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구에 가면 피사의 성당이 있다더라
“야, 거 사제관 귀곡산장이데.”
강구 발령받았다 하니, 선배 신부님 한 분이 딴은 농담이라 한마디 하신다. 창문도 문도 저 혼자 스르륵 움직이다 쾅 닫히고, 뭘 떨어뜨렸다간 데구루루 굴러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 없다. 밤이면 집이 뒤틀리는 소리에 끼익끼익 천장이 운다.
영덕 강구면, 동네 성당. 지금 7080대 어르신들 5060 시절 전국 돌며 대게도 팔고, 고마운 은인들의 도움으로 봉헌한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이다. 그 성당이 연약지반 침하로 이십 년째 기울고 있다. 비도 새고-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린 물이 성전 왼편에 웅덩이처럼 고일 때면 묘한 느낌이다-문틀·창틀 뒤틀려 아귀도 맞지 않고, 내외벽 균열도 본당 어르신들의 주름과 함께 늘어가고 또 깊어간다. 15년 전 안전진단서 측정한 기울기는 1/55. 거주적합도 D등급, 부적합 판정. 겨울과 봄 사이, 땅이 얼고 녹는 동안 지금은 얼마간 더 기울었으리라. 강구항에 이사 온 지 만 삼 년. 뱃사람 육지 멀미를 하듯, 이제는 바닥이 평평한 집에 가면 되레 낯설다.
적응도 문제 없이 했겠다. 허허 피사의 사탑처럼 재미있는 명소가 아닌가? 그냥 대범하게 웃으며 살자 마음먹고 있었지만, 본당 살림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누수는 마냥 맘 편히 내버려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태껏 수백만, 수천만 원 지붕공사 세 번을 했지만, 일이 년 지나면 어김없이 물이 샜다고 한다. 이번에 제대로 누수를 잡아보자고 도시에서 모셔온 방수시공업자분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건물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모두 미봉책일 뿐입니다.” 수소문해 찾아낸 ‘기운 건물 세우기’ 전문가는 말했다. “내부 구조가 단단해 기적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콘크리트가 튼튼해서 바로 세우기만 하면 천년도 갈 성당이지만, 혹시 지진 영향을 받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자문으로 건물을 바로 세울 방법은 생각보다 수월히 찾았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성전을 바로 세우는 데 수억, 사제관을 바로 세우는 데 또 수억, 지붕마감과 균열을 때우는 리모델링까지 합산하면 또 수억. 주일미사 참례 신자 50명 남짓, 관광철 겨우 주일 100명 넘길까 하는 작은 시골 본당이 감당하기 벅찬 액수다. 건축기금도 신설해 보지만, 그 적립금은 매년 오르는 시공비를 따라잡기도 벅찰 전망이다.
20년 전, 젊고 패기 넘치던 신자들이 전국을 돌며 천신만고 겨우 봉헌한 성당이다. 다들 그때의 고생을 기억하며, 또 그 청춘의 추억에 지금의 노쇠를 어쩔 수 없이 비견하니, 큰 공사 엄두 못 내는 분위기가 팽배함을 느꼈다. 한편, 인구 소멸 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교구 현실에서, 이 본당은 오히려 드물게 신자수도 전입 교우도 유지되는 작지만 건강하고 미래 있는 공동체다. 기울고 비세는 성전 때문에 과하게 기죽어 움츠러들고 있는 우리 본당의 미래를 위해 이 건물 바로 세워야만 하지 않겠는가? 묻게 된다. 과연 이 사업이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일일까? 아니면 내 과한 욕심일 뿐일까? 공동체와 함께 식별하는 기도와 시간이 필요했다.
2. 신부님은 손님 아닙니까?
“신부님은 잠깐 있다가 떠나시지 않습니까? 괜한 고생 마시고, 그냥 편하게 있다 가십시오.” 기초보강 예상 견적 비용을 고지한 후 어느 교우로부터 듣게 된 말이다. “신부님은 섬마을 선생님, 객으로 왔지만, 우리는 여기 삽니다.” 아직 경험해 본 본당 몇 개 되지 않지만, 어디 그런 말이 어디 적혀 있기라도 한 듯, 잊을만하면 듣게 되는 그 익숙함에 데자뷔를 느낀다.
속으로 생각한다. 네, 저는 집도 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집도 없이 사는 줄 아십니까? 여기이 하느님 집을 자기 집이라 여기고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하지 말라고 객으로 삽니다. 신자들은 저마다 성당을 자기 집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나무 하나 심고 뽑는 일에도 원수를 진다. 제 집 없이 주님의 집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제가, 집주인 애살 가진 모든 교우들 함께 집안일을 식별하도록 돕는 것, 나는 그것이 떠돌이 사목자의 사명이라 믿는다.
예전 거쳐온 본당에서 듣게 된 한 교우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본당 대소사 신부님들이 결정하시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부님의 판단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십시오.”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이 세속의 다수결과 같을 수는 없다.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하느님께서 우리 임금이시다. 그러나 그렇기에 공동체의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일은 사목자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믿는다.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 말을 거신다. 내가 지난 몇 년간 보편교회의 시노달리타스 공부에서 조금이나마 배운 바가 있다면, 사목자는 공동체가 기도 안에서 함께 식별하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이라는 각성이었다.
어차피 십수 년간 기울어가고 있는 건물, 몇 달 더 기도와 숙의의 시간을 가진다 하여 크게 늦어질 것은 없다. 공청회를 열어 신자들, 교구 건축위원회와 함께 기초보강 전문시공업체의 설명을 들었다. 한 달 후, 전신자 총회를 열었다. 기조 발언을 하며 나는 교우들과 함께 한 장면을 떠올리자고 초대했다. 중세 이탈리아, 젊은 프란치스코가 폐허가 된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던 중 주님의 말씀을 받는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 성인은 처음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허물어지는 동네 작은 성당들을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깨달았다. 아, 이게 동네 성당 고치라는 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주님의 교회를 쇄신하라는 말씀이었구나. 안건은 작금의 건물보수이지만, 우리가 실험하는 이 공동 식별은 결국 우리 공동체의 쇄신과 성숙, 본당을 본당답게 바로 세우는 일이기를 기도하며 총회를 성령청원기도로 열었다. 독서대에 모래시계를 두고 각자 발언과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격론이 오갔다. 장내가 잔뜩 달아오른 채, 그러나 기도 안에서 총회가 끝났다. 나는 다시 두 달을 함께 기도하고 숙고하자 요청했다. 그리고 전신자 의견서를 받겠노라 공지했다.
3. “ 우리는 기냥 가마니 있다가 난중에 신부님 하잔대로 하믄 된다”
이후 공동체의 숙의가 뜸이 들길 기다리는 와중 흥미로운 첩보가 들어왔다. 주일미사 셔틀 봉고에 타셨던 어느 어르신들 사이에 오간 말씀이라 했다. “우리는 기냥 가마니 있다가 난중에 신부님 하잔대로 하믄 된다.”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 하시니 마음은 고마운데, 정작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모두의 말을 듣고 싶은데... 그러나 이 또한 내가 순명할 시노달리타스 아니겠는가 받아들였다. 수십 년간 사목자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따라온 대다수 신자분들께, 특히 어르신들께 이 공동 식별의 요구는 부담스런 짐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또한 그분들의 신앙감 아니겠는가.
두 달이 지나자 전신자 과반수의 의견서가 모였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침묵을 택하신 분보다 의견을 개진해 주신 분들의 수가 조금 많았다. 반대 12건, 찬성 16건, 중립 3건. 어떤 목소리는 지난 20년 적립금 통계를 꺼내며 “연평균 천만 원 수준이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어떤 목소리는 공법 자체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다른 목소리는 “재정 문제, 기술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해야 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먼저입니다”하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고 술렁였다. “비가 많이 오면 성전 벽에서 눈물이 흐른다. 비 내리는 밤이면 성당에 양동이 받치러 가야 하나 잠도 잘 들지 못한다.” “우리 형편이 안 되니 안 사던 복권까지 매주 사고 있다.” “창문이 저절로 닫혀 손이 끼였다. 아이들이 어른들이 비세는 성당 방치하는 것 보고 뭐라한다. 아이들의 미래 신앙이 걱정된다.” 우리 교우들에게 이런 목소리들이 있었구나. 총회와 의견서는 내게 단순한 찬반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동체의 마음, 그 찬반 피상의 표현을 넘어 우리 모두가 우리 공동의 집, 하느님의 집에 대한 걱정과 사랑에서 한 마음이라는 위안을 느끼게 해주었다. 반대하는 이들도 찬성하는 이들도 마침내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고 공명했다. ‘이상은 필요하다. 현실은 어렵다.’ 이 공동 식별 위에서, 마침내 나는 우리 공동체에 이렇게 말씀드렸다. “여러
분, 저도 이 집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도 강구가 집입니다. 우리 모두의 집입니다.”
4. 본당 25주년의 성숙함을 향해, 시노달리타스로 함께 바로 서기
본당 설정 25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강구 공동체, 나는 묻게 된다. ‘성숙함’이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싸울 때 자주 들었던 말을 기억한다. “네 맘만 있나? 내 맘도 있다!” 그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마음이 마음을 만날 자리와 시간을 내어주는 것, 내 맘을 넘어 네 맘에 가닿고, 그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을 함께 찾는 것. 그것이 어른됨, 그것이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아닐까 내 나름 답해 본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허물어진 시골 동네 성당들을 땀과 기도로 세우는 와중 비로소 주님의 더 큰 뜻을 깨달았듯, 우리는 기울어진 건물을 두고 두 달을 기도하고 토론하며 더 근원적인 질문들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인가?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인가?
설명회, 공청회, 총회, 수개월의 숙의와 기도. 그 여정 안에서 우리가 함께 배운 것이 있다. 어떻게 결정되든 그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서로가 함께 내어준 기도와 선한 지향의 시간이었고, 성령께 의탁한 기다림과 순명이었다. 함께 걷는 여정으로서의 교회 체험, 그 시간은 분명 우리를 그만큼 더 성숙케 했으리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금이 허락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제 25살 생일을 맞고 있는 우리 공동체는 서투르고 느리더라도 이 길을 함께 걸으며 신앙 안에 어른으로 바로 서 걷는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 기울어진 성당을 세우는 일은 단지 건물 기초만을 바로잡는 일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마음들을 모아 하나의 길 위에 세워 함께 걷게 하는 일이며,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주님께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듣는다.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 세워라.” 우리는 함께 성령께 여쭙고 또 여쭙는다. “주님,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저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