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생은 지워져도, 아기는 안되는 나라"(법과 정치. 토론입론서)

[류재수]

"여성 인생은 지워져도, 아기는 안되는 나라"

이재은 기자

입력 2018.08.30. 06:05

"여성 인생은 지워져도 되고 아기는 지워지면 안되는 나라, 한국."

"여자는 사람이 아니고 세포는 사람이다."

"국가에서 책임져주지 못할 것이면서… 그냥 아이를 낳아서 방치하라는 말인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관련 기사 베스트 댓글 중)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수술) 한 의료인을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 여론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와 산부인과 의사들 저항이 크고, 여성들 반대 목소리도 높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부령 제587호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일부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를 위반하고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것이 돼 자격정지 1개월 행정처분을 받는다.

◇산부인과의사회 "낙태 수술 전면 거부한다… 복지부, 사회적 혼란 감수하라"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전면적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거부'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가 초강수 개정안을 시행하는 만큼 산부인과 의사들도 실질적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낙태 수술을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28일 산부인과의사회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김동석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장은 "불법 낙태의 원인 및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임신중절수술 음성화를 조장해 더 큰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비도덕한 의사로 낙인찍혀가면서 1개월 자격정지 처벌을 당할 수는 없다"며 모든 낙태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이미 산부인과 전문의 회원 1800명 중 91.7%(1651명)가 '낙태 수술 처벌 강화 고시가 강행될 경우 낙태수술 거부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형법 위반이므로 공식 통계는 없지만 매년 약 30만건에 달하는 낙태 시술이 진행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낙태 수술 거부가 실현될 경우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매년 30만명씩 생기게 되는 셈이다. 산부인과의사회도 이를 지적하며 "이제부터 발생하는 낙태 수술 전면 중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혼란의 책임은 복지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수술 기록 남기지 않으려는 의료기관이 현금 결제 요구 △위험 부담 명목으로 턱 없이 높은 수술비 요구 △위생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불법 시술소 난립 △ 모성 사망 증가 △원정 낙태 알선 브로커 난립 △간장·뜨거운 메밀묵을 먹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등 '자가 낙태' 빈번 등의 낙태수술 음성화가 만연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태어나는 신생아 수)이 높아지지만 동시에 돌봄노동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늘어나면서 유아사망률이 증가하거나 버려지는 아이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통해 1966년 루마니아가 임신중절 금지법을 시행한 뒤 이 같은 사회적 폐해가 나타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 중절수술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낙태죄 처벌 규정의 근거가 되는 모자보건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현실과 괴리가 있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당장의 입법미비 해결에 노력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유예하는 게 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 "밀실 법 제정 의혹 밝혀라… 애꿎은 여성 환자들만 피해"

시민단체는 정부의 밀실 법 제정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정부와 산부인과간 갈등에 애꿎은 여성 환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항변한다.

지난 25일 오후 종로구 보신각에서 제16차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시위를 연 여성단체 비웨이브(BWAVE·Black wave)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이 여성의 기본권인 임신중단권을 탄압하며, 입법예고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비웨이브 측은 또 "복지부는 이번 개정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입법예고절차를 무시했다. 적법한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여성인권을 탄압했다고 본다"면서 이번 법 개정이 밀실입법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복지부는 2016년 9월22일 불법 낙태 수술을 하는 의사는 자격정지 기간을 최장 12개월로 늘리겠다고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여론이 높아지자 재검토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는데, 갑자기 이 같은 개정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성명서를 통해 "2016년 입법 예고 당시 낙태죄 폐지에 대해 반발 여론이 높자 복지부는 재검토하겠다며 개정안 논의를 슬그머니 미뤘다. 그런데 이 시국에 예고도 없이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개정안은 현재 헌법소원으로 존립의 기로에 서있는 형법 270조 1항을 명시했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단체들은 이 개정안 시행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건 낙태 시술이 시급한 여성들이라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의협은 "복지부가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법과 제도를 방임하는 것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낙태가 지연될수록 모체의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어 시의적절하게 안전한 방법으로 시술을 받는 게 중요하다. 결국 의료인이 파업해 복지부의 개정안에 대응하는 건 여성들 입장에선 퇴행적인 조치가 가중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체는 "정말로 복지부의 개정안을 바꿔내고자 한다면 이 개정안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여성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비웨이브도 "산부인과의사회가 임신중단수술을 전면 중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건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한 남성권력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산모의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낙태죄 폐지 찬반 양측은 '산모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주요 쟁점으로 두고 논의 중이다.

지난 5월2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형법 제270조 제1항(동의낙태죄)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에서도 청구인 측과 이해관계인 측 양측은 각각 "무리한 낙태처벌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립했다.

하지만 두 가치가 상충한다고 보는 관점에 대해 지난 20일 헌재에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변호사 209명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헌법재판소가 별다른 헌법적 근거도 없이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형법이나 민법에서는 태아가 출생한 경우 또는 진통이 시작된 경우부터 권리의 주체, 인간으로 보는 것이 이미 논란이 없는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사들은 이 의견서를 통해 "현행 형법이 여성의 모든 임신중절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재생산권, 자기결정권,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기본권 역시 침해하고 있다면서 "형법상 방조범 규정에 따라 남성이 여성과 함께 병원에 가거나 수술비를 부담하면 남성도 처벌받게 되므로, (낙태죄가) 여성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토론학습지(토론입론서)

대회명		토론대회					일시	2018. 9. 6.
소속(학교)				팀명			토론자
논제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수술) 의사의 1개월 자격정치 행정처분 타당하다
논의 배경		보건복지부는 2017년 9월 17일 보건복지부령 제587호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일부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를 위반하고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것이 돼 자격정지 1개월 행정처분을 받는데 이러한 처벌이 타당할지 논의가 되고 있다.
용어의 정의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수술) : 인공임신중절수술"이란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수술을 말한다. 진료행위(診療行爲) : 의료인이 진찰(診察)하고 치료(治療)하는 행위. 행정처분(行政處分) : 행정 주체가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행하는 공법 행위 중의 권력적 단독 행위. 자격정지(資格停止) :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자격의 전부나 일부를 정지시키는 명예형
			찬성			반대
논점1	주장		1. 낙태는 엄연한 현행 형법 위반이다.			1. 지금까지 사문화되어 있었다.
	논거		낙태는 현행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의 규정에 의한 범죄행위로 처벌대상이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현행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지금까지 거의 사문화되어 적용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처벌하지 않다가 처벌하는 것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어긋난다.
논점2	주장		2. 인명경시의 풍조를 낳을 수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			3. 태아보다는 산모를 우선해야 한다.
	논거		무분별한 낙태는 인명 경시의 풍조를 낳을 수 있고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아직 태어 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보다는 산모의 생명과 신체가 우선되어야 한다.
논점3	주장		3. 성적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			무리한 낙태처벌 조항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
	논거		낙내를 자유롭게 허용하면 지금보타 더 무분별한 성적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			아기를 낳는 문제는 임부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참고 사항

형법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제251조(영아살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