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좌.우 개념의 출발
정치의 좌(Left)/우(Right)라는 개념의 효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됬습니다. 루이 16세 왕을 지지하는 계층-귀족계급(제 1신분), 카톨릭 사제계급(제2신분)이 국왕의 오른쪽 줄에 앉았었고, 공부는 하여 머리가 깬 지식층이엇으나 신분상 장사치 부모나 아전계급에 속했던 이들이 평민대표(제 3신분)로 갈려서 앉아있었지요. 이 것이 왕이 주재하는 국회격이었는 데, 세 계급이 참여하는 회의라 하여 3부회의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당시 평민계급이란 정치용어속에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기 쉬운 일반 서민들은 끼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빵굽는 쟁이, 구두수선공, 마부들, 노동자 농민들, 생선이나 고기를 칼로 써리는 푸줏간 쟁이, 요리하는 cook(요지음 chef로 각광받고 있는 직업)등은 감히 제 3계급 (평민 계급)에도 끼지 못한 무계급-무산계급(Proletariat)였지요.
그런데 정작 프랑스 혁명을 성공시킨 것은 이들 Proletariat(무산계급층)입니다.
절대왕정 타도 혁명 수뇌부는 18세기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인 몽테스큐(Montesquieu), 루소(Rousseau), 볼테르(Voltaire) 디드로(Diderot)의 수제자들인 당톤(Danton),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생.쥬스트(Saint Just), 마라(Marat)등이었지만, 식칼을 들고 나온 푸줏간 쟁이들 , 쇠시랑, 낫, 도끼등을 들고 나온 농민 데모가 파리시내를 휩쓸며 양반놈들 다 죽인다고 날뛰는 바람에 구 왕정질서가 무너진 것이지요.
그것이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무산대중(Proletariat)을 128년이 지난 러시아에서 역시 머리가 깬 레닌(Lenin)등 공산주의자들이 활용하여 1917년 러시아 니콜라스 2세 왕조를 무너트리는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키지요.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혁명 자체는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모태가 되나, 혁명의 열매면에서는 두 나라가 완전 딴 판으로 갔지요. 프랑스는 공화국과 왕정복고를 거듭하긴 하였지만 종국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꽃 피는 나라로 성장, 전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풍요로운 자유 민주국가가 되어 사랑과 존중을 받고있고, 러시아는 여전히 공산국가로서 주변을 위협하는 존재로 남아, 유유상종이라고 북한.중국과 여전히 한패로 행동하고 있는 중이고.....
1789년 프랑스 혁명당시 왕을 중심으로 오른 쪽에 앉았던 신분계층을 우파(La Droite/the Right)라 했고, 왕 왼쪽에 앉았던 신분계층을 좌파(La Gauche/the Left)라 한데서 오늘의 좌.우 파라는 개념이 발생했는 데, 이래로 이 말은 우파는 왕당파, 귀족층, 부유층, 고위 성직자 및 공직자, 군간부층, 법관층등 시회보수층으로 알려진 잘사는 계층들이 속해, 우파 또는 우익(La Droite/the Right)이라
하여 우익이라면 의례히 개혁보다는 안정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반면, 좌파/좌익(La Gauche/the Left)에는 지식인 층, 서민층, 중소상공인층,
지주농 아닌 소작농층, 하위 샐러리 계층 등 금수저 아닌 흑수저로 태어난 계층이 속했읍니다. 사회학적으로는 가진자(the Have-Class)는 우파에, 못가진 자(
the Have-Not Class)는 좌파 진영으로 분류됬읍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분류이나, 의당 우파에 속해야 할 귀족출신이 프랑스 혁명당시 좌파와 같이 행동한 사람들도 있었는 바,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미라보(Mirabeau) 백작이었읍니다. 그는 귀족출신 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오히려 같은 귀족층들에 대해 원한이 많아, 귀족들이라고 거들럭 거리던 사회상류층이 자기처럼 폭싹 모두 폭싹 망해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 개인적인 열등의식에 차있었던 것이지요.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리카도(Ricardo)는 잘사는 귀족출신이었으면서도 경제정책은 서민을 위하는 경제정책을 주장하였고, 인구론의 저자 말사스(Malthus)라는 경제학자는 그 자신 우리와 다를바없는 흑수저 출신이었는 데도, 애기를 배서 배가 불룩해진 서민 임산부들을 보면, 먹을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새끼들만 줄줄이 낳는다고 핀잔주면서 임산부 배를 쿡쿡 찌르는 못된 행동도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일괄적으로 출신만 가지고서는 그가 좌파다 우파가 이렇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정치학에서나 사회학에서 통념상 좌.우 파에 속하는 계층을 위에서 설명드린대로 그렇게 구분한 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프랑스 혁명후 좌파와 우파간은 서로 저펀이 죽어야 내편이 살게된다는 계급 투쟁 양상으로 변질되, 혁명후 좌.우 파간의 목슴건 좌.우 파 간 대립으로,
국민들이 진저리를 내고, 제발 이제 정파끼리 싸움질 좀 그만 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정부, 안정적인 국가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열망이 일어났읍니다.
그런 국민의 열망은 강자의 출현을 기대했읍니다. 정치센스가 탁월했던 파리 수도경비사령관 격이던 나폴레옹(Napoleon)장군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부를 세워 막강한 독재권력을 행사하지요.
헌데, 권력욕이란 권력에 맛을 들이면 스스로 억제할 수 없었듯, 군사 쿠데타로 집권 총통에 올라 강자가 되고 나서도 나폴레옹 장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황제(Emperor)에 취임합니다.
바로 얼마전 국회비례 대표 의원만 4번 했다는 더민주당 대표 김종인씨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다섯번째 하기위해서 그 자신을 비례 2번으로 셀프 추천하자
노욕이다, 염치가 없다고들 법석이었었는 데, 권력에 맛들이면 그렇게 염치도 자제력도 없어진다는 것은 일찌기 나폴레옹이 잘 증명했었지요.
그런데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각층이 걸핏하면 좌파.우파로 양분되어,
두 사람만 모이면 서로 의견이 갈려 도통 무슨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투쟁만 있지 타협이 없는 외곬문화는 프랑스 병의 하나였읍니다
이에 정치제도를 고처서 제3당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자, 그 제 3당은 좌.우 중간위치에 자연 위치하게 되었고, 두 거대 좌.우 양당사이에서 완충제 역할을 했읍니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이런 중간지대의 제 3당이 존재하여, 정치가 생산적으로 운영되고 있읍니다.
이 중간지대 정치성향을 Centrist/Center Wing(중도파)라 부르는 데, 정치의식수준이 발달된 유럽에서는 중도파라 하면, 아주 신뢰가는 믿음직한 상류 지식인들이 주로 속해있는 정당으로 인식되지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용맹무쌍한 남성 사회였다고, 사내가 태어났으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 중도가 뭐냐? 중도란 사꾸라다 하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 재야원로로 교육부총리를 하셨다는 지도층 인사마저 얼마전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을 사꾸라로 모는 걸 보고 아찔했읍니다만, 그 분 눈에는 야당이라면 죽어라하고 여당과 박터지게 싸워야 야당아니냐 이런 인식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읍니다.
그런데, 살아보면, 그런 분들 일수록 군에도 안가려 하고, 진짜 남자로서 해야할 용기있는 행동은 별로 보여주지 못하더군요.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은 정치를 생산적으로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요 청량제 역할을 하지, 사꾸라 가 아닙니다.
일본말 사꾸라 라는 말에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데, 하나는 한통속 바람잡이 라는 의미고, 둘째는 벚꽂을 의미 합니다.
한국 정치권에서 표현하는 사꾸라 라는 표현은 첫 번째 사꾸라 의미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정치문화가 발달된 유럽선진국 사회의 시각은 다름니다.
유럽인들에게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막아주며 항시 신선한 정책 아이디어로 작지만 정국을 리드해 가는 중도 제 3당을 나라의 균형을 잡아주는 든든한 기둥으로 인식합니다.
어두운 겨을잠을 자고 나온 국민들에게 화사한 희망의 봄 기분을 전달해 주는
진짜 벚꽃(사꾸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도 경제수준이나 시민의식 수준을 볼때, 여.야 만나기만 하면 밤낮
박터지게 싸워야 직성이 풀릴때는 지나지 않았을까요?
Lyceum 칼럼
첫댓글 2001년도 내가 핀란드 대사로 재직중이었을 때,
얼마전 작고하신 이만섭 국회의장께서 핀란드를 공식방문했었다.
대사 관저에서 환영만찬을 하면서 대화는 자연히 유럽정치로
옮아갔다. 프랑스 政博인 내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셨던
이의장께서는 날더러 한국에 언제 나오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정치에서의 좌,우개념의 태동경위와 그 이후 역사적 전개양상에 대하여,
교양강좌를 한번 해달라고 요청하셨다.
의장은 자신은 물론 한국 국회의원들이 유서깊은 선진 유럽 정치문화에 대해 필히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이의장도 나도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