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할머니
겉으로는 표현 못하는 미안함과 감사함
나의 고1 처음 중간고사가 끝나고 난 다음날, 논둑에 콩 심으러 나가셨다가 쓰러지신 우리 할아버지. 그렇게 일주일 동안 병원에 누워 계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도 돌아가셨는지 서운함과 쓰러지는 날까지도 일만 하시고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가신 할아버지께 제대로 효도도 못해드린 것 같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후회가 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고 가신 것은 2500평 정도에 농사와 할머니이다. 60년을 할아버지와 같이 사시면 함께 고생하신 할머니께는 앞으로 잘해드려야겠다고 난 다짐했다. 하지만 이 다짐은 지켜지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따라 논밭으로 따라다니면서 보고 배운 것이 농사라 지금까지도 농사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다. 고1이었던 나와 연로하신 할머니와 함께 많은 농사일을 해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힘이 들고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와 할머니의 농사는 계속되고 있다. 힘은 들지만 농사를 내가 계속 짓는 이유는 바로 할머니 때문이다. 60년 동안 함께 농사짓던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나는 농사를 그만 둘 수 없고 논밭에 나가 일을 하면 꼭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할머니와 다툴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할머니와 다투는 일이 늘어났다. 그 이유도 바로 농사일 때문이다. 60년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어오신 할머니의 농사 지식과 부지런함을 나는 따라갈 수 없지만 나와 할머니 사이에 농사일에 대한 의견 차가 너무 커서 자주 큰소리가 오고 갔다. 나는 내가 배운 농사기술을 직접 해보기 위해 계획하여 준비도 하고 현대식 농법을 적용해 보고 싶지만 관행농업과 전통방식을 고집하시는 할머니와 의견 잘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추밭을 만들 때가 되면 할머니의 잔소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다른 집은 고추밭 다 만들었단다 우리는 언제 만들래, 고추밭에 넣을 농약은 다 사다냤냐, 다른 집은 무슨 농약 넣었단다’ 할머니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여기서 내가 그냥 할머니 말에 순응하면 조용히 지나갈 일이지만 나의 몹쓸 성격 때문인지 할머니께 큰 소리를 냈다. 해서는 안 될 말들도 했다. '남 들 죽으면 따라 죽을 거냐고‘ 남들 전쟁하러 나가면 따라나가서 전쟁할 거냐고’ 할머니께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이럴 때마다 나한테 동네 사람들이 욕한다고 조용조용 말하라고 하지만 나는 더 큰소리 할머니께 말을 했다. 이럴 때마다 할머니는 돌아서서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의 한숨소리를 듣고 돌아서면 나는 할머니께 성질낸 것이 후회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할머니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어 하는 잔소리인데 그때 그냥 내가 순응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며 다음부터는 할머니께 성질내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하지만 돌아서면 이 다짐은 사라졌다.
더운 여름날 새벽 일찍 일 나가셨다가 아침도 안 드시고 일에 치여 점심때가 돼서 돌아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성질을 내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속상한 마음에 또 성질을 냈다. 혼자서 그 많은 농사일을 해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만약 내가 농사를 계속 짓게다고 고집 피우지 않으면 할머니의 고생이 좀 더 줄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서면 할머니 앞에서 성실을 내고 있는 내가 이제라도 할머니께 다정하게 말하고 성질을 줄었으면 한다.
할머니께는 이렇게 죄송스러운 마음도 크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크다. 더운 여름날 혼자 일하러 밭에 나가면 손자 걱정에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을 챙겨 밭으로 나오시는 할머니께 나는 너무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렇게 할머니가 챙겨오신 간식을 일이 바빠 나중에 먹겠다고 안 먹겠다고 한 내가 지금 보니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럽다. 앞으로는 할머니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식은 먹어야겠다. 또 할머니께 감사드리는 일들은 더 있다. 농번기 바쁠 때 끼니 걸 거면서 일하는 손주를 위해 점심에 짜장면을 사 주시는 할머니께 너무 감사드린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부터 농사일이 바쁠 때는 자주 짜장면을 사 먹었다. 그래서 짜장면은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짜장면을 먹을 때에도 손주 배고플까 봐 자신이 짜장면을 내 그릇에 덜어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에 나는 감사드린다. 이러한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글을 모르시는 할머니 때문에 은행일이나 신청서 접수 같은 일들은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할머니의 생활비를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손자 주머니에 5만 원씩 넣어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에 난 또 한 번 감사드린다. 할머니는 이렇게 나한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는데 나는 지금까지 할머니께 해드린 게 없는 것 같고 죄송스러운 맘이 들었다.
할머니께 죄송스러운 기억들만 남아 가는 지금 영원히 할머니와 함께하고 싶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 남은 시간은 할머니와 함께 좋은 추억 만들며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할머니께 다시 한번 더 죄송하고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