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걷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한양 순성길의 완성
1. 일자: 2019. 2. 2 (토)
2. 산: 한양순성길 혜화문~사직공원
3. 행로와 시간
[혜화문(09:14) ~ 낙산공원(09:31)
~ (동대문) ~ DDP(10:03) ~ 광희문(10:12)
~ (신라호텔) ~ 반얀호텔(11:13) ~ (국립극장) ~ 남산봉수대(11:55) ~ 남산공원(12:22) ~ 남대문(12:38) ~ 서대문(12:59) ~ 인왕산입구(13:20) ~ 사직공원(13:35) / 12.4km]
2주 전 밴드에 공지를 올려 꽤 많은 이들이 함께 할거라 믿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하나
둘 이탈자가 생기고 결국, 어르신 세 분을 모신 단촐한 트레킹이 되겠다 여겼다. 당일 아침 아카님의 등장은 놀랍고도 반가웠다. 미리 온 다 하지
그랬냐는 마음에도 없는 핀잔으로 기쁜 마음을 대신했다.
산에서도 그렇지만 도심에서 길의 들머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혜화문
앞에서 돌아 나와 도로를 건너 비로서 낙산 길에 들어선다. 성곽의 돌 색이 세월을 말해준다. 희고 연노란 화강암에 거무스레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그 자연스러운
색의 변화와 켜켜이 쌓아 올려진 수직의 돌에서 정돈된 질서를 느낀다. 마음이 편해진다. 돌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도 좋다.
대학 친구의 집이 부근인지라 몇 번 와 본 기억이 나지만 많은 게 낯설다. 한성대학 건물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길가 작은 집들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장으로 변해 가는 중인가 보다. 검이불루,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공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출발 10여분 만에
낙산 마루에 선다. 돌아보는 눈에 북한산과 북악산이 들어온다. 흐린
날이 주는 차분함이 풍경에 묻어난다.
오늘 산행은 서울성곽 걷기를 완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늘 눈으로만 보아왔던 풍경을 내 발로 걷으면 본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 그
첫 목표는 낙산이고 두 번째는 국립극장 뒤로 남산에 오르는 게다. 낙산공원 성곽 앞 도로에서 굽어보는
서울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곧 친근하다.
동대문으로
내려선다. 성곽은 끊기고 어지러운 빌딩 숲에서 갈 길 몰라 하다, 청계천을
건너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들어선다. 주변을 지나며 매번 느끼는 거지만 화려한 현대식 건축에 사람이
앞도 당하는 느낌이다. 공간이 편안함을 주지 못하고‘이 넓고
낯선 곳에서 내가 어디에 있지’하는 불안감을 낳는다.
광희문에 들어서며 다시 성곽과 마주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주교신당동교회와 창충체육관과 신라호텔을 지나 남산 자락에 들어선다. 반얀트리호텔, 옛 타워호텔은 기막힌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국립극장을 돌아 남산으로
향하는 긴 성곽 길을 오른다. 성곽에 각자된 글귀에는 이 성을 쌓은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긴 성의 골격을 완성하는데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한다. 짧은
시간에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 성곽 축조를 완성한 이의 기획력과 추진력에 감탄한다. 조선 초기 공권력의
힘은 무섭고도 대단하다. 각기 다른 돌의 모양과 색의 바램에서 세월의 흔적을 다시 느낀다.
12시 무렵 남산 봉수대에 선다. 마침 봉화 점화식이 거행된다. 하나의 연기만이 피어 오른다. 복장만 요란했지 별 볼거리가 없다. 포터 존에서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선다. 날머리를 이야기 한다. 내심 사직공원까지
가자고 마음 먹는다. 밴드에 다리님의 글이 올라왔다.‘아카님, 계 탔네’계를 탄 건 아카님이 아닌 네 남자다. 남자 넷이 배낭 메고 성곽을 걷는 모습, 왠지 처량해 보였을 것
같다. 오늘 나들이에 아카님은 그야말로 ‘사이다’다. 고맙고 든든했다.
지겹게 느껴지던 긴 계단도 담소하며 내려오니 금방이다. 안중근
의사의 흔적과 김구 선생의 동상이 서 있는 공원에 선다. 개방감이 참 좋은 곳이다. 옆으로는 새로 축조된 성곽이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채 끊어질 듯 길게 남대문까지 이어진다.
남대문을 지나며 길이 어지럽다. 서소문터를 지나 정동극장과
돈의문터를 지나 경희궁으로 향해야 하는데 도로를 따라 서대문을 지나 경교장 부근을 거쳐 월암공원으로 들어선다. 어찌
왔는지 다시 찾아가라 하면 답이 없다. 송암님은 방향 감각이 뛰어났다.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는 나보다 직관적이며 정확했다. 경험은 최고로 효율적인 답이다.
예전엔 미쳐 알지 못했던 인왕산으로 향하는 성곽 입구를 지나 사직공원으로 내려선다. 성곽일주가 마무리된다. 일이 마무리되니 배가 고파 온다.
< 에필로그 >
걷는 중엔
어디가 어딘지 살필 여유가 없었다. 돌아와서야 찬찬히 지도를 들여다 본다. 성곽 길이 이어진다. 여기선 이리로 갔어야 하는 늦은 후회가 온다. 그래도 계획대로 12km, 4시간 남짓의 순성길 놀이를 별 어려움
없이 마쳤다. 낙산과 남산의 재발견이었다. 어르신 셋과 남자
하나, 여인 한 분….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낸
조화가 꽤 근사했다. 걷는 내내 지루한 줄 몰랐다.
함께 길을 걷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첫댓글 예전같음 길이 험하여 걷기에 엄두도 못낼길을
지금은 서울을 이끌어온분들의노고와 노력으로 낭만가득한성곽길을 걷는 오늘같은시간을 가진것을 즐거운추억으로 기억될듯합니다.
함께해주신것을 감사드립니다.
서프라이즈 출현에 감사해요^^
즐거웠고 다음에 또 가죠~~
어르신들의 노고에 감사드려야죠^^~~
느리게님께서도 고생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