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옆면을 사랑해 외 1편
서상민
자귀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네
자귀나무 꽃그늘에는 태양의 속눈썹들이 눈동자를 깜박이네
당신은 두 손을 꽃받침 삼아 턱을 감싸고
사선의 하늘을 향해 포즈를 취하네
당신의 밝은 왼뺨과 그늘진 오른뺨이
심장으로부터 가장 먼
손과 발목을 가늘게 하네
프레임 가득 피어난 당신의 미소
그 미소에서 번지는 향기가
여름의 한 모서리를 환하게 하네
에티오피아 해변을 걸어가는 여자의 흑발에서 시작된 바람이
이별의 수 세기를 건너와
자귀나무 꽃잎을 흔들면
맨 처음 나의 눈을 멀게 했고 새로이 눈뜨게 했던
영롱한 추락들
아름다운 순간은 쉽게 오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나는
셔터를 누르고
눈 덮인 산맥의 푸른 심장을 지나
바글거리는 칠월의 햇빛을 건너
당신 옆에 고이 서네
줌으로 끌어당긴 그해 여름은 온통 옆면이네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돌아선 당신이 웃고 있네
처음 당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놀란 눈길을 거두었던 일을 떠올리네
내가 지닌 사진 속에는 당신의 정면이 없네
돌이켜보면
내가 사랑했던 건 당신이라기보다
당신에 대한 나의 오해일지도 모르네
나는 당신의 옆면을 사랑하네
가을, 하필
인사동엘 가서
그림을 보고
가을이고
잎은 지는데
8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아득한 꿈같고
샤워를 하고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젖은 수건이
누군가의 유서 같아서
― Note
아름다움의 가장 근친인 언어는 불안하다는 말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니 새는 보이지 않는데 새 울음소리 공중에 가득하다. 그 소리는 그지없이 아름답고 불안하다. 어떤 것들은 아는 순간 시시해져서 모르는 게 좋을 때가 있다. 모르는 것들에는 오해의 속삭임이 깃들어 있다. 오해에 대한 매혹과 집착은 어느 정도 무지에 힘입어 있다. 매혹과 긴장의 순간은 지나친 과잉이거나 결핍의 시간이며 타협할 수 없는 불안한 순간이다. 아름답고 불안한 것들이여 부디 융성해지길.
서상민 | 2018년 『문예바다』 신인상 시 당선. 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