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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장 1-10절. 문안 인사와 감사와 간구. 요약설교
1-3절. 먼저 바울은 사랑하는 빌레몬 장로님과 아내인 압비아와 아들인 아킵보에게 자상한 문안 인사와 축복기도를 합니다.
1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1. 어떤 비평가는 바울이 노예 제도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노예가 자유 할 수 있거든 자유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기독교는 노예 제도나 사회개혁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영혼을 중생시켜 변화되게 하는 것이고, 사회개혁을 거듭난 성도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사회개혁에 직접 나선다면, 순전한 복음의 본질이 변질되고, 원래의 영혼 중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갇힌 자 된 바울’이란 빌레몬서를 기록할 당시( 61년경)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28:16)
‘형제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사도행전 16장)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고, 바울에게 마지막까지 가장 충성하고 신임을 얻는 사람이고(디모데후서 4:16-21), 바울의 믿음의 아들인데(디모데전서 1:2), 여기서는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입장에서 바울도 사도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고, 디모데도 형제로 호칭했습니다.
‘동역자인 빌레몬’이란 호칭은 빌레몬이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제자이지만, 오네시모 때문에 부탁하는 입장에서 빌레몬을 높여 부른 호칭이고, 실제로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장로이고 그의 집이 교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절.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1. ‘자매 압비아’는 빌레몬 장로의 아내였습니다.
‘함께 군사 된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었는데, 골로새 교회의 담임목사인 에바브로디도를 도와서 부교역자로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4:17).
바울은 복음 전파를 전투로 말하기도 했습니다(고린도후서 10:3-5).
‘네 집에 있는 교회’란 빌레몬의 집이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뜻하고, AD 2세기까지는 개별적인 교회당 건물이 없었고, 이처럼 가정집이 교회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리아와 마가의 집인 예루살렘 교회(사도행전 12:12), 루디아의 집인 빌립보 교회(사도행전 16:40), 브리스길라와 아굴의 집인 에베소 교회( 고린도전서 16:19), 눔바의 집인 라오디게아 교회(골로새서 4:15) 등.
이처럼 초대교회는 가정집에서 시작되었으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로는 독립적인 큰 교회당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장로님이시고, 압비아는 그 아내이고, 아킵보는 그 아들로서, 목회자인 에바브라가 바울을 만나러 로마 감옥에 간 사이에 임시로 골로새 교회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편지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문안 인사를 합니다.
(1)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용서와 사랑을 가리킵니다.
(2) 이러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이 있을 때, 마음에 참된 “평강”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참된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27)
4-7절. 바울은 빌레몬 장로님의 선행에 대해서 칭찬하면서, 빌레몬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4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1) 빌레몬 장로님은 바울 사도가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는 참 좋은 장로님이셨습니다.
이처럼 목회자에게 기도할 때 감사가 생각나는 성도가 있고, 어떤 성도는 기도할 때마다 불안을 주는 성도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로몬 장로님처럼 목회자가 기도할 때, 감사가 나오는 성도님들 되시고, 목회자가 기도할 때 염려 근심을 느끼게 하는 성도님들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5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1. 감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빌레몬 장로님이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1) 물론 빌레몬 장로님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세상 나라가 아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빌레몬 장로님은 노예들을 거느릴 정도로 부유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 장로님이 사랑을 베푼 것은 특별히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한 사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빌레몬 장로님이 가련한 이웃에게 베푼 사랑의 구제 행위는 사방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3) 그런데, 바울 사도가 특별히 빌레몬 장로님의 이런 성도 사랑과 구제 행위를 언급한 것은 나중에 오네시모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특별히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1. ‘믿음의 교제’(κοινωνία τῆς πίστεώς: fellowship of the faith)란 성도들 간의 신앙적 교제를 말하면서 특별히 물질을 나누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빌레몬 장로가 도둑질한 오네시모를 물질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란 빌레몬 장로가 도둑이었던 오네시모를 용서해줌으로써 성도들 가운데 있는 선을 확실히 알게 해주라는 뜻입니다.
‘알게 하고’(ἐπιγνώσει: acknowledgment)란 단어는 원래 명사형으로서 ‘경험을 통한 확실한 지식’("contact-knowledge, experiential knowing)을 뜻합니다.
2. 빌레몬 장로님의 이러한 사랑의 행동은 불신자들에게 교회 성도들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한다는 것과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전도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1) “믿음의 교제”라는 것은 빌레몬 장로가 가난한 성도들에게 사랑의 구제를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한다”는 것은 성도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불신자들이 교회 성도들이 선한 사람들이고, 교회란 선한 단체라고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3)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한다”는 것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선한 단체인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3:35)
(4) 이것은 바울 사도가 빌레몬의 선행을 행함으로써, 골로새 교회가 빌레몬 장로님 덕분으로 성장 발전함을 칭찬한 것입니다.
참으로 빌레몬 장로님은 명실상부하게 골로새 교회 성장발전의 밑걸음이 되신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과 직분자들은 모두 빌레몬 장로님처럼, 성도들을 사랑하고, 불신자들에게도 칭찬받아서, 교회를 발전시키는 귀한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1.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 장로님이 이렇게 사랑과 덕을 세움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을 얻고, 목회자가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 장로를 통해서 평안함을 얻었다’는 것은 부유한 빌레몬 장로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을 구제함으로써, 성도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때 부르기아 지방에 지진이 있어서 빌레몬 장로가 성도들을 도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Scott by 이상근).
이처럼 빌레몬 장로가 성도들을 도왔다는 소식을 바울이 에바브라를 통해서 듣고, 바울이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을 하기 전에 빌레몬 장로가 물질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을 도왔다는 말을 한 것은 빌레몬 장로가 오네시모에게도 같은 사랑과 구제를 해달라는 내용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1) 장로님이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면,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이 율법적으로 성도들을 잘못한다고 죄를 지적하고 꾸짖으면, 성도들의 마음과 교회 분위기는 불안해집니다.
대부분의 장로님들은 잘하시지만, 혹 어떤 분은 “감독”이라는 성경의 뜻을 잘못 알아서, 마치 법원의 재판관처럼 목회자를 감독하고,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공사 감독관처럼 행동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감독”이란 단어의 뜻은 “예수님처럼 희생하며 섬김으로써,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성도를 보호하고 돌보라고 장로의 직분을 주셨는데, 오히려 성도들 위에 군림하여, 마치 성도의 적군인 것처럼 힘들게 하는 것이 감독직인 것으로 오해하는 분도 혹 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빌레몬 장로님이 예수님처럼 섬기는 장로님 되어서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는 것을 보고,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목회자가 마음이 괴로운 것은 교회의 중직자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를 받을 때입니다.
8-10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도 있으나, 감옥에서 믿음의 아들 된 오네시모를 위해서 간곡히 간청 한다고 애절하게 호소합니다.
8절.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1. ‘이러므로’는 ‘성도들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의 소식을 들었으므로’란 뜻입니다.
즉 바울은 빌레몬이 어려운 성도들을 많이 도왔으므로, 이번 오네시모에 대한 사랑의 부탁도 들어줄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명령할 수도 있다’는 말씀은 바울이 사도적 권위로써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사도로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명령할 수 있으나, 오히려 빌레몬에게 간청한다는 말씀입니다.
9절.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 ‘나이가 많은 바울’이란 당시 바울의 나이가 60이 넘었다는 뜻입니다.
즉 스데반이 순교할 때(주후 31년경)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가편 투표를 했기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원 자격을 30세 이상이었으므로, 지금 로마 감옥에 있는 때가 AD 61년이므로, 바울은 이때 62세가량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나이가 많은데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는 형편입니다.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 원문에는 ‘오네시모’란 단어가 맨 마지막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옥중에서 낳은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네게 간구하노라. 그는 오네시모다’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란 이름이 매우 불쾌하게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조심스럽게 오네시모란 이름을 맨 나중에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 아들’이라고 극히 존귀하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믿음의 아들’이라고 존귀한 호칭을 했습니다. (딤전 1:2, 딛 1:4)
그런데 도둑질 하고 도망가서 감옥에 갇힌 오네시모를 바울이 ‘내 아들’이라고 호칭한 것은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은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빌레몬 장로에게 전도하여 구원받게 한 은인이고, 또 사도의 권위로 올바른 일을 명령할 수도 있고, 복음 진리에 비추어서 마땅한 일로 명령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고 간청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1)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이요 순종 잘하는 제자인 빌레몬 장로에게 명령하지 않고, 간청하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빌레몬 장로는 바울 사도에게 참 좋은 제자였습니다.
교역자가 어떤 성도에게는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할 만한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형편상 부탁을 드려야 할 처지인데도, 그 사람의 신앙 인격상 도저히 부탁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 장로님은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부탁을 할 수 있는 참 좋은 장로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역자가 마음 놓고 주의 일로 부탁드릴 수 있는 믿음 좋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디모데후서 1장을 보면,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자주 유쾌하게 하여서, 주님의 날에 긍휼을 얻게 해달라는 바울 사도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디모데후서 1:16.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직분자들께서도 빌레몬 장로님처럼, 오네시보로처럼 목회자가 축복기도를 해드릴 수 있는 좋은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드디어 바울 사도는 빌레몬 장로님에게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을 들어달라고 본론적인 간청을 합니다.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 오네시모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바울 사도는 마치 부모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하는 것처럼 “나이 많고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가 감옥에서 낳은 믿음의 막내 아들을 위하여 큰 아들같은 빌레몬 너에게 부탁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간청합니다.
(2) 물론 도적질 하고 도망간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는 것과 그 위에 노예를 이제는 주님을 믿는 형제로 대접해달라는 부탁과 오네시모를 바울 사도를 섬기도록 보내달라는 어려운 부탁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어렵게 부탁을 꺼내고 있습니다.
(3)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배울 점은 사제지간처럼 친밀한 바울과 빌레몬 사이이지만, 친할수록 더욱 예의를 지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 장로의 입장과 자유의사를 충분히 존중하여 간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빌레몬 장로님처럼 성도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 교회의 평화를 유지하고, 불신자들에게 좋은 소문이 펴져서, 교회를 부흥 발전시키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가 믿음의 아들이자 제자인 빌레몬에게 마땅한 일로 명령할 수 있으나, 인격을 존중하고 자유의사를 존중하기 위해서, 명령 대신에 간청하는 것을 본받아서,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계신 분들일수록 어린 성도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행복한 우리 교회가 되고,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