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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품다와 탕사(모든 차의 소개) 국제차감별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보산
차(茶,Tea:Camellia Sinensis)의 원류(源流)를 찾아(中國茶를 採根하여) 1-4.
차는 잘 알려져 있듯이 발효와 관련하여 분류한다면(참고로 색상으로 분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녹차와 같은 '비 발효차', 홍차와 같은 산화 차 혹은 '반 발효차'인 우롱차 그리고 보이차와 같은 '완전 발효차(후 발효차)'로 구분된다.
'보이차'의 겨우는 찻잎을 쪄서 눌러 짜고 남은 것을 공기 중에 매달아 완전발효를 시킨 차다. 보이차는 뜨겁게 마시기 때문에 약리효과가 상승하여 속이 편안해지는 것이 보이차의 특징인데 이것을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물질인 '탄닌(tanin)' 성분이 발효과정을 통하여 완전히 분해되었기 때문이다. 떫은맛의 원인이 되는 '탄닌(tanin)' 성분을 섭취하면 땡감을 먹은 것처럼 속이 불편하게 된다. 녹차에는 이 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약하여 탄닌의 영향을 일반 사람보다 크게 받는 사람은 속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홍차(Black tea)'는 녹차와 달리 '탄닌(tanin)' 성분을 '산화'시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속이 편안하다. 홍차는 잎을 하룻밤 말려서 25℃ 정도에서 3시간 정도 발효시키면 홍갈색이 되고 방향을 내게 되며 발효과정에서 산화효소에 의해 비타민 C는 소실되고 탄닌의 일부는 불용성으로 되어 떫은맛이 줄어든다. 홍차와 같은 산화차라 하여도 체내의 유해 독소 성분을 배출하는 기능이 녹차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거의 흡사하며, 다만 유해 산소를 줄이는 기능이 녹차에 비해 떨어질 뿐이다. 기운으로 보아 세계적인 명차는 지리산 야생 녹차와 인도 북부 서 벵갈주의 히말라야 산록 해발 3,000m 고지에서 생산되는 다질링(Darjeeling)차를 들 수 있다.
인체에 도움이 되고 약이 되는 희소한 물질성분은 차나무가 자연환경의 자극을 받으면서 이를 이겨내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합성되고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차를 얻으려면 차나무도 그러한 시련과 역경을 거친 것이 좋다. 이것이 자연적으로는 지대가 높은 곳의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자라는 차나무에 해당된다. 평지나 온실에서 비료를 먹고 자란 차나무는 산지에 비해 일교차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운도 약하고 물질성분도 약리 작용이 있는 희귀 성분들 보다는 단백질이나 아미노산 류가 많아 비린 맛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같은 차(茶)를 놓고 비교한다면 '고산(高山) 차'가 좋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롱차(Oolong tea)는 잎의 발효를 중간정도 한 후 볶아서 건조한 것이며, 특유의 풍미가 있고 붉은 색을 띤 황금색이다. 꽃잎 차는 발효시킨 홍차나 우롱차에 향기가 강한 꽃봉오리를 층층이 놓고 가열한 것으로 꽃의 향기가 좋으며 대만의 재스민차가 여기에 속한다.
'녹차(Green tea)'는 기운이 다소 차서 몸을 활동적이게 만들지는 않으나 크게 염려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탄닌(tanin)' 성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효과이다. 잎을 전혀 발효시키지 않고 그대로 증기로 쪄서 산화효소를 파괴시킨 후 비벼서 말린 것으로 독특한 향미를 지닌다. 녹차의 향기는 5℃ 정도에 냉장하면 오래 간다. 녹차의 부작용을 든다면 '카테킨이 지나치게 흡수되어 탈지작용이 일어나면서 심장판막이 약해지는 것'을 들 수 있으나 이것은 하루에 30잔씩 60일 이상 마실 정도로 과다하게 섭취 할 경우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야기이다.
또한 '혹차(완전 발효차)'는 인체를 사상 의학에 따라 분류하였을 때 차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탄닌(tanin)' 성분에서 오는 효과를 지나치게 해석하여 오류를 범한 경우이다. 임상 결과에서 흑차는 가장 좋은 품평을 받고 있는데 실제로 매년 중국 계림에서 세계 차 품평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흑차류의 '보이차는 차 중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옮겨 심은 차종(茶種), 재배 방식, 차의 가공 방식, 찻잎을 음료로 마시는 법 등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중국에서 전파되어 나갔기 때문에 차의 역사와 발전 및 차 문화 유형 등을 이해하려면 중국차(中國茶)를 채근(採根)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본서는 현대인들이 건강에 관심이 날로 증대되어 차 소비량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 중국차(中國茶)의 원류(源流)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정도인 내용이지만 꾸준히 마시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차 문화 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차의 내역
인류가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어린 찻잎을 먹어보아 해가 없고, 특별한 효능이 있으므로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다가 저장법이 발달하여 기호음료로 쓰였을 것이므로(정영선,「한국다문화」) 음료 차의 유래는 농경사회의 식생활 문화와 더불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는 신농(紳農)시기 발견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당. 송시기에 흥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알코올이 포함되지 않은 3대 음료(차, 커피, 코코아) 중의 하나이다.
“본초(本草) 혹은 약초를 다루는 책들에서 차는 청량제, 건위제, 흥분제, 자극제, 완하제, 수렴제, 이뇨제, 월경 촉진제로 기술되어 있으며, 다량을 집중적으로 복용하면 토제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장기간 다량을 복용하면 사람은 마르고, 빈혈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차를 약간 탄 물로 안질과 짓무른(살이 상하여 문드러진) 상처를 씻으면 좋다. 차씨(茶子)는 감기, 호흡 곤란 및 머리가 울릴 때 좋다.”고 한다.
차를 마시는 풍속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데, 이미 50여개 국가가 차를 심고 있다. 차의 근본을 따져보면 최초에 마셨던 차, 심었던 차종(茶種) 및 차 마시는 법, 재배 기술, 가공 방법, 차에 관한 풍습 등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중국에서 전파되어 갔다. 세계 각국의 차에 유관된 모든 것은 중국과 연관되는데 이는 중국을 “차의 나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차는 중화 민족의 자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식사 후 커피를 마시거나 혹은 그냥 냉수를 마신다. 물론 예전에는 '숭늉(밥을 푸고 난 솥에 데운 물. 숙랭)을 마셨다. 요즘에는 녹차(綠茶)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녹차를 마시는 가정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처럼 고기가 주식(主食)인 경우는 커피를 마셔도 상관없지만, 우리 같이 채식(菜食)이 위주인 경우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위벽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장기간 커피를 음용(飮用)하는 경우는 위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차(中國茶)를 보통 때도 그냥 마시며, 특히 식사 후에는 반드시 중국차를 마신다. 중국에서 여행해 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기차를 타도 승무원들이 커다란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들고 기차간을 돌아다닌다. 승객들은 제각기 보온병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찻잎을 넣어놓고 뜨거운 물을 받아 넣은 후 그걸 조금씩 따라 마신다. 이렇게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차(茶)는 필요 불가결한 음료가 되어 버렸다.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開門七件事, 柴米油鹽醬醋茶”
(아침에 일어나 방)문만 열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일곱까지 물건이 있다. 앞의 여섯 가지는 모두 요리에 관계된 것이고, 마지막이 바로 차(茶)이다. 하루 세끼 식사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차(茶)를 꼽고 있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A. 차나무의 기원
지구상의 차나무는 수 천 만년의 역사가 있지만 차가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이용되기는 사오천년전의 일이였다.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일찍 차나무를 발견하고 이용한 나라이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는 “남방의 가목”이라고 (당조-「茶經」) 부르고 있다. 차는 한번 심어서 여러 해 동안 수확할 수 있는 잎을 이용하는 일종 ‘목본식물’로써 야생 교목형으로 차나무는 높이가 15-30米나 되며, 뿌리 윗부분은 둘레가 1.5m 이상이며, 수명은 수 백 년 혹은 천년 이상이나 된다.
차나무의 기원문제에 대해 고증하기는 힘들지만 역사상의 여러 흔적과 사료는 차목(茶樹)의 기원 고증에 적지 않은 증거물을 제공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적인 연구 속에서 논증을 얻게 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운남, 귀주, 사천 등 성의 큰 차나무는 200여 곳 있고, 어떤 지역은 고(古)차나무가 삼림을 이루어 그 면적이 수천((數千) 나무가 된다.
차(茶)는 중국(기원설에 참고하기 바란다.)에서 서양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양 일대로도 퍼져나갔다.
1) 서양으로의 전파
유럽에 중국의 차(茶)가 알려진 효시는 1559년 베네치아의 저술가인 G.라무시 오의 「항해와 여행:Navigationi e Viaggi」에 의해서였다. 1609년 부터 세계의 해상제패권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로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넘어가자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동양의 차를 유럽 각국에 운반하는 한편, 동남아시아에서의 차 재배에도 손을 대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10년에는 일본차를 실어갔고 1,637년에는 중국차를 실어 갔고,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독일·프랑스·영국 등지에도 전파시켰다. 프랑스에는 1648년, 독일에는 1635년, 영국에는 30년대 중반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차가 전파된 후 영국은 홍차문화의 발상지가 되었고, 으뜸가는 차의 소비국이 되었다.
태평양에서 '포르투칼'을 물리친 '네덜란드 해군'의 성공으로, 유럽에서의 아시아 지역과의 무역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차는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유행하게 되었는데 고가의 가격으로 인해 일부 부유층만의 이용으로 한정 되었었다. 점차 차의 수입량이 늘고 가격이 인하되면서 일반인에게도 판매되기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생강이나 설탕과 같은 진기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약국에서만 판매를 하다가 1675년 네덜란드 전역 일반 식품상점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차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의사들과 대학 당국과의 이른바 'tea heretics'라 불리는 차의 유, 무해론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1635년부터 대략 1657년까지 지속되었지만 일반인들은 이러한 논쟁과 무관하게 그들의 새로운 음료로써 차를 즐겨 마셨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차의 소비에 있어 유럽의 선두가 되었다.
러시아에는 명나라에서 돌아온 여행가인 I. 메트로프와 B. 얄리셰프에 의하여 중국의 차가 알려졌다. 그 후 중국차는 청나라 태조의 사신에 의하여 1,618년 모스크바에 들어갔고 러시아는 중국과 ‘네르친스크조약(1689)’과 ‘카흐타조약(1727)’을 체결하고 낙타로 중국차를 수입하여 1847년에 그루지야에서 차 재배에 성공하였다.
미국에는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이민이 '뉴암스테르담' 지금의 에는' 보스턴'에서도 차가 판매되었으나 영국은 ‘7년 전쟁(1756∼63)’후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주적인 움직임에 대하여 탄압적인 법령을 시행하였다.
영국은 프랑스와 '식민지전쟁'으로 소비된 전쟁으로 '뉴욕'에 이주 하면서 차가 전파되었다. 1,690년경 비용을 식민지인들로 하여금 분담 보상시키는 시책으로 식민지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차 전매권을 인정하는 법령을 시행 하는데 이에 반발한 ‘보스턴 다회(The Boston Tea Party)’회원들은 인디언으로 분장하고 1773년 12월 16일 밤, 정박 중인 3척의 영국 상선에 올라가서 차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 사건이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
2) 동양으로 전파
중국차는 당나라 때부터 주변국가로 전파되었다. 이조의 「당국사보」에 의하면 티베트에서는 '찬보'왕 때(781)에 당나라의 수주차· 서주차· 고저차 등을 마시고 있었다. 당나라의 숙종과 대종을 도와서 도읍을 회복한 후에도 다마무역에 의하여 차가 전파되었고, 몽골에는 13세기에 차가 전파되었다.
서부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이란·터키에는 19세기에 러시아의 다관인 '사모바르(samovar)'에 의한 ‘음다 풍습’이 전파되었다. 아라비아의 무역상은 9세기에 중국차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베드윈족은 독특한 ‘음다 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시리아와 레바논에서는 1930년경에 영국식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차 재배는 유럽인의 식민지 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다업은 1,823년 일본에 살던 P.F. 시볼드로 하여금 일본의 차 씨를 수입하게 하여 블루메가자바의 식물원에 심은 데서 비롯된다.
인도에는 바라문교의 「베다경전」에 차가 적혀 있고, 인더스 골짜기에서는 BC. 300-200년 경 부터 마셔 왔다는 마야차가 전해온다. 그렇지만 인도가 세계 최대의 차 생산국으로 부상한 것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R. 브루스 형제가 1823년에 아삼차를 발견한 데서 비롯되었다.
3) 한국으로의 전래와 발전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으로 들어온 때는 A.D 48년경 신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옥'이 인도에서 처음으로 차 종자를 가져와 심었다는 설이 있고, 신라 '흥덕'왕 때 대렴이 왕명으로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다가 심었다는 설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차에 관한 자료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불교의 성행과 더불어 차도 같이 보편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고려 중엽에 와서는 전국적으로 차에 관한 것을 전반적으로 관할하는 ‘다소’ 21개소라는 것이 있었다는 역사적 문헌으로 볼 때 이때 차가 전국적으로 보편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 왕조에서 국가 공신들에게 주는 하사품에 차도 있었다는 역사 문헌이 발견??됨으로써 그 당시 차는 일반 백성들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조정에서도 중시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점차 자리를 잃어가자 불교와 같이 성행했던 차 문화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하지만 궁중이나 사대부들은 여전히 차를 즐겼고, 그리고 중국 사신들을 위하는 다례는 여전히 행하여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이후 쇠퇴하던 차 문화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보성, 광주, 나주 등지를 중심으로 차 재배를 시작하여 다시금 전성기를 맞는가 싶었지만 그 당시 보급 되어진 커피의 영향으로 차는 다시금 일반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차 향기에 반해 버린 사람들과 그리고 차가 건강에 여러 가지로 좋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짐과 동시에 현대인들의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감에 따라 근래에는 차 소비가 다시금 상승세에 있다 . 우리나라는 차나무가 성장하는 온도의 차이에 의해 중국처럼 다양한 차나무가 재배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다.
B. 차나무(茶樹)의 원산지
식물분류학에 의하면 그 근원을 알아 볼 수 있다. 먼저 차(茶)나무의 ‘행계록(辛系綠)’을 찾아보면 차나무(茶樹)는 피자식물로써 중생대 초기에 발생하였는데 식물학자들이 분석한 것에 의하면 차나무(茶樹)의 기원은 지금까지 6,000만년~7,000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대량의 역사 자료와 근대 조사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중국이 차나무의 원산지임이 틀림이 없으며, 중국의 서남지구, 운남, 귀주, 사천 등은 모두 차나무 원산지 중심지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야생 대차나무의 존재 여부는 차나무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야생 차나무를 발견한 지방이 전부 차나무의 원산지인 것은 아니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의 두개 문명국가로써 두 나라에는 모두 야생 큰 차나무(大茶樹)가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인이 차를 심고 차를 마실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인도에 차나무(茶樹)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기에 중국에서는 이미 발견하여 이용한지가 수 천 년이 되었다.
C. 현재 차 분포지역
중국차는 북위 18°-37°, 동경 94°-122°사이 광활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즉, 절강, 호남, 안휘, 사천, 복건, 운남, 호북, 광동, 광서, 귀주, 강소, 강서, 섬서, 하남, 대만, 산동, 서장(티백), 감숙, 해남 등 19개 성 자치구에 천 여 개 이상 시와 현에 분포되어 있으며, 6개 기후대 즉, 중열대, 열대변두리, 남아세아열대, 중아세아열대, 북아세아열대와 난온대 등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 지역의 토양, 수열, 식물 종류 등은 선명한 차이가 있다.
수직 분포도를 보면 제일 높게는 해발 2,600m 고지에도 있으며, 제일 낮게는 해발 몇 십 미터 혹은 몇 백 미터에도 있는데 지역차이는 차나무(茶樹)의 성장발육과 찻잎 생산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D. 현대 찻잎 생산과 발전
중국인은 약 40여 년 동안 적극적으로 대량의 차원을 개량하여 전체 현지에 맞게 차원을 개량하고, 동시에 재배 면적을 부단히 확대하였다. 현재 19개 차(茶) 생산지역 중에서 절강, 호남의 재배 면적만 이미 200만 그루를 초과했으며, 안휘, 사천, 복건, 운남, 호북, 강서 6개성의 재배면적도 150만 그루 이상이다.
절강성 찻잎의 연 생산량은 10만t이며, 호남, 사천, 복건, 안휘도 5만t을 초과한다. 전국 천??여개의 차(茶)산지 중 현, 성 중에서도 500-2,500t 되는 현, 성이 160여개이다. 년간 산량이 2,500t 이상인 현, 성이 20여개이다. 동시에 대량 생산 규모를 갖고 있는 공장과 찻잎 생산 수출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중국 찻잎 생산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이 시기 중국 찻잎 생산의 발전은 대체적으로 두개 단계를 거쳤다.
제1단계로 1950년-1970년 이 20년은 거의 개간, 복구, 발전시키며 재배면적을 확대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이 시기 차원의 면적은 매년 평균 27.3%씩 증가되었는데 찻잎 산량은 매년 평균 5.9%씩 증가되었다.
제2단계는 1970년-1988년이며, 이 단계에 면적과 산량은 평균 매년 8.3%와 12.4%씩 증가되었다. 이 시기는 차원 구조를 개선하고 차원의 단위 산량을 높이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차원의 총 면적이 거의 온정적이었으며, 채집 면적으로 차원의 평균 산량을 계산하면 1980년에 23.4kg인데 1988년에는 45.5kg이었다. 평균 94.4% 증가되었다.
첫째, 근본적으로 찻잎의 생산기지를 개혁하였으며, 차원의 구조를 개선하였다.
1950년대 초기 차원들은 대부부분 황무지 상태였으며, 300여 그루 밖에 안 되는 차원도 여기 저기 널려져 있고, 나무들이 늙고 희소하고, 80% 좌우의 차원은 2모작(양식과 차)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 근거하여 전국의 찻잎 재배 자와 차 농들은 이후로 황무지 상태의 차원을 200여만 그루를 개간하였으며, 저산 차원 300여만 그루를 개간하여, 넓은 면적에 집중적으로 차를 재배하였다.
이와 동시에 3,300여개의 대형 차 공장을 건설하였으며, 500여개의 차 생산기지와 28개의 찻잎 수출입 생산 체계를 갖추었다. 차업에 대한 투자는 차의 면모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현재 넓고, 크고 집중된 새로운 차구(茶區)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1988년 전국 차 재배지의 매 그루 단위 채집 량은 1949년보다 2배 이상 증가되었다.
그 중에서도 강소, 절강, 호남, 광동, 광서, 대만 등 지역에서는 매 그루 평균 산량은 이미 50kg을 초과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평균 산량이 150kg인 차원이 약 70만 그루, 250kg인 차원이 약 9만 그루, 400-500kg인 차원이 약 만 그루나 된다. 차원의 경영관리는 전문화, 집약화, 규범화로 발전하고 있다.
두 번째, 기계로써 수공을 대치함으로써 찻잎 가공 과정에서의 기계화를 실현하였다.
1950년대 찻잎 가공은 전통적인 수가공이 위주였는데 현재 '대종홍(大宗紅)'과 '녹차'는 이미 기계화 제작을 실현하였다.
주차(珠茶)의 건조 기사용, 용정차(롱징차) 정형기, 우화차의 분말기 등의 제작과 사용, 동(同)종 차 류의 가공 등은 이미 점차적으로 기계화를 실현하였다. 1988년까지 전국 찻잎 생산과 제작에서 기계화 정도는 이미 70% 좌우된다. 차원 작업 면에서의 연구, 모방 제작을 통하여 찻잎의 채집, 차나무 깎는 것, 풀 뽑는 것, 씨와 약을 뿌리는 것, 관개(灌漑) 같은 기계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차나무의 우량 품종 선택과 재배, 검증, 번식, 광범위 재배를 가속화 하였으며, 부단히 그 재배 면적을 확대하였다. 40년 동안 우량 품종의 수집, 선택을 한 결과 약 650개 정도의 우량 품종을 보존하고 있다.
네번째, 찻잎의 품종을 다양화 하여 상품 범위를 넓혔다.
40년 동안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면에서 진전을 가져왔다. '홍비차'의 연구 제작은 역사적으로 홍비차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되었다. 홍비차는 무(無)로부터 유(有)로, 소(少)로부터 다(多)로 이루었으며, 1988년에는 10만t에 도달하여 찻잎의 수출량을 증가시켰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홍차의 수출량이 녹차를 초과하였다. 또한 명차, 특이한 차의 생산을 복구 발전시켜 현재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것만 해도 수백 종 이상이다. 찻잎의 상품 형식을 변화시켰다.
찻잎 시장에는 전통적인 고체 형태의 차와 긴압차(緊壓茶:압축시킨 차) 외에 차, 속용차(速溶茶), 농체차(濃體茶), 차 음료 및 각종 차 제품이 출시되었다. 단순한 찻잎 상품에도 향을 가해서 향내 나는 차, 조미료 등을 가한 차 및 한약 보건차, 약용차 등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런 변화는 시대의 생활과 긴밀히 결합되어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으며, 찻잎의 상품 범위로 부단히 확대하였다.
E. 차의 기원과 전화
1) 차 학명과 종류
차(茶)는 기호 음료류의 식물로서 마시는 차의 발상지가 중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가지지 않는다. 그 넓은 중국 안에서 어느 곳에, 누가, 언제부터 야생식물에서 재배식물(작물)로 이용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문제는 민족학이나 역사학의 분야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지만 흥미 있는 문제이다.
일본의 차(茶) 재배 역사도 매우 오래되어 1191년 겐큐(建2久년 )에 이사이(榮西)선사가 중국에서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사가켄(佐賀縣)의 세부리산(背振山)에 심은 것이 재배의 시작이었다. 오늘날에는 재배 범위도 넓어져서 북쪽에는 아끼타켄(秋田縣) 히야마(檜山)에서부터 남쪽은 오끼나와켄의 여러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차는 예로부터 잘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학적 연구는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차(Camellia sinensis)는 '동백나무과의 식물'이지만 그 속명에 대해서는 '차나무속'과 '동백나무속'의 두 가지 학설이 있으며, 식물학자들 간에도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어 혼란을 겪어 왔다. 차나무 속으로 분류하는 학자는 차나무과(茶─科 Theaceae)에 속하는 상록 소교목으로 약 키가 10m까지 자라지만 재배하기 쉽게 가지를 치기 때문에 보통 1m 정도 자란다. 많은 가지가 나온다. 타원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끝과 기부는 모두 뾰족하다. 꽃은 10~11월경 잎겨드랑이 또는 가지 끝에 1~3송이씩 흰색 또는 연한 분홍색으로 핀다. 길이가 1~2cm인 꽃받침 잎은 5장이며, 끝이 뒤로 젖혀진 꽃잎은 6~8장이다. 수술은 많으며, 아래쪽이 붙어 있다. 씨방은 3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열매는 둥글고 모가 진 삭과(果)로 익는데, 다음해 꽃이 피기 바로 전에 익기 때문에 꽃과 열매를 같은 시기에 볼 수 있다. 열매가 익으면 터져서 갈색의 단단한 씨가 빠져 나온다. 차나무 꽃은 집산화서(集散花序)로써 1-3개를 가지고 있으며, 꽃받침은 5개로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러나 동백나무의 꽃은 꽃자루가 없으며 한 개씩 정생(頂生) 또는 액생(腋生; 식물의 잎겨드랑이에서 싹이 나거나 꽃이 핌)하며, 꽃받침은 나선형으로 중복되어 탈락한다. 이러한 차이가 차를 동백나무와 같은 속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백나무 속 가운데에서도 희산다화(姬山茶花:Camellia sasanqua)는 옆 액에서 꽃이 2-3개 나오며, 꽃받침이 오래 남아 있다.
홍콩에 자생 동백나무는 꽃이 1개씩 피는데 꽃받침은 나선상으로 붙어있으며, 오랫동안 남아있다. 또한 '이엽산다화(二葉山茶花)'는 꽃이 가지의 끝에 2개씩 핀다. 그러므로 차와 동백나무의 속명을 구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높아져서 최근 들어 차나무도 동백나무와 같은 속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차(茶)를 분류학적으로 나누면 온대지방의 소엽종(중국종 : var. sinensis)과 열대지역의 대엽종(앗삼종 : var. assamica)의 두 변종으로 대별한다. 그러나 그 중간형도 많이 있으며, 잎의 형태와 크기, 또는 나무형태나 형질변이가 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 학명 하나를 가지고도 분류학상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서 분류학상의 종, 변종, 품종, 동의(同義)등을 포함해서 차나무의 학명은 백여 종에 달하고 있다. 단 한 종의 식물에 대해 세계의 많은 식물학자들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학명을 붙인 것을 볼 때 차나무가 얼마나 많은 잡다한 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용 면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주목해온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나무는 수십 미터의 교목이 있는가 하면 30cm 밖에 안 되는 관목이 있고, 찻잎의 길이도 25cm의 대엽종이 있는가 하면 3cm밖에 안 되는 소엽종도 있다.
차나무의 품종에 대하여 혼란 상태에 있던 차나무 학명을 최근 정리한 사람은 인도에서 차나무 연구를 해온 영국의 식물학자 Watt(1907년)이다. 그는 차를 1종 4변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그 분류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Cohen Stuart는 Watt의 분류법을 변경하여 역시 4개의 변종으로 분류했다(1919년). 그 기록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중국 대엽종(Var, macrophylla) 또는 운남 대엽종 : 중국대엽종은 중국의 호북성(湖北省), 사천성(四川省), 운남성(雲南省) 지방에서 주로 자생과 재배되며, 잎은 약간 둥글고 커서, 길이가 13∼15cm(엽장)이며 넓이가 5∼6.5cm정도로 아주 크고, 나무의 높이(수고)가 5∼32m 정도까지 자란다. 교목(喬木, 큰키나무)으로 엽맥(측맥; 줄기))은 8∼9쌍이고, 옆 선단(先端; 앞쪽의 끝)은 끝이 뾰족하지 않다.
B) 중국 소엽종(Var. Bohea) : 중국 남부에서 동부를 거쳐 한국, 타이완, 일본에까지 분포하고 있고, 많이 재배되는데 주로 녹차(綠茶)용으로 이용된다. 여러 개의 줄기로 된 떨기나무(multistem : 관목)이며, 크기가 2∼3m 밖에 안 되어 관리하기가 편하고, 품종을 개량하여 다량생산을 할 수 있는 수종이다. 잎은 작고 길이는 4-5cm의 엽신(葉身; 잎사귀를 이루는 몸통 부분(部分)에 불과하며, 단단하고 짙은 녹색이다. 잎맥과 잎 살로 이루어짐)은 단단한 혁질(革質; 가죽의 본바탕. 가죽처럼 질긴 성질)로, 선단(先端; 앞쪽의 끝)은 뾰족하지 않다. 6-8대의 측맥(잎줄기)이 있다. 겨울철 추위에도 강한 편이라 품종을 개발하여 다량 생산할 수 있는 수종이다. 재배할 때는 수익성 때문에 줄기와 가지를 잘라 1m정도로 키운다.
C) 인도 앗삼종(Var, Assamica) : 옆은 매우 크며, 높이가 10~20m까지 자라며, 줄기가 하나인 큰키나무인 교목(喬木)과 여러 가지 변종이 있다. 잎은 넓어서 22∼30cm 정도이며, 질은 엷고 부드러우며, 잎 색은 약간 연한 녹색이며, 잎줄기(측맥; 잎줄기))는 12∼16쌍이다. 인도의 아셈(Assam), 매니푸르(Maipur), 카차르(Cachar) 지방에서 주로 생육되며, 홍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된다.
D) 샨종(Shan종; 버어산종) : 잎(엽장)은 비교적 넓어서 15cm내외가 되고, 수고(높이)가 4-10m에 달한다. 엽색은 엷은 녹색이며 잎줄기는 열 쌍이며, 통킹, 라오스, 미얀마(버어마)의 샨 공원이나 타이 북부지방 등에 분포되어 자라며, 앗삼 지방에도 자란다.
또 한편으로 차나무는 교잡이 쉬워 많은 변종과 잡종의 다양한 특성을 가진 수많은 품종이 있으며, 과학의 발달에 따른 육종연구와 개량에 의해서 새로운 특성을 가진 차나무들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중간형이 많이 있는데 이들 중간형은 과거에 무역, 교통 등에 의해 중국종과 앗삼종이 서로 교잡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크게 2가지로 대별하는 학자들도 있다.
일본의 식물학자인 '기타무라(北村, 1950)'는 'Cohen Stuart'가 분류한 중국 대엽종(별명 고로종)은 중국종을 자가 수정(차는 타가수정식물)을 시키면 1/3 비율로 고로형의 차나무가 출현하기 때문에 중국종 중에 있는 하나의 품종(forma)으로 격하시켰으며, Shan종과 앗삼종은 극단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여 같은 종으로 분류하였다.
기타무라(北村)가 두 가지로 대별한 분류는 영국의 원예학자 'Sealy(1958년)'를 시작으로 많은 분류학자들이 지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서남지방에서 차의 근연종(近緣種)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어 중국의 식물학자에 의해 신종으로 계속 보고 되고 있다. 이들은 차와의 유연관계가 세포 유전학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차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단지 차나무 절에 속하는 식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다음은 분류학적으로 품종으로 나누어진 차나무에 대해서 살펴보면 중국의 절강성이나 일본 큐슈나 시코쿠(四國)의 산간지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잎 길이가 1-3cm정도인 극단적으로 작은 parvifolia종(속칭 핀까)라고 부르는 타입이 있다. 이 종은 차를 수확하는 1심(芯) 2엽(葉)이 극단적으로 작아서 수확량이 적지만 차를 만들 때 손으로 비비기가 쉬워 절강 용정차의 최고품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품종이다.
또한 잎의 쓴맛이 강해서 싫어하는 고로종(macrophylla:皐蘆種)은 일본 각지의 야마차(山茶)분포지역에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이종이 차나무 밭에서 나오면 뽑아 버렸기 때문에 그 양은 별로 많지 않다. 이런 형태는 고로종(皐蘆種)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중국차 사료에 많이 나타나는 고로(皐蘆), 호로(瓜蘆), 과라(過羅)...등으로 최근까지 같은 종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중국의 차 전문가들에게 별종이 아닌가하는 지적을 받아 그 연구를 의뢰한 결과 1984년에 중국 사료에 나타나고 있는 고로는 현재 대엽동청(大葉冬靑; 감탕나무과의 Ilex latifolia)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말하는 고로종은 중국에서 말하는 불수종(彿手種)과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 차나무의 꽃과 종자의 수명
차나무 꽃은 꽃잎이 보통 5매로 홑꽃이지만 꽃잎이 퇴화된 것도 있어서 6-8매인 것도 적지 않다. 최초로 차나무 학명을 명명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Linne'는 그의 저서인 「식물종」, 1753년에 “꽃잎이 6매와 9매를 가진 것이 있는데 이것은 별종인지도 모른다.”고 기록하였다. 곧 이어서 발간된 제2판에서는 별종으로 취급하여 기록하였다. 차나무 학명에 대한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꽃잎에 대한 매수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수술의 수도 천차만별로 200개에서부터 300개까지 나타난다. 그리고 기부는 융합해져 있다. 암술은 한 개로 주두 부분이 3 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가끔 4개로 갈라져 있는 것도 있다. 꽃 색은 백색으로 꽃잎은 연한 홍색를 나타내는 것도 있으며, 이것을 분홍색 차나무 “베니바나차”라고 하여 관상용으로 중요한 품종이다.
일반적으로 가을이 깊어지면 여러 가지 초목의 꽃이 사라지는 계절로 이때 차나무 꽃은 만개를 하게 된다. 개화기는 지역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9월부터 12월까지 길며 늦게 피는 것은 1월의 추운 한풍에도 견디며 개화하는 것도 있다. 꽃눈은 4월경에서 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가을에 개화한 후 약 5일 만에 꽃잎이 떨어진다. 자방의 외부는 털로 쌓여 있으며, 내부에는 3개 방이 있으며, 각 실에는 3-6개의 배주가 있다.
과실은 빠른 것은 8월말에는 성숙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10월이 되어서야 과실 껍질이 벌어져 그 속에서 1-3립의 종자가 나온다. 1과 1립의 과실은 구형이다. 과실 하나에 수개의 종자가 들어 있는 것은 편평(扁平)한 모양을 나타내며, 종자 수는 1과실에 8개까지 들어 있는 것도 있으나 전부 발아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보통은 과실 하나에 종자 하나를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종자 수명은 매우 짧아서 채종 후 건조 상태에 따라서 약 10일정도 지나면 발아력이 떨어진다.
차나무의 수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지만 현재까지 확실히 단정 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사가켄(佐賀縣)의 세부리산에 있는 큰 차나무 근주를 파내 조사한 적이 있는데 중심부는 썩어서 없어지고 분지가 많이 합쳐서 큰 둥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일부의 연륜에서 50년 정도 밖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조사에서 차나무는 계속하여 근부에서 새로운 줄기를 발생시키며, 또한 옆으로 퍼진 뿌리에서 다시 새로운 줄기가 나와 전체가 죽지 않는 포복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열대지방에서는 교목성이므로 연령을 추정할 수가 있다. 대만의 미원산(眉原山)의 야생차 조사에서는 직경 20cm로 연륜이 98년인 것을 발견하였다. 거의 150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차나무도 발견 되었다.
인도의 앗삼지방에는 파종 후 100여년 된 근주가 많이 남아있다. 열대지방 식물의 특징으로는 연륜을 육안으로 식별하기 곤란하였으나 다른 나무와 비교 관찰하여 보면 직경 45cm정도 되는 것은 대략 120년에서 140년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이보다 상당히 큰 근주들이 고사하여 있기 때문에 이것을 미루어 보면 차나무의 수명은 150년에서 200년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3) 재배차의 한계 분포
영국이나 화란의 동인도회사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식민지에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현재 세계 각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최북단의 재배지는 소련 남부 코카사스지방의 구루지아공화국으로 북위 42-43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 흑해에 면하고 있는 아시리아 지역에는 476헥타(1 헥타아르 = 10000 m2 = 1/100 km2) 면적의 차밭이 있으며, 일본식의 재배기술을 그대로 도입하여 차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상하게도 차 이외에도 온주밀감, 부유감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들도 꽤 많이 있다고 한다.
그루지아 공화국의 수도 도비리시의 년 평균 기온은 이과년표(理科年表)에서 보면 섭씨 12.9도인데 이보다 남쪽인 흑해에 면한 앗시리아 지역은 약간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차 재배가 가능한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1도 이상이기 때문에 재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경제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지방은 크게 보아서 이바라기(茨城), 도치기(a木), 군마(群馬) 및 니이가타(新瀉)의 각 현 이남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니이가타켄 무라가미(村上)는 최 북한의 재배지이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 볼 때 최 북한의 재배지는 아끼타켄 노시로(能代)의 희야마차(檜山茶)라고 할 수 있다. 희야마(檜山 : 북위 40도 10분)는 위도에서 볼 때 앗시리아 지역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년 평균 기온은 섭씨 11도 정도로 낮고 겨우 재배 가능한 북한지라고 할 수 있다.
최 남쪽의 재배지는 아프리카 남부(남아프리카, 로데시아등) 및 남아메리카(브라질)로서 양 대륙의 거의 남회귀선(남위 23도27분)을 한계로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나 로데시아 등의 재배지 기온은 일 년 중 온난하고 변화가 적으며, 차재배의 중요한 고온다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북반구에 있는 일본의 재배조건을 생각해 보면 남반구의 남위 40도에 중심 위치한 뉴질랜드에서도 충분히 재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차나무 재배 적지는 여러 가지 기후 조건이나 토양 조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재배되고 있는 최북단과 최남단 사이의 어느 곳이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도의 앗삼지방과 같이 년 평균 기온 23도씨를 넘는 더운 곳에서는 차밭에 햇볕을 가리기를 위해 해가림 나무를 혼식 해주어야 한다. 또한 토양 조건도 약산성이나 약 알카리성 토양은 재배 적지가 아니다.
4) 구미에서는 이원설(二元說)이 주류
우리들이 마시는 것으로 이용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차나무는 인류가 이용한지 2,000년 이상이 되었으며 보건 음료로 또는 기호음료로서 세계적으로 마시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미 우리들의 생활 깊숙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마시는 것이 차가 되어있는데 그 원료가 되는 차나무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 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 하나가 야생 차나무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로 뿌리(근원, root)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차나무의 근원을 찾아내는 연구는 차가 야생식물에서 재배식물(작물)로 이용되면서부터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에 확실하게 규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차의 발생지가 중국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론이 없다. 그러나 중국의 어느 지방인가에 대해서는 해답이 한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몇 가지 논의(論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차나무의 원산지에 관한보고는 1,800년대에도 약간 있었지만 논거를 가진 것은 화란의 식물학자 Cohen Stuart(1919년)의 보고가 처음이다. 그는 중국을 중심으로 차산지를 답사하여 인도 앗삼지방의 차와 중국의 차가 형질에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원산지가 다르다고 보고하였다. 잎이 작은 중국종은 인도나 운남의 대엽종과 관계없이 중국의 동부 및 동남부 지방에서 발생하여 재배하게 된 것으로 ‘이원설(二元說)’을 주장하였다.
영국의 식물학자로 차 전문가인 C.R. Harler(1933년)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중간형의 차는 모두 중국종과 앗삼종의 잡종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므로 구미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온대를 대표하는 중국종과 열대를 대표하는 앗삼종 2종으로 분류하는 이원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일본의 육종학자인 시무라(志村; 1943년)는 중국종도 앗삼종도 염색체 수가 같으며(2n=30), 세포 유전학적인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으며 이 보고에 의하여 ‘일원설(一元說)’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일원설을 정착시킬 만한 세력은 이루지 못하였다.
A) 2개의 중심지설
영국 사람으로 중국 오지에서부터 서남아시아에 걸쳐 일생을 식물 탐험에 바쳤던 Kingdon-Ward는 1950년 "야생차는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일부를 발췌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차나무의 중국 계통은 빙하기 동안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왔으며 앗삼 계통은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직선적 경로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하였다. 만약 이 견해가 정확하다고 한다면 중국형에는 중국형의 기원이 있으며, 앗삼종과 캄보디아계통은 중국종과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라와시강 상류지역(원저(原著)의 지도에 따르면 살윈강, 메콩강, 장강 등의 시발지가 같은 상류지역을 가리킨다)이 전파의 제 2중심지이며 그리고 제1중심지로서는 중앙 아시아지역을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서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차나무 계통의 전파(규명)에 대한 연구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민족이동의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차나무의 전파를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기술하였다.
이 논문은 전파의 중심지를 제1과 제2 중심지로 구분하였으며, 제2 중심에서의 전파는 최근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고하였다. 제1 중심지를 빙하기와 연관시켜 중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흥미진진한 이론이지만 현재의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차나무의 분포를 감안해 볼 때 매우 먼 북쪽을 제1 중심지로 삼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가설로 생각된다. 식물의 기원을 빙하기 이전으로 올라가 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모든 식물의 기원은 모두 빙하기 동안 꼼짝없이 묶이고 말 것이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B) 구미에서의 일원설
그 후 구미 학자들 가운데 영국의 식물학자 'T. Eden(1958년)'은 차의 기원을 이라와시강 시발지에 가까운 중심지로부터 인도지나 및 앗삼지방으로 부채 모양으로 퍼져 나갔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원설의 근거가 되는 확실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똑같이 영국인으로 오랫동안 차나무와 커피를 연구했든 E. Bramah(1972년)는 차의 기원에 대해 중국의 복건성(福建省)이나 광동성(廣東省)등의 홍차지대도 아니며, 또한 안휘성(安徽省)이나 절강성 등의 녹차 생산지대(필자 주; Cohen Stuart가 주장했든 2원설의 한쪽 근원지로 지적했든 지역)도 아니고 양자강(장강)의 상류 및 동쪽으로 흐름이 변하는 브라마프도라강이나 이라와시강의 상류지역에 야생의 인도 차와 함께 발생했다고 하는 일원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중국종'과 '앗삼종'이 '버어마'의 파도카이 산맥을 경계로 해서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것 등 몇 가지 의문이 아직 남아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Eden'이나 'Bramah'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차나무 분포 경로에 대한 연구가 이원설에서 일원설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C) Cluster분석에 의한 일원설의 주장
일본의 '큐슈'나 '시코쿠'지방의 산간지방에 자생하는 야마차를 시작으로 대만, 태국, 버어마 및 인도에 걸쳐 차나무의 형태학적인 조사를 한 결과 형질의 변이가 연속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북회귀선을 중심으로 대만에서부터 인도에 걸친 지역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국의 사천성(四川省), 운남성(雲南省), 귀주성(貴州省) 등에 차나무의 중심지가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이원설을 비판'했다(1973년). 그렇지만 형질 변이의 연속성에 대해서 상당부분이 주관적이어서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후 다변량 해석에 의한 수치 분류법이 확립되어 작물 품종을 분류하는 것뿐만 아니고 여러 분야에서 응용하게 되었다. 작물의 형질 변이는 거의 연속적인 변이를 나타낸다. 이러한 점에서 형질 변이에 기초한 유연성 조사에 있어서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소위 비슷한 것끼리 군별로 구분하는 소위 ‘cluster 분석’을 하게 되었다.
중국종에 속하는 일본(시코쿠, 큐슈) 및 중국(대만, 해남도)지역, 앗삼종에 속하는 버어마(샨, 가친) 및 인도(앗삼)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15개체를 공시 나무로 하여 엽의 형질에 대한 측정치를 기초로 한 cluster 분석을 한 결과 이 계통도에서는 유사성의 척도를 군집[群集, community; 특정한 환경에서 함께 사는 생물의 모임]간 분리되는 거리에 따라 나타냈으며, 거리의 수치가 작을수록 유사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제 1군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중국종인 미원산(眉原山)의 차나무와 앗삼종인 나가산지(山地)의 차나무가 매우 높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제 2군에도 중국종과 앗삼종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고찰하면 코헨슈트어트(Cohen Stuart)가 '형태학적인 차이에 따라 지리적으로 구분한 이원설을 주장한 것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이러한 군집분석 결과에 근거하여, "중국 동남부(대만을 포함)에서 인도 앗삼 지방에 걸친 이들 지역의 중간지역 즉 중국의 사천 및 운남 지방에 차나무의 기원 중심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원설'를 제창하였다(하시모토, 시무라,「橋本, 志村」 1978년).
이 논문은 구미의 학자들 사이에도 인정이 되어 최근에는 일원설 쪽으로 기울고 있다.??하시모토(橋本實, 1961)는 日本에 있어서 山茶에 대해서는 [茶業技術硏究發表會講演要旨] 1961년 10월 구마모토켄(熊本縣) 이즈미무라(泉村) 지구에 있어서 고로종의 분포를 확인했으므로 야마차도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하시모토(橋本實, 1973)가 日本茶의 傳來에 關한 知識 [植物과 文化] 第8號에서 "고로종의 형태학적 특징은 1개의 열성유전자에 의해 표현이 되는 형질이다(미에바라; 蓬原, 1966)."고 주장하였는데 일본의 야마차가 일본 '고유 식물'이라고 한다면 야마차 분포지역에, 중국남부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로종의 유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일본의 야마차가 고유식물이라고 한다면 야마차의 분포지역에 중국 남부에 자생하고 있다는 고로종(皐蘆形: f. macrophylla)의 출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를 가지고 고유종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차나무는 타가수정의 식물로써 자유롭게 교잡이 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돌연변이가 어디서나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즉 자연교잡에 의한 유전자교환이 자유롭게 일어남으로써 여러 가지 종류의 연속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야마차의 분포는 국소적으로 마을주변의 경작지나 목초지로 이용하고 있던 곳, 또는 화전적지와 같은 인공적인 힘이 가해진 지역에 한해서 분포하고 있으며, 일차 삼림지대에는 전혀 분포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생태계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볼 때 자연적인 상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야마차는 재배차에서 나온 하나의 escape종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다음은 야마차가 중국에서 온 도래종이라고 한다면, 중국종과 비교해 봐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소화(昭和) 53년 8월(1978년), 중국의 절강, 강서 및 광동 각성의 차산지를 시찰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 절강성 항주(杭州)의 차원을 보고 매우 놀란 것은 일본에서 핀카(야마차 가운데 많이 있음)라고 부르는 잎이 매우 작은형의 차(f. parvifolia)나무가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현관인 항주와 일본 사이에 왕래가 빈번했기 때문으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중국 각지에서 채집한 잎을 말린 표본의 형태학적 측정치는 야마차와 비교해 봐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단지 측정치의 비교만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인 유사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다변량 해석 분야인 군집(cluster)분석을 시도하였다.
공시재료는 시코쿠(四國)와 큐슈의 야마차 각 10개체 및 절강성과 강서성의 차 각 10개체씩 합계 40개체를 공시하였으며 유사성의 척도로서 상관계수를 이용하여 군집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야마차와 중국차는 몇 지역에서 높은 유사성을 나타냈으며, 거의 대부분이 차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분석결과에서도 일본의 야마차는 중국에서 들어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때까지 기원의 중심지로 추정된 지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운남 지방이나 사천 지방의 차나무에 대해 상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D) 중국 차나무 전문가들의 견해
우리들은 구미의 문헌은 얼마든지 입수해서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실지로 중요한 차나무의 발상지인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정보도 없었으며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9년 [과학조일] 2월호의 '토픽란'에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남부”라고 하는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중국 과학원 유전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유전여육종(遺傳與育種)」, 1978년 발간 된 잡지에 “차수적기원(茶樹的起源)”이라는 제목으로 11줄의 박스기사가 실려 있었다.
1978년 “전국농업학술토론회 간보(簡報)”에서 발췌한 것이어서 이 간보를 입수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사 가운데 “차 업계의 전문가 오각농(吳覺農)은...”이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차대전 전에 일본의 차업 시험장에 유학한 사람이다. 현대 다학 전문가로 농업기술학교를 나와 일본에서 다업시험장에 근무하고 돌아왔다. 중국차 발전을 위해 교육기관을 세우고 외국 다업을 돌아봤다. 많은 저술을 남겨 중국 다사를 빛낸 인물이다. 여기에 중국학자들의 차나무 기원에 관한 2~3편의 논문을 소개한다.
먼저 '오각농(吳覺農, 1891~1988)'은 중국 근대 차 발전에 공적을 남긴 사람으로 1978년에 「我國西南地區是世界茶樹的原産地」“중국서남지구가 세계차나무의 원산지”라는 제목으로 "고대 지리의 변천 및 사천 남부나 전남(운남 북부)등은 빙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으로 많은 고대식물이 보존되어 ."했으며, 차나무의 원산지는 운귀(雲貴)고원 및 사천 남부, 계북(桂北 - 광서(廣西)북부), 호남(湖南)등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음에 '진연(陣椽)'의 지진고(陣震古」 1979년에(中國雲南是茶樹原産地) “중국운남이 차나무의 원산지”라는 제목으로 야생 차나무의 유전적 형질, 차엽의 생화학적 연구에서 중국의 고로종(皐蘆種 : 차나무의 한 품종)이 차나무 기원의 원종이기 때문에 운남 대엽종이 자라고 있는 운남지구가 중국 차나무의 원산지라고 기술하였다.
또한 '장만방(庄晩芳, 1981)'은 「茶樹原産於我國何地」“차나무의 원산지는 우리 나라 어딘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천, 귀주 및 운남의 3성이 인접하고 있는 '대루산'계(大婁山系)의 차는 수형, 잎, 꽃, 과실 등에게 형질의 변이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운귀고원'이 차나무 원산의 중심지라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Vavilov의 유전자 중심설’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흥미가 있는 논문이지만 형질의 변이성을 나타내는 통계적 데이터(data)를 제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 할 수 있다.
이상 중국학자들의 논문을 소개하였는데 어느 것이나 일원설과 그 주장이 일치하고 있으며, 지역 역시 거의 일치하고 있다.
차나무의 종류를 정리하면
차나무는 ‘피자성쌍자과(被子性雙子科)’로서 ‘상록성(常錄性)’의 나무이다. 중국은 차나무 종류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지역별로 기후 토질이 각각이고 가공 방법도 다종다양하기에 상품 차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중국의 차 생산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차 생산 지역도 매우 광범위하다. 장기간에 걸친 자연도태와 인공 선택에 의해서 풍부한 차나무 품종이 형성되었다.
1) 찻잎의 크기에 따라
찻잎의 크기에 따라 크게 '중국종(Camellia var. sinensis)'과 '아샘종(Camellia var. assamica)'으로 나누어지며, '대(大葉種) 엽종'과 '소엽종'으로 각각 나누어 총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운남대엽종(雲南大葉種)의 경우 '운남차과학연구소(雲南茶科學硏究所)'에서 운남대엽종과 소엽종의 내용물의 함량에 대해 비교 측정한 자료에 의하면 대엽종에서의 차침출물(茶浸出物)은 소엽종보다 3%가 높으며, 특히 '폴리페놀(Polyphenol)'은 소엽종보다 5~7%, '카테킨(catechins)'의 측정은 소엽종보다 30~60% 높게 나타났다.
이는 곧 대엽종으로 만든 보이차가 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묵은 향기가 배어날 수 있는 원인으로 규명되었다.
2) 기후와 관련하여
온대를 대표하는 '소엽차(小葉茶)'와 열대를 대표하는 '대엽차(大葉茶)'로 본다.
3) 찻잎의 발아시기
발아시기에 따라서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구분한다.
4) 싹과 잎 색깔
색깔에 따라서 '자아종(자색)'과 '녹아종(녹색)으'로 나눈다.
5) 찻잎의 형상
형상에 따라서 '장엽종', '원엽종', '유엽종'으로 구분한다.
6) 나무형태
형태에 따라서 '교목형'과 '관목형'으로 나눈다. 차나무의 종류는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A) 아차나무(芽茶木) - 관목본류(灌木本類)
군산(君山)은 맑고 깨끗하기가 호수에 드리워진 달빛 같은 곳이며, 하늘에 계신 상제·신선이 산다는 곳으로서 붉고, 푸르고 오색찬란한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곳으로 전해져 온 곳이다. 호남성(湖南省 : 중국 호북성에 인접한 성) 군산(君山)의 구강천연다지구(邱崗天然茶之區)에서는 '은침차(銀針茶)'와 '황차(黃茶)' 등의 차나무인 아차류의 야생차가 자생하며 재배도 한다.
B) 소엽차나무(小葉茶木) - 관목본류(灌木本類)
관목본류의 소엽 차나무는 주로 '홍차(紅茶)'를 만든다. 홍차는 여러 지역에서 생산이 된다. 찻잎의 외형은 곧고 단단하다. 안휘성(安徽省 : 중국 동부 양자강과 회화 유역에 있는 성)의 기문(祁門 : 안휘성 남쪽 끝에 있는 현)에서 나는 붉은 빛깔의 차가 최상품이다. 안휘성 기문의 제파밀식다장(悌波密植茶場)에서 홍차가 널리 재배된다.
C) 골차나무(骨茶木) - 관목본류(灌木本類)
천태산(天台山 : 중국 절강성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달리는 구릉성의 천태 산맥의 주봉)은 본래 신선이 산다는 곳으로 전해져 왔다. 중원 각 지역의 산령천연다지구(山嶺天然茶地區)에서 골차류의 '야생녹차(野生錄茶)', '주차(珠茶)'가 생산되며 절강성(浙江省 : 중국 남동부 동해 연안의 성)의 평수(平水)와 대만(臺灣)등지에서 재배된다.
D) 창차나무(槍茶木) - 대교목류(大喬木類)
예부터 무이산(武夷山 : 중국 복성성과 상서성 경계에 있는 산으로 1,300m)은 산수가 기이할 뿐만 아니라 진기한 차가 난다고 했다. 복건성은 무이산의 애암천연다지구(崖岩天然茶之區)에서는 '암차(岩茶)'와 '청차(靑茶)' 등 야생차가 자생하며, 재배도 한다.
E) 중엽차나무(中葉茶木) - 중교목류(中喬木類)
종산(鍾山) 영천(靈川)의 빼어난 기운으로 말미암아 백모란(白牡丹)의 아름다움이 가히 일품이다. 복건성 정화(政和)의 녹지밀식다장(綠地密植茶場)에서는 '백모란'과 '백차' 등이 재배된다.
F) 대엽 차나무(大葉茶木) - 대교목류(大喬木類)
안개가 천 그루의 차나무를 휘어 감고, 만개의 골짜기의 푸름 사이에 구름 꽃이 피고 그 향기는 멀리 십리 밖까지 퍼지고 맛의 향취는 잔속에 감돈다. 운남성(중국 남서 변경. 미얀마 · 베트남과 국경을 이루는 성) 서쌍판납(西雙版納 : 운남성 남부에 있는 타이족이 주거하는 소수민족 자치주)의 평원밀식다장(平原密植茶場)에서는 '보이차(普耳茶)'와 '홍차(紅茶)' 등이 재배된다.( 참고 :정곡선사, 「中原의 茶」)
차(茶)를 분류학적으로 나누면 온대지방의 소엽종(중국종 : var. sinensis)과 열대지역의 대엽종(앗삼종 : var. assamica)의 두 변종으로 대별한다. 그러나 그 중간형도 많이 있으며, 잎의 형태와 크기, 또는 나무형태나 형질변이가 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 학명 하나를 가지고도 분류학상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서 분류학상의 종, 변종, 품종, 동의(同義)등을 포함해서 차나무의 학명은 백여종에 달하고 있다. 단 한 종의 식물에 대해 세계의 많은 식물학자들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학명을 붙인 것을 볼 때 차나무가 얼마나 많은 잡다한 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용 면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주목해온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차나무는 중국 소엽종 계열로서 온대성 기후에 알맞고 추위에도 강한 품종으로 수입 연대를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재래종 차나무이다.??대체로 기후가 온난하고 강우량이 많으며 배수가 잘 되는 경사지나
구릉이 생육에 알맞고 토질은 부식 질이 많은 양토 질로서 겉 흙이 깊고 배수가 잘 되어야 한다.
번식하는 법에는 실생 번식법, 영양 번식법(삽목법)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현재 대부분 차씨 번식(실생)을 하고 있으나, 차는 워낙 변이가 다양하여 같은 나무에서 딴 차씨에서 나온 차나무도 성질이 다른 경우가 많아 중국,일본에서는 2-300년 전부터 꺾꽂이법(삽목)만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하루 빨리 우리 나라 야생 차나무의 특성들을 분석하여, 각 제다법(녹차용,발효차용..등)에 적합한 차나무 품종을 개발하고, 그 품종의 특성을 유지한 채 대량 번식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리고 전남지방 일부 다원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는 차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한 '야부끼다종' 차나무로서 생산량이 많고 추위 에도 잘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