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 마광수(1951-2017)
얼마 전에 나는 정원의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는 모두 다 뽑는다고 뽑았는데 몇 주일 후에 보니 또 그만큼 자랐어요.
또 뽑을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어느 누가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지어 놓았는가 하는 것이에요.
또, 어떤 잡초는 몹시 예쁘기도 한데
왜 잡초이기에 뽑혀나가야 하는지요?
잡초는 이렇게 아무 도움 없이 잘만 자라 주는데
우리들은 단지 잡초라는 이유로 계속 뽑아 버리고만 있습니다.
한가지 정말로 배워야 할, 잡초의 생활력과 의지를
난 너무나 절실히 깨달았어요.
시인은 등단작 「망나니의 노래」에서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단 한 번뿐/짧은 생, 우리 업보를 누가 막으랴.”는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고 있다. 떨어지는 것은 “긴 한낮 하늘을 비집던 태양”도 있고, “제 미처 바다에 못가 미쳐 버린 폭포” 또한 “운명처럼 떨어져 내리”는 거스를 수 없는 인생과 다름없음을 말하고 있다
무서운 “시간의 힘”으로 휘둘러대는 망나니의 “칼”에 “힘없이 떨어져 버리는” 무기력함 앞에서 단순히 인생무상을 노래하고 있지 않는 시인은 너나 나나 “다시 한 번 합하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라며 인연의 소중함을 다그쳐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인연의 깊이는 자연의 풀 한 포기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조화로운 세상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인간은 존재하고 있지만 “잡초와 화초의 한계”를 긋고자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방법이다. 그 인간의 방법, 타당하다 여기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유’이다. “잡초라는 이유로” 인간은 인간을 뽑아 버리고, 풀에서 풀을 뽑아내는 솎음의 냉혹한 삶을 인간은 유전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타협하거나 단순히 적응하기보다 “절실히 깨달”은 것이 “생활력과 의지”에 있음을 하찮게 여기는 잡초에게서 배웠노라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망나니와 잡초’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의 자화상을 넘어 끊임없이 인간을 추구하다 갔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