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와 빛깔로 시선을 압도하는 꽃, 수국(水菊)
바야흐로 수국의 계절을 맞았다. 몇몇 곳에서는 이미 꽃잔치가 한창이고 강진, 공주, 태안, 거제 등 여러 지역에서도 이달 중순경 수국축제를 시작할 모양이다. 요즘은 자치단체와 지역의 공, 사립 식물원 및 수목원에서 철 따라 대규모 꽃밭을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에 꽃과 식물만큼 훌륭한 대상물도 없을 터라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수국은 범의귀과 수국속 집안의 잎지는 넓은잎 작은키나무다. 자생 개체는 없고 일부러 심어 가꾸는 식물로 높이 1m가량 자라며 여러 줄기가 돋아 포기를 이룬다. 마주나는 달걀모양 잎은 짙은 녹색으로 크고 두꺼우며 광택이 난다. 6~7월 피는 꽃은 지름 10~15cm의 공모양 꽃차례를 이뤄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수국꽃은 초기에 연두색이었다가 흰색을 거쳐 청색이나 붉은색으로 바뀌는데 빛깔은 일정하지 않다. 이는 토양의 수소이온농도(pH) 때문이며 대개 산성 토양에서는 파란색을,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분홍색을 띤다. 흙의 산도를 높이거나 염도를 높인다면 얼마든지 꽃 색깔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수국의 둥근 꽃차례에 달리는 꽃잎처럼 보이는 4~5개의 낱조각은 실상 꽃받침이며 이는 모두 무성꽃, 즉 헛꽃이다. 꽃이 가져야 할 기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없고, 당연히 열매도 맺지 못한다. 이는 만들어진 식물이 갖는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수국의 본래 원산지는 중국일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인들이 이를 가져다 교배와 육종 과정을 통해 원예품종인 지금의 수국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암술과 수술을 잃어버린 탓에 자연번식은 하지 못하고 포기나누기나 꺾꽂이를 통해 번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수국은 한자로 물 水, 국화 菊 자를 쓰는데, 이는 일본식 표기의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그리스어로 ‘물’을 뜻하는 하이드로(hydro)와 ‘그릇’을 뜻하는 안게리온(angerion)의 합성어인 Hydrangea가 속명에 붙은 데서도 물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산국, 감국, 해국 같은 국화과 식물에나 어울릴 국화 菊 자가 뒤에 붙은 건 뜻밖이다.
본래 중국에서 불리던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 즉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책 『물명고(物名攷)』에도 水菊이 아닌 繡毬라고 적혔다니 이미 그 이전 시기에 중국 수국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원산 수국과는 상당히 다를 테지만 외려 지금의 수국꽃에 보랏빛 비단으로 수놓은 둥근 꽃이라는 의미가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국은 추위에 약한 편이라 중부 이남 지역에 많이 심으며 사찰에서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결례일지 모르겠는데 사찰에서 유독 불두화나 수국을 많이 심는 것은 결실하지 못하는 특성이 금욕을 실천해야 하는 승려들의 삶과 맞아서이지 않을까 짐작된다. 허나 금욕적 삶이 어디 승려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도 육체적, 물질적 욕망을 줄이고 그 자리에 정신의 풍요를 채우려는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출처 : 음성신문 https://www.u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