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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제 1코스
말씀의 길
+ 주님의 사랑안에 머물며
서로에게 형제애로
기쁨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01. 모임 일시 및 장소
ㅇ일시 : 2025년 3월 5일 (수) 오전 09:30분
ㅇ장소 : 명동성당 앞 마당
02. 코스 : 명동성당 ○---○ 이회영 터 ○---○ 김범우 집터
○---○ 이벽 생가 터 ○---○ 종로 성지 성당 ○---○ 광희문
거리 약 6km,
소요시간 약 4시간
03. 준비물 :
-. 따뜻한복장, 트레킹화, 식수, 기부금 1,000원
04. 난이도 : "하"
05. 진행봉사 :
해설봉사 : 김정자 안젤라님
06. 참가자 명단 ( 존칭은 생락입니다 )
01. 박장원필립보 영보님
02. 김정자안젤라
03. 김성일임마뉴엘
04.김용성마르티노 (김성일임마뉴엘님 지인)
05. 이정자안젤라 (김성일임마뉴엘님 지인)
06. 권양희데레사
07. 최성희아녜스
08. 이은숙아녜스
09. 신오기레오폴드
10. 이재전 프란치스코
07. 기부금 1,000 X 10 = 10,,000
※ 알림 사항
1. 모임 시간 준수(지각시 진행자에게 미리 연락)
2. 진행자(선두 리딩자) 보다 앞서 걷거나
뒤쳐지지 않도록 합니다 ~
이탈시에는 진행자에게 .사전 연락바랍니다.
3. 일회용품 사용 피하며 개인 컵을 사용합니다
4. 걷기중 일어나는 사고는 진행자및 평의회는 책임지지 않으며, 안전 사고에 주의합니다
5. 체력에 맞게 2~3회/주 정도 걷기 생활화 합니다.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말씀의 길’을 따르다 보면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한국 최초의 희생자로 기록된 김범우의 집터와 천주교 세례식이 처음으로 거행된 이벽의 집터를 둘러보며 시작하는 길입니다. ‘말씀의 길’은 한국 천주교회가 이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으로 복음 말씀을 받아들인 평신도 신앙 공동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한 최초의 외국인 사제인 ‘주문모 신부’가 성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석정보름우물" 과 그의 활동지로 알려진 계동 일대의 가회동성당을 둘러보며, 타지에서 순교를 택한 그의 희생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천주교를 대변하는 대성당입니다. 지금도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이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명례방(明禮坊)에 속해 있었습니다. 명례방은 천주교가 유입된 이후 신도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곳일 뿐 아니라 이승훈이 세례를 주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 1830년(순조 30) 이후에는 선교사들의 비밀 선교활동의 중심지였으며, 1845년(헌종 11) 에 귀국한 김대건 신부님께서 활동하던 곳이기도 해요.
성모자상 뒤로는 " 14 사도화 " 가 펼쳐집니다.
14 사도가 성모님과 예수님을 옹위하듯이 서있습니다.
14사도는 복음을 전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권한도 받았구요
제대위의 " 14사도화 " 는 화가 장발 루도비코 (1921~2001) 의 작품입니다.
이는 경주의 석굴암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구상을 고민하며
석굴암을 방문하여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부처님 둘레의
10대제자상 입상부조가 새겨진 것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져요
12제자외에 다른 두사제는 바오로 사도,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각 사도의 이름이 발아래에 한글과 라틴어로 적혀 있구요
제단의 중심인 제대에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미사 끝자락에 신부님께서
제대에 입맞춤을 하시고는 퇴장을 하시는데
이는 예수님의 몸인 제대와 제대 바로 밑에 있는
지하성당에 모셔져 있는
5분의 성인과 4분의 순교자분들께 경의를 표하는 것이예요
1. 베드로 (=시몬 Peter. simon )
그는 요나의 아들로서 최초로 부름받은 제자들중 하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며 예수님을 3번 부정하였으며
"시몬"은 " 듣는자 " "복종" 을 뜻하며 "베드로"는 "반석" 을 뜻합니다
네로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카톨릭을 세계적 종교로 만든
초대교황 성 베드로가 묻혀 있습니다
안드레아와는 형제입니다.
2. 안드레아 (.Andreas)
" 남자답다 " 라는 뜻이며 초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입니다
성경에서는 형제로 나오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서열중심이 아니라서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정획하게 서술되지 않았어요
일설에 그는 감히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질수가 없다고 하여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문에 이 X자는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도 불리며 스코뜰랜드의 국기와 러시아 해군의 군함. 깃발등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3. (대)야고보 (James)
" 대신 들어 앉다 " 라는 뜻이 있고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천둥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가진 헤롯에 의해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요한과 형제입니다.
4. 요한 ( John 사도요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친척간이며 "하느님의 은혜" 라는 뜻이며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의 저자이기도 한데
자신을 "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 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자요한의 제자이기도 한데 12제자중에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5. 필립보 (Philip)
" 투쟁적 " 이라는 뜻이 있으며 벳세다의 어부출신입니다
6.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u )
"탈마이의 아들" 이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입니다
7. 토마스 (Thomas)
"쌍둥이" 또는 "소리"라는 뜻이 있고 의심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순교하여쓴데 신라까지 왔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인도에는 지금도 토마스교회가 있습니다.
8. 마테오 ( Matthew )
" 하느님의 선물 " 이라는 뜻이 있으며 금융업자의 수호신인데 아마도 가버나움의 세리였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마테복음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또한 마테오의 이름을 빌려온 다른 제자로 알려져 있기도 해요..
9. (소)야고보 (James )
"주님의 형제" 라는 뜻이 있고 타대오와 형제이며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10. 타대오 (=다데오 Thaddaevc )
본명은 유다인데 예수님을 배반한 가리옷유다와 구분하기 위하여 그의 별칭을 쓰고 있습니다
11. 시몬 (Simon 가나안 사람)
열심당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 가리옷 유다 (Judas is cariot )
12사도중에 유일하게 갈릴리 출신이 아닙니다.
유다는 "찬양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 마티아( Matthiah )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가리옷유다의 후임으로
새로운 12번째 제자입니다..
* 가리옷 유다는 13이란 숫자와 연관이 있을까요?
그는 13번째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과 12사도외의 사도로서
사도에서 제적된 사람인데 그에 의해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13과 연관된것이며
서양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을 제일 싫어한다는~
*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에서는 가리옷유다를 지옥 최하층에 있는
루시퍼의 입에 물려 놓았다고 해요
서양 문화권에서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함께
배신자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구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성장이 가지는 의미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1.공간의 역사 + 2.시간의 역사 + 3.역대교구장)
명동성당 설교대(강론대) ambo
지금의 제대위로 옮겨지기전의 예전의 위치와 모습입니다.
명동성당은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한국교회사의 상징이라
할수있습니다. 명동성당에 설치되었던 강론대에는 프랑스.
일본 독일인과 그리고 한국인과 가톨릭 정신이 섞여 있어요.
당시 프랑스 선교사와 독일 선교사, 일본 침략자는
모두 각각 한국 국민을 위해서 이 땅에 왔다고 합니다
1915년에 제작된, 당대 한국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명동성당에 걸 맞는 강론대입니다.
뮈텔 주교의 주교성성 은경축을 축하하기 위해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숭공학교에서
10년된 생느티나무를 가지고 꼬박 2년에 걸쳐 만든 선물이라고 해요
그 강론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해체되어
자리를 이동하였는데 1977년 원래 오른쪽 남자석의
세 번째 기둥 위, 나선형 오름 계단에 부착되었던
닫집(천개)은 현재 주교좌 상부에 걸려 있습니다.
해체된 강론대 부분은 독서대와 목조제단으로 조립되어
백동 수도원 자리에 세워진 혜화동 성당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져요. 나선형 오름 계단 일부는 현재 왜관 수도원에 보존되어 있다 하구요
예전에는 마이크가 없었던 관계로 사제가
설교대위에 올라가 말하였다고 해요
지하성당안에는 모셔져있는 성인 및 치명자의 유해는
기해박해(1839년)시 순교하시고 1984년 시성되신
성 엥베르(Imbert) 주교, 성 샤스탕(Chastan)신부,
성 모방(Maubant) 신부, 성 김성우(안토니오),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등 다섯분의 성인과 병인박해(1866년)때 순교하신 파리외방전교회 Pourthie J. Antoine 신부, Petitnicolas M. Alexandre 신부 등 2분과
무명 치명자 2분 등 총 9분의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해설해주시는 안젤라자매님..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성장이 가지는 의미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1.공간의 역사 + 2.시간의 역사 + 3.역대교구장)
명동길거리에 있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이회영을 보았다.
그의 위대함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본받아야 하며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함을 느낀다..
김범우(1751~1787)는 조선시대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로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김범우는 1751년(영조 27)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1774년(영조 39) 역과 증광시에 합격해 한학우어별주부를 지냈다. 청나라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어 일찍부터 천주교리가 적힌 서학서를 접하였다. 1784년(정조 8)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된 이승훈이 이벽의 집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세례식을 거행할 때 김범우도 이때 이벽·정약용·정약전 등과 함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김범우는 세례를 받은 뒤 명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천주교 집회를 가졌다. 김범우는 천주교 신자를 위하여 신앙 활동의 장소를 제공하는 한편, 교리서를 구비하여 원하는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동생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들을 천주교에 입교시키는 등 초기 천주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1785년(정조 9) 봄에 김범우의 집에서 가졌던 천주교 집회가 발각되어, 이와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형조로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을사추조사건이다.
같이 연행되었던 다른 교인들은 훈방되었으나 장소를 제공하였던 김범우는 형조에 붙잡혀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기에 갖은 고문 끝에 충청도 단양으로 유배되었으며, 고문의 후유증으로 1786년(정조 10)에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김범우가 사망한 뒤에도 많은 천주교인이 김범우가 살았던 명동을 중심으로 활약하였으며, 김범우의 집터에 건립된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으로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범우의 집터는 신앙집회가 열리던 김범우의 집이 있던 장소로, 지금의 명동성당 근처입니다.
이벽의 생가 터
초기 한국 가톨릭의 지도자. 자는 덕조(德操). 이승훈 베드로,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 암브로시오,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한국천주교회 창립성조(創立聖祖) 5위 중 한 명이다.
정약현의 처남이며. 정약현의 이복동생인 정약전, 정약용을 비롯하여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과 일찍이 교류가 깊었으며, 천주실의 등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천진암에서 천주학을 연구하다가 천주학을 학문이 아닌 종교(천주교)로 받아들였다. 이후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은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가성직을 받았습니다
전옥서 터
전옥서는 형조에 속한 감옥으로 죄인에 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입니다. 천주교 박해시기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었으며 천주교 103위 성인들중 전옥서에 수감되어 혹독한 감옥생활로 순교한 성인으로는 이호영베드로와 김바르바라기 있습니다.
좌포도청터
포도청은 을묘박해의 계기가 된 복산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문제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하였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순교한곳 역시 좌. 우 포도청으로 1795년 을묘박해때에 좌포도청에서 첫순교자가 나왔으며 오늘날 좌. 우포도청
터는 과거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전히 천주교 박해의 아픔과 순교자들의 용기를 기억하는 중요한 성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의 희생을 기리며 신앙을 기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이야기들을 되새깁니다.
좌포도청은 한성부 정선방 파자교 동북쪽(현 종로구 단성사 일대)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 서울 동·남·중부와 경기좌도를 관할하였으며, 중종 무렵 설치되어 고종 31년(1894년) 7월 경무청으로 개편될 때까지 존속되었다.
포도청에서 천주교 박해에 개입한 것은 1795년 북산 사건으로 발생한 을묘박해 때가 최초였다. 박해 시기 수많은 신자들이 좌·우포도청에서 순교하였으나, 기록상 좌·우포도청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103위 성인 가운데 22명, 124위 복자 가운데 5명이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기록상 명확하게 좌포도청에서 순교한 성인으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민극가 스테파노, 허임 바오로, 남경문 베드로, 임치백 요셉 성인이 있다. 복자 가운데에는 1795년 을묘박해 때 윤유일 바오로, 지황 사바, 최인길 마티아가 좌포도청으로 끌려와 혹독한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또한 기해박해 때 103위 성인 가운데 70명이 포도청에서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았는데, 정하상 바오로,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모방 나 베드로 신부,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가 형장으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청계천을 지나가다가 해오라기(?)와 노니는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종로성당은 2013년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님으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받은 곳이다. 포도청 순교지는 103위 성인 중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대철 베드로, 허임 바오로 등 스물두 분, 현재 시복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124위 중 윤유일 바오로 등 5위가 장살, 옥사, 교수 등으로 순교한 곳이지만, 성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없어 이곳 종로성당에 성지순례 안내소와 순교자 현양관을 만들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인 사건과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로성지성당 천장에는 12사도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 아라체 수도원 " 을 지나게 된답니다. 그곳은 순례자들에게 " 물과 와인 " 을 제공하며 순례자들을 응원합니다..
종로성지성당도 " 포도청 순례지 성당 " 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게 되는데 순례자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1층 성전 로비에 " 순례자 샘터 " 를 마련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순례길을 응원합니다..
제 16대 조선 대목구장 리델 ( Felix Claire ridel 1830~1884 ) 의 편지와
1877년 조선에 입국하여 6개월동안 포도청에서 감옥생활을 하였던 기록들을
만날수 있다..
포도청의 기원과 설치목적 그리고 순교자들을 고문하던 형구 (刑具)들이 소개되어 있다.
종로성지성당 안에서 해설사분의 안내와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대건신부님께서 유일하게 칼을 쓰고 있는 모습이예요.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신앙을 증언하고 마지막으로
밤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의 단체사진..
광희문은 서울 성곽의 사소문(四小門: 홍화문, 광희문, 소덕문, 창의문으로 사대문 사이에 세웠던 문) 중에 동남 방향에 있는 성문으로, 장충단에서 한강 사이의 남소문(南小門)이 없어진 뒤 북쪽의 수구문(水口門)을 일컬어 광희문이라고 불렀다. 본디 수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체를 성 밖으로 운반해 내던 곳으로 송장 또는 시체의 문이라는 뜻에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리웠다.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이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왔고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광희문 밖에 내다 버려졌으니 실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었다. 살아서 이 문을 들어섰던 이들은 나중에는 시체가 되어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이 문을 나와야 했다.
1396년에 지어진 광희문은 6·25 전쟁으로 문루와 성문 위 여장이 파괴되었다가 1976년 고증을 거쳐 복원되었는데, 도로를 개통하면서 원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옮겨졌다. 광희문과 함께 대표적인 시구문으로는 남한산성의 수구문이 있다.
오늘 자세하고도 명해설을 하주신 김정자안젤라님
깊은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어찌하다보니 후기가 조금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후기 내용을 좀더 간략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도록 신경쓰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 참가 회원님과 명해설 덕분에 생명의 길 따라 함께 하는 시간 행복했습니다.
4월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