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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권세 있는 새 교훈/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집착된 생각과 관념 속으로 침투한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임무는 영적인 전쟁을 하는 곳이다.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와 싸우는 곳이다. 계12:17절은 마귀가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과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섰다고 말한다. 예수의 증거를 가진 곳은 어디인가? 바로 믿는 자, 곧 교회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바닷가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곧 마귀가 적으로 삼는 곳이 교회인 것이다. 마귀의 일은 교회를 좌절하게 하고 교회를 훼방하고 대항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분열되고 갈등하는 이유는 교회를 훼방하는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 당시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올 때 바로의 술객들이 모세와 대결한 사건이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이다. 그런데도 바로의 술객들은 모세가 나타낸 이적과 똑같은 이적을 행하며 모세를 대적했다. 모세가 지팡이를 놓았을 때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 그러나 모세의 지팡이가 술객들의 그 뱀을 삼켜 버렸다.
이와 같이 실제 이기는 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의 편에 있다. 그것은 그들의 이적에는 종말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몇 차례나 모세가 행한 방법대로 자기들도 행하며 모세를 대적하였다. 그러므로 마귀는 한 번 시험하고 물러간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시기 위해서이다(요일3:8).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마귀와 귀신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으며, 알아도 관념적으로만 안다. 그러나 악령도 영적인 존재이며 인격이 있다. 성경은 믿는 이가 병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은 오셔서 병을 꾸짖고 떠나게 하셨다.
그 당시 사람들은 병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 드렸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이를 보고는 창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으며,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권세 있는 새 교훈”이라고 놀라워하였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눈을 뜨라.” 중풍병자에게 “침상에서 일어나라.” 손 마른 자에게 “손을 내밀라.” 죽은 자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요5:5-9절에 38년 된 어떤 병자는 예수님이 출생하기 훨씬 전부터 병자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뒤에 태어난 예수님이 그를 향해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라” 고 하시니 그가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선지자들이 있었고, 율법이 있었고, 바리새인들이 있었지만, 그 병자를 낫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도 예배가 있었고 안식일이 있었지만 그를 낫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능히 그 일을 하셨다. 그는 안식일보다 크고 예언자와 율법보다 크고 세상에 있는 어떤 학문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신 분이시다.
세상에 훌륭한 예언자나 많은 학문이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이지, 세상에서 난 것이 아니다. 믿는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그 이름의 힘(능력)은 모든 신자들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너희는 저주를 받으리라’ 고 말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과 능력을 사용하기만 하면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원수의 세력은 물러가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업은 잘되는데, 어느 날 집에서 도둑을 맞았다고 생각해 보자. 도둑이 회사에서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집의 것을 도둑질해 갔다. 그런데 만일 그 도둑이 강도로 변하여 주인을 죽이고 금품을 빼앗아 갔다면, 아무리 사업이 잘된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빼앗겼으므로 그의 사업도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마귀와 귀신은 이쪽이 잘될 때 이쪽을 피해 저쪽에 가서 허를 찌르는 일을 할 수 있는 악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는 좌절이 자기 개인에게서 오는 것인지, 가정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사업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업으로부터 오는 좌절이라면, “아! 이 사업에 벌써 원수가 접근해 오고 있구나!” 하여 영적으로 경계하고 악한 영을 주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저주해야지,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벧전5:8절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한다. 사자가 울 때는 배부를 때가 아니라 배고플 때이다. 배고픈 사자가 먹이를 볼 때 가릴 것이 없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삼키려고 할 것이다. 마귀의 수법도 그와 똑같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마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원수가 그와 같은 생각을 먼저 넣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요13:2절은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 넣었다.”(원문 참조)고 말한다. 유다는 생각부터 실패했던 것이다. 생각이 먼저 지배를 당하면서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요13:27절에 “사탄이 유다 속에 들어간지라”고 말한다. 곧 사탄이 유다의 생각을 완전히 지배해 버린 것이다.
행5:3절은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네 속에 사탄이 가득하여”라고 말한다. 이는 다른 말로 “너에게 사탄의 생각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는 뜻이다. 아나니아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요 은총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를 사탄의 생각이 지배하게 되므로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인 것이다.
생각이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 생각부터 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망할 생각을 하게 되니 신앙에 좌절이 오고 열심이 없어지며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렘6:19절은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한다. 마귀가 생각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생각을 지배하게 되면 이는 그 사람을 완전히 지배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귀신이 인간을 지배할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미혹의 영(악한 천사)이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위장이 약한 사람이 밥을 먹는 중에 ‘이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대로 체하고 마는 것이다.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고 하루 종일 생각이 뒤숭숭했는데 퇴근길에 자동차 사고가 나버렸다.
이와 같이 나쁜 생각들이 내 안에 머물면서 나를 두렵고 부담스럽게 할 때는, 기도하고 그것을 저주하여 쫓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원수는 꿈을 통해 미리 생각을 침투시킨 것이다. 심지어 가난도 생각으로부터 침투하게 된다. 이는 생각의 결과이다. ‘나는 가난해서 될 일도 안 된다’고 생각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웃에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큰 도움을 받은 그들이 도리어 악으로 되갚을 때, 생각이 분하고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와 같이 나쁜 생각들이 내 안에 머물면서 나를 두렵고 부담스럽게 할 때는, 먼저 기도하고 그것을 저주하여 내쫓으면 되는 일이다. 이처럼 마귀와 졸개인 귀신의 일은 사실은 간단하다.
악한 영은 사람들의 생각을 자꾸 바꾸어 준다. 그래서 생각 한번 잘못하게 되면 가정에도 사업에도 금방 좌절이 올 수 있다. 아주 유망한 사업도 이것을 팔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 간단히 팔아 버릴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 생각을 따라 모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생각이 누구에 의해 주어진 것이냐를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사람의 행동은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생각만 꺾어 버리면 마치 꿈이 사라져 버리듯 즉시 사라진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집착하게 만들면서 모든 생각 속에 침투한다. 일단 우리가 생각에 집착되면 억압을 받아 침울하고 두려워지며 말이 없어진다. 곧 우울증 환자의 증상과 흡사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포자기하게 만들어 죽든지 미치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자포자기는 현실보다 자기 생각에 잡혀 그 생각이 압도당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그래서 좌절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완전히 억압된 사람은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귀신에게 완전히 빙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병 환자와 귀신에게 빙의된 사람의 차이점이다. 정신병 환자와 귀신에게 빙의된 사람의 증상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귀신에 빙의된 사람은 귀신을 쫓아야만 회복이 되고, 정신병 환자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귀신에 빙의된 사람에게 약으로 처방하는 것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영적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 억압되어 그 생각에 권위를 주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은총을 받지 못한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고 해도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을 놓지 않고, 감정에도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자기가 병자라고 하는 관념을 떨쳐버리지를 못한다.
그러한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용하다는 기도원으로, 성령 세미나 참여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니다가 결국 그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집착된 생각을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박멸해야 한다.곧 그 생각을 꺾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생각을 강력하게 유산시켜 버렸다면, 이는 마치 날아가는 새가 나뭇가지에 올라앉지 못하도록 그 가지를 꺾어 버리는 것과 같아서 다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떨쳐 버릴 때에 몸(특히 신경계통)에 붙었던 귀신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생각은 마치 귀신에게 밀실을 만들어 제공해 주어 그 안에 들어와 있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집착하는 생각만 파괴시켜 버리면 귀신이 있을 곳이 없게 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소망을 주심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생각(혼)을 포기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돈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은 벌써 귀신에게 그만큼 억압되어 있다는 말이다.왜 그럴까? 이 사람은 돈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는 생각에 집착되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나 붙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소망, 곧 “하늘에 네 집이 있고 네 보화가 있다. 거기에 네 영광이 있다.” 고 말씀하셨다.
이는 인간의 모든 소망을 하늘, 곧 새 예루살렘에 두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생각을 포기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소유하도록 하신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새와 같아서 놓기만 하면 날아가 버린다. 그 생각이 날아갈까 봐 놓지 못하고 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낸 후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그 생각이 다시 머물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곧 생각을 놓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들어오지 못한다. 예를 들면, 암 환자가 ‘나는 암 환자다.’라는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늘 떠나지 않는다면 이는 문제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한 치유는 바로 이러한 자기 생각을 파괴시켜 버리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문둥병자라고 하면 가장 큰 저주를 받은 병자이다. 치유 받은 문둥병자가 오면 제사장은 산비둘기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잡아 피를 내고, 다른 한 마리는 그 발에 피를 찍어 날려 보냈다(레14:2-7).
그것은 자신이 문둥병자였다고 하는 고정 관념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써, 비둘기가 그 생각을 가지고 멀리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내 병도 옮겨져 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병은 낫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버린 다음 7일을 기다렸다가 그래도 아직 낫지 않았으면 또 7일을 더 기다리는 것이다.
산비둘기가 날아가 버리듯이 내 병이 날아가 버렸다고 하는, 완전히 과거의 자기 생각을 떨쳐버리고 나았다고 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7일만 통과하면 문둥병은 깨끗이 낫는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이러한 치료 방법이 있었거늘 하물며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하여 죽으셨으니, 우리의 저주는 완전히 옮겨졌고 우리는 살게 된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문둥병 환자를 대신하여 산비둘기 발에 짐승의 피를 발라 날려 보내고 7일을 기다려 7일 후에 제사장 앞에 나와 재확인하고 나음을 받았으나, 오늘날 우리는 더 큰 은총을 받았는데도 7일은 고사하고 7분도 기다리지 못한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자기가 가진 병은 오랜 지병이기에 안수 한 번 정도로는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착된 생각이나 관념 때문에 병이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각과 관념을 부수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만일 집비둘기였다면 날려 보냈어도 다시 제 집으로 돌아왔을 터인데, 다행히 산비둘기로 하여 한 번 날려 보내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집비둘기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자기 관념에 잡혀 있다. 날려 보내고 7일을 더 지내라 하듯이 자기 관념만 떨쳐버리면 귀신은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귀는 그의 사자(악한 천사와 미혹의 영)들을 통해 관념을 넣어 준 다음 귀신이 침투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귀신은 우리의 마음을 좌절하게 하는 그 생각을 통하여 들어와서 사람의 몸에 안주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은 심리적, 또는 정신적인 문제라고 간단히 생각해 버리지만, 예수님과 성경을 믿는 우리는 우리 생각의 배후에 이토록 거대한 영적 원수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성경은 성령과 악령에 대한 신비하고도 구체적인 것을 적은 책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향해 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잠자는 자는 깨우면 되고, 침상에 누워있는 자에게는 침상을 들고 일어나라 하여 먼저 그로 하여금 병자라는 관념을 떨쳐 버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침상에 누워있는 자는 자기 관념을 버리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호세아서 4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지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렘6:19절은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저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버렸음이라.”고 말한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생각의 지배를 받아, 그것에 집착해 버리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