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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달
Ⅰ
때는 조선왕조 숙종 연간[*그냥 해보는 얘기지 고담(古談)에 무슨 연대가 있을까마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어느 따뜻한 늦봄 아침참 무렵이었다.
겹것을 새로 갈아입은 듯 의표(儀表)가 단아하여 끼끗함이 엿보이는 한 영감이 성문을 나서서 두어 마장 한가롭게 길을 걷다가 어느 모롱이를 막 돌아선 참이었다.
그가 무심코 앞을 바라보니 멀찍이 인적이 드물고 양지바른 길가에 소달구지가 서 있고, 그 위에 웬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발을 옮겨 그곳까지 당도한 그 영감은 그 달구지에 타고 있던 사람이 하는 괴이쩍은 행동에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차마 못 볼 것을 본지라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반드시 어떤 곡절이 있으리라[必有曲折] 싶어 발길을 되돌렸다. 슬며시 다가선 그 영감은 차마 그 사람을 똑바로 정시(正視)하지 못한 채 말을 건넨다.
"나는 남산골 사는 이 생원이라는 늙은이인데, 젊은이는 지금 거기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요?"
바로 곁으로 다가온 사람의 인기척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이상한 짓을 계속하고 있던 그 젊은이는 한참만에야 흠칫 놀라면서 황망 중에 옷깃을 여미고 정좌(正坐)를 하는 것이다.
"시생(侍生)은 말죽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몰락한 향반(鄕班)의 후예로서 벼슬길을 찾아 여러 차례 과거 길에 나섰으나 번번이 낙방(落榜)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세(家勢)가 씻은 듯이 가난하여[赤貧如洗] 반가(班家)의 자제라는 체면을 무릅쓰고 나무를 해서 성안에 내다 팔아 늙으신 편모(偏母)를 봉양하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중[企命圖生], 지난밤에는… ."
젊은이의 눈에서는 회한에 찬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씀이오나 그래서 시생은 지금 신달(?)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젊은이로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다 듣고 난 그 영감도 그의 기구한 운명에 절로 목이 멘다. 그는 자기가 풍편(風便)에 들으니 나라에 경사가 있어 조만간 별시(別試)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파다(播多)하더라면서, 혹시라도 그런 방문(榜文)이 나붙게 되거든 청운의 뜻을 펴보라는 덕담(德談) 한 마디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진다.
"지난번 낙방(落榜)의 고배를 마신 지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또다시 별시라니! 믿을 수 없는 인사치레의 말이겠지."
Ⅱ
그날도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뉘엿할 때까지 나무를 팔지 못하고 짐바리만 그냥 끌고 다니다가 허희탄식(歔欷歎息)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쇠고삐를 돌려 당기려는 참이었다.
그때 마침 곁의 골목길에서 비복(婢僕) 행색을 한 계집 하나가 쪼르르 튀어나오더니, 용마루가 길쭉한 것이 제법 부명(富名)깨나 날리고 사는 성싶어 보이는 한 여염집을 가리키면서 그 집으로 나뭇동을 들여놓으라는 것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그렇지 않아도 문에 기대어 동구 밖을 내다보면서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릴[倚閭而望] 노모를 생각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억장이 무너지던 판에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라며 적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나뭇동을 들여놓고 막 돌아서려는데 그 계집은 나무값은 줄 생각도 하지 않고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소맷귀를 잡아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녀는 손[손님]을 안으로 정중히 모시라는 주인아씨의 전갈(傳喝)이 있었다며 앞장선다.
견문이라곤 전혀 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인 가난한 나무꾼에게는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그저 낯설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촌닭이 관청에 간 격[村鷄官廳]’이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서 있는 것일까? 도무지 백일몽(白日夢)을 꾸는 것만 같다. 몸종은 민첩하게 몸을 놀려 목욕물을 데운다, 갈아입을 새 옷 일습(一襲)을 내 온다 법석을 떨었다. 이러한 번다한 수속이 끝나니 규모와 꾸밈이 예사롭지 않은 내당(內堂)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눈 들어 맞은편 벽을 바라보니 수묵담채(水墨淡彩)의 문인화(文人畵)와 진경산수(眞景山水) 한 폭씩 걸렸는데, 화제(畵題)가 또한 볼 만하다.
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 望廬山瀑布(李白)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 멀리에 폭포는 강을 매단 듯,
물줄기 내리 쏟아 길이 삼천 자 /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
방 안에 들어서니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질박한 문양과 은은한 태깔을 한 의장(衣欌)·경대 등속이며, 주인의 품성을 가늠케 하는 수택(手澤)이 반드르르한 서안(書案)·문갑 따위의 목물(木物)이 즐비하고,
鳶飛於天 魚躍于淵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네)
이라는 고졸(古拙)한 대필(大筆)의 곡병(曲屛) 한 점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에 그윽하게 코에 스치는 지분(脂粉) 냄새에는 여인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었다. 좌불안석(坐不安席)하며 다가올 일들을 어림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기를 한참, 박명(薄明)으로 번하던 완자창[卍字窓]에는 어느덧 어둠이 깃들고 물형(物形)을 아로새긴 등경(燈檠)에는 불이 밝혀진다. 불빛을 통해서 눈에 들어오는 분위기가 자못 몽환적(夢幻的)이다.
Ⅲ
얼마가 지났을까? 이윽고 만반진수(滿盤珍羞)의 주안상(酒案床)을 계집종에게 들려 앞세우고 한 여인이 다소곳이 이마를 숙이고 방에 들어선다.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삼단 같은 머리에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서 금비녀를 꽂아 쪽 찌어 놓으니 서릿발 같은 아름다움이 감히 범접(犯接)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 한다. 삼회장(三回裝) 녹색 저고리에 앞섶에는 보패(寶貝) 노리개요, 잘잘 끌리는 다홍치마는 외씨 같은 버선 등을 살짝 가린다.
雲想衣裳 花想容
(구름 보면 그대 의상 생각나고, 꽃 보면 그대 얼굴 떠오르네)
명모아미(明眸蛾眉)에 단순호치(丹脣皓齒)라더니 말로만 듣던 화용월태 (花容月態)요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따로 없다. 타고난 미색에 세월의 더께가 곱게 내려앉으니 농염(濃艶)한 자태가 한결 빛을 더하는 것 같다. 항아(姮娥) 같은 얼굴에 스치는 구름처럼 얇은 수태(愁態)가 끼니 내뿜기보다는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더욱 뇌쇄적이고 고혹적이다.
손을 저어 몸종을 내보내더니, 여인은 짐짓 교태(嬌態)를 누르며 한쪽 무릎을 세워 섬섬옥수 가녀린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살포시 마주 앉는다.
여인은 먼저 규방(閨房)에 있는 아녀자의 몸으로 외간 남정네를 불러들인 무례에 용서를 청하면서 백배사죄(百拜謝罪)한다.
그리고서는 먼저 무릎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옥잔(玉盞)에 술을 가득히 따라 객례(客禮, *손에 대한 예의)로 일배(一杯)를 권한다. 그러니 나그네 또한 반배(返杯)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리하여 합환주(合歡酒,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처럼 오간 수작(酬酌)으로 서먹함과 낯설음이 어느 정도 가셨다
이어 여인이 실타래 풀어내듯 쏟아내는 사연인즉 이러하였다.
양가(良家)의 규수로서 명문가(名門家)의 자제와 혼례를 치렀으나 팔자가 기박하여 기년(期年, *만 1년)을 못 채우고 지아비를 여의었다. 아무리 규중(閨中)의 아녀자라 한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받들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 *제(齊)의 충신 王燭의 말]'는 가르침을 어찌 가벼이 할 수 있으리오.
반가(班家)의 가풍과 법도가 지엄할 뿐 아니라, 망부(亡夫)에 대한 인간적인 정리(情理)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지라 비록 청상(靑孀)으로 종신수절(終身守節)하여 정문(旌門)까지는 바라지 못할지라도 십 년 내에 훼절(毁節)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시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한 후 삼 년 거상(居喪)을 마쳤으며, 근검절약으로 선부(先夫)를 대신하여 가계(家計)를 선영(善營)하였을 뿐 아니라, 비복(婢僕) 등 아랫것들을 부덕(婦德)과 법도로 다스려 무너져 내리는 가통(家統)을 추슬렀다. 이렇게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망부의 지어미로서, 그리고 지체 있는 반가의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에 온힘을 쏟으면서[盡心竭力] 십 년을 여일(如一)하게 지내왔다.
그러구러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바로 엊그제 망부의 십주기 제사를 마쳤다. 이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한 마당에 무슨 회한이나 거리낄[忌諱] 일이 더 있으랴! 이제는 전통과 인습, 그리고 인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의 여인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에 또한 남정네라 하여 지난 세월에 대한 신산(辛酸)한 회포가 어찌 없으랴. 청운의 꿈을 안고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운수가 비색(否塞)하여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서[窮人之事 每事不成] 급기야는 일개 초부(樵夫)로 전락하게 된 경위에 이르기까지의 포한(抱恨)을 구구절절이 풀어낸다.
거듭되는 수작으로 주기(酒氣)가 올라 거나해진 남정네와 홍조(紅潮)를 띤 여인이 어둠을 구실 삼아 천정배필인 듯 만단정화(萬端情話)를 나누는 사이에 화촉동방(華燭洞房)에 봄밤은 깊어 삼경(三更)이 되었다. 손을 저어 불을 끄니 사위(四圍)가 정적이다.
Ⅳ
여인은 홀로 돌아앉아 껍질 벗는 뱀인 양 서럽게 환원(還元) 의식을 치른다. 아스라이 기억 밖으로 사라졌던, 그래서 지워졌던 것으로만 여겼던 그 첫날밤의 기억이 도지는 상흔(傷痕)처럼 아린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잊겠다는 의지 하나로 지워낸 문신(文身)을 몸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 순간 여인에게는 만감(萬感)이 교차된다. 어쩌면 서러움의 바탕 위에 아쉬움, 낯 설음, 부끄러움 등의 무늬가 엷게 교직(交織)된 태깔 고운 비단 같은…
그러나 여인은 머리를 흔들어 지난날의 인연을 애써 털어 낸다.
여자의 변신(變身)!
이때 먼저 침소에 든 이 남정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직도 호접몽(胡蝶夢)을 꾼 장주(莊周)처럼 나무꾼과 신방에 든 신랑 사이를 헤매면서 혼란을 겪고 있었을까?
아니면?
‘(전략)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후략)’
그가 오늘을 사는 로맨티스트였다면 우리 시대의 귀 밝은 시인 김광균의 <설야(雪夜)>라도 한 수 마음속으로 읊조렸으리라.
여인은 옷을 벗어 윗목 한 쪽에 개켜두고 미끄러지듯 원앙금(鴛鴦衾)에 파고든다. 흥분으로 달뜬 여체는 이미 불덩어리가 되었다. 억눌렸던 욕정이 집 채 같은 파도로 밀려오는가 하면, 이글거리는 활화산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가 백인(百仞) 폭포가 구천(九天)에서 내리꽂히듯 떨어진다. 천붕지괴(天崩地壞)의 파천황(破天荒)이요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이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의 피 튀기는 쟁투(爭鬪)요 폭우 속에 승천(昇天)하는 교룡(蛟龍)의 몸부림이다. 여인은 이미 광기(狂氣)에 사로잡혀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렀다.
사리재, 붓끝이 무뎌 곰살갑게 그리기 어려운 위에, 혹시나 금이라도 밟으면 좌시(坐視)하지 않겠다며 눈을 부라릴 독자들의 눈총에 지레 주눅이 들어 여기서 잠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백미(白眉)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한 수로 짐짓 숨을 돌리고 넘어가기로 하자.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정(情)둔 오날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경경(耿耿) 고침상(孤枕上)애
어느 자미 오리오
서창(西窓)을 여러하니
도화(桃花)난 발(發)하두다
도화(桃花)난 시름업서 소춘풍(笑春風)하나다 소춘풍(笑春風)하나다(후략)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정둔 오늘 밤 더디 새어라 더디 새어라.
근심 싸인 외로운
베갯머리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여니
도화가
피어나도다.
도화는 시름없어 봄바람에 웃는구나, 봄바람에 웃는구나.)
* 인터넷 오픈 백과에서 전문 따옴
치솟는 불길을 잡으려는 듯 덩달아 허둥대는 남정네의 모습이 가관이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막 나누려는 데, 목 타는 격정과는 달리 남정네로서의 구실이 어쩐지 신통치 않다.
글줄이나 읽은 고루한 선비의 도덕군자연(道德君子然)하는 위선 때문일까? 하기는 청정불가(淸淨佛家)의 엄격한 계율에도 불구하고 원효(元曉)도 성속(聖俗)의 경계를 넘나들면서까지 혼자 사는 요석공주를 꾀기 위하여 미치광이 행세로 저자거리를 쏘다니며
“누가 내게 자루 빠진 도끼[*혼자 사는 요석공주를 비유]를 빌려주려나.
내가 하늘 받칠 기둥[*낳을 아들 설총을 암시]을 찍어내리라.”
라는 속요(俗謠)를 불러 신라 굴지(屈指)의 현인인 설총을 얻지 아니했던가!
거듭된 시도에도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 양물이 그저 야속할 뿐이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식이 없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얼굴은 수치심에 홍당무가 된다.
십 년의 수절 끝에 켜켜이 쌓인 한과 굶주린 욕정을 채워보려던 ‘원초적인 본능’이 수포로 돌아간 여인네의 낭패감과 감질나고 안타까운 마음 또한 어찌 한 붓으로 다 그리랴[一筆難記]!
잠 못 이루고 전전반측(輾轉反側)하는 중에 오경(五更)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동창이 번하게 밝아오는데 늦잠이 들었던가. 눈을 떠서 바라보니 창호지에 배인 춘광(春光)이 방안에 넘실대고, 곁을 살펴보니 다행히 그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엊저녁 일이 한 바탕 봄의 꿈[一場春夢]이었구나!
몸종이 내온 조반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대문을 나서는데, 주인아씨가 손에게 전하라고 했다면서 그녀는 적잖아 보이는 전대를 건네준다.
Ⅵ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에 역시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를 팔러 성안에 들어갔다가 강구(康衢)[*사방팔방으로 통하는 번화한 큰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서 무언가를 쳐다보는 모습이 그 나무꾼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언젠가 그 남산골 이 생원이 지나가는 덕담으로 던지고 간 별시(別試) 방문(榜文) 이 붙어 있지 않은가!
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 埋骨豈期墳墓地 人間到處有靑山
(사나이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네.
배움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도 아니 돌아가리.
뼈를 묻는 데 어찌 묘 자리를 기약하리요.
발길 이르는 곳마다 이 한 몸 묻을 청산이야 없으랴.)
가망성이야 희박한 일이지만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 그래도 접었던 청운의 꿈을 다시 한 번 펼쳐보았으면 하는 욕구가 불현듯 일어난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과거 날짜가 돌아오자 모처럼 다가온 기회를 혹여 놓칠세라[千載一遇 勿失好機]라 이 나무꾼도 발걸음을 서둘렀다. 과장(科場)에 당도하니 경향에서 청운의 뜻을 안고 내로다 하는 선비들이 구름같이[雲集] 몰려들것다. 등용문(登龍門) 앞에선 젊은 선비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덩그러니 내 걸린 과제(科題)로 쏠린다.
‘腎 撻’
사서삼경를 비롯한 동서고금의 전적(典籍)을 두루 섭렵하여 위로 천문(天文)에 통하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꿰뚫어[上通天文 下達地理] 모르는 바가 없다고[無不通知] 할 천하의 제제다사(濟濟多士)이건만, 어디에서도 과제(科題)로 내 걸린 이러한 문구를 본 적이 없는지라 처음에는 아연(俄然) 놀란 표정들이더니 점차 당황하고 낭패한 모습이 역연(歷然)하다. 땅띔도 못해보고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단연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휘갈기고 과장(科場)을 나서는 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거기 시지(試紙)에 적혔으되,
‘當其動不動 當其不動動’
이라… 딱 열 글자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진 선비는 다름 아닌 그 나무꾼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에 탁방(坼榜)이 났는데, 그 나무꾼의 이름이 덩그레 나붙은 것이다. 단 혼자 급제(及第)한 것이니 굳이 장원(壯元)라 할 것도 없으렷다. 벼슬아치의 손에 이끌려 임금님께 알현(謁見) 차 대전(大殿)에 들어갔는데,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 젊은이에게 주상(主上) 전하는 어수(御手)를 내밀어 어루만지시면서 위엄 있고 자애로운 옥음(玉音)을 내리신다.
“그대는 고개를 들어 과인(寡人)을 보라.”
살포시 고개를 들었다가 그 젊은이는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옥음을 듣고서,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싶은 음성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이 있었는데, 용안(龍顔)을 뵙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언젠가 지난밤의 일로 해서 신달을 할 때, 남산골 이 생원이라면서 별시가 있으리라던 덕담을 하던 그 영감님이 아닌가! 이 어른이 바로 미복(微服) 차림으로 민정을 살피기 위해서 미행(微行)하시던 주상 전하라 생각하니 일순 머리가 텅 비고 현기가 느껴진다. 이 선비는 부끄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이기지 못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떤다.
전하께서는 협시(挾侍)를 받으며 급제한 선비를 위하여 별전에 배설한 주연에 납시는데 수종(隨從)하는 고관대작이 구름 같았다. 주상께서는 좌정하신 후에 등대하던 벼슬아치에게 무언가 분부를 내리신다.
잠시 후, 한껏 성장(盛裝)한 젊은 여인이 나인에게 이끌려 살포시 고개를 숙인 채 들어온다. 삼단 같은 머리를 반듯하게 가르마로 갈라 묵중한 용두잠으로 쪽을 찌었는데, 동백기름이 반드르르 하게 윤기를 낸다. 삼회장 녹색 저고리 앞섶에 매달린 노리개에는 보패(寶貝)가 일렁이고, 잘잘 끌리는 다홍치마는 버선코를 가렸다.
감히 고개를 들어 다시 정시(正視)할 수는 없는지라 뚜렷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한 번 본 듯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전하께서는 손수 옥배(玉杯)에 하사주(下賜酒)를 가득 따라서 선비에게 내리시면서, 반가(班家)의 자제라는 지체를 무릅쓰고 나무를 해서 팔아 편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지극한 효성과, 간난(艱難)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는 그 용기를 거듭 격려하신다.
“과인이 전에 미복으로 민정을 살피던 중 한 젊은이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사실을 알아보라 일렀더니 ---.”
이 젊은이는, 일찍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나 정쟁(政爭)에 희생되어 누명을 쓰고 피화(被禍)한 명상(名相)의 후예이고, 또한 어명으로 불려나온 이 여인도 선왕 때 정승을 지낸 분의 손녀로서, 그 조부의 주선으로 동료 정승의 손자와 양연(良緣)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조(父祖)의 일로 해서 거의 멸문지환(滅門之患) 속에서 초목 서리에 떠도는 몸이라 신원(伸寃)이 된 줄도 모른 채 노모가 그 근본을 숨기는 바람에 이 젊은이는 자신의 신분을 그저 몰락한 향반의 후예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전사(前事)를 세세하게 들려주시던 주상 전하께서도 만감이 교차되는 듯, 더 이상 옥음을 잇지 못하고 용안에는 낙루(落淚)의 흔적이 보인다. 이어서 주상께서는 잠시 옥체를 바로잡으신 후, 근엄하게 어명을 내리신다.
“과인은 그대들의 선대에서 선왕과 사직에 끼친 빛나는 공훈을 살피고, 또한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륜의 도리를 다한 장한 정신을 기리고자, 열성조께서 경국(經國)의 근본으로 삼은 개가 금지법(改嫁禁止法)을 권도(權道)로 풀어 양인이 가연(佳緣)을 맺도록 명하니, 과인의 충정을 헤아려 향후 노모를 더욱 효성으로 받들어 여생을 편히 지내도록 하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라[盡忠報國].”
하잘것없는 나무꾼을 위해서 별시까지 마련해주시고, 국금(國禁)을 풀어 양연을 명하시다니! 그저 “성은(聖恩)이 망극하오이다.”라는 말씀 이외에 달리 황감(惶感)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다.
사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다시는 떠올리기도 끔찍한 악몽이었다. 지난밤, 남정네 구실을 못해서 겪었던 치욕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인데, 봄 꿩이 제 울음 때문에 죽는다더니[春雉自鳴], 구실을 못했으면 그저 고개 숙이고 국으로나 있을 일이지 간신히 호구(虎口)를 벗어나서 두어 마장도 채 못나가서 봄볕이 따뜻하다고 자발머리없이 막무가내로 양기가 발동하니 이놈의 채신머리없는 양물을 징치(懲治)하지 않고 어이할꼬! 그래서 막 신달을 하던 차에 바로 이 남산골 이 생원으로 변성명(變姓名)한 주상 전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온 몸의 터럭이 쭈뼛하게 서고 등골에 진땀이 흐르지만[毛骨悚然] 어찌 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삼일유가(三日遊街)를 나섰것다. 사개((賜蓋)를 높직이 받치고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준수한 젊은 선비가 삼현육각(三絃六角) 어우러진 가락 속에 말을 타고 거리를 돌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앵삼(鶯衫) 위에 상아대(象牙帶)를 두르고 머리에는 복두(幞頭)에 어사화(御賜花)가 꽂혀 있고, 발에는 흑혜(黑鞋)요 손에는 상아홀(象牙笏)이라.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어제의 간고(艱苦)한 나무꾼의 모습은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구나.
그 이후 성은(聖恩)을 입어 편모께 못 다한 효성을 다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살았다는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해피엔딩으로 이 객담을 마감하기보다는 읽는 이의 판단을 위하여 여백으로 남겨두고 싶다.(끝)
後記
1. 한자 문맹 세대를 위해서 작은 친절을 베푼다.
* 신달(腎撻)은 우리말 사전에는 안 나오는 말이다. ‘腎’자는 옥편 한 번 찾아서 속뜻을 챙겨보기 바란다. ‘撻’자는 회초리질, 채찍질한다는 뜻.
용례(用例) : 해구신(海狗腎), 교편(敎鞭)을 잡다. 편달(鞭撻)을 바란다.
* 당기동부동 당기부동동(當其動不動 當其不動動)
응당 움직여야 할 때에는 움직이지 않다가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을 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엇박자로만 나가니 매를 맞을 수밖에.
2. 이 얘기는 창작은 아니다. 원전(原典) 없이 그저 구전(口傳)으로만 떠돌아다니는 고담일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금년에 아흔 하나 되신 필자의 큰 외숙으로부터 들은 얘기의 줄거리에 살을 붙여본 것이다.
큰 외숙께서는 큰누님이신 내 자친(慈親)께서 노환으로 위중하시자 문병 차 우리 집에 오셨다가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져 하룻밤을 유하시기로 하고, 나와 숙질이 밤을 새웠다. 이 신달은 잠을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료하게 지샐 수도 없는 처지라 총기가 좋으신 외숙께서 심심파적으로 생질에게 들려주신 옛날얘기다.
3. 벌써 한 사오년 전 일이다. 늦가을 어느 날, 가까이 지내는 몇 분과 단풍 구경 핑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홍․광천지역쯤 지날 무렵이었다. 모처럼 나서는 나들이라 처음에는 승용차가 떠나갈 듯 왁자지껄하더니 수다가 차츰 잦아들면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운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단방약(單方藥)을 마련해야 할 터인데 도무지 화제(和劑)가 마땅치 않았다. 부득이 20여 년 전 선비(先妣)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큰 외숙으로부터 한 번 들은 바 있는 ‘신달표’ 약 방문(方文)을 들고 나와 위기를 모면했다. “재미있다”는 말에 속아(?) 정말 그런 줄 알고 살을 붙여서 전에 한번 인터넷 카페에 올렸던 글을 다시 손을 보았다.
4. 언젠가 나에게 ‘신달’을 들려주신 큰 외숙께 이 글을 출력해서 한 부 드렸더니 몇 가운데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하시며 바로잡아 주셨다. 그러나 아무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도 당신 생각에 너무 난(亂, 음란)하다는 언짢음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어 부끄러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필력이 대한하십니다. 책으로 내시기 바랍니다.
고전소설 한 권 읽은 듯 합니다. 어른들 가시기 전에 자주 찾아뵙고 구전설화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요즘들어 부쩍 당신 어릴적 이야기를 많아 하시는 어머니께 녹음기 들고 찾아뵈어야겠네요.
하잘것없는 객담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에 '신달' 이외에도 문경 새재에서 한밤중에 길을 잃어 헤매다가 接神(?)한 후 땅속이 환히 들여다보여 大旱으로 쩍쩍 갈라진 땅을, 지니고 있던 말채찍으로 끄적거리면 물길이 솟구쳤다는 이 문경 집 마부 곰쇠 이야기, 자매가 한 남자에게 許身하게 된 사연이 있는 쌍매당 이야기 등이 있는데, 그후 몇 번을 다시 여쭤봐도 줄거리가 끊어지고, 노쇠하셔서 말씀이 분명치 않아 소재로 삼기가 어려워 안타까워한 적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박선생님도 열심히 채록해 보십시오. 좋은 문화적 자산이 됩니다.
이야기 구전에도 때와 장소가 있어서 말씀 잘 하시다가도 쓰잘데 없는 지나간 이야기라고 입을 다무시기도 하니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 꺼내시게 말벗해 드리고 머리에 잘 담아두어야지요. 돌아서서 메모해두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하구요.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한자도 해석해주시고 감사합니다 훌륭한 고전이야기 많이 담아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