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비문
○ 원문 (앞면) 烈女玄風郭氏之碑
(뒷면) 高麗末玄風郭氏年十九歸蔚山朴氏之門 是我遠祖 正郞公諱 根之配也 二十二公沒 廬墓三年 服闋 不 歸本家 孝養舅姑終身事 聞旌閭 國朝輿覽備載 其事 今考舊碑 大書烈女 里傍有宣德五年庚戌二月 日 命立宇 卽我 世宗大王十二年也 秊代遷遠 碑 旣仆折 崇禎後庚戌二月裔孫 禿更具貞珉 立于 故所 卽大興縣梧里洞舊基下造山也 墓在西距數里 許九嶺洞巽向 原碑又缺剜 裔孫秉等 文仍舊 石磨新 崇禎後四甲寅二月 日 十三代孫 秉 謹重修
○ 번역 열녀(烈女) 현풍곽씨(玄風郭氏)의 비(碑)
고려말, 현풍곽씨는 19세에 울산박씨 가문에 시집왔으니 곧 우리 원조(遠祖) 정랑공(正郞公) 휘(諱) 근(根)의 아내이다. 22세에 박공이 죽자 여묘살이 3년을 했다. 복(服)이 끝나자 본가(本家)로 돌아가지 않고 효성으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종신토록 봉양한 일로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국조여람(國朝輿覽)』에 그 일이 실려 있고, 지금 구비(舊碑)를 살펴보면 ‘열녀(烈女)’라고 크게 써져 있다. 마을 곁에는 선덕(宣德) 5년 경술 2월에 왕명으로 건립된 집이 있으니, 곧 우리 세종대왕 12년이다. 연대가 오래 지나 비석이 이미 넘어지고 꺾어져. 숭정기원 후 경술(1670, 현종11) 2월에 후손 독(禿)이 다시 정결한 돌을 구비하여 옛 자리에 세웠으니, 곧 대흥현(大興縣) 오리동(梧里洞) 구기(舊基, 옛터전) 아래에 조성한 산(山)이다. 묘(墓)는 서쪽 몇 리쯤 거리의 구령동(九嶺洞) 손향(巽向)에 있다. 원래의 비석은 또 이지러지고 깎이었기에 후손 병(秉) 등이 글월은 옛날과 같이하되 돌은 새로 마련하였다. 숭정기원 후 4번째 갑인년(1854, 철종5) 2월, 13대손 병(秉)이 삼가 중수(重修)합니다.
*붉은색 글자: 족보에 기록된 글자와 다름을 표시한 것임.
현풍곽씨 열녀비 자문의견서(홍제연) (3).pdf 789.57KB
박근처현풍곽씨정려비문 (1).hwp 70.00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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