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하였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말을
준엄하게 하고 행실을 준엄하게 하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실은 준엄하되 말은 부드럽게 해야 한다.”〔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말이 외부에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위언(危言)’ 두 글자가
행실 앞에 있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실이 내면에서 주력해야 하기 때문에 ‘위행(危行)’ 두 글자가 말 앞에 있다.
‘손언(遜言)’이라고 쓰지 않고 ‘언손(言遜)’이라고 썼는데 굳이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군자가 어찌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한 적이 있었겠는가. 단, 도가 없는 세상에는 때론 부드럽게 해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언’ 자를
‘손’ 자 앞에 쓴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로서 인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소인으로서 인한 자는 있지 않다.”〔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군자는 인에 뜻을 두니, 바로 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다만 인의 도리는 지극히 크지만
터럭만큼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곧바로 불인(不仁)이 된다. 이는 현자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말이며, 배우는 자에게 날로 새로워지고 극진히
공부하도록 깨우치는 말이지, 군자가 으레 불인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때문에 ‘의(矣)’ 자 아래에 ‘부(夫)’ 자를 쓴 것이다. 만약 ‘의’
자만 썼다면 오로지 단정 짓는 표현인데 ‘부’ 자를 이어 쓴 것은 더러 있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소인의 경우 곧바로 ‘야(也)’ 자를 써서
단정했다.
공자가 말하였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어리석은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할 때 안일하게 함으로써 자식의 성품을 망치니, 이보다
자애롭지 못한 경우가 없다. 못난 사람이 임금에게 충성할 때 영합하여 임금의 악을 부추기니, 이보다 심하게 임금을 해치는 경우는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정나라에서는 사명(辭命
외교문서)을 작성할 때 비침이
초고를 만들고, 세숙이 토론하며, 행인인 자우가 보충하거나 삭제하고, 동리의 자산이 윤색하였다.”〔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產潤色之〕
사명을 작성할 적에 네 사람이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니, 네 사람 모두
너그러운 도량을 지니고 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하는 인물들이다. 역시나 오늘날과 같은 속된 말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분들이니, 비록 혼연히 완성된
성인은 아니더라도 편벽되고 사사로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시골 사람이라도 이런 의리를 지닌 자가 있다면,
작은 마을에서 충신(忠信)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집안의 가장 노릇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가 자산의 인품을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였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관중의 인품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백씨의 병읍 삼백 호를 빼앗았는데,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며 평생을 마치면서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或問子產 子曰
惠人也 ○問管仲 曰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沒齒 無怨言〕
공자가 말하였다.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이 없기는 쉽다.”〔子曰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는 사람은 부유해져도 교만이 없을 수 있지만, 부자이면서 교만이 없는
사람은 가난해지면 원망이 없지는 않을 것이니,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어려운지 쉬운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에 대한 처신은
반드시 천명을 알고 도량이 큰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양을 위해 공부한 사람만이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느 것이 어려운지
쉬운지를 논할 수 있다. 소인은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가난하면 반드시 원망하고, 부유하면 반드시
교만해진다.
공자가 말하였다. “맹공작은 조씨와 위씨의 가신의 우두머리가 되기에는 충분하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子曰 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맹공작을 논평한 내용을 가지고 유추해 보면, 재능과 덕을 완벽하게 갖춘 이후에야 참된
선비가 될 수 있다.
자로가 완성된 사람을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만일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과욕(寡慾)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예(才藝)에 예악으로 문채를 낸다면 이 또한 완성된 사람이 할 수 있을 것이다.”〔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완성된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온전히 이룩한 사람이다. 사람의 도리를 온전히 하지 못하면
완성된 사람이 아니니, 살아서 먹고 숨 쉬고 활동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은 아니다. 위 네 사람이 각기 하나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없었으니, 더구나 원래부터 그중 한 가지 장점도 없는 자에 대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슬프다. 저 성인(聖人)만이 유독 완성된
사람이 아니겠는가!
“청렴이 충분히 마음을 수양할 수 있다.”라는 주석은 주자가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마음을 상실시키는 데 탐욕보다 심한 것은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진 문공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으며, 제 환공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子曰 晉文公 譎而不正 齊桓公 正而不譎〕
또 성인이 일부러 남의 장단점을 논평한 것이 아니라 모두 가르침을 위해서 한 말씀이다.
만일 성인이 평론하지 않았다면 시시비비가 불분명하여 인심이 무너져 세상을 유지하는 도리에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환공이 공자(公子) 규(糾)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은 인하지
못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으니,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관중이 죽지 않고 환공을 보좌한 일에 대해 성인(聖人 공자)은 이미 인정했고, 정자와 주자는 정론(正論)을 제시했다. 당시 천하가 오랑캐로 바뀔 형세였는데 관중이
혼란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재주가 있어 소소한 신의를 버리고 큰 공을 세웠으니 진실로 괜찮다.
그러나 만일 규(糾)가 형이고 소백(小白)이 아우였더라도 관중이 죽지 않고 큰 공을
성취했어야 했겠는가. 이는
왕척직심(枉尺直尋)의 방도이니, 아, 옳은 일이겠는가. 그런데 폐백을 바치고 신하가 되는 의리는 참으로
중대하다. 만일 관중에게 세상에 펼칠 만한 재능도 없으면서 공자 규가 군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부당하게 여겨 소홀(召忽)이 주군을 위해 죽는
광경을 태연스럽게 보고, 혼자서 환공을 따라가 구차히 살았다면, 이 또한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한갓 주인을 저버리고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
가는 사람 정도일 뿐이니, 또한 아, 옳은 일이겠는가. 이는 군자의 생사와 출처에 관련된 의리이기에 경솔히 논할 수가 없지만, 위징(魏徵) 같은
무리에게 핑곗거리가 되었다.
만일 근원을 따져 생각해 보면, 규와 소백의 사람됨을 평소에 알 수 있다. 관중이 애당초
거취를 잘 살펴서 군왕의 지위에 올라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지 않았다면 훗날의 행위에 어찌 충분한 여유가 있지 않았겠는가.
관중이 쏜 화살에
소백이 갑자기 죽어 규가 군왕에 올랐다면, 관중을 등용해서 천하를 바로잡는 정치를 실현하지 못했을 것이고, 관중은 아우를
도와 형을 살해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니, 또 무슨 본받을 점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관중은 운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
소홀의 죽음은 역시나 섬기던 주인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관중의 일에 대해
용서한다고 해서 곧장 소홀을 소소한 신의를 지키다가 죽었다고 배척해 후세의 임금을 저버리고 원수를 섬기는 화란(禍亂)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관중과 위징을 논하는 사람은 죽음과 공로의 경중을 잘 참작하여 《맹자》의
“색(色)과 예(禮)의 경중을 의리에 맞게 한다.”라는 말처럼 해야 한다.
위징의 경우 당시 이건성(李建成)과 태종(太宗)의 인물됨과 형세에 대해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모두 알 수 있었다. 위징이 만일 처신을 자중하고 때를 기다리는 도량이 있었다면 이건성의 당파에 들어가지 않고 난리를 범하지도
않다가 태종이 선양을 받고 난 이후 벼슬할 만한 시기라고 여겨 출사했다면, 완벽한 미덕이 어찌 아니겠는가. 명성과 이익에 급급하여 날마다 태자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제거하여 세력을 견고히 하도록 권하였으니, 현자라는 사람이 과연 이처럼 행동해서야 되겠는가.
이원길(李元吉 당 태종(唐太宗)의 동생)을
끌어들여 원군으로 삼았으니, 이원길이 과연 믿을 만한 자인가. 이건성이 임금이 되고 이원길이 보좌하게 되었다면, 과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었겠는가. 사직을 위한 훌륭한 신하가 과연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위징의 재능은 간쟁뿐이었다. 이건성이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잘 헤아려
알았을 것이다. 만약 이건성이 진왕(秦王
이세민)을 죽이고 천자가 되었다면, 위징은 이건성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을 것이다. 비록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임금의 덕을 보좌할 길이 전혀 없어 당나라 황실이 혼란에 빠져 망했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위징은 참으로 어떠한 사람인가. 단지
두건덕(竇建德)을 위해 원수를 갚는 자일 뿐이라는 진왕의 말과 같다. 태자 이건성을 위해 형제를
살해하도록 모의했으니, 이미 효성과 우애의 의리를 모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위징은 이세민이 형인 태자를 직접 죽이는 것을 보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이세민에게 폐백을 바치고 신하가 되었으니, 원수를 섬긴 정도만으로 평론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천자는 천명 없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어리석은 사람도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진왕
이세민에게 천명이 있다면 위징이 과연 모살(謀殺)할 수 있었겠는가. 이건성이 천명이 없다면 진왕을 죽인들 천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형제간에
서로 대립하는 상황은 처신하기 극히 어려운 형세이니, 어찌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 스스로 온전한 위치에 처하지 않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그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허황된 말을 지껄이고 제멋대로 하는 행동은 큰소리를 치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인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不怍〕”라는 두 글자로 묘사해 냈으니, 이는 성인이 통렬히 미워한 말씀이다.
자로가 임금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속이지 말고 얼굴을 대놓고 간쟁해야 한다.”〔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
속이지 않음과 얼굴을 대놓고 간쟁함은 두 가지 일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속이지 않는 진심이 있는 이후에야 얼굴을 대놓고 감히 간쟁을 할 수 있으며,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충성이 있는 이후에야 속이지 않을 수
있다. 속인다는 말은 꼭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거짓말을 해야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터럭만큼이라도 진심이 아니면 바로 속이는 것이다. 터럭만큼
스스로 속이는 행위가 일을 망치고 도리를 상실하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을 듯하지만, 터럭만큼 차이가 결국 임금을 저버리는 행태에까지
이른다.
“얼굴을 대놓고 간쟁함〔犯之〕”과
“윗사람을 범함〔犯上〕”의 ‘범(犯)’ 자는 글자가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신하가 직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임금의 벼락 같은 진노가 두렵고 죽음이나 유배를 당하는 재앙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행동이 바로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것이다. 이런 간쟁은 자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속이지 말라는 말과 대비하여 거론하므로 ‘이(而)’ 자를 붙이고
이 ‘범’ 자를 써 놓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비유하면, 정면을 바라보고 산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산꼭대기 밝은 곳에
도착하지만, 몸을 돌려 산을 등지고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자는 필시 깊은 계곡의 더럽고 낮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 공자가 말한 이 내용이
후생(後生)을 깨우치는 데에 가장 절실하다. 배우는 사람은 최초에
그칠 데를 알아 정(定)함이 있을〔知止有定〕 때에 삼가고 조심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를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하는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하는 학문을
한다.”〔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거백옥이 공자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는데 ○공자가 그와
함께 앉고서 묻기를 “부자(夫子
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부자께서는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하시지만 아직 능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심부름꾼이 나가자, 공자가 말하였다.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蘧伯玉使人於孔子 ○孔子與之坐而問焉 曰夫子何爲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 使者出 子曰 使乎使乎〕
거백옥이 보낸 심부름꾼의 경우 그가 말을 잘할 뿐만 아니라 거백옥이 평소 수신하고 공력을
쏟는 성실이 다른 사람을 감격시켰기에 심부름꾼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거백옥에게 내실이 없었다면 심부름꾼이 아무리 말을
잘하더라도 무슨 근거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거백옥이 허물을 적게 하려고 할 때, 다른 사람과 대면하면서 내가 이처럼 하고자
한다고 어찌 말하였겠는가. 그런데 심부름꾼도 이를 알고, 공자도 이를 알았다. 배우는 자는 자기 수양을 위한 학문을 행할 뿐이지, 어찌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겠는가.
1년마다 잘못을 깨달아 고치고 변화시켰기 때문에 60세에 60번을 변화하였다. 하늘이 100년의 수명을
빌려 주었다면 100번을 변화하였을 것이니, 성인에 가깝지 아니한가. 또 1년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말은 12월 30일까지 되서야 비로소 잘못을
깨달았다는 말이 아니다. 아침에 아침의 잘못을 깨닫고, 낮에 낮의 잘못을 깨달으며, 하루에 하루의 잘못을 깨닫고, 한 달에 한 달의 잘못을
깨달으며, 한마디 말에 한마디 말의 잘못을 깨닫고, 한 번 움직임에 한 번 움직임의 잘못을 깨달았다. 잘못을 깨닫자마자 바로 고치고, 고칠
적에는 전혀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1년이 지나면 바로 한 번 변화하니, 이는 공력을 쏟아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100년을 살더라도 단지 딱딱한 대통처럼 완고한 모습으로 살면서 한
번도 변화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본성이 비록
순 임금과 같더라도 끝내 시골 사람으로 일생을 마칠 뿐이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으로,
30세에 자립하였고, 70세에 이르러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고 한 것 역시 60세에 60번 변화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증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曾子曰 君子思不出其位〕
임금의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신하의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고,
사(士)와 서인(庶人)의 생각도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 한 사람으로 말하면,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이 모두 그 지위인 것이다. 각
생각이 벗어나지 않는다면 각기 올바른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온 천하 사람들이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찾을
것이니,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참으로 크도다. 이 구절을 응당 《주역》 〈이괘(履卦) 상(象)〉에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킨다.”와 《중용》에
“군자는 현재의 위치에 따라 행한다.”라는 말과 함께 살펴보고 잘 생각해야
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세 가지인데, 나는 능한 것이 없으니,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의혹하지
않고, 용맹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근심하지 않고 의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자가 이미 말하였다. 범범하게
보더라도 그 이치가 바로 그렇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은, 어진 자가 어찌하여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가 어찌하여 의혹하지
않고, 용맹한 자가 어찌하여 두려워하지 않는지를 잘 유념하여 마음으로 스스로 터득해야만 유익하다. 이것이 바로 성인을 배워 나가는 큰 공부의
과정이다.
자공(子貢)이 인물을 비교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사(賜
자공)는
어진가 보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노라.”〔子貢方人 子曰 賜也賢乎哉 夫我則不暇〕
자신을 다스림이 익숙해져 내게 간직되어 있는 것이 이미 넉넉하면 스스로 인물을 비교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다스리는 공부가 지극하지 않으면 또한 인물을 비교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인물을 비교하다 보면, 자기 수양을 위한 학문의
의미가 오히려 소홀하기 때문에 공자가 질책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였다.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무엇으로써 덕을 갚을 것인가? ○정직으로써 원한에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아야 한다.”〔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세상에 본래부터 한 가지 의론이 있으니,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말인데 이는 바로
‘향원(鄕愿)은 덕의 도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무엇으로써 은덕을 갚을 것인가?’라고 물으면, 저들은 즉시 ‘은덕으로써 은덕을 갚겠다.’라고
대답할 것이니, 그 말이 매우 후덕하여 본래 원한을 없애고자 해서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천하에 크고 작은 사물을 막론하고 모두 서로 상응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장릉(長陵)의 한 줌 흙을 취한 자를 어떻게 더 처벌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과
같다. 옥환(玉環) 하나를 훔치면 족형(族刑)에 처하고 능침을 도굴한 자도 족형에만 그친다면, 옥환 하나를 훔치는 자가 어찌 원망하지 않겠는가.
원한이 있는 자를 은덕으로써 갚고, 은덕을 베풀었던 사람에게도 은덕으로써 갚는다면 은덕을 베풀었던 사람이 원망이 없겠는가. 원망이 없게 하고자
하면서 더 깊은 원망을 초래하는 일은 이보다 심한 경우가 없다.
허행(許行)의 주장처럼 시장가격을 고르게 하려고 무명과 비단을 동일 가격으로 만든다면 도리어 큰
불공평을 초래할 것이다. 바로 의리는 마름질을 귀하게 여기고 일을 처리할 적에 사심을 용납하지 않는 이유이다.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는 일과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의미가 같으니, 실로 소인이 행하는 일이다.
또 은덕으로써 은덕을 갚을 뿐이라면 후하게 대접해야 할 대상에게 푸대접한 격이니, 이런
마음을 추론해 보면 푸대접하지 않는 데가 없다. 만약 원한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면, 온 천하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직으로써
반드시 갚아야 할 원한을 갚는다면 불선한 자는 징계되고, 당연히 갚지 않아야 할 원한을 갚지 않는다면 의리를 실천하는 자는 권장될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자공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리도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까.”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는 천리(天理)에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실 것이다.”〔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어찌하여 그리도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입니까.”라는 구절에서 ‘기(其)’ 자는
의아하게 여기는 표현으로, ‘어찌하여’의 뜻을 강조한 말이다. 만약 원망하거나 탓하는 마음이 있다면 틀림없이 알려지기를 원해 세상에 자신의
재능을 보이려고 할 것이다. 원망하거나 탓함이 없기에 하늘이나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맡기고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을 극진히 할
뿐이다.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는 천리에 통달한다.〔下學上達〕’라는 구절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일이니, 위로 천리에 통달한다면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될 것이다. 남과 합하지 않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되면 하늘이 알아줄 것이니, 하늘이 나를 알아준다면 또 무슨 원망이나 탓함이 있겠는가. 배우는 자가 이런 의미를 안다면 도(道)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묻기를 “집주(集註)에,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하고 하늘만이 홀로 알 수 있는
오묘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다음과 같이 답한다. 보통 사람은 빈궁과 영달을 하늘에 기대하고 남에게 바라기 때문에 이를
얻지 못하면 원망하거나 탓한다. 군자는 빈궁과 영달의 도리가 자기에게 달려 있으니, 하늘이 궁하게 하더라도 자신은 궁하지 않고, 남이 욕하더라도
자신은 욕되지 않는다. 하늘이 영달하게 하거나 남이 영화롭게 하는 바에 대해 나는 극진히 할 뿐이니, 무슨 원망이나 탓함이 있겠는가. 하늘의
덕이 나에게 있고 내가 스스로 나를 아는 것이 바로 하늘이 아는 것이지, 별도로 나를 알아주는 푸른 하늘이 위에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의미를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하니, 어찌 오묘하지 않겠는가.
공백료(公伯寮)가 자로를 계손(季孫)에게 참소하니, 자복경백(子服景伯)이
공자에게 아뢰기를 “부자(夫子
계손(季孫))가 진실로 공백료의 말에 의혹하고 있으니, 제 힘이
그래도 공백료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도(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命)이며 도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이니, 공백료가 그 명에 어떻게 하겠는가.”〔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가 그 명에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말을 범범하게 보면, 단지 속설에 이른바
“세상만사가 모두 이전에 정해졌다.”라는 의미로, 굳이 성인만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이 의미를 통달한다면 천하에
참소하는 자들이 끊어질 것이니, 왜냐하면 도가 행해지거나 행해지지 않거나, 사람이 빈궁하거나 영달하거나 또는 죽거나 살거나 모두 그 사람이
원래부터 정해져 있어 다른 사람들이 관여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군자를 시기하고 증오하지만, 빈궁과 영달 및 생사는 본래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다.
만일 그 운명이 영달하고 생존할 운명이라면, 내가 비록 참소하더라도 참소가 먹히지 않을 것이고, 만일 군자의 명이 빈궁하고 죽을 운명이라면 내가
참소하지 않더라도 군자가 자신의 명을 스스로 받을 것이다. 내가 어찌 일시적인 시기심을 참지 못해 부질없이 사람을 해치고 어진 이를 참소한
인물이라는 오명을 취하겠는가.
무릇 참소하는 사람은 계책이 먹혀들면 스스로 기뻐하며 내가 저 사람을 곤궁하게 하고 죽게
할 수 있다고 여겨 무척 즐거워한다. 하지만 참소하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절로 곤궁하게 되거나 죽게 되고, 그 참소하는 자들의 부귀도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이지, 저 사람을 꺾어서 요행히 얻은 것이 아님을 절대로 모른다. 그렇다면 주자가 도를 행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진가(陳賈)와 호굉(胡紘) 같은 무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가와 호굉이 없었더라도 역시나
주자는 도를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들 같은 부류는 이를 모르고 참소하니, 주자의 도덕이 이를 통해 더욱 높아지고 명성이 더욱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진가의 무리가 얻은 것이라곤 소인이라는 오명뿐이다. 소인이라는 이름을 저들 역시 싫어하지만, 시기심을 참지 못해 참소하는 것을 꿀처럼
취하려다가 스스로 천 길 깊이의 더러운 구덩이 속에 빠지면서 증오하는 상대방을
삼청(三淸)의 해와 달 위로 밀어주는 꼴이니, 진실로 애처롭고 도리어 가소롭다.
“그 실제는 공백료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其實寮無如之何〕”라고 하니, 정말
이것이 공자의 뜻이다.
그실은 寮ㅣ 엇 욤 업슨거시니라
만고에 참소하는 사람이 빚어내는 화(禍)는 끝이 없으니, 모두 천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남곤(南袞)에 관한 일을 가지고 말하면, 신하 중 지위가 제일 높고 부귀를 누리고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을 남곤의 운명은
남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덕분이지, 남곤이 흉악한 심보로 역모를 꾸며 요행히 이룬 것이 아니다.
조 문정공(趙文正公 조광조(趙光祖))의
지위는 3품 정도에 그치고 사화(士禍)를 당하여 일찍 죽었으니, 그 역시 태어날 때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이지, 남곤이 사특한 계책과 간사한
무고를 꾸미고 계책을 펼친 결과가 아니다. 더구나 하ㆍ은ㆍ주 삼대(三代)의 훌륭한 다스림이 동방 우리나라에서 다시 실현되지 못한 이유도 하늘의
운수가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흉악한 남곤이 이런 의미를 알았다면 흉악하고 시기 어린 감정을 참고, 마음 편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천천히
걸어 황각(黃閣 정승이 집무하는 관서)에 올라 만고에 흉악한 인물이라는 오명을 면했을 것이니,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설령 조 문정공이 죽지 않고 좋은 관직을 차지했더라도 정승 남곤에게 무슨 방해가 되었겠는가. 저들은
본래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또한 성현의 글을 읽었으며, 한번 배불리 밥 먹는 것도 운수가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단지 시기심 때문에
타고난 총명을 가리어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인재를 참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방몽(逄蒙)은 스승 예(羿)가 자신보다 활쏘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활을 쏘아 살해하였고, 동문수학했던 방연(龐涓)은 손빈(孫臏)이 자기보다 낫다고 여겨 발을 자르고 배척하였으니, 이는 자신만이
제일 높음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잠시도 마음속에서 잊지 못한다. 저들도 죽은 후에 누가 어질고 누가 간사했는지 하는
명성의 좋고 나쁨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단지 사욕으로 인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크고 좋은 저택, 진수성찬, 미인, 하인, 옥과 비단, 금은을 기필코
빨리 소유하고 싶어서 절로 오는 것을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한 경우이다. 이 때문에 만고에 남곤 같은 부류들이 지위가 영의정에 오르면 자기 머리
위에 임금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권세를 잡으면 시해했던 것이다. 부귀가 백승(百乘)이 되면 천승(千乘)에 이르지 못함을 참지 못해 늘 천승을
빼앗기를 도모한다. 남곤이 다행히도 왕망(王莽)이나 동탁(董卓) 같은 자가 되지 않은 것 역시 주어진 운명에 따른 것이다. 그 마음에는
왕돈(王敦)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일컫지 않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아, 진실로 운명에 어두우면 노예조차도 좋은 노예가 될 수 없다. 글을 읽는 사람이
성인을 목표로 독실하게 배우지는 못해도 만일 ‘명’ 한 글자를 착실히 생각해서 터득한다면, 그나마 마을 안에서 좋은 사람 정도는 될 수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子曰 作者七人矣〕
다른 말없이 곧바로 “일어나 은거한 자가 일곱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차마 세상을
잊지 못한 뜻이 말 밖에 넘쳐 나 천고에 안타까워하는 뜻이 있다.
자로가 석문(石門)에서 유숙하였는데,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묻기를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하자 자로가 “공씨(孔氏)에게서 왔소.”라고 대답하니 그는 “바로 불가한 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라고
하였다.〔子路宿於石門 晨門曰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말은 벌써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물어본 것이니, 그 기상이 천년
후에도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바로 불가능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라는 구절에서 ‘시(是)’ 자는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뜻이
있다. 참다운 고사(高士)로다.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애석하게 여긴다. 만고토록 ‘신문(晨門)’이라고만 칭하게 된 것은 자기가 만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바구니를 멘 노인과 삼태기를 멘 은둔자가 모두 그러하다. 성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지만, 속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어찌
아득한 정도뿐이겠는가.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렸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씨의 문 앞을 지나가는 자가 듣고 말하였다.
“마음이 천하에 있구나. 경쇠를 두들김이여!”〔子擊磬於衛 有荷簣而過孔氏之門者 曰有心哉 擊磬乎〕
당연히 ‘삼태기를 메는 자가 집을 지나가는〔荷簣者過門〕’이라고 써야 하는데, 굳이
‘공씨의 문 앞을 지나간다.’라고 썼으니, 기록한 자가 삼태기를 메고 가는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잘 알았던 것이다. 읽는 자는 마땅히 성인이
경쇠를 두드리는 그때의 심회와 기상을 잘 생각해야 한다. 그 맑고 시원함은
오동나무에 비친 깨끗한 달빛이고, 처량하고 측은함은
갈대의 흰 이슬이 서리가 되는 모습이다.
조금 있다가 말하였다. “비루하여라, 너무도
굳어 있구나!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과감하구나!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旣而曰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당연히 ‘사이의(斯已矣)’라고 하게 되는데, 굳이 ‘이이의(而已矣)’라고 한 것은 매우
심하게 여긴 표현이다. 사람의 처세가 매우 어렵다. 만약 성인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삼태기를 멘 자가 되더라도 괜찮다. 이 도리를
터득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먼지와 가시덤불 같은 세상 속에서 묻힌 사람과 비교한다면, 어찌 쾌활한 정도뿐이겠는가. 성인은
의롭지 못한 부귀를 마치 뜬구름같이 여겼으니, 이 은자들도 그러한 마음은
동일하다.
자장이 말하였다. “《서경》에 ‘고종이 양음(諒陰
천자가 거상(居喪)하는
곳)에서 삼 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라고 하니, 무엇을 말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하필 고종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다
그러하였으니, 군주가 죽으면 백관들은 자기의 직책을 총괄하여 총재에게 삼 년 동안 명령을 들었다.”〔子張曰 書云高宗諒陰三年不言 何謂也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
총재가 이윤(伊尹)이나 주공(周公) 같은 인물이 아니라면, 백관을 자신에게 총괄시켜 삼
년 동안 명령을 따르게 하지 못할 것이니, 후세에 임금이 안락에 빠져 상기(喪期)를 줄이는 정도뿐만이 아니다. 상중에 삼 년 동안 말하지 않는
예(禮)는 절로 행할 수가 없다. 다만 그 예법에는 본디 참작할 만한 점이 있다.
역월(易月)의 제도 같은 경우는 매우 형편없다. 후세에 난리와 역적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천리를 저버린
상기를 줄이는 일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위에서 예(禮)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子曰
上好禮則民易使也〕
윗사람이 좋아하면 백성들은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백성이 예에 흥기되기 때문에 백성의
뜻이 안정되는 것이다.
원양(原壤)이 걸터앉아서 공자를 기다리니, 공자가 말하기를 “어려서는 공손하지 못하고, 장성해서는 칭찬할
만한 일이 없으며,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바로 적(賊)이다.”라고 하고는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툭툭 쳤다.〔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예법의 테두리에 벗어나 스스로 방탕하게 살았다면 어려서 공손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태로 늙어 갔으니, 무슨 칭찬할 일이 있겠는가. 삶이란 늙어서도 전혀 칭찬할 점이 없는 것보다 슬픈 일이 없으니, 남을 해치는 적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속설의 이른바 “쌀만 축내는 도적”이다. ‘적’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잘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적(賊)일 뿐이다.”라는 주석은 시원스러운 표현이며 몹시 싫어하는
의미이다.
궐당(闕黨)의 동자가 명을 전달하자, 혹자가 묻기를 “학문이 진전된 자입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그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 선생과 나란히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으니, 학문에 진전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빨리 이루고자 하는
자이다.”〔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竝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
어찌 궐당의 동자만이 이런 병통이 있겠는가. 빨리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궐당의
동자와 같은 꼴이니, 크게 진보하고 날로 새로워질 리가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