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호미든 목자의 노래
정홍순(시인)
43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하다 은퇴하게 된 최순종 목사와 박안숙 사모의 합동시집『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올가을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22살 아기가”(박안숙「길」) 전도사를 만나 사모가 되고, 목회 정년 길에 동반자가 되어 살아온 이야기를 어떻게 다 말하고 글로 적을 수 있을까. 부부는 시를 통해 동반자의 위로를 삼았고, 정제된 언어로 영혼의 거울에 비추어낸 마음 다한 감정들을 오롯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함께한 가족들과 교우들, 독자들에게 조용히 내놓는다.
우리나라 호미가 외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농사도구가 될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전 세계가 인정한 K-Pop에 이어 이젠 K제품까지도 인기가 뜨겁다. 미국 최대 온라인 몰, 아마존에서 원예부문 Top 10에 우리나라 호미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유는 단단하고 쓰기 편하다며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손잡이와 호미 날의 각도가 30°로 맞춰져있는 것이 비결이다. 눈대중(감)으로 불에 달구고, 수천 번 두드려 섬세하게 날을 다듬고 슴베를 자루에 고정하면 호미가 완성되는 데 장인의 감으로 만든 우리나라 호미가 세계적 상품이 된 것이다.
호미는 보통 보습형, 낫형, 세모형으로 지역과 농사방법에 따라 모양새나 쓰임이 다르다. 남쪽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자루가 짧고 날이 가늘어 쭈그리고 앉아서 작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순종 시인에게 ‘호미’는 특별하다. 목회자가 사용하는 도구로써는 좀 특이하지 않은가. 막대기나 지팡이 혹은 바르트가 말한 성경과 신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이고, 작은 밭을 가꾸고 있는 시인에게 늘 손에 들려있는 몸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 닳고 닳은 호미가 그의 도구이며 자신이니 말이다.
주님의 밭은 광대하나이다
여기 작은 호미가 있나이다
닳지도 않고 녹슬지도 않은
아직 사용치 않은 호미가 있나이다
이것으로 주님 밭을 가꾸소서
가시덤불도 돌멩이도
파헤쳐 이 호미 다 닳도록
사용하여 주옵소서
머-언 훗날 이 호미 다 닳아져도
주님의 밭에
아름답게 풍성히 맺는
주님의 열매 가꿔지게 하소서
—「나는 작은 호미입니다」전문
시인은 자신을 ‘작은 호미’로 사용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하얀 수건 머리 질끈 묶고/호미로 밭 매는 모습”(「엄마의 모습」)인 어머니에게서 기인하고 있다. 시집 전체에서 아버지가 부재한 가운데 유독 어머니에 대한 정감, 모성에서 발원한 신심이 시인을 더욱 창조적 영성으로 세워주고 있다. “닳지도 않고 녹슬지도 않은/아직 사용치 않은 호미”가 이제 “다 닳아져” 사명을 완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호미를 가지고 정년하기까지 일관되게 힘쓰고 애쓴 그 현장은「나의 원예」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영혼들은 나의 원예입니다
가시밭에서 피어나는 나의 원예입니다
나는 기필코 백합화로 가꾸렵니다
찢기어도 상해도 향기 진동하는
백합화로 가꾸렵니다
이 영혼들은 나의 원예입니다
연못 속에 피어나는 나의 원예입니다
나는 기필코 연꽃으로 가꾸렵니다
더러운 웅덩이에서 순결하게 피는
연꽃으로 가꾸렵니다
이 영혼들은 나의 원예입니다
산지에서 피어나는 나의 원예입니다
나는 기필코 무화과로 가꾸렵니다
속으로 속으로 피어 열매 맺는
무화과로 가꾸렵니다
—「나의 원예」부분
시인이 가꾸는 원예는 ‘백합화’ ‘연꽃’ ‘무화과’이다. 특별히 가꾸고 싶은 백합, 연꽃, 무화과는 종교적 이미지로 “가시밭”과 “더러운 웅덩이”와 꽃이 없는(“속으로 피는”) 것들로 세상이라는 부정적 환경을 딛고 꽃으로 피어나거나 열매를 맺는 거룩한 변화를 시적 담론으로 언술하고 있다. 최순종 시인은 영혼들의 원예사로서 일하는 존재이다. “기필코” 가시밭에서 백합화가 피어나고, 혼탁(「혼탁」)한 곳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산지에서 무화과를 맺게 하리라는 각오가 남다른 것은 구도자의 자세일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내적 용기가 한껏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시인에게서 속물 같은 성공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집을 통해 시인이 언급하고자 하는 말들 가운데 소리에 대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음성적인 언어로써 소리를 말하기 보다는 마음을 다하여 들려주는 감정으로써의 듣기가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여 ‘내려놓음’이 가능하고 ‘비움’이 허용되며 ‘까만 씨’에서(「양파 옆에서」) 자라 벗기고 벗겨도 흰색의 양파인 것처럼 가난한 영성의 발견, 즉 나타내 보여주거나 추구하는 시인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내 숨소리가 새벽을 깨웠나보다
문고리 잡는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기도하는 아버지 집 향해 가는
발자국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높이 달린 종탑 종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수탉 울음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찬마루 바닥에서
끄억끄억 소리 내 우시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하나님 향한 나의 찬송이 또한
내게 지시하시는 말씀이
새벽을 깨운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전문
표제 시이기도 한「새벽을 깨우는 소리」에 ‘숨소리’ ‘발자국 소리’ ‘종소리’ ‘수탉 울음소리’는 일상에서 흔한 소리이다. 누구도 위 시에서 이 흔한 소리로 민감하거나 충격 받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찬마루 바닥에서/끄억끄억 소리 내 우시는/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새벽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깨어날 수 없다면 그 영혼은 병들었거나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야 새벽을 깨울 수 있다. 새벽을 깨우고 하루를 시작하는 시인에게만 어찌 “지시하는 말씀”이 떨어지겠는가. 이처럼 새벽을 깨우는 사람과 새벽을 깨우는 닭이 시대를 깨운다는 사실을 시인은 설파하고 있다.
시인이 보여준 소리의 영성과 아울러 길의 영성은 이 시집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데 시인은「본질」과「몸의 목적」을 통해 사람이 무엇인가를 밝혀놓고 있다.
성과만을 추구하는
기계 같은 인간
풀냄새 흙냄새
가득한
내 고향
내 어머니
생각만 해도
가슴 먹먹한
사연들
사연들
—「본질」전문
사람은 본시 “성과만을 추구하는/기계 같은 인간” 이기보다 “풀냄새/흙냄새/가득한/···/가슴 먹먹한/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몸은 자기를 위하여 있지 않”은(「몸의 목적」) 존재라는 것을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이 가는 길은 무엇이고, 어떤 길인가 말이다. 가브리엘 마르셀이 절망하는 현대 기독인들을 향하여 ‘길 가는 사람(Homo Viator)’이라 하여 순례의 나그네, 구도의 나그네라 하였다면, 43년을 함께 동행 한 박안숙 시인의「길」을 통해 한 인생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아프다.
주의 발자취 따름이 어찌 복된 일이 아닌가 하며
시작했던 전도사 아내의 첫 시작 길은
43년의 대장정 목적지에 와있다
사모는 배고파도 감사해야 하고
억울해도 삼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이 주의 일이라고
주의 종은 그래야 한다 생각하며 날마다 그 길을
가고 또 가고 43년을 왔다
—「길」앞부분
시인은 사모의 역할만이 아니라 다른 일을 위해 출근하는 고달픈 일과가 있다. 날마다 같은 길로 출근하는 ‘논두렁길’에서 이름 모를 들풀과 만나고, 코스모스 앞에서 눈물짓게 하는 길 걸으며, 동반자로서 43년의 기막힌 생을 돌이켜 불러내고 있다. “사모는 배고파도 감사해야 하고/억울해도 삼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길, “그래야 한다 생각하며 날마다” 타이르며 걸어 온 길이 중첩되어 나오는 이야기는 짧지 않다. 힘들어 다 그만두고 싶을 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과 비굴하기까지 한 마음이 들 때, 남편의 말을 떠 올리고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서 걸어온 길에 힘차게 들리는 빗소리가 남다르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비 오는 날이면
두두둑 떨어지는 소리에
우리의 노래는 숨고
양철지붕 속에서 들려오는
악기소리만 남았다
—「양철지붕 속 아이들」끝부분
고들빼기로 이름난 개랭이골 처녀가 박안숙 시인이다. 초등시절 풍경을 스케치했지만 “우리의 노래는 숨고/···/악기소리만 남”는 것처럼 나는 없고 당신은 있는, 경건의 모습이 시인의 가슴을 흥건히 두들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작은 것들을 소중히 감사함으로 가꾸고 돌봐온 알콩달콩한 사이다. 제2의 인생을 위하여 두려움과 설렘이 있겠지만 이제 “구름이 섬만큼 뚜렷하게 떠 있다/바람 불어 시시각각 변하더니 얼마 후엔/이내 사라졌다”(「구름 사라지는 날」)는 구름 같은 인생에서 최순종 시인의 소중한「네 명의 친구」가 있어 우리는 든든하기만 하다.
내게는 네 명의 친구가 있어요
첫째 친구는
겉으론 볼품없는 친구인데
추운 시간 오래오래 기다리며
함께 쉬자 합니다
둘째 친구는
자기 속에 있는 생명 보여주는
희망의 친구랍니다
셋째 친구는
열심히 더위와 싸우며 열매
곱게 키워가는 친구이고요
넷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얻은
아름다운 열매 모두 주고
떠나는 친구랍니다
나에겐 네 명의 자랑스러운
친구가 있어요
—「네 명의 친구」전문
최순종 시인의 시를 읽으며 인생 사계를 친구 삼아 “기다리며 쉬자하는” 겨울에서 “아름다운 열매 모두 주고” 떠나는 가을로 순환하는 대자연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만물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시인이 해마다 불러주는 ‘호미든 목자의 노래’를 우리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 시인은 오랫동안 둥지를 만들었고, 이제 둥지를 떠나게 될 것이다. 최순종 시인의「네 명의 친구」와 함께 동행 한 박안숙 시인의「둥지」는 생명의 안식처요, 작은 자들을 위한 거처 공간이며, 자애로운 여정이 깃든 다함이기도 하다.
나는 어미 잃고 날갯짓 못하는 작은 새
돌아보니 또 다른 가엾은
어미 잃은 새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슬퍼할 겨를 없이
작은 새들의 둥지이고 싶어졌다
슬픈 새는
조용히 새벽종소리 따라 발길 멈추고
예배당에서 어머니가 그랬듯이
날개를 접는다
두려움과 슬픔의 눈물 가지고 태어난
작은 새들이
잠시 쉬어가기를
눈물 닦고 가기를
물 한 모금 마시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
조용조용히 나는 그렇게 둥지 만들었다
이제는 훨훨 날아 작은 새들도
그들의 둥지 예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둥지」전문
시인은 “나는 어미 잃고 날갯짓 못하는 작은 새”였기 때문에 “작은 새들의 둥지”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슬프고 지치고 목마른 새들이 “날개를 접”을 수 있게 하였으며, “조용조용히 나는 그렇게 둥지 만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둥지가 이렇게 신성한 것이었다. 이제 두 시인은 작은 새들이 만들어가는 둥지를 보게 될 것이다. 두 시인의 앞날에 아름다운 일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맑은 시심에서 써내는 ‘길’과 ‘소리’의 시들을 오래오래 읽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