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과 용인의 비산비야(非山非野) 길을 걷다.
한남정맥 2구간 (가현고개~망덕고개)
1. 일자: 2018. 3. 31 (토)
2. 산: 달기봉(415m), 구봉산(465m), 문수봉(405m), 바래기산(368m)
3. 행로와 시간
[가현고개(08:52, 달기봉 3.4km) ~ 달기봉(09:53, 415m, 구봉산 2km) ~ 구봉산(10:40) ~ 이정표(11:17, 구봉산 2km) ~ (매봉재) ~ 두창리고개(11:42) ~ (식사, 11:52~12:05) ~ 극동전파연구소(12:16) ~ 57번 지방도로(13:09, 구봉산 8.9km) ~ 농업테마파크(13:24) ~ 문수봉(14:17~25) ~ 석유비축기지(14:37) ~ 쉼터(15:01, 망덕고개 1.2km) ~ 바래기산(15:18) ~ 망덕고개(15:23) ~ 해실리마을회관(15:41) / 6시간 47분, 20.76km]
2주 만에 정맥 길에 나선다. 패딩을 벗고
바람막이만 걸쳐도 될만큼 계절이 성큼 봄에 다가섰다. 버스에서 유박사님과 조우했다. 정맥의 사나이답게 주마다 다른 맥을 걷고 있다 한다. 들머리 가현고개에
선다. 대간이나 정맥처럼 이어 걷는 등산에서만 가능한 경험, 지난
날머리가 지금의 들머리가 되는 사건이 익숙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경쟁하듯 비탈을
치고 오른다. 그리 오래지 않아 속도가 부담이 된다. 정맥
연속 종주를 하는 이들을 동네급 산만을 다니는 내가 쫒아가긴 무리인데도 호기를 부려본다. 공원묘지에
올라설 때부터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1구간처럼 ‘천천히
걸어도 뒤처지지 않고 하산할 자신이 있는데….’하는 생각이 일었으나,
이미 관성이 걸음을 지배한다. 묘지를 크게 돌아든다. 희뿌연
하늘, 그나마 시원가 트이니 기분은 나아진다. 묘지를 지나
내려서나 싶더니 또 치고 오른다. 1시간만에 달기봉에 닿았다. 용인시가
만든 산행 안내판에는‘영남길’이란 표식이 있다. 그 안내를 따라 걷는다.
한 숨 돌린다. 진달래의 연분홍 꽃잎이 앙상한 숲에 활력을 준다. 꽃은 생명의 유혹이니
아니 눈길이 가겠는가. 구봉산 전 오름이 힘겹다. 무엇보다
속도가 내 것이 아니다. 유박사님이 보조를 맞춰 주지만 따라 가기 벅차다. 게다가 회사에서 카톡이 온다. 젠장, 스트레스 지수가 급상승한다. 통신탑과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에서 잠시
쉬어 간다. 이 산악회에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말을 섞는다. 낯가림
심한 내게, 누구와도 금새 말을 섞는 유박사님은 그저 신기한 존재다.
구봉산 데크 전망대에 선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온통 골프장이다. 태영CC, 지금은 블루원 용인CC라 불리는 골프장은 무척 넓다. 구봉산을 지나자 예상대로 길이 순해진다. 지도상으로 보면 문수봉
전까지는 300미터를 넘는 봉우리는 없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느릿느릿 두창리고개로 향한다. 생뚱맞게 커다란 위성 수신 안테나를 보며 길을 내려선다. 도로를
건넌다. 평지에서의 걸음도 부자연스럽다. 일행들이 소나무
그늘에서 쉬어가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커피를 연거푸
들이킨다. 목마름에 양을 조절하지 않고 마신 커피는 산행 내내 독이 된 거 같다.
도로를 따라 걷는다. 시원하게 이발을 한 플라타나스에서 기린을 본다. 키가 크다는, 몸통이 얼룩점이 있다는 게 전혀 어룰릴 것 같지 존재를 연결시킨다. 위성
안테나의 정체를 확인한다. 극동기상연구소, 왠지 정보기관
냄새가 난다. 위치가 생뚱맞다. 도로를 걷다 종아리에 경련이
온다. 몸에 이상이 오나 보다. 유박사님이 큰 도움을 주었다.
57번 지방도로에 선다. 에버랜드, 용인시청, 양지IC, 법륜사…. 도로 표지판은 수 많은 정보를 주려 한다. 많음이 어지러움을 불러온다. 도로를 건넌다. 한남정맥 표식을 따라 걷는다. 유박사님이 무리의 길안내 대장이 된다. 몇 번이나 알바에 처한 상황을 구해낸다. 든든한 길잡이다. 정맥 길은 새로 생긴 건물에 막힌다. 돌아든다. 폐공장지대, 어수선하다. 그
와중에도 양지 바른 공터에는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고 있다. 누구 말대로 ‘발정난 봄이 예고도 없이 훅~~ 들어 왔다. 바야르호 봄이다.
연꽃 재배 단지가 나타난다. 주변이 용인농업테마파크 란다. 커다란 공원이다. 지친 다리를 절며 쉬지도 못하고 입산한다. 문수봉이 1.8km 남았다는 이정 앞에 선다.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건만 누구는
산이고, 누군 봉우리인가. 그 기준이 궁금하다. 주변에는 커다란 절과 산림욕장이 있다. 긴 계단을 치고 오른다. 고도는 낮아도 정맥은 정맥이다. 만만치 않다.
문수봉에 올라선다. 정자 쉼터에 앉는다. 이번에도 커피를 벌컥벌컥, 몸 생각보다 목마름 해소와 시원함이 먼저다. 일행이 마그네슘 알약을
건낸다. 먹고 나니 몸이 훨씬 가볍다. 남은 산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돌아드는 석유비축기지 풍경은
색달랐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하기에 광교산 정상에서도
분명하게 보이는 곳이니 그 크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거리가 18km를
넘어선다. 오늘의 마지막 이정, 망덕고개로 향한다. 바래기산은 산악기상 관측장비가 있는 언덕이었다. 고개에서 우측으로
길을 꺾는다. 곧이어 해실리 마을회관이 나타나고 그 앞에 산악회 버스가 서 있다. 기사가 우리가 선두로 내려왔단다. 헐, 이 무슨 조화…. 일행은 알바를 했나 보다. 아침에 횡설수설 길 안내를 하던 대장의 말을 무시한 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
에필로그 >
비산비야(非山非野) 길, 한남정맥 2구간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산도 들도 아닌 게 사람 잡을 뻔했다. 장거리
산행에는 장사가 없다. 특히, 나 같은 야매 산꾼에겐 더욱
그렇다. 20km가 넘는 긴 거리는 힘에 겨웠다. 초반 오버
페이스의 무서움을 경험했다. 지나침을 부족함만 못하다. 남은
정맥은 내 페이스로 내 길을 가야겠다. 아마도 남은 정맥은 산악회를 따라 가지 않고 홀로 대중교통 혹은
차를 몰고 다닐 듯하다.
양재에서 하차하며 유박사님께
또 언제 보냐고 묻자,‘5월에 보자녀’한다. 여러 모로 유박사님에게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진다. 정맥 길이 일상화되었나
보다. 노력하는 자를 당해낼 순 없다. 새삼 놀라고 또 감사한
하루였다. ㅎㅎ
첫댓글 그제 칠장산을 끝으로 한남금북을 무사히 마쳤네요. 우중산행이었으나 몽환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
축하드립니다. 대단 하십니다. 그 열정 감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