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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3-7절.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라고 한 이유
3절.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I urged you upon my departure for Macedonia, remain on at Ephesus so that you may instruct certain men not to teach strange doctrines,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Καθὼς παρεκάλεσά σε προσμεῖναι ἐν Ἐφέσῳ,
as I urged you to remain in Ephesus
직역하면 ‘에베소에 머물도록 너를 내가 권했다’는 뜻입니다.
‘머물도록’(προσμεῖν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remain) 확실히 머물도록 권한 것을 가리키고, ‘내가 권했다’(παρεκάλεσά)는 부정과거로서(I urged) 과거에 권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πορευόμενος εἰς Μακεδονίαν,
going to Macedonia
‘갈 때’(πορευ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going) ‘가면서’란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ἵνα παραγγείλῃς τισὶν μὴ 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ν
so that you might order certain men not to teach other doctrines
직역하면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 다른 교훈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너희가 명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에서 동사(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teach other doctrines) 현재 가르치고 있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원형(ἑτεροδιδασκαλέω)은 ‘다른’( ἕτερος)이라는 접두어와 ‘교훈’(διδάσκαλος)이란 단어의 합성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명령하게 하기 위함이었다’에서 동사(παραγγείλ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might order) 단호하게 명령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1.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AD 61-63년에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와 빌레몬서와 빌립보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석방된 후에 바울은 로마에서 서쪽으로 서바나(스페인)까지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은 지중해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배타고 건너오면서, 중간에 그레데 섬에서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레데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그레데 교회에 디도를 목회자로 세웠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그레데 섬을 떠나서 지중해를 배타고 건너서, 가이사랴에 상륙하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도들을 만나 선교 보고를 한 후에, 다시 북쪽으로 가서 에베소 교회에 갔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요, 가장 어머니 교회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에베소 교회에 사랑하는 디모데를 목회자로 남겨둡니다.
그 후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 에게 해협을 건너 마게도냐 지방으로 갔습니다.
이 마게도냐 지방에는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와 베뢰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마게도냐 지방의 세 교회를 방문한 후에, 남쪽의 고린도 교회로 갔습니다.
이 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에베소 교회에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 목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가 바로 오늘 디모데전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1. 바울 사도가 디모데 목사를 에베소 교회에 머물라고 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서 어떤 자들이 다른 교훈 즉 이단을 가르치지 말도록 디모데 목사에게 명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이 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은 바로 금욕주의적 영지주의 이단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4:1-3.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즉 금욕주의 이단이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음식물이 선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물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3. 오늘날도 이런 이단들이 있습니다.
즉 혼인을 금하는 천주교나 음식물을 금하는 안식교 등이 그런 이단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은 금욕주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욕주의적인 결혼생활이나 금욕적인 금식 생활에 미혹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거룩한 생활을 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 거룩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r to pay attention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which give rise to mere speculation rather than furthering the administration of God which is by faith.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μηδὲ προσέχειν μύθοις καὶ γενεαλογίαις ἀπεράντοις,
nor to give heed to myths and genealogies endless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에서 동사(προσέχ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ive heed to) 계속 몰두하지 않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은--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αἵτινες ἐκζητήσεις παρέχουσιν,
which speculations bring,
‘내는 것이라’(παρέχ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bring) 계속 변론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μᾶλλον ἢ οἰκονομίαν Θεοῦ, τὴν ἐν πίστει·
rather than administration of God, which in faith
동사가 없으나 적절한 번역입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신화’(μύθοις)는 역사성이 없는 만든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말씀’(λόγος)이 역사성이 있는 이야기인 것과 대조가 됩니다.
‘신화’는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족보’는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신화와 족보’는 두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헬라철학과 유대주의를 혼합한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거짓된 신화로 꾸며진 허황된 족보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4장 7절에서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영웅시하고, 조상들을 과장해서 우상시 하는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변론을 일으킵니다.
즉 육신적인 족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계보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1. ‘경륜’(οἰκονομία)이란 ‘집’(οἰκος)이란 단어와 ‘율법’(ννόμος)의 합성어로서 ‘집을 다스림, 청지기 직분, 행정’(management of household affairs, stewardship, administration)이란 뜻이 있습니다.
즉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써 죄인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섭리와 복음 전도를 가리킵니다.
2. 신화와 족보는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영지주의자들이 스스로 유식 계급이라고 자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신화와 족보는 하나님의 교회에 계급주의와 분파 운동을 불러 일으키고, 변론만 일삼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죄인들을 향한 구원 섭리와 구원계획을 가리킵니다.
이 <구원의 경륜과 계획이 믿음 안에 있다>는 말은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되고 믿음으로 진행됨을 의미합니다.
즉 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님 모시고 말씀 따라 감으로 성화되어 갑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속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고,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믿음에 도움이 안 되고 손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게 논쟁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속으로 인도하는 복음 전도와 설교 말씀은 유익한 것이지만,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논쟁은 은혜가 되지 않고, 유익이 없고, 다툼만 되고, 결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디모데전서 6:3-6.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지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지주의적인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현혹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날마다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고, 행복이 가득한 신앙생활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 goal of our instruction is love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τὸ δὲ τέλος τῆς παραγγελίας ἐστὶν ἀγάπη ἐκ καθαρᾶς καρδίας καὶ συνειδήσεως ἀγαθῆς καὶ πίστεως ἀνυποκρίτου,
the and goal of the instruction is love from pure heart and conscience good and faith sincere
동사(ἐστὶν)는 현재형입니다(is).
이 교훈의 목적은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παραγγελία)는 ‘교훈, 명령, 삶의 규칙’(instruction, command, rule of living)을 의미합니다.
즉 여기서 ‘교훈’은 디모데 목사가 에베소 교회에서 지켜야 할 교훈들을 가리킵니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1. 목회의 중요한 동기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육신적인 욕망과 이기심에서 나온 육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참된 믿음에서 나온 신령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자신의 육신적인 이득을 위해 쓸데없는 신학 논쟁을 일삼으며 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명석이란 이단자는 여자들을 1만 명이나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젊은 디모데 목사에게도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2).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디모데 목사에게 교인들을 사랑으로 목회하되, 육정적 욕망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참된 믿음에서 나온 신령한 사랑으로 목회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삶은 이웃사랑이 도덕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윤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10:27-28).
그러므로 목사가 목표하는 목회와 설교의 목표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목회자 자신이 먼저 육신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거짓된 사랑에서가 아니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참된 믿음에서 나온 신령한 사랑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3. 첫째로 목회자와 성도들은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영지주의 이단자들이 교회에서 더러운 이익을 바라고, 거짓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는 것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자기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이단자는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단자들은 자기 마음과 영심이 더럽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럽게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디도서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러나 참된 목회자와 성도들은 깨끗한 마음과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목회자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라고 했고(디도서 1:7, 베드로전서 5:2), 집사들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디모데전서 3:8).
4. 둘째로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관해서 파선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신앙생활이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21.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이처럼 성령님 모시고 선한 양심을 가진 목회자와 성도는 선한 일을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8.--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율법주의 이단자들은 개처럼 물고 찢으며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율법주의자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2-3.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나 중직자라도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으로 봉사하지 않고, 자기 육체적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은 선한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고, 육신의 욕망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후매네오와 알렉산더가 그랬고(디모데전서 1:29), 모세 당시의 고라당이 그랬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타락자들은 제사장이나 목사와 다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4:4.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깨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 아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흑암 중에도 빛이 비치는 복된 가정과 자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셋째로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양의 탈을 쓰고, 속에는 흉악한 이리의 탐심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기도하면서, 장차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않고, 자기 제자를 삼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사도행전 20:29-30.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을 능히 든든히 세워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31-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런데 디모데는 조상적부터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훌륭한 목회자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도 늘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한 때 이런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도 다시 타락하여 교회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고, 권력을 추구하게 되면, 처음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이 들어간 악한 마귀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가니, 처음보다 나중 형편이 더욱 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타락한 이단자들이 미혹하더라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을 가지고, 목회하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시고, 주님께 칭찬받고 가정과 자손이 큰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ome men, straying from these things, have turned aside to fruitless discussion,
ὧν τινες ἀστοχήσαντες, ἐξετράπησαν εἰς ματαιολογίαν,
from which some having missed the mark, was turned aside to meaningless discourse
‘벗어나’(ἀστοχή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missed the mark) 확실히 벗어난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ἀστοχέω)은 부정어(ἄ)와 표적(στόχος)이란 단어의 합성어로서 ‘표적을 벗어났다’란 뜻입니다.
‘헛된 말’(ματαιολογίαν)이란 ‘헛된 말, 어리석은 말’(vain speaking, foolish talking)을 가리킵니다.
‘빠져’(ἐξετράπ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turned aside) 올바른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κτρέπω)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다, 방황하다’(turn aside from the right road, wander)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7절.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anting to be teachers of the Law, even though they do not understand either what they are saying or the matters about which they make confident assertions.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θέλοντες εἶναι νομοδιδάσκαλοι,
desiring to be teachers of the Law
‘되려 하나’(θέλοντες εἶν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분사로서(desiring) 현재 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뒤의 동사(εἶναι)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현재 율법의 선생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μὴ νοοῦντες, μήτε ἃ λέγουσιν, μήτε περὶ τίνων διαβεβαιοῦνται.
not understanding, neither what they say, nor about which they confidently assert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에서 동사(λέγουσιν)는 현재형으로서(they say) 현재 말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자기가 확증하는 것’에서 동사(διαβεβαιοῦνται)도 현재형으로서(they confidently assert) 현재 자신이 확실히 주장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διαβεβαιόομαι)은 ‘철저히’(διά:thoroughly)라는 접두어와 ‘확증하다’(βεβαιόω:confirm)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깨닫지 못하는도다’에서 동사(νο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understanding) 현재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1.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헬라철학과 유대교적인 율법을 교묘하게 섞어서 자신들만 신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식은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또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다른 지식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2. 당시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려는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5:14).
그러나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야 밝히 보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5. 외식하는 자들아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당시에 에베소 교회의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을 가지고 선생 노릇을 하려고 했습니다.
2. 오늘날에도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녀도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오히려 교회에서 율법의 선생 노릇을 하고, 섬기기보다는 교주처럼 행세하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 장로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교회가 싸울 때 싸움을 잘해서 결국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로 부임해오는 목사마다 쫓아내곤 했습니다.
이 사람은 초등학교만 나왔는데, 자기는 서울대학교 나온 박사보다 유식하다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예수 믿는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설교하면,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 가지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운전면허도 없이 차량 운행을 하다가 사고로 여성도를 죽게 만들었고, 장로의 직분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1.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성령과 말씀으로 변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의 율법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에게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베드로 사도는 성도가 거듭난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영혼을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2. 그런데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변화를 받지 못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마음은 ‘좋지 못한 마음’으로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이고, 결실하는 마음은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서 많은 결실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저는 고등학교 때 교목이신 김창수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성령님이 그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셔서, 며칠 동안 딩굴면서 울고 통회 자복하고, 평생을 주님께 드리겠다고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변화받지 않고, 율법의 선생이 되었는데, 자기가 말하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 우리나라 유교 시절에 서당 훈장 선생님이 자기들은 올바른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무섭게 매질하면서 올바로 살라고 훈계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이 날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심령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올바로 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이 은혜 생활을 하고, 자신이 깨닫고 체험한 바를 가르쳐서 듣는 사람에게도 은혜를 끼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