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마다 원효, 의상대사가...
절집의 안내를 보면
어디나 원효대사나 의상대사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사실 두 대사분들 신라시대의
교종의 유학파 고승이다.
지금의 불교의 종파는
선종의 조계종 등이 주축인데도
교종의 두 대사와 연관있는
절들을 많이 보게된다.
신라시대 지어진 절들이고
그 당시부터 전국의 요충지에 지어진
절이고 오래되다보니 문화재도 많고
신라나 고려때까지
잘 관리되어 온 절인지라
번듯하게 문화재로 안내까지
되어 있는 까닭일 듯 하다.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절들도 있을 것이고
한번쯤은
원효, 의상대사가 다녀간
절일 수도 있다.
*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_ 최치원의 <법장화상전>과
_ <삼국유사> ‘의상전교조’에서
그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두 곳의 기록이 약간 상이하기는 하다.
* 어디에 있는 어느 사찰인가?
십찰이라하여 열개의 사찰로 생각하고
열개의 사찰을 골라내려면 쉽지 않다.
오래된 고서적의 글이고
유명 사찰이었음에도 오랜세월동안
흥망성쇄를 같이하여
흔적도 없이 없어지거나
이름이 바뀐 경우도 있으나
그 역사적사실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다.
아래의 지도에서 열개의 사찰이라면
보광사와 비마라사가 빠진다.
법장화상전중 에서도
열개의 사찰을 지정하자면
보광사와 화사사가 빠진다
여기서는
12개의 사찰을 기준으로 서술코자 한다.
*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인
의상(義湘, 625-702)대사의
화엄전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
의상대사가 직접 선교한 사찰도 있지만
의상대사의 사후에 만들어져
그의 제자나 문도들이
화엄전교를 한 사찰도 있다.
*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만들 당시에는 유명사찰이었지만
1,0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이 지나며
아직까지도 고색찬연하게
남아있는 사찰도,
(부석사, 해인사, 화엄사,
범어사, 귀신사, 갑사)
흔적없이 고서상 기록만 남아
그 터를 정확히 추정키 어려운 곳도,
(가야산 보광사와 비슬산 옥천사다.
_ 강주(康州) 가야산 보광사(普光寺)는
과거 보광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김천 수도사로 보이며
비슬산 옥천사는
경남 고성 연화산 옥천사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경북 달성 비슬산
용천사를 거론하기도 한다.)
사찰터가 발견되어
그 사찰터가 발굴되어 진 곳도 있다.
(원주 비마라사(毘摩羅寺),
웅주(熊州) 가야협 보원사(普願寺),
한주(漢州) 부아산(負兒山)
청담사(淸潭寺),
중악(中岳) 공산(公山) 미리사(美理寺),
삭주(朔州) 화산사(華山寺)등이다.)
* 교종인 화엄종
불교의 두가지 큰 분류로
교종과 선종이 있는데
교종(敎宗)은 형식과 교리,
경전을 중시하는 불교 종파이며
선종 (禪宗)은 체험을 중시하는 종파이다.
조계종, 천태종이 선종이며
원효의 법상종, 의상의 화엄종이
대표적 교종이다.
두 정파의 성격상
선종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교종은 일반 대중속인 평지가 일반적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까지는
교종이 대세를 이루었고
조선조들어 선종이 대다수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위에서 보는 봐와 같이
교종인 화엄종이 통일신라시대에
평지가 아닌 위치인 산중에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종교적이외의 이유가 있다는 시사점이다.
* 화엄십찰이 번성한 이유
신라의 국교라고 할 만한
의상의 화엄종 대표사찰이
번성한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나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도
그 당시의 지배층의 필요도 있었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연관하여
화엄십찰이 만들어지고 번성한
이유를 추측해보면
첫 번째,
사찰의 본래 목적인
종교적, 사상적 의미이다.
통일시라시대 백제의 경우
부여, 공주, 익산 등의 불교유적을 볼때
불교에 대해서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피정복민의 정서교화와
신라와의 일체감 형성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여 삼국의 백성 누구나 믿던
불교를 통하여 통합 작업을 이루려 것이
신라의 지배층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옛 백제의 사찰 위에
다시 지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산 보원사와
김제 귀신사입니다.
둘째는
화엄십찰은 피정복지에 대한
감시의 목적으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피정복지 구석구석에
이러한 대찰들을 세운다면
이 사찰들은 지역에서 상당한
경제적 여유를 축적할 수 있으며,
아울러 지역민들에 대한 일종의
감시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거나
교통의 요충지로서
변방과 요충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산 보원사는
중국 교역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 부여로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습니다. 비슬산 옥천사는
진주와 고성, 사천과 진해를
잇는 십자로의 중앙에,
과거 소가야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인사는
신라서부전선의 요충지였던
대야성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범어사는
왜(倭)의 침입이 잦았던 곳에
왜의 침입이 사라질 것을 기원하며
세운 절입니다.
부석사는
역시 경주로 통하는 최고의 요지인
소백산맥을 넘는 고개에 위치해 있습니다.
* 화엄십찰의 이의
화엄십찰은
의상대사가 직접 창건한 절,
후대 제자 창건한 절,
후대 화엄종찰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띄고 있다.
이외에도
의상스님의 출가사찰 황복사를 비롯하여
창건하거나 주석했던 낙산사, 불영사,
마하연, 불국사, 월유사, 봉정사, 세달사,
숭복사, 천관사 등
수 많은 사찰이 화엄종과 관련 있다.
그래서 10은 특정 수가 아니라
많다는 의미다.
해인사 화엄사 부석사 범어사처럼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는 사찰도 있고
위치 조차 확인할 수 없는 사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