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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캉가(5,846m) 원정기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짧은 일정으로 히말라야 트레킹과 등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대상산을 찾았다. 등정 자료가 부족했다. 쉽게 도전했다가 다들 포기한 기록들이다. 역시 산은 고도가 아니라 태도일 것이다.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대원들의 훈련을 독려하다 보니 어느새 출국일이 다가왔다.
9월 27일(광주-인천-방콕-카투만두)
지방에서는 인천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오르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원정대 짐이 많다 보니 버스 화물칸에 짐을 쑤셔 넣기 위해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광산구 연맹 회장님과 동생의 배웅을 받고 공항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아직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지만 9명의 대원들은 각자 부푼 꿈을 안고서 긴 새벽을 지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화물 오버차지는 물지 않았고 우리의 일정은 순탄할 듯 보였으나,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7시간 환승 대기는 모두를 지치게 할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물론 직항을 탔더라면 좀더 편하게 카투만두에 입성할 수 있었겠지만 트레킹 시즌과 명절이 겹치다 보니 항공료가 3배 이상 차이가 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비상구는 있었다. 의무를 담당했던 오현우 대원이 나름 좋은 카드가 소지하고 있다 보니 동반자까지 공항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어서 잠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긴 신세계가 아닌가? 또한 미리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쿠폰을 구입해 온다면 식사 및 샤워, 휴게까지 해결되니 굳이 공항 내에서 불편하게 환승을 기다리는 청승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현지 시간으로 시차를 이겨내며 긴 비행 끝에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 드디어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준비해둔 비자 서류를 접수한 뒤 입국 수속을 밟았다. 7년 만에 오는 네팔이라 많이 변해 있을 거란 건 착각인 듯 여전히 입국심사대에서의 늦장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공항을 나서기도 전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갈덴 셀파는 내가 처음 히말라야를 찾았을 때 요리사이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는 한결같이 화환을 목에 걸어주며 우리를 환영해 주고 축복해 주었다. 나보단 한 살이 어리지만 든든한 친구다.
그와 함께 변화된 트리부반 공항 주변을 돌아보며 숙소로 이동 후 드디어 하루의 여장을 풀었다.
9월 28일(카투만두-사부르베시)
낯선 이국땅에서 잠자리 때문일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잠에서 깨어 호텔 주변을 서성여 본다. 호텔 주변이 낯설지가 않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직선으로 아래쪽에 마헨드라 왕 동상이 세워진 회전 구간 주변이다. 대형버스 진입이 가능한 저렴한 숙소로 알아본 곳인데 익숙한 곳이라 친근감이 감싸는 아침이다.
우리를 사부르베시까지 이동해 줄 버스가 도착했다. 층고가 높아 오프로드도 거침없이 오를 수 있을 듯 듬직해 보였다. 빠듯한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서둘러 현지 등반 가이드와의 미팅을 인사로만 마무리할 즈음 산누 셀파가 보였다. 이제 산누 셀파는 네팔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등반 가이드이다. 수십 번의 에베레스트 등정뿐 아니라, 히말라야 8000미터를 3곳만 더 오르면 히말라야 14좌를 3바퀴를 도는 전후 무후한 기록을 가지게 된다. 그런 그와 옛 추억을 곱씹으며 짧은 조우를 하고서야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육중한 몸을 삐거덕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 있긴 했지만 냉방이 된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높은 곳을 올라야 할 때는 결국 힘이 달려서 인지 악몽을 선사 했다. 어느 정도 시내를 지나가니 우리와 함께할 짐꾼들이 차에 올랐다. 잠시 내려 버스 지붕에 짐을 싣는 걸 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꾸말 구릉이다. 그와 다시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마나슬루에 후배를 찾으러 갔을 당시 등반 가이드가 많아서 현지인 요리사로 왔었는데 이번엔 그동안 한국 요리가 많이 늘어 우리 팀 요리사를 자처했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얼마 전 일어났던 “Gen Z 시위”의 상흔을 잠시 보여주며 시내를 관통해 북으로 향했다. 시바푸리나가르준 국립공원을 엿가락처럼 관통하는 도로는 전형적인 네팔의 도로 사정을 보여주며 느림 속에 해발고도를 점차 올려 멋진 풍광을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다시 버스는 고도를 낮추어 트리슐리 강변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휴게소 같은 작은 식당에 멈추었다. 드디어 네팔에서 첫 식사로 달밧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달밧은 네팔의 대중적인 음식으로 소화를 돕는 달(팥)국에 밧(밥)을 비벼 먹는 요리로 주인집에 따라 커리(타카리)나 싹(야채)이 곁들여 나온다. 권흥교 대원은 먹는 게 진심이다. 함께 나온 파파드 튀김은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하는데 그냥 부셔서 밥에 비벼 먹어도 된다니깐 헛웃음을 보인다. 네팔 현지 고추는 방울토마토처럼 생겼다. 작지만 우리의 청양 고추보다 맵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내가 밥에 곁들어 먹으니 평소 매운맛에 자신했던 고오림 대원이 한 잎 물더니 깜짝 놀라 웃음을 선사했다.
우린 그렇게 네팔의 첫 음식을 맛본 후 남은 여정을 위해 버스 올랐다. 트리슐리 강변을 벗어나면서 본격적인 오프로드가 시작되었다. 중간 체크 포인트를 지나 랑탕 국립공원 입구에 다다르니 갈덴 셀파가 무전기 위치를 묻는다. 원정에서 무전기는 필수 선택이다. 하지만 신고하고 허가를 받은 후 수수료를 지불해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아마추어 무전기도 마찬가지이다. 기간이 짧다면 현지 대행사에서 임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용 빈도수에 비해 비용이 그렇게 저렴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로선 저렴한 무전기로 잘 숨겨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원정대가 아닌 트레킹 팀은 검문이 소홀하다는 허점이 있어선지 아무런 수색 없이 랑탕 국립공원에 입성하여 사부르베시에 안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와 스텝들은 내일부터 있을 카라반을 위해 짐을 다시 배분하고 재 포장 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9월 29일(사부르베시-뱀부-라마호텔)
본격적인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해발 1400m의 사부르베시는 우리나라보단 적도와 가까워 전형적인 열대 우기의 날씨를 보여준다. 금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등산화를 동여매고 힘 있게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메고 오르던 포터들은 우리를 앞질러 보이질 않는다. 라마승 출신이라는 가지셀파가 길잡이 노릇을 하며 앞으로 가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선물로 준비해온 티셔츠를 거꾸로 입은 게 아닌가 잠시 웃음을 주던 그의 옷을 고쳐 입게 하고 수력발전소 공사로 인해 어지럽혀진 임도를 따라 올랐다. 임도가 끝나가고 랑탕계곡의 매섭던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더니 도맨이 보였다. 잠시 목을 축이며 생수를 미쳐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그제야 생수를 구입해 배낭에 넣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랑탕계곡의 불규칙한 사운드가 거칠게만 들린다. 내 신경이 예민한 걸까? 다행인 건 고도를 올릴수록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대나무숲이 우거지기 시작했다. 점점 허기가 느껴지더니 뱀부에 도착했다. 카라반 동안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현지식으로 먹기로 했기에 행여나 입맛을 잃을 대원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은 했지만 갈덴 셀파가 직접 만들어온 배추김치와 깍두기 반찬을 곁들이다 보니 다들 맛있게 잘 먹는다. 롯지에 있는 여러 메뉴를 준비해 각자 식기에 먹을 만큼 담아 먹기에 낭비도 덜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서서히 네팔의 정취와 따스한 웃음과 친절함에 금세 적응하며 걸음을 옮겨 오늘의 목적지인 라마 호텔을 향해 나아 갔다. 몬순 기간이 지났음에도 우기를 머금고 있는 하늘은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레킹 내내 우리의 발목을 잡아두진 않았다. 오랜만의 외출과 장시간 걸음은 피로감을 누적 시키기도 한다. 고도가 올라가며 기온이 떨어지니 피로감을 호소하는 대원도 생겼지만, 모두가 낙오 없이 라마 호텔에 입성했다. 이곳의 진짜 명칭은 창탕(어퍼림채)이다. 아마도 이곳이 트레킹 중간 지점이라 많은 트레커들이 이용하는 롯지(간단한 숙박시설)가 발달되다 보니 이렇게 부르는 듯하다.
대원들은 마지막으로 샤워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서둘러 따또바니(따듯한물)를 외치며 하루를 마감한다.
9월 30일(라마호텔-탱샵-랑탕)
제법 기온이 떨어져 어젯밤 따듯한 럭시(네팔 전통주) 한 잔이 그리워 찾아보았지만 구할 수 없어 대신 고르카 럼주에 따듯한 물을 희석해 마시니 럭시 부럽지 않았다. 그 기분에 푹 잠들어서일까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진 해발 2460m 라마 호텔의 아침은 상쾌했다. 이제부터 몇몇의 대원들은 한걸음 한 발자국이 개인의 기록이다. 그 소중한 기록들을 갱신하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랑탕을 향해 나아간다. 그동안 내린 비로 인해 오늘 걷는 구간에는 산사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주의 시켰지만 점차 높아지는 고도로 인한 한계를 잘 극복하고 넘기면서 체력 안배를 해야 하기에 걱정이 많다. 역시나 가파른 산사태 구간에 도착하니 인도계로 보이는 여성이 겁을 먹고 내려오질 못하고 있다. 그곳을 통과해 물어보니 한 시간 가까이 내려가는 중이라고 한다. 유난히 겁이 많던 김민재 대원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새도 없이 락파 셀파 손을 꼭 붙들고 순식간에 넘어오는데 얼굴은 상기되었지만 잘 건너온 듯하다. 다시 그곳을 데리고 내려가야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잊기로 한다.
랑탕의 아름다운 협곡 너머로 드디어 랑탕리룽(7,234m)의 웅장한 모습이 인사를 한다. 모두들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이 신기한지 연신 카메라 셔터를 터트렸다. 나 또한 처음 보는 랑탕리룽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도취되었다가 그 위용에 심장의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몇 번 오르내리길 반복하니 하나 둘 고봉들이 고개를 내밀고 메밀꽃 같은 들꽃이 만개한 지역을 지나니 싱그러운 꽃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며 모두의 피로를 앗아가는 듯 표정들이 밝다. 아름다운 랑탕 계곡이 드디어 시작되는 듯 그곳에 탱샵이 자리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부드러운 뚝바(네팔칼국수)로 허기를 달래고 아름다운 경치에 취한 듯 조금씩 늘어가는 야크들을 길잡이 삼아 랑탕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15년 지진으로 모든 게 무너지고 묻혀버린 옛 랑탕의 모습은 흔적마저도 볼 수 없다. 다만 추모비만 덩그러히 멈춰진 시계를 대신할 뿐이었다. 무너진 너덜 사이로 새롭게 자라난 수목들처럼 새로이 지어진 랑탕 마을에 도착하니 친절한 롯지 사우니(여자사장)의 친절한 미소가 따듯하게 반겨줄 뿐이었다.
해발 3430m에서 보는 무지개 너머로 랑탕계곡을 아우르면서 신성시되고 있는 강첸포(6,378m)가 롯지 창 가득히 담겨 온다.
10월 1일(랑탕-루트정찰-강진곰파)
여명이 밝아 왔다. 마지막 마을인 강진 곰파에 입성하기 전 나야캉가 루트를 정찰하기 위하여 간단히 짜파티(평평하게 구운빵) 몇 장과 망원경을 들고 선발대로 가지 셀파와 정찰을 나섰다. 한 시간 정도 즐비하게 늘어선 초르텐(불탑)사이 마니석(불경이 새겨진 돌탑)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재촉하다 보니 나야캉가에서 흘러나온 지류가 합류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물살이 거세어 바로 건널 수가 없어 상류로 더 올라가야 했다. 멀리 강진 곰파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아래 계곡엔 유일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고 우측으로 돌아서려는데 가지 셀파가 붙잡는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북벽직등루트 BC(베이스 캠프)로 이어지는 길을 가려면 좌측 능선을 따라 올라 산허리로 어프로치 하는 길이 있다고 했다. 이곳 토박이를 통해서 얻은 정보라고 하니 일단 믿고 그를 뒤따라 본다. 하지만 그도 이곳이 초행길임을 상기하는 데는 얼마 가지 않았다. 흔하던 야크 발자국마저 보이지 않는 가파른 사면을 가로질러 오르려니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겨우 능선에 진입하니 결국은 다리 건너 오른쪽 능선에서 이어진 길이 보이는 게 아닌가 답답함에 화는 나지만 참아야 한다. 아직 등반은 시작도 못한 상태이다. 또한 고용된 등반 가이드라 할지라도 한 팀으로 존중해야 등반 성과도 좋을 것이란 생각으로 그를 달래어 다시 루트 정찰을 이어갔다. 새로운 루트를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있기에 흘러나오는 지류를 찾아 한참을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기나긴 장마로 인해 계곡은 범람해 있고 그곳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고 결국 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지류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가파른 절벽이 막고 있어 우리 일정으로는 BC 구축만 하고 끝날게 뻔했다.
돌아서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아니 두 다리에 기운이 없었다. 허탈함은 몸의 에너지를 순식간에 뺏어 간다. 다시 다리를 건너니 고작 500미터 거리였던 강진 곰파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도 힘들었다. 마니차(불경이 새겨진 원통)를 지나 서니 멀리 타르초(불경이 적혀있는 오색 깃발을 수직으로 세운 기둥)를 중심으로 룽다(불경이 적힌 오색 깃발)만이 휘날리며 말없이 손짓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진 곰파에 도착하니 대원들은 로우 강진리(4400m)에서 하산 중이었다.
따듯한 탱 주스를 급하게 준비해 마중을 갔다. 다들 힘든 기색은 보이지만 달콤한 탱 주스의 매력에 피로를 잊는 듯 보인다.
10월 2일(강진곰파-강진리-강진곰파)
날씨가 짓궂다. 비가 오락가락 그렇다고 맑은 하늘은 보여 주지도 않는다. 시야가 답답하다. 그렇다고 하늘이 맑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우선 BC구축을 위해 필요한 짐을 선별해 미리 캠프로 옮기기로 했다. 가지 셀파와 락파 셀파 그리고 고용한 스텝 몇몇이 함께했다. 나는 함께 출발하길 원했으나 텐트를 이곳 롯지에서 대여하는 방식이라 고용된 인원 수보다 짐이 늘어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원 한 명은 컨디션 저하로 숙소에 남기로 했다. BC와 원활한 통신과 등정률을 높이기 위해서 BC를 하이 캠프로 올리는 계획을 세웠기에 미리 고소적응은 필수다. 이미 눈으로 덮여버린 체르고리(4984m)를 체력안배를 위해 포기하고 고소적응을 위해 하이 강진리(4700m)로 향했다. 궂은 날씨로 기압이 떨어지면 컨디션 저하로 인해 고산병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느린 걸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로우 강진리를 지나 하이 강진리로 향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걸음수는 줄어들고 숨을 거두는 횟수가 늘어간다.
대부분의 트레커는 로우 강진에서 하산을 결정하기에 하이 강진리는 우리들만의 별천지다. 답답했던 시야가 한번식 열리면서 설산의 위용을 눈요기라도 하라며 잠시 보여주곤 금새 사라지길 반복한다. 하나 둘 강진리 정상에 안착했다. 각자 배낭에 품고 온 프랑을 들고 인증샷을 남겨본다.
나 또한 구름에 가려 보여주지 않는 나야캉가를 자꾸 응시해 보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원들과 함께 에델바이스를 길벗 삼아 걸음을 재촉하며 강진 곰파로 내려서야 했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점점 날씨가 흐려지더니 결국 비가 내린다. 올라갔던 포터들 중 체력 저하나 고소로 인하여 중간에 데포 후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전날 답사 때 보았던 숲속 미끄러운 구간에서 사투를 벌였을 그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시대가 변해도 바뀌질 않는 게 있다. 몸에 걸치는 기본적인 장비마저 챙기지 않는 그들은 항상 사고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올라갔던 인원 중 3명이 뒤쳐졌다. 근육통으로 인해 느린 하산은 결국 날이 저물고서야 SOS를 요청해 왔다. 비는 제법 굵어지는데 렌턴마저 없어 방향 감각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 갈덴 셀파의 유도 아래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안과 근육 완화에 좋은 파스를 그에게 건네는 것뿐이었다.
10월 3일~5일(강진곰파)
밤사이 천둥번개로 잠을 설쳤다. 해발 3870m에서 내리는 폭우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쉬지 않고 쏟아 부었다. 일정은 빠듯한데 며칠 안되는 예비 일을 이곳에서 낭비하다니 미칠 노릇이다. 꿈을 꾸었다 아들이 꿈에 나와 위험한 행동으로 반항하는 모습에 꿈에서 깼다. 원정 기간 이런 악몽은 자주 있지 않다. 조심하라는 산신의 계시처럼 스스로 몸을 사리게 된다.
롯지 사장이 다급하게 올라와 이번 폭우로 인해 네팔 산간지역 이동이 통제되었다고 했다. 계곡과 강물이 범람해 우리가 올라왔던 랑탕계곡에서도 명절 기간을 이용해 이곳을 방문하려던 네팔 청년 4명이 통제에도 불구하고 계곡길을 오르다 실종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현지 뉴스를 통해 그들의 사망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죽음이다. 네팔 정부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하여 모든 트레커들의 발목을 묶어놓았기에 롯지는 북새통이다. 뒤늦게 도착한 몇몇 트레커들과 랑시카르카에서 내려온 사람들 모두가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얼었던 몸을 녹이기 위해 롯지 난로 앞으로 모여들다 보니 오히려 한가해서 좋았던 롯지가 대피소를 방불케 한다 사방으로 늘어진 로프에 온갖 젖은 옷들이 널어지고 난로 주변엔 발 디딜 틈도 없이 젖은 등산화로 카펫을 이루었다. 알아 들을수 없는 각국의 언어가 뒤 섞이다 보니 맞춰지지 않은 주파수 라디오를 듣는 듯해서 자리를 피했다.
비는 멈추지 않았다. 가끔 소강상태를 보일 때면 산허리 아래까지 눈 처마가 드리워져 BC로 가야 하는 길마저 서서히 감춰 버린다.
원래 일정엔 하이 캠프에서 멋지게 준비하려 했던 김경자 고문님의 생신 일이다. 캠프 식량을 미리 BC로 올려버린 탓에 식재료가 없어 걱정했지만 수소문 해보니 마침 귀한 미역이 구할 수 있었다. 얼추 미역국을 끓여 내오고 고문님을 위한 케이크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항상 등반 시즌에 생일을 맞으시니 이렇게 산에서 생일상을 받으신다고 웃음을 지으시면서 대원들에게 럭시 한 잔씩 돌리시면서 긴장을 풀어주셨다. 고문님 덕분에 잠시 마나 긴장을 풀고 마음의 사치를 부려본다.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리던 비는 삼 일째가 되어서야 소강상태가 보인다. 아직 이른 새벽이지만 걱정만 할 수는 없다. 조용히 갈덴셀파를 찾아갔다. 하지만 자리에 없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와 나야캉가를 바라봤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BC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길을 따라 걸어본다. 마치 야크를 뒤쫓던 라마승처럼 홀린 듯 랑탕계곡을 따라 한참을 거슬러 올라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얄라피크(5,520m)에서 범람한 지류가 앞을 막아섰다. 북동릉에 가려진 루트는 그 신비로움을 감춘 채 제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미리 올라가 캠프를 지키고 있는 스텝들이 걱정된다. 악천후 속에 하산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밤새 쌓은 눈을 털어 내며 잘 있을 테지... 스스로에게 주문하듯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갈덴 셀파 역시 그동안 내린 비로 계곡 건너편으로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가 혹시나 유실되었을까봐 걱정이 되어 확인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대원들은 조식을 마치고 간만에 개인 하늘을 만끽하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계속 움츠리고 있으면 몸은 굳기 마련이다.
오후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화창하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은 연이어 들려왔다. 어제 메라피크를 오르던 한국인이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네팔 전역이 늦은 몬순 기후로 몸살을 앓는 것 같다. 행여나 대원들의 동요가 있을까 봐 말을 아껴본다. 내일부터는 계속 날씨가 좋다고는 하나 산허리까지 내려와 버린 동결선이 얄궂기만 하다. BC를 지나 하이 캠프까지 올라야 하는 일정이 무리수는 아닌지 몇 번이고 고뇌하며 꽉 차오른 달빛에 비추인 나야캉가를 한참이나 올려다봤다.
10월 6일(강진곰파-BC-하이캠프)
새벽하늘이 맑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우리는 BC를 향하기 위한 분주한 아침을 맞는다. 아침식사로 나온 팬케이크와 계란 오믈렛 그리고 향이 좋은 히말라야 커피가 부담을 덜어준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과 롯지 마당에 모여 결의를 다졌다. 비로 인해 예비 일을 모두 소진해 버린 상태지만 장시간 휴식 탓인지 모두들 발걸음이 가볍다.
강진 곰파를 내려서니 계곡에선 아직 그 힘을 잃지 않고 연신 요란한 굉음을 내며 빙하수를 내뱉는다. 다리를 건너고 작은 호수들을 지나 작은 숲을 통과하니 드디어 가파른 능선 길로 올라설 수 있었다.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능선 안부에 들어서니 설원에 반사되는 태양이 강렬하다. 서둘러 고글을 챙겨 쓰고 BC로 오르는 가파른 설사면을 바라보는데 후회가 밀려든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하여 히말라야는 급격하게 녹고 있었고 봄 시즌이 아닌 가을 시즌이기에 더욱 하이캠프까지는 빙판을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나는 굳이 대원들에게 등산화에 착용하는 아이젠이 불필요할 거라 했던것이다. 해가 들지 않았던 설사면은 겨울산에 익숙하지 않은 대원에겐 복병이었다. 하지만 묵묵히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설사면에 올라섰다. 하지만 난관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대원들을 대기 시키고 가파른 절벽을 따라 눈을 치우며 한발씩 옆으로 이동하며 길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끝은 빙판이 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빙판은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문제다. 결국 되돌아온 나는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너덜을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눈 덮인 너덜을 조심히 비집고 들어가 길을 뚫고 BC(4200m)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원정을 준비하며 설원이 된 BC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최악일 것이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후 다시 하이 캠프를 향해 올랐다. 본격적인 모레인 지역이 시작되었다. 마치 파도처럼 밀려온 바위들이 언덕을 이루고 계곡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며칠 동안 내린 눈은 모든 걸 감춰버려 대원들의 발목을 자꾸만 붙잡았다. 채 몇 걸음 걷기가 무섭게 다리는 장딴지까지 빠져 겨우 기어 나와도 호흡이 깨져 모두가 기진맥진하며 그곳을 벗어나려 애를 썻다. 너무 힘든 나머지 참았던 마음을 욕설로 풀어 보려 해도 어떤 곳은 허리까지 빠지다 보니 점점 영혼까지 이탈되는 듯했지만 다들 이를 꽉 물고 하이 캠프로 입성 할 수 있었다. 포터들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곳곳에 짐들을 조금씩 덜어내고 이동했다. 그들의 힘듦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나는 그들이 덜어낸 짐들을 배낭에 올리고 가벼운 건 어깨에 매달고 끌었다. 하이 캠프에 다다르자 그곳에 3일간 갇혀있던 스텝들이 마중을 나왔다. 모두가 표정이 밝아 보여 다행이었다. 나 또한 전 대원 모두가 무사히 캠프에 도착했음에 탄성이 나왔다. 힌 산을 오르면서 매번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스폴 구간이 긴장의 연속이라면 눈 덮인 모레인 구간은 인내의 연속이지 않나 싶다.
우린 그렇게 두 번 다시 잊지 못할 추석을 하이 캠프(4800m)에 입성해 히말의 따스한 품속에서 내일을 위한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10월 7일(라마제)
히말라야를 등반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각자의 종교를 떠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그들과 함께 그들이 신성시하는 산에 오을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자연 앞에 겸손함을 다짐하며 등반대가 무사히 등반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산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모든 등반 장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눈 속에 묻혀 있던 초르덴을 찾았다. 초르덴에 타르초를 세우고 오색 룽다를 세 갈래로 넓고 멀리 펄럭이게 했다. 라마승 출신인 셀파의 주관 아래 치러진 라마제는 향을 피우고 짬빠(보릿가루)를 하늘에 뿌리고 올렸던 술을 나누며 마무리되었다. 정성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부정한 마음을 가지 이가 있었는지 날씨가 너무 맑아 외투까지 벗어야만 했던 날씨가 급변했다. 눈보라가 일더니 멈추지 않았다. 라마제가 끝나고 비교적 완만하고 입산료가 없는 간잘라출리(5675m)로 고소적응훈련을 가려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준비해온 스노우바에 로프를 결속하고 나이프 하켄에 카라비너를 분배하고 올려야 할 로프와 장비를 모았다. 그런데 등반 가이드들의 움직임이 시원찮다. 조용히 그들과 서툰 언어로 대화를 시도해 봤다. 이번 등반은 신설이 많이 내려 힘들다는 것이고 80%는 실패할 것이라 한다. 한 번의 시도도 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매우 불쾌하고 찬물을 한 바가지 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이드 없이 등반에 나선다는 것은 네팔 정부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나로선 그들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1년을 넘게 준비해온 원정인데 등반 가이드가 포기한다면 등반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결국 나는 모든 장비는 우리가 옮길 테니 빈 몸으로라도 러셀(눈길을 개척)을 부탁하며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인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억지로 지시할 수는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내일까지 날씨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이젠 정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예비 일도 부족하고 히말라야가 처음인 이들을 데리고 정상까지 고도 1000미터를 한 번에 올리는 도전을 해야 하기에 결정은 쉽지 않다. 더욱이 예비 일을 모두 소진한 일정 속에서 정상 등정 후에 체력적인 부담과 그동안 내린 비로 하산로가 위험해진 이상 헬기는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하산 시점에 맞추어 요청을 해둔 상태였다.
내일 어디까지 루트를 뚫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새 뒤척이며 부디 날씨 변동이 없기를 기도하며 침낭에 잠시 은둔해 본다.
10월 8일(정찰)
등반 가이드들과 여러 루트를 고민한 끝에 모레인 지대 상류로 올라가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기로 하였다. 사방이 신설로 덮여버린 지금 어느 곳으로든 뚫고 나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대원 숫자가 적지 않기에 함께 눈을 다지며 나아간다면 제아무리 느린 거북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처럼 모두 정상에 오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이 캠프에 올라온 후 비교적 체력적인 부담이나 고소적응이 더딘 3명의 대원을 제외한 6명의 대원이 각각 짐을 나눠 들고 두 명의 등반 가이드가 교대로 러셀을 하며 길을 뚫고 가고자 했다.
새벽 4시 출발시간이 다가오고 모두들 준비를 마치고 라마 제단 앞으로 모였다. 그런데 등반 가이드들은 동네 마실 가듯 운동화에 빈 배낭만 덜렁 메고 나오는 게 아닌가 본격적인 등반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고소화 정도는 신고 나와야 하는 것인데 스패츠도 없이 달랑 운동화라니..... 어이가 없어 물어보니 오늘 목표한 크렘폰 착용 지점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당황스럽고 대원들을 무시하듯한 모습에 순간 화가 치밀어 다시 물어보았지만 그 이유 또한 황당했다. 빙벽화가 젖으면 다음 등반에 지장이 간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고 따져 묻기엔 내가 그들을 안이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경험이 있고 박정헌 대장 팀을 인솔한 적이 있다는 가지 셀파의 입바른 소리만 믿고 당연히 여느 등반 가이들처럼 덕목과 기량이 출중할 거란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촉박한 시간 속에 이젠 따져 물을 겨를도 없다 나와 고문님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히말라야 등반이 전무하다 보니 그들의 소소한 행동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마저도 내 마음의 여유마저도 앗아가 버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직 헤드랜턴과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모레인 지대를 넘어서고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야 하는데 어둠 속에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바위에 로프를 설치하고자 했다. 하지만 선두에 선 가지 셀파는 스노우바를 박아봐야 의미 없다면서 내 말을 비웃듯 그대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내려서려는데 대원 한 명이 컨디션이 안 좋다며 캠프로 돌아섰다. 이런 모레인 지대 안쪽 사면은 대부분 경사가 심하다. 되돌아올 것을 대비한다면 로프를 설치해야 옳다. 하지만 그들에게 러셀을 부탁한 이상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조심스레 발을 옮겨도 모레인 지대의 너덜 위에 덮인 신설의 깊이를 알 수 없다 매번 조심히 딛고 나가보지만 몸은 휘청거리며 호흡도 깨진다. 태양이 떠오르고 모든 열기가 온몸에 달아오른다. 갈증으로 목은 타들어 가지만 멈출 수는 없다. 한걸음 한걸음 그들이 내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데 점점 뒤처진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며 노래를 부른다. 저 노래는 응원일까 놀리는 것일까 자꾸 의문이 든다. 내가 모레인 언덕을 가로 지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 하면 눈사태 구간이라 위험하단다. 가파른 절벽 위 눈사태의 위험은 없었다. 다만 그들의 본능일 것이다. 그들은 멈춰서 양말이 젖어 발이 시리다며 이젠 포지션을 바꾸자고 한다. 보통의 등반 가이드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부친 대원이 있다면 내려와 짐을 거들어 주는 게 대부분이다 이들은 분명 달랐다. 등반에 앞서 스텝들은 항상 라마 제단에 향을 올린다. 출발 전 갈덴 셀파가 향을 올리려 할 때 뿌리치던 가지 셀파의 모습을 봐서 일까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눈엔 비수로 꽂혔다.
짐을 그들에게 건네고 앞서서 러셀을 이어갔다. 대원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눈을 다져가며 마지막 플라토 언덕에 올라섰다. 오현우 대원과 박현우 대원은 생애 처음 해발 5000m에 올랐다며 나름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걸음은 느리지만 대원들의 컨디션은 최고다. 나름 국내에서 혹독한 훈련의 성과일 것이다. 마지막 플라토 언덕 너머엔 나야캉가의 장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덕에서 좌측 사면을 따라 돌아 내려서니 본격적인 등반 초입이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가리켰다. 이제 하산을 해야 했다. 대원들은 지나온 길이 너무 힘든 나머지 두 번 올라오기는 힘들다고 바로 정상으로 오르자고 들 한다.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무 장비도 없이 따라온 등반 가이드들이 문제다. 그들 없이는 정상에 오를 수 없는 게 이곳의 규정이다.
그곳에 모든 장비와 짐을 데포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올라오면서 눈여겨보았던 직선 루트로 다시 뚫으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들 또한 동의하는 듯했다. 우리 보고 먼저 앞서가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서더니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어디 가냐고 물으니 옷을 두고 와서 가지러 간다고 하더니 돌아오지 않는다.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우리로선 더 낳아 보이는 루트를 포기하기 싫었다. 우린 서서히 비탈진 설 사면을 거스르지 않게 최대한 직선코스로 보이는 첫 번째 플라토 언덕을 돌아섰다. 멀리 BC 쪽에 사람이 보였다. 직선으로 바로 간다면 금방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듯 보였다. 하지만 눈 덮인 모레인 지대를 내려선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바람에 다져진 모레인 능선은 좌측으로 뻗어나가 하이 캠프로 돌아서 있었다. 한 번씩 허리까지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대원들과 길고 지루한 설릉을 걷는데 내리쬐는 태양에 갑자기 눈의 굴곡이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신경을 집중해서 걸어서 일까? 자꾸만 착시로 인한 굴곡 현상이 진행될수록 어지러움에 전진을 더디게만 만들었다. 순번을 바꿔보려 잠시 대원들을 돌아봤으나 결국 이 길을 뚫어야 하는 것 내 몫인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착시현상과 사투를 벌이는데 멀리서 락파 셀파가 마중을 나왔다. 그가 건넨 따듯한 탱주스의 달콤함은 이젠 되었다는 안도감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착시에서 벗어 날 수 있었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다리에 힘이 풀렸다.
캠프에 도착하고 대원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꼈다. 숨기고 싶었지만 숨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고작 주방 텐트 뒤였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후 텐트로 돌아가 잠시 고단한 몸을 뉘었다.
얼마를 잤을까 일어나 주방 텐트로 향했다. 캠프에서 일어나는 소식은 이곳에서 정보가 가장 빠르다.
우리와 데포 지점에서 헤어진 뒤 가지 셀파는 캠프에 돌아와 배낭을 던지며 내가 약속을 안 지킨다고 했다는 것이다. 계획을 자꾸 수정하고 운동화도 젖어 발도 시리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는데 무슨 등반이냐며 히말라야를 잘 모르다는 것이다. 다음 등반 약속도 있으니 더 이상 등반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스텝을 총괄하는 갈덴 셀파와도 다투었다는 것이다.
도무지 납득 가지 않는 상황에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모든 스텝들을 현혹하여 이 원정을 무산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가 범한 오류들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장비 없이 등반에 임하고 대원들을 두고 하산한 등반 가이드는 어떻게 설명했어야 하는가 말이다.
차라리 등반 가이드 없이 등반에 임했더라면 우린 얼마든지 우리 실력으로 정상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울분이 터져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다툼은 히말라야 등반이라는 꿈을 안고 1년을 넘게 훈련과 준비를 해온 대원들의 첫 등반에 상처만을 줄 것임이 당연하기에 이것으로 등반을 마무리 짓는 결론밖에 서질 않았다.
다른 대장님들이었으면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셨을까 몇 번을 고민한 끝에 등반은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그들과의 하산길이 불편하지 않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긴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가지 셀파를 불렀다. 입바른 소리였지만 나의 계획이 무리였다는 것과, 이런 환경에 등반을 감행한 내가 잘못했음을 사과했다. 그러면서 데포 된 장비에 대해 이야기를 조심스레 끄집어 냈다. 양심은 있었는지 내일 새벽에 데포 된 짐을 가져다주고 다음 일정이 있어 하산을 하겠다고 한다.
캠프는 침울했다. 하지만 겉으론 누구 하나 애석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장정화 대원이 스텝들과 거실 텐트 바닥공사를 해서인지 더 이상 식기가 가운데로 쏠리는 현상이 줄어 한결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원들은 눈치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지만 등반 포기를 알리는 건 쉽지가 않았다. 저녁식사 후 오현우 대원이 대원들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고는 있었지만 내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전달은 해야 했다. 비통함과 미안한 마음으로 사실관계를 대원들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다음날 짐을 정리한 후 예정대로 모레 새벽 시간을 이용해 하산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텐트 밖을 나와 무심한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정상 쪽을 바라봤다. 자꾸만 나야야캉가는 다시 오라고 손짓하는데 등반 가이드가 등반을 포기한 이상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0월 9일(정상공격)
아쉬움 탓일까 새벽 내 잠을 설치며 텐트 밖을 서성였다.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면 지금쯤 대원들과 정상 안부에 다다랐을 테고 정상에 올라 룽다를 휘날릴 계획이었다. 대원들 모두가 정상에 올라 각자의 희망 버킷을 이루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오고 싶었다.
가지 셀파와 락파 셀파는 대원들의 등반 장비만 챙겨서 돌아왔다.
얄궂게도 그들의 모습은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사의 표현뿐...
치통으로 고생하던 고오림 대원의 통증이 심해졌다. 약을 처방해도 치유가 어렵다면 빠른 하산이 답이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기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신 고문님과 함께 하산을 권했으나 오랜만에 올라온 캠프에서 좀 더 있고 싶어 하셔서 다른 일정이 있다는 가지 셀파와 스텝을 함께 내려보냈다.
대원들은 캠프에서의 마지막을 각자만의 방식대로 즐긴다. 아직 체력들이 남아서인지 눈썰매를 타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나름의 시간을 보낸다. 표식기로 준비한 대나무를 쪼개어 윷을 만들어 팀을 나눠 게임도 즐겨 본다.
말 많던 가지 셀파가 내려간 후 갈덴 셀파와 혼자 남았던 락파 셀파가 나를 부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사실 그들은 가지 셀파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곳까지 오게 되는지 잘 안다며 이미 로프나 스노우바는 위에 데포가 되어 있으니 체력 좋은 몇몇만 뽑아 정상에 다녀오자는 것이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내일 저녁까지만 강진 곰파까지 하산하면 다음날 헬기로 하산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준비해온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쉬움과 미련을 떨쳐버릴 기회였다. 다들 윷놀이 삼매경이라 텐트로 돌아가 낮잠을 즐기고 있는 권흥교 등반대장을 깨웠다. 그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아직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상황이라 함께 하고자 했다. 그리고 대원들을 찾아가 마지막 기회이니 정상에 함께 오를 지원자를 물었다. 물론 정상 등정 후 강진 곰파까지 내려올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빼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상황이면 서로 눈치를 볼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손을 들것만 같은 오현우 대원은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 일단 배제한다고 한 게 큰 자극이 되었던 것이지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열심히 움직이던 이미정 대원은 함께 하길 바랐다, 하지만 고문님께서 급하게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며 행여나 사고로 이어질까 걱정이다며 둘만 가던지 아니면 아무도 못 간다고 말리셨다. 맞는 이야기다 어쩌면 성급한 결정일 수도 있고 모든 게 처음인 이들에겐 히말라야 등반이 이들이 감당하기엔 큰 고통이 뒤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새벽부터 깨어 있었던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나 22시 출발을 희망했다. 하지만 락파셀파는 16시에 출발해서 크렘폰 착용 지점에서 텐트를 가져가 쉬었다 올라가는 게 좋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장비는 모두 오전에 강진 곰파로 내려보낸 상태라 장비를 빌려야 한다고 했다. 대원들 장비를 모아 그에게 세팅해 주었다.
라마 제단에 다시 향이 피어오르고 우리는 4시를 조금 넘겨 캠프의 스텝들과 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산으로 향했다. 아직 태양이 기울지 않아 무더웠지만 두 번째 오르는 길이라 속도는 빨랐다. 언제나 그렇다 처음보다는 두 번째는 어느 정도 고소적응이 된 터라 빠를 수밖에 없다. 겨우 두 시간 반 만에 데포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이곳에서 쉬었다 출발인 줄 알았지만 데포 된 로프를 배낭에 넣은 후 바로 설사면을 올랐다. 이 정도 각도면 크렘폰을 착용하고 오르는 게 나을 텐데 고민할 여력도 없이 락파 셀파 혼자 길을 열고 나간다. 그래 믿어 보자 자신 없으면 무슨 말 나오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의 뒤를 밟았다.
설사면은 더 가팔라지고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크렘폰을 착용하라고 외쳐보지만 아직은 필요 없다며 계속 프론트 스텝으로 길을 이어가더니 결국 스텝커팅까지 하면서 오른다.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능선 안부에 도착하면 내가 먼저 로프를 설치하고 락파 셀파 권흥교 대원 순으로 오르자고 했다. 금방 오를 것만 같은 곳에서 4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나서야 능선 안부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잠시 쉬면서 정비를 했어야 했다. 시간은 아직 자정이 못되었고 고도는 5383m를 가리켰다. 이대로 오른다면 태양이 뜨기 전에 도착해 정상부 바람에 체온을 뺏길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프를 설치하며 올라야 한다. 하지만 준비할 겨를도 없이 락파 셀파는 또다시 무모한 등반을 이어갔다. 저 친구 하이 포터 출신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서서히 등반 속도가 늦어진다. 가파른 설벽에서 순서를 바꾸는 것도 여의치 않기에 묵묵히 시간을 두고 그를 뒤를 밟아본다. 방향을 잃은 듯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게 느껴진다. 무슨 일일까 이제 겨우 100여 미터을 극복했을 뿐인데 갑자기 추위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고소증세도 보이는 듯싶었다. 서둘러 그를 앞질러 갔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나는 최대한 신속하게 설벽을 깎아 겨우 세명이 설 수 있는 공간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무전이 온다. 일단 버너를 꺼내 탄수화물을 데워서 그에게 먹여 체온을 올리는 게 급하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무전으로 비박에 들어감을 알리고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무전기를 껐다. 스노우바를 상단에 설치하고 모두 자기 확보를 한 후 배낭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내 입으라고 했다. 그런데 옷은 모두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입고 있던 바지 역시 얇은 바지를 두벌 껴입은 게 전부 아닌가 거기에 입고 있는 패딩마저도 타멜에서 파는 솜으로 된 점퍼였다. 이런 상태로 정상을 가려 했다니 난감하기만 했다. 시간은 3시를 넘어섰고 이제 2시간만 버티면 태양이 뜰 것이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이곳에서 하산은 2차 사고로 이어질게 뻔했기에 최대한 물과 음료를 만들어 그에게 먹이며 배낭 커버를 꺼내어 그에게 씌어 체온을 유지하도록 했다.
말없이 나를 돕고 있던 권흥교 대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을 겨우 400미터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첫 등반을 비박으로 보내다니 컨디션도 최상인 그를 데리고 정상에 오르지 못한 건 나의 부족한 리더십 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함께 못 오른 대원들을 생각하면 아직 배울게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쪽 하늘에 동이 터오기 시작하더니 거센 바람이 체온을 더 앗아가기 시작했다. 이젠 아무리 따듯한 차를 마셔도 추위를 상쇄하기엔 부족했다. 이 새벽의 고비가 찾아온 것이다. 서로 부둥켜 안은 채 태양이 랑탕리룽을 비추기만을 기다려본다. 서서히 랑탕의 머리끝이 붉게 타오르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탈출해야 한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 하산을 결정해야 하는 아쉬움에 락파 셀파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컨디션은 다 돌아 오진 않은 듯 보였다.
무전으로 하산 보고를 한 후 로프를 설치하고 하강을 시작했다. 권흥교 대원이 락파 셀파를 보조하며 먼저 하강을 한 뒤 뒤따라 로프를 회수해 아래로 내려왔다. 능선 안부에 도착하니 좋은 길을 피해 가파른 길만 따라 오른 흔적이 보였다. 밤새 오른쪽이라 외쳤던 이유가 태양이 뜨고서야 보이는데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어쩌면 내 몸이 좀 더 편한 방법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반문을 하며 2시간 만에 처음 짐을 데포했던 지점까지 내려왔다. 이젠 정말 등반이 끝났다는 생각과 실패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던 내 스스로를 자책하며 걷는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락파 셀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등반이 이대로 끝난 것의 요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등반 가이드 선택일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등반이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나의 큰 실수였다. 그동안 만나온 등반 가이드들은 대부분 한 팀이었고 한마음이었다. 무시보다는 존중이 있었기에 안전했고 즐거웠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무거워진 두 다리는 결국 돌아 가야 할 집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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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주마등처럼 흐르네요 어찌됐던 행복한 일정이였어요~~~고산병이 안왔다는것도 좋았고요 ㅋㅋㅋ
고생하셨어요~~~등반초보들 데리고 ~~~
얼마나 애쓰셨는지 보이는거같아요.
대원모두 무탈하게 귀국해서 너무 다행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같이 갔음 좋았을껄 ~~~암튼 다들 행복하게 다녀왔소이다
@미정이 (행복이) 그러게요ㅜㅜ
그때 쉴수가없어서 아쉽게 취소했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