 맹자의 三遷之敎(삼천지교)며, 예수의 인류애의 두텁고 빛나는 업적에 버금가라면 지나친 찬사라 사료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어머니는 자나 깨나 평생을 오직 자식 위한 정 베풀고 쏟다가 쓸쓸한 길을 가는 어머니란 것을 알면서도 때론 그분 마음 상하게 할 때가 허다하다. 어머니를 일찍 여윈 불효막심한 자식이 된 나는 후세들에게 호소한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좀 더 걱정 들어드리고, 좀 더 관심 가지고, 좀 더 마음 편케 해 드리자. 이것만이 부모님에 대한 억겁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며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림이 어떠할는지
의장님 전 상서
謹啓(근계),
상춘지절에 의장님께옵서 하시고 저 하시는 모든 일에 영광과 기쁨이 있으시기를 삼가 비옵니다.
저는 현리 고 채홍술의 아우인 xx입니다. 저는 직장관계로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의장님께옵서는 언제나 국가를 위하여 노심초사 애쓰시는 마음, 잠시도 편히 쉬실 틈도 없으시리라 사료 됩니다. 오로지 나라를 위한 일념으로 계신 의장님께서 심기가 혹 불편하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상서하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딱하고 절박한 사정을 이해와 관용으로써 통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아뢰올 말씀은 저의 생가 바로 뒤편 산에 자리하고 있는 의장님의 置標(치표)에 대한 내용입니다. 91년 3월 7일(음력) 저의 아버님(용자 수자) 大喪(대상) 때 집 뒤에 불도저가 동원 되어 작업하고 있는 공사 내용이 무엇을 하는지를 우리들은 몰랐습니다.
그때로부터 저의 형님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아픔으로 인하여 형님은 끝내 4개월 뒤 60이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통하여 술을 모르고, 담배마저 말년엔 끊고 성실히 살아온 형님의 갑작스러운 사별은 살아있는 우리들 가슴을 놀라게 했고, 조카들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한없는 이 슬픔,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한 집안에 연년이 불어 닥친 이 비운(형수, 아버님, 형님)을 어이 말로 다 하오리까?.
이제 올해로 삼년(음력 7월 15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동안 표현할 수 없는 악몽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지만 모든 것을 극복해 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들은 아버님 첫 번째 기일에 집안 식솔이 다 모였습니다. 기제사를 지내고 모여 앉아 밤이 다 가도록 또 다시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의논 한 결과 구구한 의견들 많았습니다.
반세기에 이르는 가정의 역사와 꿈과 조상의 얼이 담긴 우리들의 집에 대해서는 여의치 않게 생각하고, 바로 지붕 뒤편에 축대를 높이 쌓아 치표가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있는 집을 무시한 체, 자기 자신만 위하는 일로는 있을 수 없는 부도덕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고 야단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의장님께서는 국사에 골몰하시느라고 치표의 현장을 답사하실 시간도 없으시리라 사료 되옵니다. 뿐만 아니라 의장님의 치표가 우리들 생가에 미치고 있는 크고 작은 영향에 대하여 감히 어느 누구도 !, 아니 의장님의 존전에 입을 열어 말씀드릴 마을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의 십 분지 일이라도 소문이 흘러 의장님께옵서 알고 계시는지 매우 궁금하고 답답한 심정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앓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보담도 한창 피어오르는 가정의 생기와 희망은 물거품처럼 형님의 사별로 인하여 모두가 탕진이 되고, 회오리바람이 몰고 간 것처럼 폐허가 된 우리의 집은 우리 모두의 삶 의욕과 용기를 잃게 하여 더욱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말았습니다.
집 마당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 바로 눈앞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의장님의 치표입니다. 마당에서 보면 지붕 위에 치표가 얹혀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치표의 위치와 방향이 지붕 바로 뒤편이고 치표의 축대가 엄청나게 높고 커서 낮에는 보기마저 거북스럽고 마음이 짓눌리어 억압이 되고, 밤이면 달빛이 축대를 비춰 반사 되 섬쩍지근하여 무서워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의장님의 산소를 보살피는 묘지기의 처소라면 당연하게 받아드리겠지만 어느 누가 보아도 의장님의 치표를 지키는 묘지기의 집이 된 것 인양 보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지금까지 헌신하고 살아오신 의장님,
삶의 용기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를 냉정한 입장에 서서 판단하셔서 조처하여 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는 이제 고향집에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 어느 한 사람도 집안에서 안식 할 수 있는 마음조차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형님이 세상을 떠난 그날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리라 생각도 해 보았지만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 앞에 비참하게 된 우리의 삶을 수 십 번 다짐했든 마음이 쓸러지고 말았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께옵서 뜻이 있어서 살아생전에 이룩하신 치표에 대하여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우리는 참고 살아왔습니다. 웬일인지 한결같이 우리 모두는 똑같은 심정으로 낮으로 일할 때면 문득 문득 머리에 떠오르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가면 먼저 그 사실이 머리에 스쳐 불면증에 밤을 지센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나라와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의장님께옵서 잠시라도 쉴 틈이 없으시리라 아옵니다. 공사다망하신 의장님께 상서하는 우리들을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깊이 통촉하여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의장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빌면서 두서없는 상서를 줄입니다.
1994, 4, 10,
餘不備(여불비) 上書(상서)
현리 사역골 채xx 拜上(배상)
채 문 식 의장님 귀하,
시간은 얻기 어렵고 잃어버리기는 쉽다
-시난득이이실야(時難得而易失也)-
♣억만금 주어도 살 수 없는 것이 일초 시간은 불가능하다.
대차(貸借) 불가능한 것이 시간의 본질이라 한 번 가버리면 아주 영원히 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 후회하게 된다. 옛 선인들께서는 광음여시(光陰如矢), 세월여유수(歲月如流水),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시간은 화살과 같고, 세월은 유수와 같으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만약,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랑하라” 미국인인 프랭클린의 말처럼 우리는 촌음(寸陰)을 아껴 쓰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생명이란 살아 움직이는 시간임에 시간은 곧 생명이다. 젊음은 시간이 많다는 것, 늙음은 시간이 짧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여 우리는 애시인((時人)이어야 한다. 요즘, 물질만능시대라 물 낭비, 전기 낭비, 물자 낭비, 시간 낭비 등 많은 낭비 중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당나라 이태백(李太白)은 천지자(天地者) 만물지역여(萬物之逆旅), 광음자(光陰)者)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 “천지는 만물이 살고 있는 여관과 같고, 시간은 영원히 흘러가는 나그네 같다”고 하였다. 진정,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천지자연과 영원함에 비하면 기껏해야 7,80년은 인간의 생은 잠깐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이 잠시 주막에 머무는 것과 뭐가 다르랴,
뒤돌아보면 학창시절이 그제 같은데 벌써 종심(從心)이 넘게 되니 인생역정(人生歷程)에 때론 한숨이 나온다.
♣그러하니 장래가 만 리 같이 총명한 청소년에게 모든 일에는 시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듯이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공부에 전력하여 뜻을 이뤄 곧고 밝고 맑은 항로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송나라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經),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소홀히 하자 마라, 연못가에 봄풀은 꿈에서 아직 깨지 못했는데, 뜰 앞 오동나무 잎이 벌써 가을 소식 알린다”고 하였다.
♣진정코 그렇다. 아침인가 여겼더니 저녁이고, 봄인가 하고 좋아 하였더니 가을 알리고, 청춘이라 신바람에 뛰다보니 어느새 노년기라, 참 허무하기 그지없어 허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루는 새벽이 두 번 오지 않듯 사람은 그때 그시기를 어떻게 묘미 나게 잘 활용하느냐 따라서 내일이 좌우 된다. 모든 이에 주어진 시간은 균등하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차이라고 여겨진다.
천유불식(川流不息), “냇물은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듯 무정한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얻기 어렵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시간이고 낭비하기 쉬운 것 또한 시간이다. 물질자원은 발굴하고 개발하여 쓸 수 있으나 시간은 개발이 불가능한 결핍된 자원이니 시간만은 잘 활용하여야 한다.
♣사람이 7,80년 산다고 가정해 보면 30년은 학문, 30년은 생업에 목숨 걸고 나면 10년이 노년기, 그 가운데 잠자는 시간 35년을 제하고 나면, 우리네 인생이 어찌 길다고 하랴,
어처구니없이 짧은 세월이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요 초로인생(草露人生)이다.
촌음(寸陰)을 아껴야 한다. 자신의 역양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호사유피(虎死留皮) 하듯이 인사유명(人死留名)하기 위해 저 유명한 팡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한낱 갈대에 불가한 것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하듯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의 여명을 받아 하루하루 알차게 출발하여 일 년을 헛되지 않는 보람으로 쌓아서 한평생을 보내는 동안 후회 없는 삶 살았노라고 뉘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고종명(考終命)하면 좋지 않을까?.
자아완성(自我完成)
♥자기 스스로 완성한다. 말은 쉬우나 무척 어렵다. 버팀목 없이 자립(自立), 자주(自主), 자성(自省)하여 자수성과(自手成果)로 자아완성하는데 네 가지 조건이 필수라고 본다.
♥첫째, 먼저 자신을 알아야 된다. 즉, 지기(知己)로 자아(自我) 발견(發見)이다.
난 어떤 존재인가?. 천하의 유일인(唯一人)으로써 곧 한 인간이다. 소중한 생명임을 깨우치고 사명감이 무엇이며 어느 나라, 어느 사회, 어느 가정,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지혜의 이오, 명지인(明知人)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한다. 자활자영(自活自營),자강자립(自强自立)하여 자아발견을 길러야 한다. 남이 내 삶을 살아 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자기 스스로 눈을 넓게 뜨고, 귀로는 많이 듣고, 입은 가급적 구사일언(九思一言)을 생활화하여 자기 홀로 걸어가며 자신을 냉철한 관점에서 숨어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둘째, 자신을 사랑하는 애기심(愛己心)으로 자아(自我) 발전(發展)이다.
애기애타(愛己愛他),자존자경(自尊自敬),애시애사(愛時愛事), 즉 “자신을 먼저 사랑한 후에 남을 사랑하고, 자신을 존중하고 공경하면서, 시간을 사랑하고 자기의 일을 사랑하라,” “난, 누구를 위해 사는가?.” 궁극의 목적은 나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대답이 나온다. 그러하다면 내가 살아 있어야 부모, 처자식, 이웃이 있다는 결론적인 회답이 된다. 그러니 위의 말이 명답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곧 자긍심을 북돋아 불가능이 없게 한다. 자아 발전으로 인도하는 확고한 심념이 굳어져 주어진 일에 윤활유 역할로 부드럽고 경쾌하다. 위대한 성공의 일인자로 가는 길마저 마냥 즐거울 수밖에 없다.
반면, 실패한 사람은 언제나 이유가 많다. “어렵다, 힘이 들다”를 연발하며 자신이 없어 뭐든지 하기 싫어하고 시작부터 자허자멸심(自虛自滅心)에 자비자굴심(自卑自屈心)이다. 즉 “자기 스스로 학대하고 멸시하며, 자기 스스로 낮추고 굴복하는 마음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사람은 언제나 마음가짐에서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사실 명심하여야 한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항상 긍정적 사고로 자아관(自我觀) 굳게 지니고 “뉘가 뭐라고 해도 내 갈 길은 내가 간다.”하며 굳건히 전진 또 전진만이 이루려고 하는 고지를 탈환할 수 있다.
♥셋째, 자신을 갈고 닦는 수기인(修己人)으로 자아(自我) 개발(開發)이다.
속담에 “구슬도 닦아야 빛난다.”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일에 소홀함과 경솔함이란 찾을 수 없는 진지한 지극정성 쏟을 때만이 눈부신 광채가 날 것이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면 영장답게 극기력(克己力),극기심(克己心), 인내심(忍耐心) 기르고 수련하고 도야하였을 때 독자 완성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하였다.
승인지유력(勝人者有力)하고 자승자강(自勝者强)이라. 즉 “상대방을 이기려면 상대방보다 더 힘이 있어야하고, 자신과 싸워 이기려면 모질고 냉정히 야무지게 강해야 한다.”
극기력과 극기심 모아 졸음이 오면 이겨내야 하고, 먹고 싶어도 몸을 위해 참아야하고, 분함을 당하여도 참을인(忍)자 되새기며 억눌려야하고, 병마와도 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으로써 싸워 이겨내야 하고, 등등 모두가 자기와 싸움이다.
중국의 왕양명(王陽明)은 파산중지적리(破山中之賊易)하고, 파심지적난(跛心之賊難)이다. 즉“산속에 적은 물리칠 수 있어도, 마음속에 적은 물리치기 어렵다”고 하였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감히 남과 싸워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경쟁 없이 발전할 수가 없다. 발전하려면 자신의 두뇌를 최대한 발휘하여 개발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해서 우물물을 파야 한다. 경쟁은 곧 살아가기 위한 전쟁이다, 개인, 사회, 국가 간에도 경쟁 속에 더 나은 개발로 개척해야 만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 바로 이것이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서로 우위 다툼이 치열하다. 결실의 성공환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함이 경쟁 속에 전쟁, 전쟁 속에 경쟁으로 세계는 지금 이 찰나에도 쌍불을 켜고 야단이잖아,
♥넷째, 자신의 힘을 다하는 진기심(盡己心)으로 자아(自我) 혁신(革新)이다.
주어진 일에 전력투구만이 성고의 비결은 아니다. 잘못 된 관습, 방법, 습관, 조직체계 등을 과감히 바꾸어 새롭게 모색하여야 한다. 학생, 기업인, 예술인, 운동가, 등 망라한 각 분야 정상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요행으로 유명인이 된 것은 기필코 아닐 게다. 이런 과정을 수 없이 거치고 개선해 천신만고(千辛萬苦) 각고로 얻은 공훈이 아니겠는가.? 옛 책에 인일능지(人一能之)면 기백지(己百之)하고 인십능지(人十能之)면 기천지(己千之)라, 즉“남이 한 번 노력하면 자신은 백 번 노력하고, 남이 열 번 노력하면 자신은 천 번 노력하라,” 그러므로 하여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하고 부드러운 사람도 강하게 된다.” 즉 [수우필명(雖愚必明), 수유필강(雖柔必强)],
사람마다 누구나 다 잠재력은 다분히 있다. 그러나 이런 재능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이가 다반사다. 백련천마(百鍊千磨)의 수양과 일심불란(一心不亂)의 열정 쏟으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 기필코 온다는 명언을 반추하는 실천이다.
채근담(採根譚)은 승거목단소석천(繩鋸木斷水滴石穿)면 천하란사(天下無難事)라 즉 “새끼줄로 톱 삼으면 나무도 자를 수 있고 물방울로 바위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천하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과 같이 부단히 노력하면 남에게 빌리거나 의지하지 않고 자아 완성할 수 있다. 언제나 긍정적 사고로 용기 백배, 자신감 백배로 주어진 일 천직이라 여기고 항상 즐겁게 신바람 난 소임은 곧 비타민S(스마일)로 나날 넘쳐나지 않을까?.
♥이같이 네 가지 조건(자아 발견, 발전, 개발, 혁신)으로 자아완성이 된 사람살이라면 필수적인 덕목[德目 충(忠), 효(孝), 인(仁), 의(義) 등]은 자연적 몸에 밴 생활화로 뿌리내린다고 자부한다. 너, 나 없이 “우리네는 불평, 불만족, 불가능이란 존재지 않다” 여기니, 우리네 세상살이에 어찌 감히 시기, 질투, 증오, 모략 등이 있을 법이라고 본단 말이겠느냐?.
장수십결(長壽十訣)
★건강이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양호한 사람이다.(W. H. O.) 정신적이란 오정(五正)인데 정심(正心), 정시(正視),정각(正覺),정도(正道),정행(正行),글자 뜻 그대로이다.
또 건강의 복운이 제일이다. S G I 이케다회장의 말이다. 인생은 연습 없는 시합이므로 운동경기처럼 연습은 불가능하다. 인생은 일회전으로 끝나는 중대한 생명이니 뉘나 주어진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너는 너 인생을 산다는 말처럼,
★화유중개일(花有重開日),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 백일막허송(白日莫虛送), 청춘부재래(靑春不再來), 즉, “꽃은 다시 필 날이 있어도, 사람은 다시 소년이 될 수 없으니, 밝은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마라.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며 남은 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면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천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니 건강은 인생에 있어서 주춧돌이고 대들보이니 모두가 바라는 소망이다. 인도 지도자 간디는 “건강을 잃어버린 영웅, 건강을 상실한 천재, 건강을 박탈한 운동선수, 건강이 결여된 인간은 비참이요 무능이요 무용이므로 불행하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려는 욕구로 대업을 성취를 원한다면 심신이 건강하여야 자기의 욕망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은 120세에서 150세라고 하지만 근간에 와서 의술(醫術)의 발달로 하여 평균 수명이 옛날보다 연장되어 7,80세이다.
이만큼 신체적 본질인 건강은 대차(貸借), 매매(賣買), 저축(貯蓄)은 불가능한 자본이요, 고정적이 아닌 유동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 건강한 것이 아니고 언제 어느 때 건강을 상실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자기의 몸을 항상 지혜롭게 관리하고 보존하여야 한다. 자기의 몸과 주위환경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며 불결한 음식, 자극성 있는 음식을 피하고 과식을 금하여야 한다.
그리고 체력단련이다. “체력은 국력이다”란 말처럼 몸이 허약하면 부강한 나라를 건설할 수 없으며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면 번영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실례로 초등학교 추계 운동회 때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란 심신건강의 중요성 슬로건 다 안다면 운동을 생활화 하여야 한다. 요즘 성인병인 고혈압, 당뇨, 암, 심장병 등으로 우리네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모두가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발전되면서 날로 심한 환경오염에 지나친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에서 온다는 사실 알면서도 그 와중에 과식, 과음, 과색, 과욕, 고뇌 등 자살 자멸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들은 사람처럼 약이나 치료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사는 것은 우리네처럼 지나칠 과(過)는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리 인간으로써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옛 선인들께서 장수십결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 소육다채(少肉多菜) 즉 고기를 적게 섭취하고 야채를 많이 섭취해라,
2, 소염다초(少鹽多醋) 즉 소금을 적게 섭취하고 초를 많이 섭취하라.
3, 소당다과(少糖多果) 즉 설탕을 적게 섭취하고 과일을 많이 섭취하라,
4, 소식다작(少食多嚼) 즉 음식을 적게 먹고 천천히 많이 씹어라,
5, 소번다면(少煩多眠) 즉 걱정 근심을 가급적 적게 하고 잠을 많이 취하라,
6, 소노다소(少怒多笑) 즉 분노하는 것을 적게 하고 모든 것이 즐겁다고 많이 웃어라,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
7, 소언다행(少言多行) 즉 가급적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많이 하라.
“글은 썼다가 다시 지워버리면 되지만 말은 삼세(三世) 상주(常住)한 다.” “일생동안 현명했던 사람도 말 한마디로 일생을 망친다.”는 것처 럼 말이란 입에서 배트면 다시 도리킬 수가 없다.
8, 소욕다시(少慾多施) 즉 정도에 넘치는 욕심은 금물이니 버리고 남에게 많이 베풀어라,
“원망하고 싶은 사람을 존경해 줄때 복운이 온다.”
“득을 쌓으면 반듯이 이웃이 있다.” [득불고필유린(得不孤必有隣)],
9, 소의다욕(少衣多浴) 즉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얇은 옷을 겹쳐서 입고 모욕을 자주하라.
10, 소차다보(少車多步) 즉 가까운 거리는 차를 타지 말고 많이 걸어라,
이상, 열 가지가 장수십결이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땀, 눈물, 소 대변으로 많이 배설하는 것이 혈액순환에 몸을 가볍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다접(多接) 즉 부부 서로 생각해 주며 어루만져주고 접촉하면 활력이 생긴다.
“남편은 소나무와 같고 부인은 등나무와 같다”는 말처럼 가정이 바로 행복의 보금자리이니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사랑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접하고 있는 곳이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보다 내가 머무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모든 것이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망(多忘) 즉 되도록 과거를 잊으라, “환경은 자신을 바꾸는 거울, 거울은 자신을 그대로 비춘다. 거울 속의 모습을 고칠 것이 아니고 자기의 모습을 고쳐야한다.”는 말같이 인생이 잠시 머무는 동안 숫한 일이 다반사를 그대로 다 되색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본다. 그러려면 다정(多靜) 즉 고요한 마음을 가지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볼 수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다인(多忍) 즉 많이 참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숯과 같이 탄소이나 오랜 고난과 비바람 속에서 세월이 흘렸기 때문에 값진 보석이 되었고, 연꽃은 진흙탕 물에서 솟아나와 아름다움과 그윽한 향기로 우리네를 간드러지게 하지 않는가?. 이러한 마음을 지니면 태양과 같은 인생이 될 것인가 반딧불 같은 인생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명답을 얻을 것이다.
그 명답이 한층 다용(多勇) 즉 매사에 용기를 부여하게 된다. “용기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여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용기가 하늘을 찌르지 않을가 여긴다.
★이 용기가 시야를 넓게 볼 수 있다. 속담에 “참새는 울타리에서 굴뚝새는 굴뚝에서 학은 창공에서 논다.”고 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즉 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누워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이런 몸가짐이라면 건강한 부가 자연적으로 성취하는 환희가 넘치리라 확신한다.
사람의 몸은 약 이 백 개의 뼈와 육 백 개의 근육으로 구성되 있어 걸을 때는 삼 백 개의 근육이 동시에 움직이니 “보약보다 식보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가 낫다.”는 말이 명쾌한 회답이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적은 것을 잃는 것이고,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부귀보다 귀한 것은 지식이고 지식보다 귀한 것은 도덕이고 도덕보다 귀한 것은 건강이다. 그러하니 항상 쾌식(快食)하고, 쾌변(快便)하고, 쾌면(快眠)하며 소식다동(少食多動)으로 심신을 안정하여 장수하는 건강은 인생의 가장 큰 본질임이 틀림없으니 부디 간과(看過) 말지어다.
누구나 가고픈 금강산
관광버스에서 밤을 지세는 건 여간 지루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정된 자리에 5시간 자는 둥 마는 둥 몸을 좌우로 기대며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맘이 지겹도록 지나서야 훤히 먼동이 밝아온다.
어제만하여도 시간마다 매스컴에 야단이던 산산태풍 잔영 탓에 동해 파도 위력은 아직도 실감케 한다.
화진포 현대 아산 휴게소 도착하니 5시 30분이다.
산뜻한 초가을 바닷바람 내음에 긴 여정을 잊게끔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바다를 바라보며 함박꽃 웃음을 띠우며 어린 적으로 되돌아온 듯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법석에 화색이 만연한 함박꽃 웃음이 자지러진다.
때맞추어 거대한 파도 넘어 불그스레한 모습과 더불어 “해가 솟는다” 붉다 못해 수평선 파도가 새빨갛다. 저 불타게 발광하는 해돋이는 생각지도 않은 귀중한 선물이다.
“해돋이”는 한 달에 기껏해야 서너 번이라니 이 행운이 가슴 속에 감명 있게 남을 것이다. 이 깜직한 맛에 기분이 상쾌하여 여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두가 마음이 떠있다.
현대 아산 관광버스에 옮겨 타고 남측 출입국 사무소 지나니, 도로 양측 철조망이 마음에 중압감으로 분위가 갑자기 찬바람이 돈다. 동해선 철도 연결은 제구실 잃고 녹이 쓸고 유일한 육로인 이 길로 군사 분계선 지나 북으로 버스는 향한다.
왠지 자꾸만 표현 못할 얄궂은 그 무엇이 자신을 꾸짖고 짓누르는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아픔이 오늘 어제의 일이랴?. 잊자 잊어야 한다 해 보건만 쌓인 말 못할 한이 가슴 조이게 한다. 북측 수속이 끝나고 15여분 후 온정각에 도착한다. (화진포에서 온정각이 35.7km)
현대 아산이 마련한 방갈로에 짐을 풀고 간편한 차림으로 세존봉 등산이 시작된다.
아름드리 울창한 소나무 숲 질주하던 버스는 15여분 경과 뒤 모란 주차장에 멈추어 이제부터가 등산 시발점이다. 위도 아래도 능선 따라 저마다 뽐내는 괴암괴석, 명경지수로 투명하게 솟구치는 물소리, 앞 다퉈 길 안내하는 다람쥐 재롱, 오를수록 신비의 조화 속을 가는 듯 이리 봐도 절경이고 저리 봐도 비경이다.
금강문 이르니 등산객도 뜸하다. 비룡폭포가 암벽에 미끄러지게 내려 솟구치는 모습 얼간이가 되어 땀에 젖은 몸이 서늘한 느낌이 들도록 얼마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목적지를 향하여 발길을 재촉한다. 숨을 가누고 오르는 도중 북한 특산물이 보잘 것 없이 초라하게 진열해 놓고 “반갑습니다”하며 상냥하게 방긋 웃는 아가씨가 물건을 권한다.
상품 진열과는 대조적으로 몸가짐은 매우 깔끔하면서 예쁘다.
호기심에 사과 몇 개 사면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해 보았다. 낭랑한 목소리가 애교 만점이다. 남남북녀라더니, 북한 여성은 다 미녀인 듯 생각이 든다. 한참동안 북한 아가씨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남의 나이 먹는 주제에 그래도 청춘인 게 봐, 세월이 앗아간 언덕에 뉘보다 화려했던 그 시절이 웬 푼수처럼 스치는 탓이 아니라 우리네와 대조적인 점에서 관심이었을 뿐이다.
시간 반 지나 구룡폭포에 도착하였다.
말로만 듣던 구룡폭포, 가까이 보는 실감 나도 모르게 폭포 속으로 온 몸이 매료된다.
암벽 능선 15m 위에서 내려 꼽는 새하얀 물줄기 흩어짐에 눈이 시리다. 푸른 담수호는 시원스레 푸르름은 여정 지친 이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니 절로 시 한 수가 절로 난다.
이 장면을 못 본 사람은 어이 지금의 감격을 알가 브냐?.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등산객은 거의가 구룡폭포를 종점으로 발길을 돌려 하산한다. 가이드는 우리 일행에게 등산 코스가 험하고 시간적 부담이 되니 희망자를 원했으나 몇 명만 빼고 실개천 건너 서남쪽 웅장한 바위산 세존봉을 향한다.
오를수록 더 가파르고 험하다. 등산은 인간 한계를 넘는 자신과 싸움이라 했다. 이제 자신과 극복의 시작이다. 하산까지는 6시간은 족해야 하니, 단련된 사람도 부담스러운데 하물며 간혹 산을 타는 나는 위압감이 짓누르지만 여자도 오르는데 남자란 구실 자랑이 참으로 힘겹다.
일행 중 남자 다섯 명 외는 YWCA소속 송이팀으로 십년 세월 훌쩍 넘도록 야트막한 산 높은 산 망라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눈비가 와도 산이 좋아 산을 오른다. 더욱 해외 등산에도 섭렵이 있다. 회장을 비롯하여 회원 간 두터운 신뢰로 형 아우로 서로가 서로를 촉촉이 젖은 사랑으로 다독이고 배려함이 회원 가정으로 확산되어 세월만큼 쌓인 정이 산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넓으며 훈훈하여 기회가 있으면 동참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런 연으로 함께 오게 된 것이다. 오르고 오른다. 정상을 향하여 자신과 싸움은 지속 된다.
고산지대라 우리나라 특산 식물인 금강초롱이 줄기 가지 끝 1-2송이 자색 모양으로 바위틈에서 반긴다. “키는 60cm정도로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에 가장자리 톱니가 있고 주로 고산지대 서식하며 꽃 모양이 청사초롱 닮고 금강산에서 최초로 발견 되어 금강초롱이라함”
야생 도감 발취,
삭막한 도시생활에 잠시나마 잊어 보려고 자투리 공간에 개량초롱, 돌단풍, 해국, 꽃무릇, 천상의 나팔, 산 더덕에 산마, 심지어 취나물에 참나물로 봄이 오면 야생화 용트림 소리에 각박한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유일한 행복이다. 그러나 식물 수집가는 아니다. 오직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접하고픈 뿐,
어느 등반자는 산이 무조건 좋아 매일 산을 오른다고 한다.
그 말의 진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듯 하다. 산은 모두를 포옹하고 모두에게 아낌없이 준다. 대가를 바라는 인간과 달리 서슴없이 여유롭게 미소 짖고 머물면 머무는 대로 닿으면 닿는 곳마다 있는 그대로 맞아주고 반긴다. 이처럼 산을 찾는 모든 이는 서로가 서로를 당겨주고 밀어주고 이끄는 훈훈한 배려가 봇물처럼 솟구치는 천국과 같다.
콘크리트로 덮인 팍팍한 도시 삶의 바람 소리와는 다른 세계다.
청명하고 맑은 하늘에 세존봉(1160m) 오르기 힘겨워도 산을 오르는 마음 바로 정상 탈환이다. 벅찬 환희 절로 나오는 웃음, 사방팔방 모든 게 내 아래에 있다. 누구나 자연과 더불어 삶 지향을 갈구하거늘 그러지 못 함에는 이유 있는 물음표다. 왼쪽에는 계절폭포가 희 천사가 탈을 쓰고 능선 구비 산 중턱 타고 흐르고 맞은편 아련하게 비로봉엔 가을이 내려앉아 산자락이 불타기 시작한다. 닿는 곳마다 색다른 신비로운 조화에 취하여 김밥이 꿀맛이다.
오후 2시 지나 하산이다.
가을! 결실의 계절이라 발끝에 차이는 게 도토리가 지천이다. 손으로 몇 번 끌어 담으면 조그마한 자루에 두둑할 정도다.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니..., 아무튼 가을엔 어디가나 풍성하다. 금강산이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초가을 해가 기운다. 일행은 바쁜 와중에도 하나 더 눈요기 하려는 그 마음이 놀랍다. 유행가처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지만 사람은 사는 동안 얼마나 삶의 가치를 갈구 하느냐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몫이다. 이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천차만별이니,
오후 6시 30분에야 지친 몸을 온천탕에서 푼다.
이름 난 온천이라 가격이 비싸지만 피부는 부드러운 듯하다. 저녁은 온정각 동관에서 버섯구이 백반에 반주가 아쉬움이 남아 숙소에서 일행 중 홍일점 5명인 남자 내외가 모여 홍어회 안주 삼아 금강산의 첫 밤을 얘기꽃 피우면서 주거니 받거니 밤이 으쓱하도록 도란도란 뜻 깊게 보냈다.
아침이 밝았다. 상쾌한 날씨가 우리를 부추긴다.
강개토식당에서 아침식사 끝나고 만물상 코스 버스가 굽이굽이 76굽이돌아 망상정 주차장에 9시경 도착했다. 삼일포 해금강 코스는 30굽이 더 지나야 한다니 106굽이라 생각만 하여도 옷깃이 선다. 층층이 암벽 절벽에 기암괴석으로 조화를 이루어져 천태만상으로 보인다 하여 만물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한다. 말 그대로 바위마다 제각기 다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형태가 다르고 방향에 따라서도 다른 모양이니 어찌 탄복하지 않으리오, 산행의 진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꺼덕이게 한다. 눈 닿는 곳마다 비경에 절경이고, 물소리 나는 곳이면 하얀 가슴 풀어 놓은 폭포수다.
어이 말로 글로 다 표현할소냐?, 삼선암, 귀염암, 칠층암 지나 윤활유로에 이르니, 거의 다 하산하고 일부만 선천대로 향한다.
선천대 (936m)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상등봉(1229m)이 높다랗게 보이는 운치가 극에 달하는 곳이란다. 한숨을 돌리고 산행이 계속한다. 그렇게도 맑고 청명하던 하늘이 운무로 산을 덮는다. 금강산 날씨는 수시로 변하여 종잡을 수 없단다. 어제 왼 종일 청명하여 세존봉에서 비로봉을 볼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니 복 받은 선물이다.
1망양대, 2망양대, 3망양대(1041m) 올라도 안개로 채 5m 전방이 보기 힘들다. 맑고 청명한 날씨에는 오봉산(1263m) 사이로 원산 앞바다가 보인다는 걸 못 보아서 아쉽다.
한편 봉마다 피어나는 안무로 하늘에 떠있는 듯이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여 그 나름대로 위안을 삼는다.
금강산 일 만이천봉이라, 내금강 코스가 8곳, 외금강 코스가 11곳, 삼일포 해금강 코스가 3곳에 사계절 따라 다른 변모의 금강산은 우리의 자랑이오, 겨레의 포징을 어이 2박 3일로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으랴만, 오가고 못하던 곳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고 정주영회장의 유혼을 이어 남북 화해 새로운 마당을 연 고 정몽헌 회장 시비“그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역사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에 고이 머리 숙인다.
우린 이제가 시작이다.
반백년 잠겨 있던 자물통에 윤활유로 서서히 부드럽게 녹을 지우니, 도라산역에서 북한 땅을 활개 펴고 달리는 열차를 기다릴 것이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기에 조급지만 우리 기다리고 참자.
우리 겨레는 결코 할 수 있으려니, 그날이 올 때까지,
2006, 9, 중순,
노후 든든한 희망찬 꽃다발 국민연금
우리 세대 살아온 사람은 대다수가 노후에 대한 관심에 여유롭지 못했다.
그러하나, 자녀에 대한 교육열엔 마치 시샘이라도 하듯, 너나없이 높아 허비적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보람이 현제의 삶을 누리는 좋은 밑거름의 큰 초석이 된 게 분명하다고 사료된다. 알기론 80년 초부터 삶의 질이 조금씩 여유로워지면서 차츰 노후에 대해 눈을 돌렸다고 봐진다.
그때 나는 불혹의 나이었지만, 노후 준비라곤 전연 없었다. 나이 더 먹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된다는 것 알면서도 선뜻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뜨면 왼 종일 종종걸음에 동분서주하여도 아들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으니, 뒤돌아 볼 여유란 다른 나라 얘기였다. 밤늦게 피곤에 지쳐 곧바로 꿈나라로 떨어져 깨자마자 삶의 전선으로 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도 “이러다간 늙어서 어떻게 해”하는 불안감이 옥죄었어도 아이 엄마께 얘기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막둥이로서, 옥동이 금동이로 귀엽게 자랐거늘, 남편 잘못 만난 탓 투정은커녕, 오히려 핍박한 항아리 삶을 친구 삼은 걸 운명처럼 여기는 갸륵한 마음씨에, 혹시나 치명타를 줄 것 같아서였고, 세월 따라 좋은 싹 돋기만 기다리며 염원하는 동반자에게, 발맞추려 하나 거기에 따르지 못하는 무기력한 부끄러움에서 온 좌절감이었고, 만약에서 오는 나란 자신의 위축감이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넌지시 귀띔하니, “조금 덜 쓰고 더 아끼면 노뢰엔 보탬이 될 건데 진작 얘기치 않았느냐”고 반색을 하였다.
그리하여, 80년 중반 도시인 지역가입 의무화되기 전, 연금공단을 방문하여 상담하니, 의미 가입 경우는, 건강검진 첨부 후 심사를 거쳐야 가입될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도 있었으나, 국가가 실행하는 것은 어느 보험회사보다 믿을 수 있고, 더 큰 혜택이 부여된다는 말에 저의 부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하였다.
그 후, 생각지도 않은 IMF로 하루아침에 된서리 맞은 자영사업 몰락에, 날품팔이 막노동도 건설업 불경기로 계속할 수 없어 허탕을 치는 나날이 많아, 가정을 지탱해야 하는 4남매(대학생 둘, 고등학생 하나, 중학생 하나) 가장으로선 말 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에, 하소연할 곳 없어 산에 올라가 혼자 목 놓아 운적도 많았다, 더구나 두 사람의 한 달 국민연금액 납부는 크나큰 부담을 주었다.
고민 끝에 납부한 금액이라도 찾아서 발등에 불이라도 끌려고, 연금공단을 찾아가 어려운 실정을 상담한 결과, 누구나 다 어려운 시기인 줄 알지만 납부한 금액은 일 년 뒤 환급된다는 말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다시 정신을 가누어 나뉘어 보니, 경제위기로 사정이 딱한 분들에겐 최소한의 월부금이 하항 조정된다고 하여, 다음 달부터 적용을 받으니, 다소는 위안은 되었다.
그래도 그땐 왠지, 내가 낸 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쾌운지 않아 야속함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런 결정을 했겠는가를 몰라주는데서 온 혼자 불만이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자기 탓 모른 체 남의 탓으로 돌리듯, 내가 바로 꼴불견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은 세월 따라 잘도 가건만, 나라는 존재는 세월을 따라잡기는커녕, 한 번 움츠린 날개는 다시는 펼 줄 모르고 날마다 황홀한 태양 아래 검게 탄 몰골로 허둥대며 발버둥질 쳐도 진흙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세상이 나를 반기지 않는지, 나란 인간이 무기력하여 길이 있어도 찾지 못하는지, 다시는 제기할 기회마저 오지 않았다.
구렁텅이 속만 발부등치다가 너무 지쳐 때론 삶을 포기하고픈 적이 문득문득 앞을 가로막기 허다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은 아이 엄마의 한결같은 위로가 한 몫도 있었지만, 바로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또 “행복은 내세의 ‘약속의 땅’도 아니며, 어떤 요행으로 주어지는 ‘운명’도 아니다, 행복은 오로지 스스로가 쟁취하는 것이다.” -버트린드 러셀- 이 명언이, 나란 바보에겐 천금보다 더한 깨달음을 주어 참살이 길로 인도하는 지표가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인생사 살다 보면 기쁜 일 있으면 슬픈 일도 있고,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으며, 일어서는 만큼이나 넘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걸 깨우치게 하였다. 인생이란 게 양지쪽을 걸어야만 하게 아니라 음지쪽도 걸어가야 하는 여행이란 걸,
세상사 다 이러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철칙에, 모든 것에 긍정적 사고에, 긍정적 물음에, 긍정적 답변으로, 주어진 현실에 나라는 존재를 재창조하는 것을 기회 삼아 일하는 즐거움이 곧 지혜로운 삶임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이 마냥 하루가 보람찬 즐거움이었다.
내가 이렇게 변해 가니, 그토록 어둠의 그늘이든 가정에 웃음이 되살아나는 신비로운 물결에, 황홀한 꽃향기에, 나날 기쁘고 즐거운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IMF 이전처럼 사회적 위치나 지위가 복원된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하루벌이 막노동에 자식 교육에 찌든 꼴사나운 그대로 이건만, 어떠한 방향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 걸, 실감케 하는 좋은 본보기란 걸 알게 되었다. “잃어버린 것을 놓고 마음이 목 놓아 울 때, 영혼은 새로 얻은 것을 놓고 춤춘다.”-이스람 신비주의의 금언- 같이, 어려움을 어렵다 여기지 않고 지나간 어제보다 오늘을 직시하며, 거기에 맞추어 슬기로운 용기가 아름다움을 잉태하듯, 버는 자랑보다 쓰는 자랑에 하나 돼, 서로가 믿음의 산줄기를 가슴에 옮겨 놓고, 사람의 세상을 볼 줄 알도록 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가훈을 “오늘도 즐겁게”라고 걸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용기 있는 도전으로, 스스로 목표 설정을 향해 매진하는 “즐거운 나의 집”이었다. 그래서 저의 내외는 국민연금 불입금을 6개월 뒤에서야 환원하게 되었다.
“그대는 당신 운명의 설계자다. 저자이며 얘기꾼이다. 펜은 당신 손에 있고 결과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리사 니콜스의 말처럼 마음가짐 따라 행복이란 세상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출발하되, 언제나 뒤돌아 볼 줄 아는 게 행복의 첫 단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거운 짐이 때로는 강력한 날개가 된다.”말 그대로 “오늘도 즐겁게”란 슬로건 덕분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날품팔이에게 일을 맡아서 해 보라는 제의에 선뜻 겁 없이 승낙하게 되었다.
“강하다는 것 즉 용기는 아무리 지쳐 있어도 산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기에, 인생이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할 순간과 부닥치기가 허다하다.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것은 강제적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건 자각에 달려 있다. 산 정상을 향해, 해돋이를 향해, 경이로운 삶의 창조를 위해 내딛는 연약한 한 걸음이 맹렬한 폭풍보다 더 강하다. 성공이 실패를 덮어 줄 뿐만 아니라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좋은 지침에 힘을 얻어서, 어제의 동료들을 주인의식이란 입장에 일하게끔, 가족처럼 똘똘 뭉친 보람이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이 되니, 나날 땀에 젖어도 환한 얼굴에 기쁨이 넘쳤다.
고통을 몰랐다면 그 순간을 기쁨이라 여기였으리,
수입이 예전보다 다소 여유롭다 했더니, 예금통장은 예치하기 무섭게 커가는 4남매 교육비로 종전같이 여전하였다. 이러할수록 아이 엄마는 없어도 있는 듯, 있어도 없는 듯 언제나 환한 백옥 같은 얼굴을 보고, 이웃 사람들은 부잣집 마님이라고 칭송을 하나 아랑곳없이, 고통을 여유롭게 혼자 감싸 안고 이번엔 아이 엄마가 “이보다 더 어려운 시기에도 국민연금을 불입해 왔잖아, 더 쥐어짜야 당신이 늙어 손 놓으면 이 두 가지(국민연금, 우체국 보험)에 의존할 수 있잖아요, 자식에게 부담 주는 시대는 옛 말이니... ,”하며 저를 설득하여 우리 내외는 우체국 보험을 또 가입하게 되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움에 그날따라 유별나게 더 아름다워 대답대신 꼭 안아 주었다.
“사랑이 머무는 자리엔 향상 천사가 머물고 있다”는 정표가 아니었을는지,
더욱이 아이 엄마는 현실의 고생을 무릅쓰고 푼푼이 모우는 미래 안목에 눈을 떠, 허리띠 더 졸라맨 보람이 4남매 모두 대학 졸업 후 제 갈길 택하게 되었다. 그래도 부족하여, 자나 깨나 자식 결혼에도 빈틈없는 준비로 남에게 부끄럽지 않을 부모 구실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지나온 게 마치 주마등처럼 곱다운 추억으로 남아 여한 없다,
이제 저의 내외 다 고희를 넘어 희수가 내일 모래니, 곧 팔순에 접어든다. 만 60세부터 우리 두 사람은 2015,4월 현제 기준 61여 만 원 매달 통장으로 입금 된다(뉘에게나 물가상승 적용이 해마다 5월부터 됨). 여기에 노령연금, 우체국 연금 합하니, 매월 백 만 원이 훌쩍 넘는다.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데 풍족치는 않으나, 자식들 도움 없이 그런대로 조그마한 바람막이 안에서 고대광실 높은 집 부럽지 않게 여생을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받은 금액을 대략 계산해 보니, 총 불입액의 9배가 넘는다. 해가 갈수록 고령화 되어 평균 수명이 83세가 넘어서는 이 시점에, 어림잡아 그 나이까지 산다고 보면 총 불입금의 몇 십 배가 될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보험이 어디서 찾아볼 수 있으랴,
이것을 본 자식들은 한 목소리로 노후엔 눈 닦고 봐도 국민연금밖에 없다며 이구동성이다.
그 후론 국민연금 홍보에 쌍불을 켜고 앞장 서슴지 않고 있다.
또 저의 부부가 국민연금에 가입할 때, 콧방귀를 끼면서 심지어 미쳤다 할 정도까지 하던 사람들도 이젠 저의 부부가 한결같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뉘가 뭐래도 굽이지 않고 한 일이 정녕 다행한 일이라 여긴다.
이렇게 좋은 노후대책을 한땐 좌지우지하며, 우스꽝스러운 얄궂은 일화로 번져 가입한 모든 이에게 불신으로 갈 번한 혼란 도가니 속에 이끈 적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시건방졌다고 본다.
어쨌든 매월 받는 연금이 우리 부부에겐 행복지수 하나의 몫임은 분명하다.
그러하매 “노후 든든한 희망찬 꽃다발 국민연금”하며 공보에 게으름 피지 않으려 한다. 이 좋은 것을 뉘 특정인으로 국한된 혜택은 복지사회 구현 이치엔 어긋난 길이기에 ... ,
끝으로, 외람된 말 같으나, 국가가 하는 모든 것에 부디 사리사욕을 떠나 백년대계 복된 나라 창조에 한 몫의 핵을 긋는 데는 너나가 따로 없음을 덧붙여 강조하고픔이다.
이고득락(離苦得樂)
자아실현이란 말 자체가 자기가 지닌 최대한의 능력 개발이고, 최대한의 능력 사용이며, 잠재 능력과 소질의 충분한 발휘라고 생각한다.
식물들까지도 제가 좋아하는 습기 있는 쪽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고, 제가 즐기는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가지와 덩굴을 뻗어 나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삶은 곧 이고득락의 연속적인 추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려면 현실과 이상을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상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게 하여야 한다. 현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상으로 바꿔 가야 한다. 그리하려면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현실을 등한시하지 않되 현실에 급급하지도 말고, 이상을 놓치지 않되 지나친 이상주의에 기울지도 않는 중도(中道)의 묘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인생에는 즐거운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다. 그 어떤 즐거움이라 할지라도 영원하지 못하는 법이어서 마침내 그것은 끝나고 만다. 그리고 그 한때의 즐거움이 끝나면 다음 괴로움이 다가온다. 이처럼 인생은 괴로움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고달픈 길이다.
욕구는 자기의 능력으로서 얻을 수 있는 정도까지의 바람을, 욕망은 자기의 능력으로 미칠 수 없는 바람을 가르친다. 그리고 희구는 욕구와 욕망을 모두 포함하는 보다 큰 개념이다.
문제는 우리의 희구량(希求量)이 언제나 소유보다 크다는 데 있다.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가난해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설사 황금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해도 욕망을 다 만족 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은 황금 장맛비가 안 오나?, 이제 황금은 지겨우니까 다이아몬드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완전한 만족은 소유의 길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희구량을 줄여 적은 것에 만족할 수 있을 때, 즉 안으로의 길에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마음(희구량)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으뜸가는 재산이다. 욕망을 부숴야만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은 마음 안에 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은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남이 네 뺨을 치거든 오른 뺨을 돌려 대고, 남이 너에게 오 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까지 동행하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등의 명언을 되새김하면 욕망을 줄이기는 능력 계발에 도움이 되리라고 한다.
능력이 소유를 결정하고, 소유가 만족을 준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욕망은 우리의 잠재 능력을 가로막아 그 계발과 발휘를 제한한다.
욕망을 줄여 욕구만으로 사는 것은 자기 사랑의 길이요, 욕망이 많아 그에 이끌려 사는 것은 자기를 해치는 길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줄여 욕구 차원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이 될 때, 진정한 자기 사랑의 길인 것이다.
사람들은 즐거움에 집착하여 머물게 하려고 하고, 괴로움에 대해서는 한사코 물리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줄어들지 않으며, 욕망은 더욱 늘어나고, 지혜는 더욱더 어두워진다. 즐거움을 머물게 하려면 괴로움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지 말아야 하며, 괴로움을 거부하려면 즐거움에 대해서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즐거움, 괴로움의 반복을 되풀이하는 것이 삶이다.
삶은 즉, 이처럼 즐거움, 괴로움의 시소게임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 해탈, 열반이라는 참답고 영원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명상은 세속적인 즐거움, 괴로움을 둘 다 버려 초월하는 데서 시작된다. 욕망이 집착을 낳고, 집착에는 즐거움을 붙들려는 집착과 괴로움을 한사코 거부하려는 두 형태가 있음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앎이 지혜이다. 지혜는 일반적으로 지혜, 즉 지식과는 의미가 다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지혜이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은 지식이다.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은 지혜이고,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은 지식이다.
행, 불행의 근본 법칙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 지엽(枝葉) 법칙을 아는 것은 지식이다.
직접 보아서 아는 것은 지혜이고, 간접적으로(책, 가르침 따위) 아는 것은 지식이다.
분명하게 아는 것은 지혜이고, 애매하게 아는 것은 지식이다.
세밀하게 아는 것은 지혜이고, 둔탁하게 아는 것은 지식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성취하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말이 이고득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여기는 바이다.
알아차림은 깨달음이라는 놀라운 경지를 가능케 해주는 신비한 정신력인 것이다. 알아차림의 정신력으로서 인류 최고의 경지를 성취할 수 있다.
현제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과거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반성이다.
현제를 가장 충실하게 사는 것이 미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준비이다.
여기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조화롭게 사는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몸, 마음의 현상으로부터 해탈이 모든 얽매임을 다 파괴해 버리면 이제 더 이상의 마음의 괴로움은 없는 것이다
열반은 빔(空)이요, 자취 없음, 그는 다만 해탈만이 목적이니 새가 허공을 날아가도 자취가 없듯이 그가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다
마음, 숲속, 골짜기, 언덕,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있으니,
원한을 품을 만한 자들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폭행하는 자들을 용서와 평화로 대하며, 집착된 자들 속에서 집착이 없으니, 과거, 현제, 미래에 얽매지 않아 물질의 소유에도 집착하지 않게 되고 만다.
시간에 얽매임이 없어 집착에서 벗어났으니 두려움 없는 승자요, 영웅, 위대한 스승이며, 욕망의 정복자,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청정한 진리를 깨달았으니 비구름 일으켜 천둥이 울고
새가 나는 공중에 비가 내리니 그는 이보다 더 나은 즐거움을 알지 못하리
각양각색의 관목 더미에 묻힌 강가에서 꽃에 휩싸인 마음 그는 이보다 즐거움을 알지 못하리
20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