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춘추 전국시대(東周) (BC 770- 403-367)
주나라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수도 호경이 함락되어 낙읍(洛陽)으로 옮기면서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제후국들이 주왕실을 존중하는 한편 각자가 세력을 다투던 시기이다. 이 시기 세력이 강한 제후 중에 주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후국은 제(桓公), 초(莊王), 진(文公), 오(闔閭), 월(句踐) 등을 춘추 오패(五覇)라 불렀다. 이후 '진, 한, 제, 위, 조, 연' 등 전국 6웅이 차례로 왕을 칭하고 천하 통일을 위해 질주했다.(초는 춘추시대 후반기부터 왕호를 칭해 칠웅(七雄)이 됨) 춘추는 공자의 책 춘추에서 나온 말로, 진(晉)의 3국 분할 이전까지를 이른다. 춘추시대에는 유가, 도가, 법가, 묵가, 음양가 등 제자백가의 세상이다. 결국 법가 사상을 받은 진나라가 통일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5) 진시황제 (BC 221ㅡ 206-15)
전국시대의 7웅 중 진(秦)나라가 주왕실 및 다른 6국(韓,魏,楚,燕,趙,齊)을 멸하고 통일한 영정(嬴政)이 스스로 시황제라 칭했다. 수도는 함양. 시황제는 법가 사상, 강력한 군대, 몽염, 왕전 등 명장들의 출현으로 6국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강압적인 망민 정책과 무리한 토목공사 등으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이 일어나고 나중에 항우와 유방 등으로 초한지의 무대가 된다. 진은 3대 황제 자영(子孀) 때 유방에게 항복하면서 멸망한다. 진시황의 업적은 한자와 도량형의 통일과 군현제의 실시를 꼽을 수가 있다. 군현제는 황제가 직접 장을 임명하는 제도로서 황제의 권위가 강해질 수 있었고, 도량형과 한자의 통일로 전 국가를 하나로 묶는데 일조한다. 만리장성(萬里長城), 분서갱유(焚書坑儒)
6) 전한(前漢) (BC 202ㅡ8-194)
유방(劉邦)이 초나라 항우(項羽)를 무찌르고 통일에 성공한다. 처음의 수도는 낙양이었으나, 장안에 궁궐을 새로 짓고 수도로 정한다. 고조가 즉위할 때에 흉노가 한을 괴롭혔다. 유방이 죽고, 여태후가 정권을 잡아 여씨의 천하를 이루었으나 그가 죽은 뒤 나라가 쇠락한다. 이후 등장한 문제(文帝)와 경제(景帝) 때에는 나라가 부강하게 했고, 이를 기반으로 무제 때에는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복 활동을 편다. 흉노는 유럽으로 쫓았으며, 베트남, 고조선 등 여러 지역을 정벌했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이다. 서양 세계에 중국의 이름을 알린 나라이기도 하다.
7) 후한(後漢) (BC 25ㅡAD 220-245)
왕망(王莽)의 新 왕조는 적미(赤眉)의 난등으로 쇠락하고 광무제 유수가 낙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운다. 그는 황제가 되고 군대를 줄였기 때문에(사병금지), 낙양 근처까지 강인이 쳐들어 온 일이 있다. 2대, 3대 황제 때 문경치지처럼 명장지치의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4대 황제인 화제는 나이가 10살 때 제위에 올랐기에 외척이 세력을 잡았다. 황제는 환관 정중 등과 외척들을 죽였다. 이로써 외척과 환관세력의 싸움이 시작 되었고 이는 후한 말기의 십상시의 난까지 계속된다. 영제 때 황건적의 난이 시작되고 이로써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 했다. 헌제는 조비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게 된다.
8) 삼국시대 (AD 220 - 280-60)
위나라의 조조(曹操), 촉의 유비(劉備), 오의 손권(孫權) 등이 서로 황제라 칭하고 싸웠던 시기이다. 위(魏) : 후한의 헌제로부터 조비(曹丕)가 제위를 물려받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아버지 조조(曹操)가 건국한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했다. 촉(蜀) : 후한 황실의 후예 유비(劉備)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의 변방 지방에 한정되어 후한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오(吳) :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했다.
9)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AD 280ㅡ589-309)
위나라 사마의(司馬懿)의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263년 촉을 멸망시킨 후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아 서진(西晉․265년 - 316년)을 건국했다. 그의 손자 사마염(司馬炎)은 280년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 유연(劉淵)에 의해 건국된 지 51년 만에 멸망한다. 사마염의 아들 사마예(司馬睿)는 흉노족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동진(東晋)을 세워 서진을 계승하나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됐다. 장강 이남의 오(吳)․송(宋)․제(齊)․양(梁)․동진(東晉)․진(陳) 등 6왕조가 남조(南朝)이다.
북조(北朝)는 화북의 북위․동위․서위․북제(北齊)․북주(北周)가 차례로 지배한 지역을 일컫는다. 여기서 서위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건국자의 성을 따라 염위(冉魏)라 부른다. 서진의 멸망 이후 흉노(匈奴), 선비(鮮卑), 저(氐), 갈(羯), 강(羌) 등 5호(五胡)등 13개국과 한족이 세운 3개국 등 16개국을 총칭한다. 처음에는 북진의 부견(符堅)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북진은 비수에서 동진에게 대패한 뒤 곧 망한다. 양자강 이북지역의 16국의 혼란은 선비족 탁발씨(拓拔氏)가 건국한 북위(北魏)에 의해 통일된다.
북위는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유목민의 부족제를 중원의 귀족제로 대체해서 3대 태무제 때까지 융성했다. 그러나 육진지난(六鎭之亂)을 거치면서 534년에 동위가 북제(北齊)와 서위(西魏)로 분열된다. 동위는 550년 다시 북제(北齊)로, 서위는 556년 북주(北周)에 흡수됐다. 북주는 557년 북제를 정벌하고 화북지역을 통일한다. 북위의 효문제는 균전제(均田制)를, 서위의 우문태(宇文泰)는 부병제(府兵制)를 실시, 생산과 군사력을 회복시켰다. 북위가 시행한 제도는 수(隋)․당(唐)도 이어 받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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