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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충성의 원칙
설교본문: 고전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설교일시: 2015년 1월 18일 주일 11시예배
설교장소: 한소망교회
설교분류: 새해를 맞아 제직(청지기)의 소명을 위한 설교
원본화일: 충성의 원칙_한소망교회설교_김태복 원로목사.hwp
저는 오늘 한소망교회식으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한소망교회 교인들은 2015년 새해에 주님을 향한 한 소망 안에서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영육간의 큰 복과 큰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히 이성원 목사님과 몇 번 만나 뵈니 순수하시고 인품도 좋으실 뿐 아니라 설교도 잘 하시고 글도 잘 쓰시는 너무나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목사님을 모시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참으로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약수교회에 제직수련회 인도차 다녀왔는데 그 교회 선임장로님이 지금 반년동안 담임목사님을 모시려고 애쓰고 있으나 좋은 분을 만나지 못해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소망교회는 지금은 너무나 어려운 형편이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귀한 목사님과 더불어 적극 협력하여 힘쓰신다면 교회가 크게 부흥발전 하는 한 해가 될 줄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 고전 4:1~2 말씀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관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충성하지 않는 청지기, 놀고먹는 청지기는 얼마나 한심합니까?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제직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고 젝직들이 기도할 가장 큰 제목도 충성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처처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폭우와 폭설, 기근과 지진, 테러와 국제분쟁, 에볼라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 번져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은 말세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24:44-46에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재림 시에 칭찬받을 자와 책망 받을 자의 차이는 주님이 맡겨 주신 일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주님은 과거에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가를 보지 않으시고 바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간에 충성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제직들은 교회가 영적인 직장인 줄 아시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충성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어느 분은 열심히 충성한다고 하는 일이 교회와 목회자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충성의 원칙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성에는 일곱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원칙을 잘 배우시고 그에 따라 충성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직분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남긴 자들에게 하나같이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책망을 받은 것은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고 충성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때로 교회에서 중직을 선출할 때에 많은 분들이 대단히 열을 올리는 것을 봅니다. 여기저기 전화하는 사람도 있고 노골적으로 식사대접하면서 선거운동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직분, 즉 무슨 장로직이나 안수집사직, 혹은 권사직이나 무슨 기관의 회장직은 서로 하려고 열을 올리지만 각 기관의 무슨 부장직이나 구역의 권찰직, 안내위원이나 헌금위원, 주차위원이나 식당봉사 등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합니다. 아주 잘못된 충성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달란트, 큰 직분을 맡기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맡겨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큰 건물이라도 벽돌 한 장부터 쌓여 가고 아무리 높은 태산이라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회자는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제법 큰 교회에 부임하였으나 몇 년이 못 되어 사임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부교역자 경험이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이 목회 실패의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좀 더 많은 달란트를 맡기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한 젊은 청년이 위대한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 Morrison) 박사를 돕기 위하여 중국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선교회에서는 청년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선교사로서는 적합치 않습니다. 모리슨 박사의 일꾼으로 갈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낼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청년 같으면 ‘선교사로 지원한 사람을 잡부 취급을 하다니, 선교회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라면서 화를 내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 좋습니다. 선교사의 자격이 못 된다면 심부름꾼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나무도 팰 수 있고 물도 기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청년은 후에 중국 선교사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밀른(Milne) 박사인 것입니다.
한소망교회 제직과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신년도에 맡은 직책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충성에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2. 중심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또 어느 분은 어느 목회자가 담임목사일 때는 열심히 충성하더니 그 목회자가 떠나고 나니까 슬그머니 충성을 멈추고 맙니다. 그리고 자기가 충성을 멈추고 있는 것은 현재의 목회자 때문인 양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바른 충성의 자세가 아니다. 진정한 충성의 자세는 사람이 보든지 말든지, 칭찬이 있든지 없든지, 중직으로 뽑아 주든지 말든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충성하는 자인 것입니다.
3. 은혜 갚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충성을 할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충성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 더 큰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우리 자녀들이 부모에게 정성껏 효도를 할 때 유산을 목적으로 한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갚으려는 사랑의 빚진 자세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 때에 감격이 있고 새 힘이 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자세로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상급을 아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채필근 목사의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일꾼들이 이웃 동네 부잣집에 가서 며칠 품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품삯을 다 받고 내일이면 떠나는 날 밤이었습니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부자 영감이 난데없이 모두를 깨우더니 ‘여보게들, 급히 쓸 일이 있으니 노끈 좀 꼬아 주게.’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는 불평하기를 ‘아니, 인색한 영감 같으니, 모두에게 품삯을 다 준 다음에 이런 잡일을 시키다니’하면서 하는 둥 마는 둥 마지못해 노끈을 꼬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일꾼은 정성껏 꼬았습니다. 다른 일꾼들은 ‘자네 이집 사위가 되려고 그렇게 열심인가?’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튿날 아침에 부자 영감이 큰 그릇에 엽전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더니 그 동안 너무나 수고했다고 하면서 각자 꼰 노끈에 엽전을 꾀어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게을렀던 일꾼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일처럼 정성껏 노끈을 꼬았던 일꾼은 품삯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법칙인 것입니다.
4. 맡겨 주시는 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큰 달란트를 맡기든지, 작은 달란트를 맡기든지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맡은 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아니,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내가 저 사람들과 무엇이 부족한가? 이렇게 사람을 차별대우해도 되는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때로 교회 안에서 보면 ‘나는 장로감인데, 나는 권사감인데 저 사람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선출해 주지 않다니 우리 교회는 썩었어.’라고 울근불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 나가서는 담임목사에게 화살을 돌려 마구 공박하고 사사건건 트집 잡기 일쑤입니다. 그러한 자세로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도 없으시고, 설령, 그런 마음으로 중직을 맡는다 할지라도 교회에 도움은커녕 교회 성장에 방해자가 될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어느 위치에 있던지 교회에 나오는 순간 모두 잊어버리고 교회에서 맡겨 주시는 대로 충성할 때, 하나님이 점점 강하게 쓰실 것입니다.
일본 고지교회 다가오까 겐끼지 장로님은 1889년부터 네 차례나 국회의장을 역임할 정도로 사회적인 신분이 대단한 분이지만 교회에 오면 얼마나 겸손하게 충성하는지 문에 서서 안내하면서 교인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대학교 총장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교회에 나와서 저녁까지 손수 청소를 하고 주차 안내를 한다고 하니 너무나 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한소망교회 제직과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이 무슨 일을 맡기시든지 충성을 다하시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성령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합니다.
왜 많은 충성자들이 열심히 충성하다가 시험에 들어 울근불근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됩니까? 인간의 열심만으로 할 뿐 성령을 따라 충성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각각 지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체의 역할만 맡기지 않으시고 그 지체로서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롬 12:5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고 하면서 6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습니다. 어느 분은 가르치는 은사를, 어느 분은 예언의 은사를, 어느 분은 섬기는 은사를, 어느 분은 위로의 은사를, 어느 분은 구제의 은사를, 어느 분은 다스리는 은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염소의 은사를 받았는지 목회자와 교회를 향해 가시 노릇을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너무나 괴로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어느 날 멀리 이사를 가서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합니다. 그런데 보라. 어느 날 보니 대타가 나타나 ‘내가 여기 있사오니’하면서 가시노릇을 대행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충성한다고 했지만 번번이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일 수 였습니다. 십자가 사건 때는 모든 제자들이 도망자가 되었고 수제자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비겁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떠한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충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직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할 일은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년 새해 이 귀한 직분을 맡기셨는데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아오니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을 쫓아 충성하여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섬기는 자세로 충성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 잘못된 풍조는 맡은 자와 맡긴 자의 관계라는 생각입니다. 맡긴 자는 장로요, 맡은 자는 목사라는 생각을 가진 교회도 많습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가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갈아 치웁니다. 또 어느 교회는 어느 목사가 창립했다고 해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조금 바른 소리하는 이가 나타나면 공개적으로 ‘내가 싫으면 이 교회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면 목사는 설교라는 무기로 사정없이 내려치고, 장로는 재정이라는 무기로 위협하면서 사례금을 여러 달 주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입니다. 섬기려는 정신을 가지지 않는 충성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아무 열매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직분자들에게 권고하기를,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마20:26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는 진정한 섬김의 자세를 보여 준 분이 계셨습니다. 전북 김제시에 있는 금산교회 예배당에는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조덕삼은 지역의 유지였는데 1904년 테이트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기 집 사랑채에서 금산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반면 이자익은 17세에 고향을 떠나왔다가 조덕삼을 만나 마부로 일하던 머슴이었습니다. 조덕삼은 이자익을 마부로 일하도록 도왔을 뿐 아니라 학업과 신앙생활을 하도록 선처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금산교회는 장로 장립투표를 하게 되었고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지금도 자녀들이 결혼할 때 양반 상놈을 따지는 가정이 많은데 지금부터 100 년 전에는 머슴이 감히 주인과 경쟁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덕삼은 양반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세운 분이어서 장로로 피택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금산교회가 큰 시험에 빠질 일이요, 목회자가 사임할 위기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술렁이는 성도들을 향해 조덕삼은 말하기를 “금산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청년은 저보다 신앙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를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덕삼은 자신의 머슴을 장로로 섬겼을 뿐 아니라, 그가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목사안수를 받은 그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습니다. 제직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더욱더 섬기려는 자세로 충성하길 바랍니다. 하늘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7.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죽도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크리 다나투’로 ‘죽을 때까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시작하는 날부터 죽을 때까지 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연초에는 충성심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열매 맺는 가을쯤 가면 충성의 자리에서 사라지므로 열매 없는 무화과 꼴이 되고 만다. 가장 귀한 충성은 한결같음에 있습니다. 연초에서부터 연말까지, 젊어서부터 늙는 날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② “죽도록”이란 말에는 ‘사력(死力)을 다해’라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죽을힘을 다해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흔히 결과를 보고 공과(功過)를 따지지만 하나님은 결과도 중요시 여기시지만 그 과정을 또한 중요히 여기십니다. 만약에 다섯 달란트를 맡았던 사람이 열 달란트를 남겼을지라도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책망하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 달란트를 맡았던 자가 최선을 다해 충성을 하다가 한 달란트마저 잃었다 할지라도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③ “죽도록”이란 말에는 어떤 환경에서도 ‘순교적인 각오로’라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계 2:10은 앞으로 큰 환난이 닥쳐와 큰 고난을 당할 것을 예고하면서 그런 때가 오더라도 순교적인 각오로 충성하라는 권고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편안할 때는 열심히 충성하다가도 조금만 시련이 닥치면 충성을 멈춥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을 맡기시든지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상과 복을 주실 것입니다.
과거 평양 산정현교회에는 유계준 장로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처음 마펫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 얼마나 열심인지, 자신의 집에서 미림교회를 설립했고, 평앙 숭덕학교 재단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비용을 교육사업에 투자했으며, 또 양로원도 세우는 등, 사회사업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신사참배와 창씨개명도 반대할 정도이고 몰래 독림운동자금도 많이 보내고 독립군을 몰래 재워줄 정도로 애국자였습니다.
자기 교회의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 가정을 음으로 양으로 돌봤을 뿐 아니라, 주기철 목사가 옥에서 순교를 당하시자, 일본 순사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게 했으나 유 장로가 모든 비용을 대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6․25 사변이 나자, 자기 가족과 함께 8남매, 그리고 주 목사의 유족까지 모두 월남시키고 자기는 교회를 지키겠다고 남았다가 순교를 당한 분이었습니다. 참으로 죽도록 충성한 분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교회, 불우할 이웃을 위해 물질을 아끼지 않은 유계준 장로에게 많은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식이 없었으나 신자가 된 이후에는 8남매를 주셨는데 6명이 의사가 되었고 4남 유기천만 법학박사로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차녀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빈 박사의 부인이자 전 숭실대학교 총장인 유기숙 박사입니다.
사랑하시는 한소망교회 제직들과 성도 여러분들이여,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한 일꾼들의 후손은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시는 줄 믿으시고 신년 새해 충성을 하되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라도 충성을 다하심으로 다 칭찬과 면류관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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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이날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직의 자세와 충성의 의미를 잘 짚어주셔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강사비도 사양하시고 오히려 베풀고 가셔서 송구할 뿐입니다.
목사님같은 원로 목사님과 덕소에 함께 산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늘 강건하시길 빕니다~
한소망 교회에 귀하신 김태복 목사님 초청설교 들을 수 있는 기회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설교하신 충성의 일곱가지 원칙을 마음 깊이 각인시켜서~~~~
믿음 생활의 중심을 삼아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홍익교회를 개척하시고 그 교회에서 32년을 목회하신
원로목사님의 말씀향기가 큰 은혜로 한소망교회를 가득 채웠습니다.
김태복 목사님이 뿌린 말씀의 씨앗이 100배의 결실 맺기를 기도합니다.
더욱이 최재희 사모님과 함께 예배 드릴 수 있어 더욱 감사했습니다.
저도 큰 은혜 받았음을 감사합니다.
김 태복 원로목사님은 역시 소문대로 그 모습이 풍기는 주님의 향기를 뵙자마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최재희 사모님 역시 그런 훌륭하신 워로목사님의 사모다운 모습! 성령중에 닮은 꼴을 틀림없이 주님은 우리 한소망교회 가족들에게 참되고 가슴에 크나큰 감화감동 주시는 말씀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은 결코 충성을 죽도록 하기위한 일곱가지 원칙을 잊지않고 간곡히 가 르쳐주신대로 목숨을 다하여 실행함을 맹서하오며, 오찬에 동참하여 대접의 예를 가추지 못한 죄인을 용서하시기를 끝으로 기도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두 분 성령으로 거듭나신몸! 백년의 해로를 간구하면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