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바뀌는 건 항상 적응하기 힘든 법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순수하고도 진정한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을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며, 고민이라는 것이 작고 소박한 것들일 것이다. 그 당시의 나의 세상은 고민 따위 없는 좁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사회공동체 속의 살아가는 한명으로서 넓어진 시각과 사유 등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인간의 욕심이란 게 끝도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치장을 하며 자기 자신의 대한 만족을 채우며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어렸을 때는 튀는 옷을 입어도, 내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를 좋은 이미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수만가지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들과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한가지 차원의 내가 아닌 두가지 차원의 나를 발견한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나 라는 사람의 성격을 잃게 된 것이다. 나는 본래 밝고 유쾌하며 그룹내에서 활발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넓어진 공동체 속의 나는 점점 묻혀가고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바쁘며 나와의 관계가 좁고 친근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할수록 자신감을 잃거나 소심하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모습만 비춰질 뿐이었다.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억지웃음만 지을 뿐, 무의식적으로 거짓의 내가 남에게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사람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아마도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두가지 모습일 것이다. 나는 항상 남에게 한결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지만 무언가의 압도 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내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나 자신조차도 혼동을 일으키곤 하기에, 나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다. 거짓의 가식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진실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마음을 조금 놓아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후회 없이 산다는 것, 이처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모든 일에는 작던 크던 그 일을 마친 후에 아쉬움과 함께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물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을 하고 난 후에 만족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만족감을 느낄 때보다 후회 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후에 나 자신을 뒤돌아 볼 때 후회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과 후회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후회할만한 일들이 수 없이 많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허점이 생기거나 어느 한 순간의 선택과 말 실수 하나도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실수들과 후회를 반복해왔기에, 그 후회를 번복할 수 없고 되돌아 갈 수 없어서 현실에 충실히 임할 것을 항상 다짐하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쉽지 않은 터라 그 후회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결국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후회로 하여금 좋지 않은 기억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부정적인 생각까지 떠오르게 하여 나를 집착하게 만든다. 이미 지난 일을 고칠 수 없기에 나는 이 집착을 완전히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삶을 살면서 머릿속에서 스쳐갈 것이기에, 나는 이 모든 기억들과 함께 자리하며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성장 시킬 것이다.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살아온 남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부지런히 꾸준히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하나하나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젊음, 그리고 그 속에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나는 그것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현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과연 몇명이 여유를 부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일이나 학업에 치우쳐 바쁜게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껏 꿈을 찾아 헤매왔는데 지금은 꿈에 쫒는게 아닌, 쫒기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의 생기부는 나의 진로를 확정 지어야 한다는 마음을 급하게 촉구했고, 이 사회는 내신이라는 평가 점수만을 보며 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나는 불확실하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의 꿈은 화가나 미용사였다. 예술과 그림을 정말 순수하게 좋아했었다. 지금 나의 그림은 자유를 잃은지 오래다. 한마디로 그림의 슬럼프가 장기간 지속되어, 그림이 발전되지 않고 바쁜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림을 편하게 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머릿속에 있는 창의적인 생각과 그림 감각을 조금씩 잃게 되었다. 중학교 때의 꿈은 건축가와 인테리어디자이너였다. 그 당시엔 그 꿈이 정말 가치가 있고, 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별처럼 빛나는 마음을 가지며 독학으로 건축이신 아버지께 건축사에 대해 정말 열심히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와서 현재 나의 꿈은 방송 예술, 무대 조명 디자인, 미디어 등의 분야이다. 몇년 동안 건축가에 꿈을 결심하며 살아갔어서 사실 방송이라는 분야는 나에게 익숙치 않고 어색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며 존경심을 가지고 쫒았던 건축가의 꿈에 대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의 방치되어 흥미를 잃게 된 것이다. 학교 시험이라는 평가에 집중하게 되면서, 자기개발을 위한 시간은 쉽게 내기 어려웠고 시험점수에 대한 스트레스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처럼 현재 나의 상황은 꿈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과, 시험으로 인한 몸과 마음이 지쳐서 정체기에 서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만 가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만 거듭한다. 나는 나에게 제일 필요한 건 여유라고 생각한다.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건 진정으로 건강하며 오히려 바쁘게 생활할 때보다 일이 더 잘 풀릴 것이다. 본래 나의 성격은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을 좋아하며 비효율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종종 느려도 좋으니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해를 못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나에게 필요한 건, 즐길 수 있는 느림이다. 삶을 즐기지 아니하고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삶은 시체라 생각했다. 내 인생을 즐기지 않으니 내 꿈을 쫒는 것이 즐겁지 않음은 당연하다. 지금의 나는 나를 보살피고 위로하며 천천히 휴식을 취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 삶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 있다. 7살 때 오토바이 충돌 사고를 바로 눈 앞에서 본 것이다. 사람은 충격적인 것을 보면 사소한 일들보다 더욱 확실하게 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 때의 상황은 아빠와 동생과 같이 차를 타고 집 근처에서 마트를 가던 길이였다. 앞쪽 길에서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우리 차 앞으로 돌진해오더니 그대로 옆 벽에 부딪혀 충돌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봤던 기억이라서 생생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30대처럼 보이고 헬멧을 쓴 남성이 피를 흘리며 쓸어진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다. 7살의 시야에서 봤을 때의 나는 충격을 받아 동생과 함께 차 뒷좌석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께서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충돌을 피해 급속도로 브레이크를 밟으셔서 오토바이와의 직접적인 충격은 피했다는 것이다. 차가 멈추자 마자 아버지께서는 용감하게 차에서 급속도로 내려서 바로 옆에 있는 소방서로 뛰어가 신고를 하였다. 우리 집이 산속에 있는 시골이었어서 바로 옆에 소방서가 없었더라면, 그 사람의 생명은 정말로 위급했을 것이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12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 한 문서 파일을 발견하였다. 웬 블랙박스 영상이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열어보았다. 영상은 그 당시 내가 눈앞에서 보았던 사고 현장의 블랙박스 영상이었고, 사고가 나자마자 차에서 내려 뛰어 달려가서 신고를 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정말 위대하다고 느꼈다. 아버지께서도 사고 현장이 충격적이었을텐데 한치의 망설임 없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모습은 정말
우리 아버지가 용감하고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마음과 힘이 생겼다.
인생이란, 언제든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가며 삶의 주체가 내가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 하지 않으며,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 있게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