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성령께서 하시는 일/(요16:8-15)
<1. 세상을 책망하심>
요16:8절은 “그분께서 오시면 세상을 책망하시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서 책망하는 것은 설득하는 것, 유죄 판결하는 것, 사람들을 자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이 오시면 믿는 이의 영을 소생(부활)하고 우리 영 안으로 들어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죄는 아담을 통하여 들어왔고(롬5:12), 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며(요16:10; 고전1:30), 심판은 사탄에 대한 것으로서(요16:11), 사탄은 죄의 창시자이며 죄의 근원이다(요8:44).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요16:9).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의(義)가 되시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의롭게 된다(롬3:24; 4:25). 만일 우리가 아담 안에 있는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 가운데 남아 사탄이 받을 심판을 영원토록 함께 받을 것이다(마25:41). 이것이 복음의 주요 요점이다. 성령은 이러한 요점들을 사용하시어 세상을 책망하신다.
9절은 “‘죄에 대하여’라 한 것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최초로 죄에 대하여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부정하고 불법하며 불의한 것을 죄라고 말한다. 부정이란 법 규정에는 없어도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더러운 것을 말하고, 불법이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윤리 규정을 어기는 것을 말하며, 불의란 하나님의 공의를 거스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죄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죄와 성경이 말하는 죄는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죄란 전통적으로 인식되는 도덕적인 것, 혹은 윤리적인 가치에서 어긋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다. 곧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죄의 댓가는 사망이다. 사망은 죄에서 오며 또한 죄의 결과이다(롬6:23). 그런데 예수가 오셔서 대신 속량해 주셨다. 속량을 속신(贖身)이라고도 하는데, 종의 신분을 면하여 양민이 되게 해 주었다는 뜻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 주셨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죄였다.
율법을 어긴 죄들은 모두 형벌로 다스려졌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다음부터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었다. 그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 대속의 길을 마련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곧 불순종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예수가 대신 죽으셨으나,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는 다시 죽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대속을 위한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그래서 요3:18절은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순종치 않던 자들이었다. 아담 안에서 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불순종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대신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을 믿고 거기서 해방되었다. 불순종은 지옥 갈 죄가 아니다. 하나님은 죄의 기준을 다시 정해 주셨다.
곧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불의요, 부정이요, 불법이라 하신 것이다. 다시는 구세주가 없다. 죄를 대속하실 하나님의 독생자는 한 분뿐이기 때문에 다시 보내실 아들이 없다.또 그 독생자는 하나뿐인 목숨을 불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내놓으셨기 때문에 다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내놓으실 목숨이 없다.
그러므로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믿지 않는 죄이다. 도둑질한 죄도 용서받을 수 있고, 살인한 죄도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다. 은혜와 긍휼(자비)은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기에 믿지 않는 자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마5:7)고 한 것이다.
그 긍휼은 믿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단 하나 뿐이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 뿐인 목숨을 버리심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그 은혜가 아무 소용이 없다.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씀과 같이, 은혜를 무시한 자들에게는 전혀 가망이 없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과 영원히 상관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곧 은혜받지 못한 것이 죄이다.
10절은 “‘의(義)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곧 이 세상의 의인(義人)은 예수님 한 분뿐인데, 그 예수님이 하늘로 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고, 오직 예수 안에서만 의인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말하는 의인과 신약에서 말하는 의인의 의미가 다르다.
구약에서 말하는 의인은 신분상 의인이 아니라 그 의를 사모하는 자들을 일컫고, 신약에서의 의인은 그 자체가 의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노아나 롯, 아브라함 등을 의인이라 했고(창6:9; 18:22-23), 신약에서는 예수만이 의인이다. 이 세상에는 두 사람만 있다.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예수, 이 둘 뿐이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이미 죄인이요, 마지막 사람은 의인이다. 의인인 마지막 아담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하늘로 올리셨다. 그러므로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셨기 때문에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곧 세상에는 의인이 없다. 아무도 의인인 체할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의(義)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의인이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산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함을 받을 때, 곧 칭의를 받아 생명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했음을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의 생명인 성령께서 우리의 죽었든 영을 소생시키시고 생명의 성령으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시므로,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를 믿음으로 우리는 깨끗함으로 받았으므로 성령께서 내 영 안에 오실 수 있는 것이다.
11절은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말한다. 포도원 소출을 받으려 간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자기들의 소유로 삼겠다고 난동을 부린 악한 소작인들처럼(마21:33-41), 세상 임금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면서도 시험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심판하려 하심이었다(요일3:8).
마귀도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시험했고, 귀신들도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눅4:34, 41)라고 소리치며 발악했다. 이것들은 이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있었고 두려워서 떨었다고 했다(약2:19).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의 신분을 알고 그 사실을 고백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고, 곧 이어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16:20)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마귀를 심판하러 오신 예수는 마귀를 정죄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신분을 성령으로 우리에게 알리셨다(계속).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믿는것이 의임을 친히 알려주시니 감사감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