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이전의 바울
V. 바울의 그리스도론
바울의 사상 안에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바울의 신학중의 그리스도론은
A)선재(先在)하시는 아들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갈2:20; 3:26; 고후 1:19; 엡4:13) 혹은 "그분(즉 아버지)의 아들" (살전 1:10; 갈1:16; 4:4. 6; 고전1:9; 롬 1:3,9; 5:10; 8:3, 29,32; 골 1:13)이라 부른다.'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유대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때 그 칭호가 내포하는 지배적인 사상은 하나님께서 임무를 띄워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소명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마태21:28~31) 아들 됨의 히브리적 개념이 신약성서가 그 칭호를 그리스도께 적용을 근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 2:6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등"(to einai isa theo) 한 분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그 외에 바울이 예수님을 '아들'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대목들은 단지 그분의 신적 선택과 그분의 아버지의 구속계획에의 완전한 헌신을 표명한다
바울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모든 기능적 구원론(functionai soteriology)을 초월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고전 15:24~25,2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Kyrios로서 통치하실 구원 계획의 끝장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때에 "아들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도 만물을 당신의 발아래 두신 그분께 복종하실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보통으로 그리스도께 부여된 역할을 서술하는 기능적 의미로 사용하지만 대로는 그리스도의 기원과 그분의 아버지와 가지신 특수한 관계를 표명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그 외에도 바울은 롬9:5에서만 예수님을 하나님(theos)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영광송(doxological formula) 롬 1:25; 고후11:31; 엡4:6)을 로마서 9:5에서는 예수님께 전용한다. 이처럼 하나님(theos)이라는 칭호를 드물게 예수님께 적용한 이유는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ho theos)은 성부를 가리키며(고전8:5~6)또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신성을 믿으면서도 성부를 가리키는 칭호(ho theos)를 그리스도에게 부여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바울이 받았을 것이다. 삼위 일체의 교리는 후기에 발전한 것이다(딛2:13; 딤전3:16)
B) 주님(Kyrios)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에 비하여 '큐리오스'라는 칭호를 현저하게 더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은 '큐리오스'가 바울의 작품안에서 예수의 출중한 칭호임을 말해준다.
큐리오스는 로마황제를 가장 높이는 칭호였다. 이 칭호는 우선 황제의 정치적이고 법적인 우위성을 가르치지만 도한 지중해 동부지방에서는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바울은 '큐리오스'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에서 물러 받았고 (롬10:9 고전12:3신앙고백 문이 그것을 암시한다. 바울이전 예루살렘 팔레스티나 유대 기독교 공동체에는 사용했다
'큐리오스'가 70인역에서 야훼께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그 당시의 신들이나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음을 감안할 때 바울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선교 노력을 할 때에 이상적인 칭호였음이 틀림없다.
바울이 예수께 '큐리오스' 칭호를 적용할 때 예수님이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상태에서 인간들에게 현실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옥중서신에있어서 '큐리오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주적 역할을 하셔서 권세들과 능력들을 무장해제시킨것이다(골2:15)교회의 단합이 성취되는 것도 그 큐리오스를 통해서이라는 것이다(엡4:5 2:21) 큐리오스는 그리스도교 신자 개별적으로도 관계가 있다. 바울은 자기 자신과 모든 개별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를 큐리오스이신 그리스도의 종(doulos)으로 간주한다.(갈 1:10; 롬1:1; 고전7:22)'큐리오스인 예수님께 메임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집(我執)에서 해방되고 타인들을 위하여 자유스럽게 된다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 4:7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W.G Kummel은 '큐리오스'를 주 그리스도에게 하는 신앙고백은 하나님 자신을 통하여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포괄적인 의미에서 주 예수와의 만남을 통하여 변화된 그리스도의 실존을 뜻하며 도
"주"로서의 호칭을 부활하신 분으로부터 지상의 예수에게로 돌렸으며 그런 후에 선재 하신 분에게도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인간 예수도 함께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 예수와 부활하신 주님사이에 끊어지지 않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VI. 초대교회의 평화 사상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엡2:14)이심을 고백한다. 로마서 3:25~26에서 바울이 인용한 원시 초대교회 신앙고백에서 예수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고백하고있다.
바울의 평화사상도 전적으로 기독론과 구원론에 그 뿌리를 근거하고있다. 예수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세상사이의 종말론적 '화해'가 이루어 졌다고 보고 따라서 예수를 "화해자"로 선포하고 (롬5:40; 고후5:18~21)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화해를 맺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고(롬3:22)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신 (고후 5:18~19)'평화의 하나님'인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자기의 대속적인 고난과 피와 죽음으로써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든 가로막힌 담을 헐고 원수 됨을 해소하신 하나님의 종말론적 "대화해 중재자"요 '평화'그 자체이다(엡2:14)
VII 마무리하는 말
사도바울은 일차적으로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예루살렘에서 형성되어 내려오는 원시 교회 신앙공동체의 전승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선재 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큐리오스'를 통해서 바울의 신앙관을 더듬어 볼 수 있었으며.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옆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속에서 평화의 나라를 일꾸어 나가야함이 우리의 과제이다
첫댓글 큐리오스 평화의 주님
십자가의 전달자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너와 내가 아닌 우리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