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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이
주님이 계신 곳에 왔으니,
우리의 뜻과 마음도
온전히 이곳에 있게 하옵소서.
진심으로 주님을 송축하게 하시고,
온 힘을 다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에
생기가 돋우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함이
우리의 힘이요 능력이오니,
주님을 사모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길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태 5장 3절
마음을 비울 때 천국이 임한다
제가 목회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설교가 있었습니다.
바로 '팔복'(BEATITUDES)에 관한 설교였습니다.
마태복음 5―7장까지에는
저 유명한 산상수훈이 있습니다.
산 위에서 가르치신 보배로운 말씀이라는 뜻에서
산상보훈(山上寶訓)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에는 정말 주옥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의 첫머리부터
예수님은 "-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
이 말씀을 주목해 보면
바로 여기에 산상수훈을 기록한
마태의 중요한 의도가 나타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전수받았던 것처럼
예수님 역시 산 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씀 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는 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입니까?
예수님께서 가난하다고 할 때
그 앞에 '심령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물질적으로 부자냐 가난한 자냐,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여기에서 가난을 뜻하는 헬라원어 ‘프토코스’는
이것은 “지지리도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아예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의
그야말로 ‘진짜 거지’를 뜻합니다.
부자집 대문 밖에서
죽을 때까지 평생 구걸하면서 살다가 간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사람입니다(눅16:20~21).
따라서 이 말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고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고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는 ‘가난’을
‘하나님 앞에서‘영적인 거지’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성경 안에서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해
누가복음 18장에서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아시죠?
두 사람이 함께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또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바리새인이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이 바리새인은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더러운 세리와
같이 기도할 수가 없다고 하여
따로 떨어져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즉 저 세리처럼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자않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더러운 인간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제가 저 세리 놈하고
같은 부류가 아님을 감사드립니다.”
무슨 기도가 이래요?
어떻게 저런 놈하고 같은 인간이 아니라서
감사하다고 기도합니까?
이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리처럼
더러운 죄인들, 타락한 인간들과는 구분되는
의로운 사람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잘한다고
자랑스럽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하나님이 별로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말로는 자기가 잘 믿는다고 하고
종교적인 의무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자기를 들어내고
자기 의를 과시하고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은 전형적인 ‘심령이 부유한 자’입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나같이 예수 잘 믿는 사람 나와 봐” 하고
스스로를 과시합니다.
반면에,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자세부터가 바리새인과 다릅니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죄인인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기도도 이 한 마디뿐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러한 세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전형적인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더러운 죄인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나같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추악한 죄인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산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리새인을 의롭다고 보신 것이 아니라,
흉악한 죄인인 세리를 의롭다고 보신 것입니다.
이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우는 사람들,
나는 죄인이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고 인정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며,
영적인 거지인 것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나는 완전히 무능력자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영적 파산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영적인 거지들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는 못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입니다.
나는 무기력한 자입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하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내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심령이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이와 같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갈망이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아직도 나에게는 힘과 능력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고,
“내게는 하나님밖에 없다며,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 「New English Bible」은
이 구절을 참 잘 번역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어떤 대상도
주인으로서 들어 앉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만을 필요로 할 뿐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만이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의 왕노릇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주인과 왕으로 모시는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참주인이 되실 때에만
마음을 비울 수 있고
평안과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탐심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내적인 초점과 통일성을 허락하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의지하고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을
겸허하게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믿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여러 가지 탐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대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날마다 기도합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이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탐욕에 빠집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자기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마음 속에 끝없이 솟아나는
또 다른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괴로워하게 됩니다.
결국 욕심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재산, 권력, 명예, 지위, 직장,
가족, 재주, 건강, 등등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봅니다.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해, 달,
별들과, 구름, 공기, 나무, 바다, 강,
모든 자연 환경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보는 사람은
무엇을 소유하되
단지 필요성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리기 위하여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복을 받는가?
예수님께서 천국을 차지하는
복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심령이 가난한 성도들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천국을 맛보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말씀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심령이 가난해진 순간
단 0.1초의 차이도 없이
천국의 복이 임한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어떤 미래적인 축복에 대한 희미한 예언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떠한 곳입니까?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며,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늘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천국은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곳이니
부족함이 있을 리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에만 의지해 살아가기에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천국을 소유한
복 받은 자가 되십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헬라어로 'Makarios'로 되어 있습니다.
'Makarios'는 이 세상 사람들이
빼앗거나 훔칠 수 없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Makarios'는
좋은 일이 생길 때나 나쁜 일이 생길 때나,
날씨가 맑을 때나 궂을 때나 상관없이
주님 한 분 때문에 주어지는 행복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합 3: 17-18에서 올린 기도가
'Makarios' 행복의 전형적인 예인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렇습니다.
'Makarios'는 우리의 처지와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행복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한 분 때문에
한결같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Makarios'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초월적 선물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차지하는 복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천국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씀드려서
천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신 곳'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반드시 죽어서 가게 될
내세(來世)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하나님께서 왕노릇하시는 곳은
다 천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서 마음이 거지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비록 죄 많고 슬픔 많고
괴로움 많은 이 세상에 얽매여 살지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안에서 살게 됩니다.
찬송가 438장에 나오는 가사,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높이 날아가면 날아갈수록
땅위의 모든 것이 점점 더 작아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이 세상에 가졌던 모든 욕심과 자랑이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죄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물이 맑으면 맑을수록
물 안에 있는 오물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태양 광선이 방안에 비추일 때
아주 미세한 먼지까지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가난해지면 가난해질수록
우리는 우리 내부의 부족함과 죄악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어보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거꾸로 점점 더 크게 보일 것입니다.
몇년전에 기독교 신문에 실렸던
한 기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딸 애 하고 셋이서
15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어느 부인이 쓴 것입니다.
10여년 정도 사용하던 냉장고가
이제는 도무지 더 쓸 수가 없어서
조금 큰 것으로 교체했는데
그 냉장고를 들여 놓으니
집안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부인이 피아노 레슨을 조금씩 하기 때문에
자그마한 그랜드 피아노가 한 대 있습니다.
집안에 들어가면 숨이 막힙니다.
책상 하나 놓을 자리가 없어서
호마이카 밥상을 필요할 때는 펴 놓고 쓰다가
다 쓴 후에는 접어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인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쁘게 노래했던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 좁은 공간에서도
끊이지 않는 웃음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지위와 명예와 부가 없을지라도
잠잘 때 코 끝이 시려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잘지라도
제게 믿음 주시고 하나님을 믿는 남편과
건강하고 기도 잘하는 딸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평생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이곳은 아버지가 함께 하시기에 바로 천국입니다.'
가난하다고 다 불행한 줄 아십니까?
돈이 없어서 아이들 학비도 제대로 못 주고
밤새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처량한 줄 아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겉으로는 울지 모르지만 속은 다릅니다.
그 정도의 깊이 있고 차원 높은 행복을 모르면서
예수 믿는다고 남에게 어떻게 말을 합니까?
진정한 행복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 행복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음만 비우면
천국을 받아 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내 마음을 내어 놓기만 하면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기도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우리 모두 들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요, 주의 음성인줄 알고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았사오니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필요한 은혜를 각자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 중에 세상에 물질, 세상에 행복,
세상에 어떤 여러가지 자랑하고 싶은 어떤 것들 때문에
내 마음을 비지 못 해서 주님을 모시지 못해서
천국에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자 있습니까?
그 마음을 오늘 이 시간 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빈 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어
주님이 나를 다스리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천국을 소유하고 사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봉헌기도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됨과 같이,
우리가 드리는 예물도
주님께 열납되기 원합니다.
즐거이 드리는 이들의 삶에서,
덜 귀한 것들이 더 귀한 것들로,
아름답지 못함이 더욱 아름다움으로,
부족함이 풍성함으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듣고 믿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성취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주의 은혜가 전파될 때,
눌린자들이 자유를 얻고
눈먼 자들이 보게 되는 기쁨을 주옵소서.
주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요 능력이시니,
두려움 없는 평안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축도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보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세상 속에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성도들 위에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