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東文選 서문
하늘과 땅이 처음 나누어지자 문장이 이에 생겨났으니, 해와 달과 별들이 위에 총총하게 늘어서 하늘의 문장이 되었고, 산악과 바다와 강이 아래에서 흐르고 솟아 땅의 문장이 되었다. 성인이 괘(卦)를 긋고 글자를 만드니1) 사람의 문장[人文]이 차츰 펴지게 되었다.
정일중극精一中極은 문장의 체體이고, 시서예악은 문장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서로 다른 문장이 있고 문장마다 서로 다른 문체가 있다. 전모(典謨)를 읽으면 당우(唐虞) 시대의 문장을 알고, 훈고訓誥와 서명(誓命)을 읽으면 삼대(三代)의 문장을 안다.2) 진(秦)나라에서 한(漢)나라로, 한나라에서 위진(魏晉) 시대로, 위진 시대에서 수당(隋唐) 시대로, 수당 시대에서 송원(宋元) 시대로 내려오면서 그 시대를 논하고 그 문장을 상고해 보면, 문선文選3), 문수文粹4), 문감文鑑5), 문류文類6) 등의 책으로써 또한 후세 문운(文運)의 높낮이를 대략 논할 수 있다.
근세에 문장을 논하는 자가, 송나라의 문장은 당나라의 문장이 아니고 당나라의 문장은 한나라의 문장이 아니고 한나라의 문장은 춘추전국 시대의 문장이 아니고 춘추전국 시대의 문장은 삼대와 당우 시대의 문장이 아니라고 하였는데,7) 이는 참으로 식견이 있는 말이다.
우리 동방은 단군이 건국한 시대의 일은 아득하여 알 수가 없고, 기자(箕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천양하고 팔조법금(八條法禁)을 펼쳤으니 그 당시에는 필시 숭상할 만한 문치(文治)가 있었을 것인데, 문적이 남아 있지 않다.
삼국이 정립한 시대에는 날마다 전쟁이 이어졌으니 어찌 시서(詩書)를 일삼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을지문덕 장군이 사명(辭命)을 잘하여 수(隋)나라 백만 대군을 막았으며, 신라에서는 당나라에 들어가 급제한 자가 50여 명이나 되었는데 최치원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니 언사(言辭)에 능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전하는 것이 거의 없으니, 참으로 탄식스럽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로 문치가 차츰 흥성하여, 광종(光宗)은 과거제도를 설치하여 인재를 뽑았고 예종(睿宗) 은 문아(文雅)를 좋아하였다. 이어서 인종(仁宗)과 명종(明宗)도 유아(儒雅)를 숭상하여, 호걸스러운 선비들이 찬란히 배출되었다. 그리하여 북송(北宋), 남송, 요(遼)나라, 금(金)나라가 침략해 올 때에 누차 문사(文詞)로 나라의 근심을 풀 수 있었다.8) 원나라 때에는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중원(中原)의 인재와 우열을 다투는 이들이 계속 나왔다.
명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여 삼광(三光)과 오악(五岳)9)의 기운이 온전해지고, 우리나라 열성(列聖)들께서 서로 계승하며 인재를 길러 온 지가 100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난 인물들이 정수(精粹)를 반죽하여 문장을 지어서 역동적으로 발휘한 것이 또한 옛날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것은 우리 동방의 문장이다. 한나라나 당나라의 문장이 아니며 또한 송나라나 원나라의 문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당연히 역대의 문장과 더불어 천지 사이에 나란히 유행해야 한다. 어찌 민멸되어 전해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태현(金台鉉)10)이 지은 《문감(文鑑)》은 소략함을 면치 못했고 최해(崔瀣)11)가 지은 《동인문(東人文)》은 빠뜨린 것이 많다. 어찌 문헌에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하늘이 한량하지 아니하고 맡겨 놓은 성학(聖學)으로서,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오시어 경사(經史)를 즐겨 보시고, ‘우리나라 문인들의 문장 저술이 비록 육경(六經)에 견줄 수는 없으나 또한 문운(文運)의 성쇠를 볼 수 있다.’ 하시어, 영돈녕부사 노사신(盧思愼), 이조 판서 강희맹(姜希孟), 공조 판서 양성지(梁誠之), 이조 참판 이파(李坡) 및 거정에게 여러 문인의 작품을 모아 한 질의 책을 만들도록12) 명하셨다.
그리하여 신들이 우러러 성상의 말씀을 받들어, 삼국 시대로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사(辭), 부(賦), 시(詩), 문(文) 등 약간의 문체를 수집하였다. 그중에 사리(詞理)가 순정(醇正)하고 정치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취하여 문체에 따라 분류하고 130권으로 정리하여 책을 엮어 올리니, 성상께서 《동문선(東文選)》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거정이 삼가 생각건대, 《주역》에 “인문(人文)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13) 하였다. 대개 천지에는 자연(自然)의 문장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의 문장을 법으로 삼는 것이다. 시대의 운수는 성쇠의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문장에 높고 낮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육경 이후로는 오직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와 명나라 문장만이 옛 문장에 가까우니, 그 당시에 천지의 기운이 왕성하여 큰 음향이 절로 완전해서, 다른 시대처럼 남북으로 분열되는 병폐가 없었 기 때문이다.
우리 동방의 문장은 삼국 시대에 시작하여 고려 때에 융성하였고, 조선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문장이 천지 기운의 성쇠에 관계됨은 여기에서도 상고할 수 있다. 더구나 문장이라는 것은 ‘도를 꿰는 도구[貫道之器]’이다. 육경의 문장은 문장을 잘 짓는 데에 뜻을 둔 것이 아니어서, 저절로 도에 합치하였다. 후세의 문장은 먼저 문장을 잘 짓는 데에 뜻을 두어서, 때로 도에 순수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오늘날의 학자들이 참으로 도에 마음을 두어, 문장을 꾸미는 데에 치중하지 않고 경문(經文)을 근본으로 삼으며, 제자(諸子)에 얽매이지 않아서, 아정(雅正)함을 숭상하고 부화(浮華)함을 물리쳐 고명하고 정대하게 한다면, 성경(聖經)을 돕는 데에 필시 그 길이 있을 것이다. 만약 문장을 꾸미는 데에 치중하고 도에 근본하지 않아서, 육경의 법도를 위배하고 제자의 한계 안에 떨어진다면, 그 문장은 도를 꿰는 문장이 아닐 것이며 오늘날 간곡히 깨우쳐 주시는 성상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성상께서 위에 계시고 천지의 기운이 융성하니, 이 시기에 맞추어 태어나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인물이 필시 잇달아 나올 것이다. 또한 어찌 인물이 없을까를 걱정하랴. 거정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붓을 잡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술년(1478, 성종9).
東文選序
乹坤肇判。文乃生焉。日月星辰。森列乎上。而爲天之文。山海岳瀆。流峙乎下。而爲地之文。聖人畫卦造書。人文漸宣。精一中極。文之體也。詩書禮樂。文之用也。是以。代各有文。而文各有體。讀典謨。知唐虞之文。讀訓誥誓命。知三代之文。秦而漢。漢而魏,晉。魏,晉而隋,唐。隋,唐而宋,元。論其世。考其文。則以文選,文粹,文鑑,文類諸篇。而亦槩論後世文運之上下者矣。近世論文者。有曰宋不唐。唐不漢。漢不春秋戰國。戰國不三代唐虞。此誠有見之論也。吾東方。檀君立國。鴻荒莫追。箕子闡九疇。敷八條。當其時。必有文治可尙。而載籍不存。三國鼎峙。干戈日尋。安事詩書。然在高句麗。乙支文德善辭命。抗隋家百萬之師。在新羅。入唐登第者。五十有餘人。崔致遠黃巢之檄。名震天下。非無能言之士。而今皆罕傳。良可嘆已。高麗氏統三以來。文治漸興。光宗設科取士。睿宗好文雅。繼而仁,明。亦尙儒雅。豪傑之士。彬彬輩出。當兩宋,遼,金搶攘之日。屢以文詞。得紵國患。至元朝。由賓貢中制科。與中原才士頡頏上下者。前後相望。皇明混一。光岳氣全。我國家列聖相承。涵養百年。人物之生於其間。磅礴精粹。作爲文章。動盪發越者。亦無讓於古。是則我東方之文。非漢,唐之文。亦非宋,元之文。而乃我國之文也。宜與歷代之文。幷行於天地間。胡可泯焉而無傳也哉。奈何金台鉉作文鑑。失之踈略。崔瀣著東人文。散逸尙多。豈不爲文獻之一大慨也哉。恭惟殿下。天縱聖學。日御經筵。樂觀經史。以篇翰著述。雖非六籍之比。然亦可見文運之興替。命領敦寧府事臣盧思愼,吏曹判書臣姜希孟,工曹判書臣梁誠之,吏曹參判臣李坡曁臣居正。裒集諸家所作。粹爲一帙。臣等仰承隆委。採自三國。至于當代辭賦詩文若干體。取其詞理醇正。有補治敎者。分門類聚。釐爲百三十卷。編成以進。賜名曰東文選。臣居正竊念。易曰。觀乎人文。以化成天下。盖天地有自然之文。故聖人法天地之文。時運有盛衰之殊。故文章有高下之異。六經之後。惟漢,唐,宋,元,皇朝之文。爲近古。由其天地氣盛。大音自完。無異時南北分裂之患故也。吾東方之文。始於三國。盛於高麗。極於聖朝。其關於天地氣運之盛衰者。因亦可考矣。况文者。貫道之器。六經之文。非有意於文。而自然配乎道。後世之文。先有意於文。而或未純乎道。今之學者誠能心於道。不文於文。本乎經。不規規於諸子。崇雅黜浮。高明正太。則其所以羽翼聖經者。必有其道。如或文於文。不本乎道。背六經之規彠。落諸子之科臼。則文非貫道之文。而非今日開牖之盛意也。然今聖明在上。天地氣盛。人物之應期而生。以文鳴世者。必于于而興焉。亦何患乎無人也。臣雖不才。尙當秉筆竢之。戊戌。
[주1] 성인이 …… 만드니 : 중국 상고시대에 복희씨(伏羲氏)가 처음으로 팔괘(八卦)를 긋고 서계(書契)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2] 전모(典謨)를 …… 안다 : 전모와 훈고(訓誥)와 서명(誓命)은 모두 《서경》의 문체들이다. 《서경》에는 6종류의 문체가 있는데, 〈요전(堯典)〉과 〈순전(舜典)〉 등의 전, 〈대우모(大禹謨)〉와 〈고요모(皐陶謨)〉 등의 모, 〈이훈(伊訓)〉의 훈, 〈탕고(湯誥)〉와 〈강고(康誥)〉 등의 고, 〈목서(牧誓)〉와 〈진서(秦誓)〉 등의 서, 〈열명(說命)〉과 〈문후지명(文侯之命)〉 등의 명이 그것이다.
[주3] 문선(文選) : 남조 시대 양(梁)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선진(先秦) 시대에서 양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문학 작품을 뽑아서 엮은 책이다.
[주4] 문수(文粹) : 송나라 요현(姚鉉)이 당나라 때의 문장을 모아서 엮은 《당문수(唐文粹)》를 말한다.
[주5] 문감(文鑑) : 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이 송나라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이다. 《송문감(宋文鑑)》 또는 《황조문감(皇朝文鑑)》이라고도 한다.
[주6] 문류(文類) : 원나라 소천작(蘇天爵)이 원나라 때의 문장을 모아 엮은 《원문류(元文類)》를 말한다.
[주7] 근세에 …… 하였는데 : 원나라 오징(吳澄)이 지은 〈별조자앙서(別趙子昂序)〉에 나온다. 《오문정집(吳文正集)》 권25와 《원문류(元文類)》 권34에 실려 있다.
[주8] 나라의 …… 있었다 : 대본에는 ‘得紵國患’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紵’는 ‘紓’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9] 삼광(三光)과 오악(五岳) : 해와 달과 별을 삼광이라 하고, 중국의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崇山)을 오악이라 한다.
[주10] 김태현(金台鉉) : 1261~1330. 고려 말의 정치가, 학자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불기(不器), 호는 쾌헌(快軒)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의 시문들을 모아 《동국문감(東國文鑑)》을 엮었는데, 《해동문감(海東文鑑)》이라고도 한다.
[주11] 최해(崔瀣) : 1287~1340. 고려 말의 정치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언명(彥明)ㆍ수옹(壽翁), 호는 예산농은(猊山農隱)ㆍ졸옹(拙翁) 등이다. 《동인지문(東人之文)》을 엮었다.
[주12] 한 질의 책을 만들도록 : 대본에는 ‘粹爲一帙’로 되어 있으나 ‘粹’는 ‘稡’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13] 주역에 …… 하였다 : 《주역》 〈비괘(賁卦) 단전(彖傳)〉에, “천문을 관찰하여 시변을 살피고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 교화한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