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서설(論語集註敍說) 1
논어집주서설(論語集註敍說)
史記世家曰 孔子名은 丘요 字는 仲尼라 其先은 宋人이라 父는 叔粱紇이오 母는 顔氏이니 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十一月庚子에 生孔子於魯昌平鄕鄹邑하시다
사기세가에 가로대 공자의 이름은 구요, 자는 중니라. 그 선대는 송나라 사람이라. 아버지는 숙량흘이오 어머니는 안씨이니, 노나라 양공 22년 경술년(기원전551년) 11월 경자일에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공자를 나셨다.
※ 字義 ○ 紇 : 사람 이름 흘, 질 낮은 명주실 흘 郰 : 고을 이름 추 ○ 先代는 殷나라 ○以: 날짜 앞에 쓰는 조사
※ 강의 설명: 송 微子- 微中-송공- 정공신-양공희- 弗父何 厲公 - 宋父周- 세자승-정고父-공父가 -木金父- 방숙- 백하-숙량흘 – 공자 ○字는 親之之辭
공부가때 華督에게 눌려서 노 나라로 들어옴
叔梁紇 추읍의 대부 부인: 施氏(딸만 9명) 孟皮- 아들없고 딸만
顔徵在 尼丘山
孟僖子 孟懿子 남국경숙
爲兒嬉戱에 常陳俎豆하고 設禮容하며 及長에 爲委吏하여는 料量平하시고 -委吏,本作季氏史。索隱云:「一本作委吏,與孟子合。」今從之- 爲司職吏하여는 畜蕃息이라 -職,見周禮牛人,讀爲樴,義與杙同,蓋繫養犠牲之所。此官卽孟子所謂乘田。-適周하야 問禮於老子하고 旣反而弟子益進이라
어려서 놀이를 할 때에는 항상 제기를 늘어놓고 예용을 베풀었으며, 장성함에 위리(창고지기)가 되어서는 요량(회계)을 공평하게 하시고, - 위리(委吏)는 본래 季氏吏로 되어 있으니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一本에 委吏로 되어 있으니 ⟪孟子⟫와 부합한다.’ 하였으므로 이제 이것을 따른다 – 사직리(司樴吏: 희생으로 쓸 牛羊을 맡아 기르는 관리)가 되어서는 번식하게 기르셨느니라. -직(職)은 ⟪周禮⟫<牛人>에 보이는바 직(樴)으로 읽으니, 뜻이 익(杙:말뚝)과 같으니, 희생을 매어놓고 기르는 장소이다. 이 벼슬은 바로 ⟪맹자(孟子)⟫의 이른바 승전(乘田)이라는 것이다.- 주나라에 가서 老子에게 예를 묻고, 이윽고 돌아와서는 제자가 더욱 늘어났니라.
※ 字義 ○ 嬉戱: 즐겁게 희롱하며 놈, 소꿉놀이
昭公二十五年甲申은 孔子 年三十五이라 而昭公이 奔齊하여 魯亂하니 於是適齊하시어 爲高昭子家臣하시니 以通乎景公하시니라 -有聞韶、問政二事- 公이 欲封以尼谿之田이나 晏嬰이 不可라 하니 公惑之라 -有季孟吾老之語- 孔子遂行하여 反乎魯하시니라
소공 25년 갑신년(기원전 517년)은 공자 나이 35세라. 소공이 제나라로 달아나 노나라가 혼란하니 이에 제나라로 가시어 고소자(제나라 대신)의 가신이 되시니 써 경공에 통하셨느니라. -<齊나라에 계시면서>소악(韶樂)을 들으시고 <景公이 孔子께> 정사를 물은 두 가지 일이 있다. - 경공이 이계(尼谿)의 田(토지)으로써 봉하려 하였으나 안영이 불가하다 하니 공이 미혹되었느니라. -<齊나라 景公이 공자를 대우하며 말하기를 “季氏 같이 대우함은 내 하지 못하겠으나>季氏와 孟氏의 중간으로 대우하겠다.”하고는 “내가 늙었으니, <그의 말을>쓰지 못하겠다.”라고 한 말이 있다. - 공자가 마침내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셨느니라.
※ 字義 ○ 奔 : 달아날 분
定公元年壬辰은 孔子 年四十三이라 而季氏强僭하고 其臣陽虎가 作亂專政故로 孔子不仕하시고 而退修詩書禮樂하시니 弟子彌衆이라
정공 원년 임진년은 공자 나이 43세라. 계씨가 강하며 참람하고 그 가신인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치를 오로지 하는 고로 공자가 벼슬하지 아니하시고 물러나 詩・書와 禮・樂을 닦으시니 제자가 더욱 많아짐이라.
※ 字義 ○ 元年 : 전왕이 6월이전에 돌아가시면 원년 卽位年: 6월 이후에 돌아가시면 당해년은 즉위년이 되고 다음해가 원년.
九年庚子는 孔子 年五十一이라 公山不狃 以費畔季氏하고 召孔子하니 欲往而卒不行이시니라 -有答子路東周語 -定公이 以孔子로 爲中都宰하니 一年에 四方이 則之하니라 遂爲司空하시고 又爲大司寇하시니라
(정공) 9년 경자년은 공자 나이 51세라. 공산불뉴가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부르니 가려 하였으니 마침내 가지 못하셨느니라. - 子路에게 <나를 써 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東周를 만들겠다고 대답한 말씀이 있다- 정공이 공자로써 중도의 재상으로 삼으니 일 년 만에 사방이 본받았느니라. 마침내 사공이 되시고 또한 대사구가 되셨느니라.
※ 字義 ○ 中都宰 : 중도는 지명이므로 중도의 수령. 지명+宰 = 수령, 인명+ 宰 = 가신
○司空 :건설부 차관정도 – 아무것도 없는 것을 다루니 건설관계 ○大司寇: 국방장관
○以 A 爲 B A를 B로 삼다.
十年辛丑에 相定公하여 會齊侯于夾谷하시니 齊人이 歸魯侵地하고
(정공) 10년 신축년에 정공을 도와 제나라 군주와 협곡에서 만나시니 제나라 사람들이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고,
十二年癸卯에 使仲由로 爲季氏宰하니 墮三都하고 收其甲兵이나 孟氏 不肯墮成하니 圍之不克이라
(정공) 12년 계묘년에 仲由(字는 子路)로 하여금 계씨의 가신이 되게 하여 세 도읍의 성을 허물게 하고 그 갑옷과 병기를 거두게 하나 맹씨가 성(城邑)을 허무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니 포위하여(포위하여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느니라.
※ 字義 ○ 墮 : 떨어질 타, 여기서는 '무너뜨릴 휴' ○ 三都 -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의 각 성(郕), 후(郈), 비(費)성
十四年乙巳에 孔子 年五十六이라 攝行相事하시어 誅少正卯하시고 與聞國政하시니 三月에 魯國이 大治라 齊人이 歸女樂以沮之하니 季桓子受之하고 郊又不致膰俎於大夫한대 孔子行하시니라 - 魯世家에 以此以上皆爲十二年事이라-
(정공) 14년 을사년은 공자 나이 56세라. 재상의 일을 대신하시어 소정묘를 베시고 국정에 참여하여 들으시니 3개월만에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짐이라. 제나라 사람들이 여악(기녀)을 보내어 막으니 계환자가 받았으며 교제에 또한 대부에게 膰俎번조(제사지낸 고기)를 주지 아니하니 공자가 떠나셨느니라.- <史記><魯世家>에는 이이상을 모두 12년의 일로 삼았다.
※ 字義 ○ 荀子 유좌 尹文子 大道 殺少正卯 ○ 歸 : 선물 饋를 가차하여 쓴 것.
금나라 왕약허- <五經辯疑>
청: 여약거 <경전석지> 최술<수사고신록> 양옥성- 사기지의 = 소정묘를 죽인적 없다.
벌준 것이다" 라고 주장. 康樂舞- 80명의 무희들이 무대를 이룸 강악무
適衛하사 主於子路妻兄顔濁鄒家하시다 孟子作顔讎由 適陳過匡하시니 匡人이 以爲陽虎하여 而拘之하니라 有顔淵後及文王旣沒之語 旣解還衛하시어 主蘧伯玉家하사 見南子하시다. 有矢子路及未見好德之語
위나라에 가서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서 주인을 정하셨느니라(머물렀느니라).-⟪맹자⟫에는 안수유(顔讎由)로 되어 있다- 진나라를 가실 적에 광땅을 지나시니 광땅의 사람들이 양호로써 여겨 억류하였느니라. -<공자가 광(匡)땅에서 경계하는 마음을품고 계실 적에>안연(顔淵)이 뒤에 떨어져 있었던 일과 “文王이 이미 별세하셨으니, 文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라는 말씀이 있다.- 이윽고 풀려나 위나라로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거하시며 남자를 보았느니라. -<孔子께서 南子를 만나보시자, 子路가 기뻐하지 않으니,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하시리라. 하늘이 나를 싫어하시리라.”라고>자로에게 맹세한 말씀과 德을 좋아하기를 女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자를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있다.-
※설명: 匡땅: 송땅과 광땅에서 양호(계씨의 가신) 가 약탈을 하니 공자를 양호로 오인하여. 顔剋이 마부 광땅사람이 안극이 양호의 가신이었는데 양호로 알고 포위. 7일간 포위
衛 靈公의 부인이 南子(= 부인인 小君을 만나야 하는 도리) 부인이 먼저 만날것을 청함.자로가 만류함.
去適宋하시니 司馬桓魋가 欲殺之하니 有天生德語及微服過宋事又去適陳하시니라 主司城貞子家하시고 居三歲而反于衛하시나 靈公不能用하니라 有三年有成之語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가시니 司馬인 桓魋가 죽이려고 하니 - “하늘이 나에게 德을 주셨으니, 환퇴(桓魋)가 나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씀과 미복(微服)으로 송나라를 지나간 일이 있다.- 또다시 떠나 진나라로 가셨느니라. 사성정자(司城貞子)의 집을 주인으로 삼으시고 삼년을 거하시다가 위나라로 돌아오셨으나 영공이 능히 등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孔子께서“만일나를 등용해 주는 자가 있다면 1년만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니,> 3년이면 정사가 이루어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한 내용이 있다.
司馬桓魋 = 상구 송나라의 집정관
蘧 : 풀이름 거, 魋 : 사람이름 퇴, 몽치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