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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무령왕릉 발굴보고서
武寧王은 역사상 두사람이 존재했는데 百濟의 武寧王과 양(梁)나라의 왕족으로 550년 武寧王에 봉해졌으며 13세에 살해된 인물입니다.
신장이 8척이고 얼굴이 그림 같았다(居目如畵 三國史記) 무령왕 ...(중략)... 풍채가 아름답고 얼굴이 그림 같았다(居目如畵 梁書) 史書에 나오는 구절이며 특히 [얼굴이 그림 같았다]라는 문구는 정확히 부합되고 百濟와 梁나라의 武寧王陵 구조와 부장품이 말해주듯이 빈번하게 교류를 하고 있었고 모두 6세기에 활동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것은 한반도의 武寧(斯麻)王陵에서 발굴된 왕비의 어금니를 분석한 결과가 30대 여인의 것입니다. 그런데 武寧王의 왕비는 당연히 聖王의 어머니가 되는데 聖王의 연령을 생각할 때 30대 여인이 聖王의 어머니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30대 여인이 武寧王이 사망한지 3년이 지난 526년 10월에 함께 묻힌 王妃가 될 수 없고 武寧王의 왕비는 정상적인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고 武寧王은 죽고나서 묘에 안장될때까지 3년의 공백이 있는데 百濟에 이런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지석원문해석 :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 백제 斯麻王이 62세 되던 계묘년 5월 7일에 붕어하시고 을사년 8월 12일에 올려모셔 대묘에 기록하기를 좌와 같다. 병오년 12월 백제왕 대비가 돌아가시니 서방에 가매장했다가 기유년 2월 12일에 개장하여 묘를 만들었다 전일만문(錢日万文)의 우건(右件)에 대하여 을사년 8월 12일 寧東大將軍 백제 사마왕은 전기건의 錢으로 土王과 土伯 土父母의 상하중관(上下衆官)에게 이천석을 주고 신지(申地)로 묘를 만들고 권(券)을 세우니 율령에 따르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해둔다. *참조- 계묘(癸卯;523) 을사(乙巳;525) 병오(丙午;478) 기유(己酉;529)
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到 丙午年十二月百濟國王大妃壽復終居喪在西地 己酉年二月癸未朔十二日甲午改葬還大墓立 錢日万文右一件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以前件錢訟 土王土伯土父母上下衆官二千石
백제의 공주시기는 63년(475~538)에 불과 한데도 公州를 중심으로 송산리, 주미리, 교촌리, 신기리, 폐목리에 수백기의 고분군이 있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고분이 형성될 수 있는지 의문이 있으며 松山里는 고고학적으로 5세기 이전에 축조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의 영산강유역에 세워진 고분보다 공주의 武寧(斯麻)王陵이 규모가 작으며 공주시대에 갑자기 나타나 왕권을 제한하는 8성대족[백제의 귀족으로 해씨(解氏)·사씨(沙氏)·연씨(燕氏)·협씨(協氏)·진씨(眞氏)·골씨(骨氏)·백씨(苩氏)·목씨(木氏) 등인데, 그 중에서 骨氏를 국씨(國氏)라고도 하였다. 백제는 씨족이나 부족이 중심인 사회가 아니라 이들 八姓貴族이 연합하여 국가를 조직하고, 이들 중심으로 움직였다]이라는 귀족들이 등장합니다.
사마왕릉은 두평도 안되는 공간이지만 출토된 부장품들은 중국제품을 비롯하여 일본제품까지 있으며 그리고 적색의 유리구슬인 ''무티사라구슬''은 태국제품으로 추정되는 등 동남아시아 물산까지 부장되어 있었습니다.
왕이 죽으면 주위에 배총(陪塚)을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였습니다. 즉, 왕릉 주위에 그 생전의 정승, 장군, 공주, 왕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도 딱 2개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속에서 없어질 수도 있지만, 심지어 조작되었다는 느낌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인구가 76만호(戶)였는데 李氏朝鮮초기 백제땅(충청, 경기, 전라)에는 5만6000호(戶)뿐 입니다. 하지만 대륙의 山東省 백제의 지명부근에는 이씨조선초기와 같은 시기에 인구가 77만호로 百濟와 비슷합니다.
대륙속의 三國을 한반도로 축소시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이 요구됩니다. |
다음은 송산리 6호의 정보입니다...
송산리 5호다!!!
무령왕릉을 겉에서 본 모습입니다. 입구가 통제되어 있어서 좀 아쉽다... 송산리 제 1~4 호분...... ★아래사진은 1월의 어느날 무령왕릉을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백제문화를 접할수 있는기회가 몇번 있었는데 융성했던 백제의 문화를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1500년전의 문화가 찬란하였다라고 감히 말할수 있었습니다~~ 사진에 인물이 들어있는것이 많아서 일부만 올렸습니다. |
첫댓글 유적지를 방문하시는게 취미군요..^^
귀한 지료들 잘 보았습니다..
그곳은 세상 풍조가 득실대지 않고 조용하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 우리들의 뿌리등이
모두 모여 있는곳이라
참좋습니다.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우리것을 알아간다는게 가슴뿌듯함을 느끼게 합니다ㅎ
취미는 어떤것이든 본인에게 침좋은것이지요
저는 아는게 없어서 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무령왕릉 참 소중한
역사자료를 올려주셨네요
어디를 가시나 인물(주인공)사진은
꼭 있으지시요 ㅎㅎ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함께하신분들이 많으니 ㅎ
이제부터는 이방을위하여
사진이나 자료를 준비해야
될텐데 말입니다.
워낙에 머리에 든것이 없어서 난감하답니다.
지기님 잘좀봐 주세요.
소중한 자료
무령왕릉의 소개
배우고 갑니다
삼밭골님 고맙습니다 ~^^-
백제 문화에 대하여는 아직 신라문화나 조선시대 문화많큼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르지요.그런데 백제문화
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기회되면 신라와백제 모두 볼생각입니다.
@삼밭골 그러시군요
좋은 자료 올려주시어
잘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삼밭골님 ~
좋은 하루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