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무술년(1538, 중종33) 겨울에 나는 다박머리 소년으로 온계(溫溪) 수곡(樹谷)의 집에서 선사(先師)를 찾아뵙고 수업을 받았다. 그대의 부친과 나는 나이가 한 살의 차이가 나는데, 이미 관례(冠禮)을 올린 성인이었다. 나는 선생의 문정(門庭)에 출입하면서 서로 더불어 나아가고 물러나며 함께한 세월이 몇 달 몇 날이 흘렀다. 뒤에 선사께서 조정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대의 부친과 볼 수 있는 날이 매우 적고 볼 수 없는 날이 많게 되었다. 간혹 만나더라도 밥을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춥고 더운 안부를 물을 정도였을 뿐이었다.
병오년(1546, 명종1)에 선사(先師)께서 조정에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그대의 부친은 토계(兎溪)의 가에서 후부인(後夫人)의 상(喪)을 치르는 중이었고, 나 또한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여 용수(龍峀)의 아래에서 거상(居喪) 중이었다. 제찬(祭饌)을 올리는 여가에 날마다 선생님의 집을 왕래하여 서로 사귀는 마음이 날로 친밀하게 되었다.
기유년(1549, 명종4) 여름에 선사(先師)께서 풍기(豐基) 군수로 부임하자 나는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 묵으면서 때로 나아가 학업을 질의하였는데, 그대의 부친이 날마다 곁에서 선생을 모셨고 그대는 어린 아이로 그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선사께서는 나를 자제(子弟)처럼 여기셨고, 나는 선사를 부형(父兄)처럼 섬겼다.
나와 자네의 부친은 정의(情義)의 친밀함이 형제처럼 간격이 없어서 나는 그 당시에 자네를 자제(子弟)처럼 여겼다. 이로부터 그 뒤로 몇 년이 흘렀고, 몇 번의 근심과 기쁨이 있었던가? 나는 자네 집의 부자(父子)와 함께 득실(得失)과 영욕(榮辱)을 마땅히 함께 같이하였으니, 비록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고, 틈이 생기려 해도 틈이 생길 수 없고,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고,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멀리하려 해도 멀리할 수 없고,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었다. 아!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굽어보고 우러러 본 것이 모두 묵은 자취가 되었다.
경오년(1570, 선조3) 겨울에 선생께서 임종하시고, 신미년(1571, 선조4) 봄에 그대는 어머니의 상을 당했다. 흉화(凶禍)가 이어짐이 몇 달 사이에 있었으니, 이를 보고 들은 사람 중에서 누가 아파하고 슬퍼하지 않았으랴? 생각하건대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의 일이었는데, 어찌하여 이번 두 해에 걸쳐 흉화(凶禍)가 중첩되어 또 이전보다 배나 슬프게 하는가? 지난해 봄에 자네의 부친은 두 서자(庶子)가 요절(夭折)하여 몹시 상심하였기 때문에 1년이 되지 않아 갑자기 관아에서 돌아가셨고, 그대의 형제 세 사람이 널을 부여잡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마을에서 누구인들 탄식하며 애도하지 않았으랴? 나의 슬픈 감정이 또한 어찌 일반적으로 시골에서 종유하던 감정에 그쳤을 뿐이겠는가?
바라던 바는 그대 형제들이 스스로 잘 섭양(攝養)하여 상사(喪事)를 마치고, 또 선사(先師)께서 남긴 경사를 백년 뒤에도 오래 전하는 것이었는데, 1년이 되지 않아 그대의 아우가 청년의 나이로 요절하였고, 두 달이 되지 않아 그대가 또 이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이 사는 집에 재앙이 거듭하여 참혹하게 이름이 이와 같을 수가 있는가? 이와 같을 수가 있는가? 나는 모르겠다. 귀신이 포악해서 그렇게 한 것인가? 천도(天道)가 무지하여 그렇게 한 것인가? 조물주가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인가? 그러나 귀신은 바르고 곧게 들으니, 귀신이 어찌 포악하겠는가? 천도는 착한 이에는 복을 내리고 음탕한 자에게 화를 내리니, 천도가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조물주는 무심하게 운명을 관장하니, 조물주가 어찌 힘이 없겠는가? 일찍이 들으니, “인자(仁者)는 반드시 훌륭한 후손이 있다.”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군자는 만년에 길이 복록과 자손을 준다.”라고 하였다.
선사(先師)께서 살아계실 적에 도덕(道德)과 문장(文章)이 우리나라에 해와 달처럼 빛났고, 사림(士林)에 산악(山嶽)처럼 우뚝하였고, 나라의 원로(元老)가 되셨으니, 마땅히 복록과 자손이 길이 뻗쳐야하고 경사와 은택이 심원(深遠)하여 천만 세대를 전하여 무궁하게 드리워 쇠함이 없어야 하는데도 지금 자손의 재앙이 이와 같이 참혹함은 어찌해서인가?
그대는 모습이 헌칠하되 얼굴이 후덕하였고, 기운이 씩씩하되 말이 온화하였고, 문장은 입신양명하기에 충분하였고, 생각은 사무를 응대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일찍이 선사(先師)의 집안을 부지할 사람은 오직 그대 한 몸에 달려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름은 말석의 과거에 오르지 못하였고 벼슬은 육품(六品)에도 이르지 못하였고, 나이는 쉰 살도 되지 못하였고 끝내 한 명의 아들도 없이 죽었다. 이것은 운수인가? 운명인가? 이것으로 본다면 귀신이 정직하고 천도가 화복을 내리고 조물주가 운명을 관장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어떠한지를 모르겠다.
나 조목은 세상에 태어나 육십 년을 살면서 눈으로 그대 집안의 삼세(三世)를 보았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할아버지, 아들, 손자 삼세의 죽음을 곡하였으니, 인간 세상에서 어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그 말을 외우며 그 뜻을 슬퍼하였는데, 어찌 오늘에 이런 일이 정녕코 내 눈앞에 닥칠 줄을 알았겠는가? 내가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이 어떤 심정이겠는가? 하늘에게 물어보려 하여도 하늘은 말이 없고, 땅에게 물어보려 하여도 땅은 응답이 없으며, 허공에 구해도 아득하게 어둡기만 하고 기댈 곳이 없으니, 나는 부득이 한바탕 통곡에 돌릴 뿐이다. 아! 슬프다.
祭李逢原 安道 文
昔在戊戌之冬。余以髫年。獲拜先師於溫溪樹谷之廬而受業焉。君之家尊。與余年相癸甲。而已爲冠者。余之出入門庭。相與進退周旋。凡幾日月矣。于後先師旣還于朝。余與君之家尊。得見者殊少。而不得見者居多。間或遇之。不過一餉寒暄之敍而已。歲在丙午年間。先師之謝仕于朝而還于鄕也。君之家尊方持後夫人之喪于免溪之上。而余亦遭。失恃之痛。居于龍峀之下。饌奠之暇。日往來于師門。而相與之意日密矣。己酉之夏。先師領郡于豐基。余栖白雲院。時就質業。則君之家尊日侍于側。而君以童稚。遊戲于其前。先師之視我猶子弟。我之事先師猶父兄。余與君之家尊。情義之密。無間如兄弟。而吾於是時。視君如子弟。自是厥後。凡經幾度星霜。幾番憂喜耶。余與君家父子。得失榮辱。當共同之。雖欲離之而不可離。雖欲間之而不可間。捨之而不可捨。忘之而不可忘。遠之而不可遠。遺之而不可遺矣。嗚呼。人生一世。俯仰陳跡。庚午之冬。君子告終。辛未之春。君丁內艱。凶禍洊臻數月之間。凡在見聞。孰不慘怛。念距于今十四五歲。何玆兩年凶禍之重疊。又倍於前耶。去歲之春。君之家尊。以兩庶子之夭折。幾至過傷。曾未一年。遽卒于官。君之兄弟三人。扶柩而還于鄕也。閭里鄕黨。孰不嗟悼。而余之悲感。又豈止於尋常遊從鄕曲之情而已乎。所屬望者。君之兄弟。善自攝養。以終大事。而又以壽先師遺慶於百歲之後。曾未朞年。君之弟。以靑年夭亡。不兩月而君又繼去。人家禍孼。重疊慘酷。有如是耶。有如是耶。吾不知鬼神暴惡而然耶。天道無知而然耶。造化無權而然耶。然正直是聽。鬼神豈暴惡者耶。福善禍淫。天道豈無知者耶。無心司命。造化豈無權者耶。嘗聞仁者必有後。又云君子萬年。永錫祚胤。先師之在世。道德文章。爲東方之日月。爲士林之山嶽。爲國家之蓍龜。宜其祚胤之延長。慶澤之深遠。傳千萬世。垂無疆而不替。今之禍子者若是其酷。何耶。君貌豐而容厚。氣壯而語和。文足以發身。慮足以應務。吾嘗謂扶持先師門戶。在君一身。而名未登末第。仕不至六秩。年未及知命。卒無孑胤以死。玆其數耶命耶。由是觀之。鬼神之正直。天道之禍福。造化之司命。吾不知何如耶。穆生世六十。眼經三世。古人云哭其祖子孫三世于人世。何如耶。吾嘗誦其言而悲其意。那知今日此事。正當我之前耶。則余之感慨而痛怛者。其將何所底乎。欲以問天則天不語。欲以問地則地不應。求諸太空則茫昧而難憑。吾不得已歸之於一哭而已。嗚呼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