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예찬
최문희
나의 골프입문을 떠올리면 긴‘상실의 시간’이 떠올라 씁쓸하고 처량한 마음이 된다.
흔히들 자식이 고3이 되면, 하던 운동도 취미도 다 뒤로하고 오직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나는 골프채를 훠어이 훠어이 휘두르며
밖으로 나가야 했으니, 새삼 그때가 아픔으로 다가온다.
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국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잘나가던 사회생활이었지만, 40의 중반에 서 있던 나의 가슴은 휑 비어 있었다 .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여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한 남편은
초고속 승진으로 그 누구 부럽지 않은 위치에서 잘나가고 있었다.
마음먹으면 안되는 것이 없었고 잔뜩 호기와 자만 속에 빠져 자신만의 세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가정과 자식의 의미를 알기에는 무리였으리라
그의 호사와 환락의 세계가 화려하면 화려 할수록 나의 삶은 어이없는 상실의 나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골프 입문은 이러한 나락에서 나를 구제하고 안식을 가져다 준 유일한 탈출구 였다.
노여움과 상처를 녹여내는 행위였으며 ‘망각의 마법’ 속으로 인도하는 통로였다.
처음부터 기량과는 상관없이, 라운드의 시작과 끝이 종료되는 긴 시간동안 모든 것을 철저히 잊어버리는 ‘망각의 시간’에 탐닉되고 있었다.
잊지말아야 될 현실의 모든 과제들까지 잊어버리며 노여움을 녹여냈다.
성性의 열락도 마약과 도박의 유혹도 골프처럼 유쾌한 망각과 긴 무아無我의 시간을 제공받을 수 없으리라.
행위의 몰입 속에서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며 세상 시름과의 완벽한 단절이 가능함을 어찌하랴
성性은 강렬한 엑스터시ecstasy를 가져오지만 대상에 대한 노여움과 갈등 속에서는 그 절정의 도달이 불가능하다.
또한 마약과 도박은 멸망과 폐혜로 갈 뿐이지 않는가,
지금도 생각해보면, 위로의 방편으로서 골프를 선택한 것은 행운으로 여겨진다.
엄연한 질서에 따라 변하는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때를 따라 느끼며 피폐한 영혼을 닦아 낼수 있었고, 절제를 수련했다.
공존의 의미를 고민하였고, 관조와 배려를 천착하려 애썼다.
골프의 모든 과정은 마치 인생의 부침浮沈과 같아서,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규칙의 엄연한 숙지와 준수, 정직에 대한 자기시험, 트러블에서의 우직한 지혜, 경쟁심의 승화, 함께하는 지기知己와의 예의, 좋은 결과를 위한 일정한 자기정돈과 침착, 자신의 타수에대한 준엄한 기록과 타자에대한 불간섭, 타인의 플레이를 음미하고 진정어린 찬사를 보내는
여유,
기량과는 별개로 인간적 성숙이 그대로 드러나는 운동이기도하다.
나는 그 속에서 자유롭고, 그 속에 나를 기쁘게 뛰놀게 한다.
30년 가까운 나의 골프인생을 예찬하고 싶다.
적절히 게으름을 허락하는 운동이며, 삭막한 정서와 영혼을 찬란한 자연 속에서 휴식하게 하니 말이다.
나의 골프커리어를 돌아보면 참 요란스럽다.
연구소 재직중에 제한적이던 나의 골프는 25년의 연구원 생활을 퇴직한 첫해, 일년 중 삼백 번 필드를 나가는 화려한 유람이 시작되었다.
마약 중독자처럼 부킹이 없는 날이면 안절부절 금단 현상까지 나타나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30여 명의 동호회를 만들어 20년 넘게 회장으로, 뚝섬. 발안. 올림픽등 퍼브릭을 순회하던 초보에서, 태국의 치앙마이, 칸차나부리, 써제임 ,콰이강줄기 인근 골프장 순례, 말레이시아 겐팅하일런드, 에이파모사, 딕슨베이. 브룽뚱등~~~
홍콩. 마카오, 캘리포니아 테미큘라, 하와이 와일레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인근 골프장 순례등 어지간히도 많은 곳을 다니며,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었다.
국내 골프장은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길고 화려한 나의 골프 인생은 조금의 상실도 후회도 허락치 않는다.
완벽한 정신적 몰아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준 행위였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아쉬움이 크다.
점점 골프 동행 할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
가까운 지기들이 하나 둘,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이런저런 여건이 안되고,~~~
새삼 동행할 사람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러한 갈급은 나를 서글프게 한다.
언제까지 나의 골프 인생이 지속될까!
아직은 아쉽지 않은 비거리도 있고, 90 전후 기록은 어렵지 않은데,
새삼 긴 세월동안 안식의 시간을 가져다준 골프를 예찬할 뿐이다.
쓰디쓴 시간들을 구원 하였으니---
골프만이 나의 영원한 panacea(만병 통치약)였음을 고백한다.
나는 오늘도 필드 나갈 내일의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끝 -
최문희 | 2018년 『문예바다』 신인상으로 등단.
계간 문예바다 편집 위원, 영어강사
한국 기계 연구원 수석 연구원겸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