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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의 일주문이 아닌 우측으로 들어서니 상원사 중수비와 보은의 종 유래비가 서 있다.
▲비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 가람으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종무소가 보이고 맞은편엔 신검당이 있다.
▲상원사 심검당(尋劒堂): 검(劒)은 반야검(般若劒)을 말합니다. 검 중에 취모리검(吹毛利劒)이 있는데 이 검은 날에다 털을 올려놓고 불면 털이 잘릴 정도로 날카로운 검이다. 반야 검은 이 취모리 검처럼 날카로워 온갖 번뇌 망상을 베는 검이다. 그러므로 심검당은 반야를 찾는 집이니 스님들의 수행처를 말한다.
▲치악산 상원사 범종: 상원사 범종을 보면 상원사 보은의 종에 얽힌 전설이 생각나서 이 종이 그 종인가 생각 할지 모르지만 이 범종은 전설을 담은 종은 아니라고 한다. 만약 그 종이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보은에 대한 엄청난 학습효과가 있는 국보급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설을 가진 절이라서 이 종을 보면 자기 몸을 바쳐 보은하고자 했던 꿩들이 생각날 것이다. 보은의 종에 얽힌 전설은 우리나라 온 사찰에 영향을 미쳐 이 소중한 전설을 기억하고 살린다는 의미에서 종(鐘)을 108번 치기 전에 종을 살린다고 하여 두 번을 먼저 가볍게 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종은 불기 2526(1982)년 9월 9일에 조성했다는 명문이 있다.
▲상원사대웅전(大雄殿)(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8호):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스님이 지었다는 설도 있으나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알 길이 없다. 고려 말 나옹화상에 의해 새롭게 중창되었으나 6.25동란 때 소실되었다. 1968년에 다시 지어진 후, 198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현재 대웅전은 비교적 낮은 기단위에 조성되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다포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웅전 앞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고 전하는 삼층석탑 2기가 있고, 서쪽에는 요사채가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본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 (普賢菩薩)이 협시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보현보살은 행원(行願)을 상징 한다.
▲포위의 장식(여의주 물고 있는 용의 모습)
▲대웅전 좌측 뒤편에는 최근에 새로 설치된 듯한 좌불이 보이는데 좌불은 결가부좌한 자세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과 설법을 하는 자세를 뜻하며 초기는 입상이었다가 후기로 가면 앉아 있는 불상으로 바뀌는데 이는 권력화되고 권위적인 부처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상의 모습도 바뀜을 알 수 있다.
▲산신각(山神閣) 모습: 산신각은 대웅전 뒷편 좌측에 높이 있습니다. 산신각이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안에는 칠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상원사에서는 가을에 산신재를 성대히 지내고 이날 음악회도 개최한다.
▲산신탱화(山神幀畵) 감상: 산신각에 들어 탱화를 감상하던 중 한 분이 질문 했습니다. "파란 옷 입은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천도(天桃) 복숭아입니다. ㅎㅎㅎ 천도는 선도(仙桃)라고도 하는데 그 맛이 감미롭기 이를 데 없다고 하지요." 첩첩산중 하늘엔 백운이 한가롭고 한 옆엔 비단 같은 폭포수가 보입니다. 바위 앞에 대나무가 곧게 자라고,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곳에 큰 노송이 쌍으로 서 있는데 노송에는 단정학이 두 마리 앉아 있다. 쌍송(雙松) 사이에 녹호(綠虎)를 거느린 백미의 산신이 녹우선(綠羽扇)을 들고 고요히 앉아 있다. 청의동자는 선도(仙桃)를 받들고 있고 홍의동자는 선다(仙茶)를 공양하려는 모습이다.
▲심검당 건물 뒤편에 걸려있는 상원사에 얽힌 전설을 목각으로 잘 표현함. 뱀조르기. 활을 든 나그네.
▲상원사 심검당(尋劒堂): 검(劒)은 반야검(般若劒)을 말합니다. 검 중에 취모리검(吹毛利劒)이 있는데 이 검은 날에다 털을 올려놓고 불면 털이 잘릴 정도로 날카로운 검이다. 반야 검은 이 취모리 검처럼 날카로워 온갖 번뇌 망상을 베는 검이다. 그러므로 심검당은 반야를 찾는 집이니 스님들의 수행처를 말한다.
▲계수(桂樹)나무: 이 나무는 대웅전 앞 한쪽 뜰에 서 있는데 수령이 엄청 오래 되었다고 한다. 이 절을 중창한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王師)였던 무착대사(無着大師)가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와 심은 것이라 한다. 이 나무는 일반 계수나무와는 완전히 다른 희귀목이라 한다. 높이17m가 넘는 이 거목은 낙엽송보다 조금 넓은 잎의 일부가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노란색으로 변했다가 이듬해 봄에는 다시 푸른색으로 바뀌는 특이함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계수나무의 껍질에서 나는 향내는 전혀 없다고 한다. 이 계수나무는 가을에 흰 꽃이 핀다고 한다. 상원사에는 계수나무 4그루가 있다.
▲치악산 전설에 나오는 인물이 선비란 설과 스님이란 설도 있다. 선비의 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원주의 명산인 치악산은 본래 적악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꿩과 구렁이의 설화에 따라 산의 이름이 치악산(雉岳山)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곳곳에는 많은 전설과 설화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사람이 보기에는 사소한 동물이지만, 생명의 존귀함을 알고 이를 도와준 덕에 큰 보은을 받은 이야기도 많이 있다. 이곳 치악산 상원사에는 죽을 위기에 처한 하찮은 날짐승이지만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기 새끼를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한 꿩과 구렁이와 선비의 이야기가 전한다. 상원사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옛날 먼 옛날에 한 젊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적악산(현 치악산) 험한 고개를 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깊은 산중에서 꿩이 울부짖는 소리가 있어 귀를 기울이고 소리나는 곳을 찾아보니, 큰 나무 위에서 꿩 두마리가 뱀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선비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구렁이가 오르려는 큰 나무 위에는 꿩의 보금자리가 있었는데, 그 속에는 막 깨어난 꿩새끼들이 노란 부리를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고 있었다. 그런데 꿩 부부는 꿩새끼들을 잡아먹으려 나무를 기어오르는 구렁이가 오르지 못하도록 소리치고 있음을 알았다. 선비는 주저함이 없이 위험에 처한 꿩가족을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활을 쏘아 구렁이를 죽여 꿩가족을 살려 주었다. 선비는 그렇게 위험에 처한 꿩을 구해주는 덕을 쌓았다 자부하며 가던 길을 부지런히 재촉하여 고개 길을 넘어갔는데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해가 저물자 잠을 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깊은 산골짜기에 아담한 오두막을 발견하고 하룻밤 잠을 청하게 되었는데, 그 오두막에서는 한 젊은 여인이 나와서 선비의 잠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선비는 먼 길에 너무도 고단하여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곤히 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뻐근하고 숨쉬기가 답답함을 느껴서 비몽사몽 지경에 눈을 떠보니, 자기가 낮에 활로 쏘아 죽인 것과 비슷한 커다란 구렁이가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선비에게 구렁이가 말하였다. "나는 네가 어제 활로 쏘아 죽인 구렁이의 아내다. 그래서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이곳에서 너를 기다렸다. 이제 날이 새기 전에 남편의 원수인 너를 잡아먹아야겠다. 그런데 네가 사는 동안 쌓은 덕이 커 하늘이 너를 살리려 한다면 날이 새기 전에 하늘에서 종소리가 세번 울릴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목숨을 하늘이 보호하는 것으로 알고 너를 풀어주겠다" 선비는 꿩을 살려주고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지만, 꿩을 잡아 먹으려는 구렁이에게는 원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꿩을 살린 것은 꿩에게는 은혜이지만, 구렁이에게는 원수가 되었으니 이런 인과응보의 상황에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선비는 하늘의 뜻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렁이 아내의 경고를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동이 틀 즈음에 하늘에서 종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연이어 세 번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구렁이 아내는 꽁꽁 감았던 선비의 몸을 풀어주고 홀연히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선비는 날이 밝아오자 종소리가 났던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하룻밤을 잔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암자의 종루에는 범종이 걸려있었고, 범종의 아래에는 꿩 두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죽어있었다. 꿩들은 자신의 새끼를 살려준 은혜를 되갚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로 종을 친 것이었다. 선비는 그 종소리에 자신이 살게 되었음을 깨닫고 죽은 꿩들의 명복을 빌며 고이 묻어주었다.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급제하여 훌륭한 관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찮은 뭇 생명들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생명의 존귀함은 다를 것이 없는 것임을 생각하게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 느껴진다. 비록 모두가 인연에 따라 얽히고 설켜서 살지만,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모두가 원한을 풀고 성불하기를 기원하는 설화가 아닌가 싶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의 좌측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焰紋)을 보이는 불상광배와 연화대석(蓮華臺石)이 남아 있어 본래 석불이 있었음을 추정케 하나 현재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밖에도 절 뒤쪽 2백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가 있다.
▲상원사 광배(光背)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이 광배는 상원사에 매우 훌륭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광배는 불상의 가슴 위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원이 조각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쌍잎의 팔엽(八葉) 연화문(蓮華文)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는 상서로움을 표현한 영기문(靈氣文)이 새겨져 있음을 봅니다. 그 바깥 부분은 부처님의 방광(放光)을 표현한 소위 화염문(火炎文)이라 일컫는 영기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광배 앞에 연화대석(蓮華臺石) 일부가 남아 있다. 그런데 석탑을 보수하던 중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金銅佛) 4불이 출현하여 이 광배도 석탑이 조성되었을 때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스님의 유래를 보면 수행이 깊은 한 스님이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구룡사로 향하던 중 구렁이 한 마리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잡아먹으려는 순간 지팡이로 구렁이를 물리쳐 꿩들을 구해 주었는데, 밤길에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여인 혼자 머물고 있는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묵게 되었다. 잠결에 답답한 기운을 느낀 스님이 눈을 뜨자 구렁이로 변한 그 여인이 낮에 죽였던 구렁이의 아내라고 하며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죽은 남편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종을 울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종이 세 번 울렸다.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는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더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님이 정신을 차리고 상원사로 달려가 보니 낮에 구해 주었던 꿩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종루 옆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이 전설로 옛날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던 산이 꿩의 한자말인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상원사 삼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 대웅전과 범종각 사이의 마당에는 삼층 석탑 2기와 광배가 있는데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설이 있다. 두 탑은 모두 2기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을 쌓은 것으로 위아래 기단과 탑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세워 놓았고 탑의 지붕돌은 탑의 몸돌에 비하여 두꺼워 물매가 급하고, 처마 아래는 1단으로 꺽은 후 비스듬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추녀 끝은 약간 들어 올렸다. 탑 위의 장식물로 오른쪽 탑은 보개(寶蓋: 탑 상륜의 보륜과 수연사이의 지붕모양의 장식)와 보주(寶珠: 탑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모양의 구슬)가, 왼쪽 탑은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모양의 장식). 복발(覆鉢: 탑의 위쪽에 주발같이 엎어 놓은 장식), 보륜(寶輪: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 보주가 남아 있다. 두 개의 탑은 신라시대의 양식이지만 두 탑 모두 기단에 비하여 탑 몸돌의 폭이 지나치게 줄어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받침을 새기지 않은 지붕돌이 매우 뚜껍게 처리되고 보주가 지나치게 큰 점 등을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 여기에 주련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받아 威鎭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 떨쳐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嶂裏 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은 흰구름 푸른산 봉우리를 雲車鶴駕任閑情 운거학가임한정 구름 수레 학을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에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보통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상원사를 둘러보고 다시 백운지맥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우측 등로를
따라간다.
▲상원사 화장실 방향으로 올라간다.
▲상원사를 뒤돌아본다.
▲삼거리에 닫으면 영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고 우측통나무 계단으로 남대봉으로 올라간다.
▲백운지맥 마루금에 접속한다. 분기점 남대봉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침목계단으로 올라간다.
▲영월지맥의 백운지맥 분기점 남대봉지원 센타 뒤 정상으로 올라간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안흥27)이 있는 1180.0m의 남대봉이다.
▲남대봉 정상 2등삼각점(△안흥27/1989.7 재설): 영월지맥의 백운지맥 분기점 남대봉 정상 1180m: 백두대간 두리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한강기맥이 삼계봉에서 남쪽으로 또 한줄기를 분기하니 영월지맥이고 영월지맥이 치악산 남대봉에서 동쪽으로 휘여 지며 남쪽으로 다시 한줄기를 분기하니 백운지맥이다. 오늘은 백운지맥이란 산줄기를 답사하기 위해서 몇 년 만에 이 자리에 다시 왔다.
▲넓은 헬기장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벤취에 배낭 내려놓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백운지맥 산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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