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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교절(Festival of Unfermented Cakes)/ 무교절의 영적의미는 자아파쇄이다
무교절은 유월절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 부터 시작되며, 칠 일 동안 계속되었다(탈출23,12-19; 34,18). 이 명칭은 무교병(히브리어, 맛초트)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축제의 칠 일간 먹을 수 있었던 빵은 무교병뿐이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물만 넣어 반죽한 빵이다. 발효되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서 빵을 만들어야 한다.
무교절 축제의 첫날은 장엄한 모임이자 안식일이었다. 둘째 날에는 보리 수확의 첫 열매 곡식 단 즉 팔레스타인에서 익은 첫 작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왔다. 이 축제 이전에는 새로운 수확물의 햇곡식이나 빵이나 구운 곡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이 둘째 날이 다음에 설명할 ‘초실절’이다(레위23,6-14).
이 기간에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탈출12,14-20에는“…칠 일간 너희 집에서 발효된 반죽을 볼 수 없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명16,3절에서는 무교병을 “고난의 빵”이라 부르는데, 무교병은 유대인들에게 이집트 땅에서 서둘러 나온 일(그때 그들은 반죽에 누룩을 넣을 시간이 없었음<탈출12,34>)을 해마다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스라엘이 구출받기 전에 당하던 고난과 속박을 상기하였다. 이는 “당신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러한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실천한 역사적인 시간을 기록한 절기이다.
모세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잘 지켰다. 곧 이스라엘은 모세의 인도를 받아 유월절과 무교절을 혼동하지 않고 순차대로 잘 지켰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내는 동안에도 이 절기를 지켰다. 그러나 모세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세대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바로 분간하고 잘 지킬 수 있었을까?
그래서 후세대에게 주는 바른 교훈과 제사와 절기를 맡아 집행하는 지도자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은 위의 절기를 분별하여 기록한 것 같다. 레위기 23장을 보면, 위의 두 절기가 각각 상세하게 분별되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적으로도 유월절과 무교절이 주는 의미가 다르다.
1. 무교절의 어의(語意)
무교절은 히브리어로 ‘칵 함마촐’이다. 이 무교절은 유월절과 달리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유월절은 ‘페사크’라는 단어였으나, 무교절은 ‘칵’이라는 단어와 ‘함마촐’이라는 단어가 결합한 합성 명사이다. 칵은 축제일(Feast)또는 경축일(Feastival)을 뜻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께 경배하며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칵’은 종교적인 기념일이다.
‘함마촐’은 “그”라고 하는 함이라는 부정관사와 ‘마차츠’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이다. ‘마차츠’는 “빨다(to suck)”, “얻다”, “흡수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동사에서 여성명사 마촐이 되어 “누룩 없는 떡”또는 “누룩 없는 과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칵 함마촐’은 “그 누룩 없는 떡의 축제일”로 직역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주식이 분식이다. 그들의 분식에는 누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무교절만은 누룩을 넣지 않고, 뜨지 않은 떡을 만들어 먹는 제사일이다. 또 성경에 보면 이 절기의 기간은 7일간인데 그 기간에 누룩을 제하고, 누룩 없는 음식을 먹으며, 첫날에(1월15일) 성회로 모이고, 제7일 끝 날에 다시 성회로 모인다.
2. 무교절의 유래
무교절이란 말은 출애굽 이후(탈출기 13장)에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탈출기 12장은 애굽에서 출발하는 장이고, 탈출기 13장은 애굽에서 떠나온 장이다. 이“무교절”은 애굽에서 떠나온 장인 탈출기 13장에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탈출기 12장에서 행한 무교 일(日)을 기념하여 그것을 절기화하여 절기로 지킬 것을 명한 때문이다.
이전에는 무교절이 없었으나 그 무교절의 요소가 되는 무교병을 사용한 때가 성경 몇몇 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 첫째가 창세기 19장 3절이다. 이곳에서 무교병이 사용된 경우는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망하기 전날 밤 롯의 집에 찾아간 하느님의 사자들과 롯이 나눈 떡이바로 무교병이다. 그 예식 후에 천사들에 의하여 롯의 식구들이 구원이 되어 죽음과 멸망을 면하고 생명을 얻었다.
둘째는, 탈출기 12장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에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어 먹는 그 밤에 무교병을 먹었다. 곧 애굽인에게는 하느님의 재앙인 죽음이 임했으나,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이 면하여지고, 대적에게서 생명과 자유를 얻는 고귀한 시간적, 공간적인 절정에 사용된 떡이 바로 무교병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한 가정과 한 민족의 차이, 그리고 장소와 시기의 차이 뿐이고, 그 근본 원리에 있어서는 같다. 그 내용은 양자가 다 하느님의 진노와 재앙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천사가 죄인들을 죽이는 가운데서 그 선택한 자들을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그 자리에서 구원과 자유를 얻는 절정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미를 대대로 기념하기 위하여 정한 것이 무교절이다. 이 절기는 (1) 하느님이 명하신 절기이며(탈출13,6; 23,15), (2) 모세가 공포한 것이다(탈출12,8-20). 또한 이 절기를 이스라엘이 철저히 지켜왔으며(1사무28,24; 2열왕23,9), (4) 예수님 당시에 도 지켰을 뿐만 아니라(마태26,17; 마르14,1-12; 루카22,17), (5) 사도 시대에도,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이 절기를 지켜왔다(사도12,3; 20,6)고 한다.
3. 무교절을 지키는 방법
이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시작이 된다. 그 절기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유월절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은 정월 14일 저녁으로 끝이 나나, 그 다음 정월 15일부터는 무교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탈출기에 의하면 유월절은 무교절에 포함되어 “무교절”로 총칭되고 있는 예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탈출23,12-19; 34,18).
분명히 양자는 별개의 절기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볼 때 계속 이어지므로 하나로 여긴 것 같다. 이 무교절은 1주간 계속된다(레위23,6; 탈출12,19). 신비한 것은 무교절 둘째 날이 초실절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다음 ‘초실절’에서 설명한다. 무교절을 지키는 이스라엘은 이 기간 동안에 ‘없게 할 것’과 ‘있게 할 것’이 있었다.
(1) 이 무교절 기간에 없게 할 것.
첫째로 누룩을 자기 집에 없게 하는 것(탈출12,19; 12:5)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 내에 이스라엘은 누룩을 넣지 않는 음식인 무교병을 먹게 한 것이다. 첫날에 누룩을 제하되 전적으로 집에서 누룩을 제하는 것이다(탈출12,15-20; 레위23,6). 그 때에 이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고 했다(탈출12,15,19).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마찬가지로 유교병은 금지 되었고, 또 그것을 먹는 날에는 끊어진다.
이 “끊어진다”는 단어는 “그가 하느님의 백성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이 이상 더 큰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로부터 버림이 되고, 형벌과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느님 앞에 불결하고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변화와 죄에서 떠난 생활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동을 하지 말 것이다. 그 노동이 없는 날은 제한이 되어 있는데 무교절 첫날과 제7일이다(탈출12,16; 레위23,78; 민수28,18-25). 그 이유는 거룩한 날의 처음과 끝이 되고, 또 거룩한 성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성회에만 전심전력하고, 오직 하느님께만 교제케 하기 위함이다.
(2) 이 무교절 기간에 있게 할 것.
첫째는, 성회로 모이는 것이다(레위23,78; 탈출12,16). 그 기간은 일주간이다. 그 일주간이 다 무교절에 속한다. 그러나 그 7일중에 첫날과 제7일에 성회로 모이게 되어있다.
민수28,19-23절을 보면 “성회로 모일 때에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된 수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수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를 드리고,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되,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성회 때에 3대 제사를, 곧 번제, 소제 그리고 속죄제를 드릴 것을 말씀하신다. 이 제사들은 레위기 연구에서 추후 별도로 설명코자한다.
둘째는, 무교병만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 이스라엘은 무교병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곧 순수한 곡식을 가지고 정결한 음식물을 만들어 먹고, 성회를 지키며, 그 외의 날은 일할 것이다(탈출12,15-20; 레위23,6; 탈출13,6-23; 민수28,18; 신명16,38).
이 무교병은 곧 고통의 떡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양을 희생함으로 재앙을 면하고, 또 그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급히 나온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신명16,3). 그러므로 이것은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과 구원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라 하겠다.
셋째는, 일하는 날이다. 곧 첫째 날과 제7일의 성회를 제하고는 다 일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하는 날은 둘째 날에서 제6일까지이다(탈출12,16; 레위23,78). 이 날의 일은 애굽의 고통스러운 사역도 의미하지만,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할 때의 그 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적으로 자아파쇄를 위한 하느님이 주신 고난의 날들을 의미한다. 또 양을 잡는 일도 일이려니와 하느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을 더욱 잘 기억하며, 하느님의 일에 동참함도 뜻하는 것이다(탈출12,17). 이 절기에 주된 것은 누룩 없는 떡, 곧 무교병이다. 그러므로 무교병을 먹고 하느님께 나가서 성회에 참여하고 힘써 일할 것이다.
4. 무교절의 영적 의미(1)
유월절의 영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그 공로로 속죄와 구원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유월절의 계속인 무교절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계가 없을 수 없다. 무교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서 특별히 주님의 부활하시기 전 그분의 죽음과 무덤을 가리킨다.
누룩 없는 떡, 곧“누룩”은 죄와 악을 의미한다(1코린5,6-8). 그리고 누룩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죽음은 모든 것을 부패시키고, 악취를 풍기고, 재사용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누룩도 같은 작용을 하며,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죽음은 죄의 대가요, 악의 열매이다(로마5,2; 16,23).
로마6,6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어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옛사람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혼 안에 있는 타고난 생명을 가리킨다. 옛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바로 우리 자신인데, 이것은 갈라2,20절의 “나”와 동일하다.
그것은 혼 자체가 아니라 혼의 생명을 말하는데, 하느님은 이 혼 생명을 소망이 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으셨다. 이전에 우리의 혼은 옛사람을 우리 자신의 생명과 인격으로 삼아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행동했다. 이제 옛사람이 못 박혔으므로 우리의 혼은 그리스도의 한 기관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아 우리 영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죄의 몸이란 무엇인가? 죄의 몸은 죄가 안에 거할 뿐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점유되고 부패되고 소유되고 이용되어 죄에게 노예 노릇을 하는 몸이다. 그래서 몸은 죄악이 가득한 일들을 행한다. 이 죄의 몸은 죄를 짓는 데 매우 활동적이고 힘이 있다. 죄의 몸은 죄짓는 인격이 아니라 옛사람이 이용하는 죄짓는 도구이다. 옛사람은 죄를 범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결국 죄의 몸을 육체가 되게 한다.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어”라는 말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죄를 짓는 도구로서 옛사람에게 이용되었던 몸은 이제 할 일이 없다. 그 몸은 해고되었기 때문에 할 일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고(로마6,18-22), 더 이상 죄의 속박 아래에서 죄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무교병은 “고난의 떡”이라고 불린다. 레위23,4-7절은 “…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곧 고난을 통하여 자아파쇄(겉사람= 혼 생명= 옛사람= 자아)를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서 죽음을 맞보는 것이다.
무교절의 영적 의미의 핵심은 바로 자아파쇄이다. 자아파쇄의 체험이 없이는 부활생명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고난 중에 죽음을 체험하지 않고는 성령세례를 받을 수 없다. 성령세례는 신앙적으로 한 인생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대한 사건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은 받되, 지식적인 겉모습의 신앙인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무교절은 1주간 계속됨이다. 그 첫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이고, 다음 둘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 5일간은 일을 했다. 이 날에 무슨 일을 했을까? 이 날에 한 일은 레위기 23장 9-14에 의하면 다음 절기로 설명하려는 ‘초실절’이다. 곧 이스라엘이 처음 익은 곡식인 보리단을 거두어 하느님께 바친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은 하느님을 위한 일을 하는 날이다. 하느님께 드림이 된 처음 익은 곡식단은 무엇인가?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미한다. 1코린15,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한다. 이런 첫 열매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도 그 부활의 생명과 소망이 주어진 것이다.
5. 무교절의 영적의미(2)
마태12,38-40절은 “38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의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거늘 3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0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한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물속에 있다가 이후 하느님의 선지자로 쓰임 받는다.
모세도 초기 40년은 인간의 혈기로, 고난과 죽음의 미디안 광야 40년, 80세에 가서야 여호와 하느님이 모세를 시나이산으로 불렀다. “모세야 너의 신발을 벗어라.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곧 너의 자아가 죽었느냐?“라고 질문한 것이다. 모세의 광야 40년은 바로 무교절이었던 것이다.
야곱도 마찬가지다. 외갓집에서 21년간 고난을 겪었다. 또한 유대인도 바벨론에 70년간 처절한 집단 무교절을 체험한 것이다. 우리의 겉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불붙은 유리바다를 건너야, 곧 요단강을 건너야 하느님의 성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 땅에서 모두가 무교절을 치러야 한다. 어차피 한번은 만나야 하는 무교절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무덤 속에 있는 기간이 모두 다르다.
겔37,11-13절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말한다.
무덤이 열린다고 말한다. 곧 무교절이 끝났다는 것이다. 자녀의 무덤, 질병의 무덤, 사업의 무덤, 재물의 무덤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은 우리를 유월절의 구원을 얻었는데, 왜 무교절이라는 무덤에 넣으실까? 무덤의 문화를 끌어온 것은 아담의 산악과이다. 무교절과 선악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선악과는 나무열매가 아니라 자기의 독립된 인간의 뜻(생각)이다. 하느님의 의지 앞에 독립된 자기의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견해가 아니라 인간 개인의 견해(주장)와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사약이다. 이것은 어린아이가 칼을 가지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싫어’라는 말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마가14,36절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옳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말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이 말씀은 위대한 고백이다. 곧 생각, 감정, 의지를 반납하려고 오신 예수님이시다.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이 선악과를 다시 돌려주려고 하신 의미 깊은 말씀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견해, 뜻이 아니라 독립된 의지, 견해, 뜻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무교절에서 나올 수가 없다. 내 생각, 감정, 의지로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다. 마귀의 밥이다. 내 독립된 의지, 생각, 감정을 마귀는 호시탐탐 노린다. 무교절의 무덤을 감옥에서 치룬 사람들도 있다. 선악과를 토해 내라! 이것이 아니면 초실절(부활)의 영광이 오지 않는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이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선악과를 먹으면 바로 마귀의 수중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까지, 곧 자아파쇄를 체험할 때까지, 곧 삶중에 죽음과 같은 고난의 나락으로 떨어짐으로써 나란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을 때까지 성령의 다루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1코린15,23절 이하에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이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이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부활은 전체 믿는 이들에게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도 모두 미친다(사도26,23). 이에 대하여는 다음 ‘초실절(부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