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백호*鄭氏의得姓祖(덕성조)이시다.
(鷲山)취산 (珍支村長)진지촌장( 智白虎)지백호가 덕성조이시다.
생월은 기록에 없으나.아마도 기원전90년 조금전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박혁거세가 기원전57년에 박에서 태어남 으로 지백호의 년령을 따짐.
(지백호)의 字는 (인세) 시호는 (문하) 추봉왕명 (감문왕)이시다.
신라 3대/유리왕9년(서기32년)에 (本彼部)본피부로 (改稱)개칭 되면서 鄭氏의 姓을 下賜받고 시호와 추봉왕명을 받았다.
*지백호 묘비(정씨 시조묘소 비석)
*지백호 감문왕 묘소
*宗 殷*중시조*
(宗殷)종은 字와 생월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신라 진평왕때 화랑 출신으로 우리가문에 대(名門巨族)명문거족 집안을 이룬 선조님 이시다.
당시 신라시대때는 화랑에 입문하여 거처야 명문가로 인정 받았다.
선덕여왕(632~647년)시절에 상장군으로 김유신과 3국통일을 이루고 (諫官)에 올라 어떤 역모사건으로 양목현으로 유배 되었다고 한다.
나의 생각으론 당시 (상대등)인 비담 편에 있었는것으로 추정 .
김유신은 가야출신으로 신라에 귀속되어 화랑에 입문하고 김춘추 편에 있었고 선덕왕후의 왕을 이어받을 인물을 두고 김춘추와 비담이 치열한 정치적 권력다툼이 생기자.
역사서에는 비담이 반란을 도모하여 김유신이 반란을 평정했다고 하나 사실은 반란자는 선덕왕이 세력이 너무나 강해진 비담이 부담스러워 비담을 죽이는 사건으로 고증하며.
어쨌든 (종은)중시조님을 사건에서 화백회의때 화백들에게 처형할 동의를 못받아 귀향을 보낸것으로 보임.유배당시의 년도는(644년)전 후임.
동국정씨 기록에 (종은)의 아버지는 (손국)이요 조부는(문) 증조부는(년)으로 기록했고
아들은(길모)요 손자는(선)이다.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단지 동국정씨 기록을 토대로해 적어 보았다.
*宜 卿*
宗殷의 후손으로 연일호장을 지내고 (延日縣佰)에 봉해지며 후손들이 연일정씨로 관향을 처음 셨다.
*신라시대때의 우리 조상님은 이분들 이상도 이하도 정확한 기록이 없고 다만 동국정씨에 나오는 기록이 전부 이다.
*동 국 정 씨 원 류 도*
1세조 :지백호
2세조 :정동 36세조: 심.......걸...........배걸
3세 가도 37세 달강 (초계시조)
4세 빈 38세 경문
5세 동충.....군산 39세 성지.....균지
6세 남화 40세 손경......손위(하동시조)
7세 북성 41세 극중......극온.........극민
8세 개언 42세 진후 (광성시조)
9세 기완 (경주시조)
10세 가영
11세 병길
12세 순박 *손경...........신호(광주시조)
13세 덕성......덕건 *해(나주시조)
14세 无后 충국....00 *수규(진주시조)
15세 호봉....성봉 *극경(청주시조)
16세 해활 *호미(봉화시조)쌍봉공 정도전 집안
17세 완숙...성...시산....혈
18세 군공
19세 급선
20세 지명
21세 수민
22세 동창
23세 문완...문숙...문진
24세 임수
25세 强강...剛강...敬경
26세 파동
27세 유
28세 짐.......................................년(年)
29세 목(穆) 문(文)
30세 풍국 손국(遜國)
31세 사량 종은(宗殷)
32세 우성 길모(佶模)............교림(僑林)
33세 사맹 선(璿) 완(玩)
34세 유천........보천 ( 영일정씨) 회문(繪文)
(온양시조) (동래시조)
35세 현성 현민
첫댓글 영일정씨가 동래정씨보다 큰집이네요.
그렇읍니다 우리가 큰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