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의 발견, 서울둘레길 석수~사당
1. 일자: 2018. 11. 17 (토)
2. 산: 서울둘레길 석수역~사당역
3. 행로와 시간
[석수역(07:45, 호압사 3.5km) ~ (호암산 폭포/늘솔길/데크) ~ 솔숲쉼터(08:50) ~
호압사(09:02, 서울대 3.4km) ~ 삼성산
성지(09:23) ~ 약수암(09:48) ~ 전망바위(09:55) ~ 보덕사(10:03) ~ 돌산(10:13) ~ 물레방아(10:36) ~ 서울대(10:51, 낙성대 1.9km) ~ 낙성대(11:20, 사당역 3.9km) ~ 무당골(11:55) ~ 관음사(12:15) ~ 사당역(12:35) / 13.7km]
성주산, 성주봉. 연이어 버스 타고 먼 산을 다녀왔더니 도로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는 게 싫다. 가까운 곳에도 갈 만한 곳이 많은데 굳이…. 늘 그렇듯 게으른 마음이
먼 길로 향하는 발목을 잡는다. 통도사 16암자를 포기하고, 새 것을 찾아 나선다. 주중에 서울대를 갔던 일이 인연이 되어 관악산
둘레길을 찾기로 한다. 코스는 석수역~사당역을 잇는 구간이
적당해 보인다. 우연한 인연이 새 인연을 만든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 여명이 밝아 온다. 창 넘어 관악산 주능선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적어도 미세먼지 걱정은 없겠네 하는 생각에 준비하는 손 길이 바빠진다. 헐레벌떡 뜀박질 덕에 기다림 없이 석수행 전철에 오른다. 점심용 빵을 사려다, 빵집에 눌러 앉아 아침도 해결한다. 다운 받아 둔 트랭글에서 따라가기 모드를 누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석수역 육교 위에‘서울둘레길’안내표지가 시선을 끈다. ‘서울둘레길은 서울의 외곽 157km를 따라 걸으며 자연경관과 생태를 배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자연생태탐방로입니다.’마음이 동한다. 목표를 관악산 둘레길 탐방에서 서울둘레길로 더 크게 잡는다. 생각의 크기가 곧 성장이자 발전이다.
초입 색색의 낙엽이 유혹하더니 본격적으로 길에 나서니 숲은 옷을 벗은 나목에 둘러 쌓인다. 호압사, 1차 목적지다. 주홍색 둘레길 안내 리본은 모든 갈림에서 봉우리가 아닌 옆 길을 안내한다. 둘레의 참뜻에 순응한다. 덕분에 부담 없이 길을 즐긴다. 산은 일단 안에 들어서면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퉁이를 돌아서 나오면 짙은 낙엽이 덮인 또 다른 오솔길이 나타난다. 호암산 폭포를 지나며 좌측에 산복도로를 따라 들어선 아파트 단지 옆에 난 데크가 길게 이어진다. ‘늘솔’이라는 이름의 탐방로가 둘레길과 나란히 간다. 더 좋은 자연 숲길이 옆에 있는데 왜 굳이 데크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직장의 첫 근무지가 부근이었던 지라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20대 후반의 잔상들이 만들어졌다 지워진다. 화려하진 않았어도 열심히 살았던 고마운 시절이다.
소나무 군락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더니 멋진 상태공원이 있는 곳에 당도한다. 질서 있게 솟은 소나무의 행렬이 시원하다. 고개를 넘으면 호압사다. 경내에 들어선다. 와 본 곳이라 여겼는데 처음이다. 늘 호암산과 삼성산이 우선이었기에 등로에서 벗어난 호압사에는 들릴 여유가 없었을 게다. 석탑 뒤로 호암산의 암릉이 우람하다. 절 집 난간에 서니 서울 서북쪽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약사전 앞에 선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이 평온한 느낌이 참 좋다. 큰법당 앞 석탑이 서 있는 비워진 공간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를 느낀다.
시작이 반이라고, 1차 목적지를 지나니 여유가 생긴다. 속도를 낼 필요도 마음도 없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등로는 걷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 푹신한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은
낙엽 길, 그만이다. 서걱서걱 발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도
좋다. 등로에서 벗어나 있지만 용기를 내어 천주교 삼성산 성지로 향한다. 박해 받던 신자들이 숨어 든 곳이리라. 한국 천주교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믿는 자들의 신앙심이 만들어낸 유래를 찾기 어려운 자발적인 공소와 교우촌의 존재다. 그
신앙심의 깊이가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도 배교보다는 죽음을 택하게 만든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십자가의 못 박힌 예수님의 발을 잡아 본다. 서늘한 금속의 느낌이
오래지 않아 온기로 변하여 마음에 전해 온다.
헬기장 어름에 약수암을 알리는 이정이 있다. 망설이다 발 길을 아래로 내딛는다. 한참을 내려서니 작은 암자가
나온다. 고요하다. 바위 위에서 물이 떨어져 작은 연못을
만든다. 주위를 서성이다, 온 길을 되돌아 온다. 내려갈 땐 보지 못했던 바위 전망대가 있어 또 발품을 팔아 오른다. 반석
위에 서니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하늘 밑으로 호암산의 암괴가 도도히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편으론 서울 외곽 풍경도 시원하다. 안 올랐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에 기뻐했다.
돌산 이정표
앞에서 또 망설인다. 바위를 기어올라야 한다. ‘그래 오늘
아니면 또 언제’ 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정하고 바위를 치고 오른다. 선택은
옳았다. 국기가 휘날리는 암봉은 최고의 전망대이자 포터 존이었다. 마침
지나는 이들이 있어 바위 위에 선 내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눈을 돌려 밑을 보자 서울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서울대 조망 터다. 관악산을
배경으로 학교의 모든 건물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오늘 최고의 발견이다. 그 널찍함에 또 한번 놀랐다. 관악 골프장을 서울대학교로 변모 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오래 전 서울대에서 출발하여 돌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그땐
목적이 관악산 국기봉 오르기여서 그랬는지 서울대를 내려다 본 기억이 없다.
물레방아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곳에서 큰 길과 만난다. 서울대에서
길을 시작한 이들이 몰려든다. 이 시간 내려가는 이는 나 밖에는 없다.
서울대 정문을 지나 낙성대로 향한다. 둘레길이 어디로 이어질까 궁금했는데 수의대 건물을
지나 우측으로 자연스레 행로가 이어진다. 조금은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 내려서니 낙성대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안국사에도 잠시 들른다. 오늘은 길 주변에
모든 명소를 빠짐없이 다 찾았다. 둘레길을 걷는 묘미다.
짙은 낙엽이
길에 떨어져 있다. 화려한 색은 곧 바라리라. 가을이 깊어진다. 길에 따스한 햇살이 떨어진다. 낙성대에서 관음사 가는 길은 멀고
지루했다. 여러 번 부근을 지나 갔었기에 풍경은 친근했다. 음침한
굴이 있는 무당골을 지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익숙한 곳에서도 늘 새로움이 있기에 산행은 매력이
있다.
12시가 한참 지나 관음사를 지난다. 길은 흙 길에서 포도로 변해 있다. 터벅터벅, 머릿속에는 다음 구간을 그리며 사당역으로 하산했다. 평온하고 넉넉한
산행에 감사한다. 둘레 란 말에 참 뜻은 여유가 아닌가 싶다.
< 에필로그 >
한참 산에
미처 지냈을 땐, 둘레길은 나와는 먼, 오르는데 자신이 없는
이들이 산책 삼아 다니는 곳으로 여겼다. 그 편협한 선입견이 오늘 깨졌다. 둘레길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자가 자연경관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곳이 맞다. 등로가 사납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는 주변을 둘러 보게 만든다. 나 역시 그랬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찰에 들리고, 볼 거리가 있을 것 같은
곳에는 다 다녀왔다. 둘레길을 만든 이들의 의도에 충실했다.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삼성산 천주교 성지와 돌산은 의미 있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천주교 성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어 신심을 돋게 했으며, 돌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대 풍경은 서울대의 전모를 알게 해 주었다.
자고나 다시 PC 앞에
앉는다. 어제의 기억들이 머리에 맴돈다. 석수~서울대 구간이 낙성대~사당보다 훨씬 더 둘레길스러웠다. 우리네 산이 사람의 삶에 친근하게 접해 있음을 알게 하고 함께 어우러져 있어서다. 둘레의 의미에는 이웃이 있다.
내킨 김에 서울둘레길 앱을 다운로드 받아 살핀다. 8개 구간이 지역별 특성에 따라 나뉘어져 있다. 이미 다녀와 익숙한
곳도 있고, 석수~자양역 구간처럼 생소한 발견도 있다. 올 겨울은 주말에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이 적어지겠다.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 집을 나서 갈 곳이 있으니 말이다. 서울둘레길은 새로운 희망의 발견이자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