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또 이진망李眞望1)
뇌락한 영웅호걸 의표(儀表)를 갖추시고 磊落英豪表
일생 동안 예악에 깊이 침잠하셨던 분 沈潛禮樂塲
연원이 본래부터 참되고 정확하여 淵源本眞的
도와 덕이 마침내 밝은 빛을 발하였네 道德遂輝光
소인배들 시끄럽게 떠들어 대건 말건 度外蜩螗沸
책 속에서 긴 세월을 한가롭게 보내셨지 書中日月長
여유롭게 천지조화 따라 떠나가셨건만 悠然且觀化
남은 사람 들보 꺾인 통한에 젖는구나 人自慟摧樑
또
선생을 찾아뵙고 큰절을 올릴 때면 每於床下拜
덕을 흠모하는 마음 더욱 새로워졌지 欽德意愈新
가르침 받은 날이 적은 것을 한탄하며 秖恨薰陶淺
괜스레 참된 기상 우러러볼 뿐이었네 空瞻氣象眞
산하가 바른 기운 거두어 가 버리니 山河收正氣
아쉽게도 임학이 완전한 분 잃었구나 林壑失完人
앞으로 남쪽 고을 지나갈 일 있을 때면 他日南州路
봄기운 가득하던 강석 길이 생각하리 長懷一座春
이진망李眞望 1672년(현종 13)사망 연도1737년(영조 13)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구숙(久叔), 호는 도운(陶雲) 또는 퇴운(退雲).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영(李哲英)이고, 아버지는 이우성(李羽成)이며, 어머니는 정이화(鄭以和)의 딸이다.1696년(숙종 22)에 생원이 되고, 1711년(숙종 37)에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持平)·정언(正言)을 거쳐 1718년 의성현령을 지내고, 1725년(영조 1) 대사성으로 소론(少論)인 이광좌(李光佐)의 신원을 상소하였다. 1730년 형조판서가 되고, 1732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판서가 되어 대제학을 겸하였다. 1735년에 좌참찬으로 빈객(賓客)을 겸하였으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죽었다. 영조의 잠저(潛邸: 즉위하기 전의 그 임금이 살던 집이나 그 때의 지위) 때에 사부(師傅)였으므로 국왕이 예우를 하였다. 저서로는『도운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