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법시처(說法時處)
●一時에佛이住-王舍城의耆闍崛山中하시니라
◉일시(一時)에 부처님이 왕사성의 기사굴산 중턱에 머무셨다.
1-일시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나, 언제나 부처님이 계신다는 뜻이다. 법화경에서 “나는 열반하지 않고 언제나 있으나, 중생이 내가 열반하지 않고 언제나 있다는 것을 알면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에 임시로 열반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셨고, 또 법화경에서 “너희들의 아버지가 타국에서 죽었다.”라고 하신 것이다. 또 법화경에서 “모든 부처님은 언제나 설법을 하신다.”라고 하셨다.
2-부처님이란, 삼세를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삼세를 깨달았다는 것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성불한 것과,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는 것이다.
3-사성제와 십이연기를 알았기 때문에 부처가 된 것이 아니다. 왜냐? 사성제를 안다는 것을 성문의 깨달음이고 십이연기를 안다는 것을 연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4-성문과 연각은 보살과 중생에게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줄 능력이 못된다. 따라서 성문과 연각의 사성제와 십이연기의 깨달음을 부처라 말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
5-부처란! 모든 것을 보고 알았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모든 것을 알고 보았다.”라고 하셨다. 또 대반야경에서 “모든 것을 알고 보아야 부처라 말한다.”라고 하셨다. 이는 모르는 것이 없어야 부처라는 뜻이다.
6-왕사성의 기사굴산 중턱이란, 도읍의 이름인데 즉 왕사라는 성의 근처에 기사굴이라는 산의 중턱 있었는데 그곳에 계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은 세간의 이해이다.
7-기사굴산의 중턱이란, 출세간의 경계를 뜻한다. 모든 대승경전을 연설하는 장소는 거의 모두 출세간의 경계에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었고, 세간의 경계에서 연설하시는 경우는 거의 모두 소승경전을 연설하시었다.
8-기사굴산을 세간의 입각하였을 경우, 인간계의 산일 뿐이고, 출세간에 입각하면 법화경에서, “내가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넓히리라.”라고 하셨다.
9-몽중안(夢中眼-꿈을 보는 눈)으로 기사굴을 보게 되면, 부처님이 지금 기사굴산에서 설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0-몽중안은 육신의 눈에 의지하지 않고 보는 눈의 감각이다. 즉 육신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감각기관이다.
11-육신의 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낳아주신 것이니, 내가 눈으로 보는 것은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대반야경에서 “도무지 보는 것이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12-사람의 눈은 제 것이 아니고 부모가 낳고 길러주신 눈이니, 이 눈이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 이 눈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3-내 것이 아닌 눈으로 보면서 내가 본다고 말하면 이는 뒤바뀐 것이다. 따라서 모든 대승경전에서 “중생은 마음이 뒤바뀌어 나가 없는데 나라고 집착한다.”라고 하셨다.
14-나란 내가 없음을 아는 존재가 나이다. 이는 즉 어떤 중생의 몸을 하였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눈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몽중안이다. 이 몽중안이 힘이 없으면 육신의 눈에 끌려 다니게 된다.
15-몽중안을 불안(佛眼)이라고 한다. 이 눈은 온갖 것을 볼 수 있으나 제 눈은 보지 못한다. 제 눈을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화엄경에서 “이 마음은 존재라 할 수 없으나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이 불가사의하다.”라고 하셨다.
16-또 화엄경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는 몽중안을 뜻하는 것이다. 몽중안 즉 꿈을 보는 눈이 어떤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보이는 대상이 있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먼저 보이는 대상을 만들어놓고 보는 것이다.
17-이리하여 몽중안으로 본다는 것은 모두 허상이고 가짜이고 진실이 아니다. 따라서 보이는 모든 것이 허상이고 가짜이고 진실이 아님을 아는 것은 몽중안이 열렸을 경우를 말한다.
18-대반야경과 여러 대승경전에서 “보살은 중생이 비록 허상이고 가짜이고 진실이 아닌 줄을 알지면 중생을 교화한다.”라고 하셨다.
19-우리들 여래종족이 법화경을 읽을 때에,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시는 것을 듣는 것과 같다고 여기면 이때 육신의 눈이 아니라 몽중안이 열린 것이다.
20-몽중안이 열리면 당장이라도 영산 당시에 법화경을 연설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가 있다. 왜냐? 몽중안은 과거를 보는데 걸림이 없고 미래를 보는데 걸림이 없고, 현재를 보는데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21-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꿈을 꿀 적에 과거를 보기도 하고 미래를 보기도 하는 것은 꿈을 통해 몽중안이 열렸기 때문이다.
22-법화경에서 “부모가 낳아준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본다.”라고 한 것은 몽중안이 열렸다는 것이다.
23-우리들 여래인은 몽중안이 한 번 열리면 이때부터 성불하는데 빠른 사람은 7일이 걸리고 늦어도 다음 생에 성불을 한다.
24-따라서 여래인들은 평소에 무엇을 보거나 생각하든 간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몽중안으로 본다고 상상해야 한다.
25-몽중안이 열리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몽중안이 열리면 기사굴산을 볼 수 있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는가? 보고자 하면 즉시 보이는 것이다. 보고자 하면 즉시 보이는 것이 바로 몽중안이다.
26-몽중안은 보이는 대상이 있어서 보는 것이 아니고 보고자 하여야 보이는 것이다.
27-마치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지독하게 보고 싶어 하면 꿈에서 보는 것과 같다.
28-몽중안은 보고자 하면 보이는 것이니, 이를 신통의 능력이라 말한다. 이 신통한 감각이 바로 성불을 하는 감각이다.
29-몽중안을 닦으면 신체에 변화가 온다. 즉 몸이 건강해져서 병이 생기지않게 된다. 법화경에서 “이 법화경을 읽으면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병이나 정해진 업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또 대반야경에서 “대승경전을 읽으면 몸이 건강해져서 오래 산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깨달음에 가까이 가면 몸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31-만약 고치지 못하는 병이 걸리면 몽중구몽경을 10만 번 읽으면 완쾌가 된다. 왜냐? 몸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수행이란 몸과 마음에 변화가 범부에서 성인으로 가기 때문이다.
32-비로 이 몸이 도무지 투자가치가 없는 것인데, 투자가치가 있다고 집착을 하면 몸에 병이 오기 마련이다. 어찌하여 투자가치가 없는가? 이 몸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부모가 만들어준 것이니, 이 몸은 털끝하나라도 내 것이 없다.
33-따라서 내라는 감각기관은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법화경에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마라.”라고 하신 것이다.
34-몽중안으로 통해 영산회상을 보거나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경전회상을 보는 것이 깨달음이고, 조계종의 참선에서 나는 영산회상이나 모든 부처님의 설법회상을 보았다고 말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깨달음이란 이런 것임을 알아야 한다.
35-법화경에서 부모가 낳아준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라고 하셨다. 이런 것이 깨달음이다.
36-몽중안이 가장 먼저 열려야 하는 이유는 부처님이 모든 경전에서 안이비설신의의 순서를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법화경에서 “부모가 낳아준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본다.”라고 하셨다.
37-따라서 먼저 보는 것이 깨달음의 순서이기 때문에, 몽중안이 가장 먼저 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나머지 감각이 한꺼번에 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몽중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보는 즉시 삼천대천세의 모든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38-몽중안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는 것이고, 육신의 눈은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업에 따라 생을 받을 때마다 다른 육신의 눈을 가지게 되나, 이 몽중안은 업에 따라 생을 받아도 변하는 일이 없다.
39-왜냐하면! 성불(成佛)하는 눈이기 때문이다. 성불하는 눈은 불성이라 변하는 일이 없다. 다만 육신의 눈에 가려져서 몽중안이 깨어나지 못할 뿐이다.
40-법화경의 백미는 바로 몽중구몽이다. 이 몽중구몽은 몽중안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법화경에는 수행하는 법이 없다.” 라고 말하는데 이는 범부의 기준이고, 법화경을 가리켜 성불하는 경전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몽중구몽을 알았다는 것이고, 몽중안이 열렸다는 것이다.
41-어떻게 몽중안을 닦는가?
첫째 바르게 앉아서 척추를 세우고 결가부좌나 또는 양반자세를 한다.
둘째 생각을 이마에 집중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무엇이건 보일 것이다. 이 보이는 것에 집중을 하여 계속하여 관찰하되, 어떤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몽중안이 열리기 전에 잡념이 있어서는 몽중안이 열리는 것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법은 모두 환영인 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꿈속에서 어떤 무서운 것이든 좋은 것을 볼지라도 모두 꿈속일 뿐인 것과 같다.
넷째 저절로 호흡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헐떡이든 호흡이 길어지는데, 호흡이 길어지면서 몽중안이 오랫동안 머물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섯째 몽중안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면 다른 감각과 동시에 열리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섯째 이마가 꿈틀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마가 꿈틀되는 것은 몽중안이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곱째 몽중안을 오랫동안 닦으면 평소에도 이마를 통해 사물을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된다.
여덟째 반야심경과 구몽삼매경과 지용의 사대보살의 이름을 하루에 최소한 10번씩 읽고 가급적이면 외우는 것이 좋다. 즉 몽중안을 닦기 전에 반야심경과 몽중구몽경을 읽거나 외운 다음에 몽중안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
아홉째 몽중안을 닦을 때에 하루에 10분 또는 1시간을 정해놓고 닦는 것이 좋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닦아서는 안 된다.
열째 언제나 지용보살이 우리들의 스승임을 알고 평소에 지용의 사대보살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