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를 읽고 지은 설讀春秋說
내가 어렸을 때 종형從兄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는 것을 보고 그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문채가 나는 것을 좋아하여 곁에서 남몰래 외웠는데, 장성해서도 여전히 그 반을 기억하고 있었다. 벼슬에 나간 이후로는 그만두고서 더 이상 익히지 않다가 지난해에 상을 당해 일이 적어서 비로소 가져다 읽어보니, 구두句讀 사이에 옛날의 기억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고 또한 의미를 이해함이 지난날보다 나음을 느꼈다.
세상 사람 중에 《춘추좌씨전》의 부화함浮夸〕이 의리를 추구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대체로 춘추좌씨전의 의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저 공양고(羊高) 곡량적穀梁赤이 태어난 것은 부자夫子 (공자)보다 백여 년 뒤이니 필삭筆削의 의리에 대해 잘못 전해 들은 것이 많고 그 의도가 이미 어두워졌을 때였다. 그러므로 정밀히 생각하고 분발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했지만, 차라리 질박할지언정 문채를 내지 않고 차라리 막힐지언정 넘치게 하지 않아서 오직 성인의 뜻에 부합하기를 마음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간략하기를 기필하지 않고도 저절로 요약要約하게 된 것이며 예스럽기를 기필하지 않고도 저절로 전아典雅해진 것이다.
좌구명左丘明으로 말하면, 직접 부자의 시대에 살아서 의례義例 (저술의 뜻과 체례)와 내용의 정변正變과 동이同異 및 포폄褒貶과 여탈予奪의 은미함과 드러남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의 역사를 채취하여 오직 나열해서 사실을 기록하는 데 힘을 썼으니, 이 때문에 문장은 공교로운 것을 꺼리지 않았고 말은 번다한 것을 꺼리지 않았던 것이다. 좌씨와 공양고와 곡량적의 기록이 각각 그 문체를 달리한 것은 당시의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그 이유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서, 의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좌씨가 기이함을 좋아한다며 배척하고 사실에 집중하는 자들은 공양고와 곡량적이 자신의 견해만을 주장함을 병통으로 여기니,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가령 좌씨가 사실을 기록함이 없었다면 공양고와 곡량적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부자께서 필삭하신 뜻을 어디에서 구했겠는가. 백 년 뒤에 태어나 부자께서 필삭하신 뜻을 살펴 한 부部의 의리를 추구한 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사실을 기록한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이는 송宋나라의 성리학이 한漢나라 유자의 훈고訓詁의 공에 근원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좌씨는 소왕素王(공자)의 훌륭한 신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공양고와 곡량적이 사숙私淑한 사람이 된다. 춘추를 읽는 자는 이를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된다.
[주1] 세상 …… 많은데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춘추좌씨전》의 허황함[左氏浮誇]’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또 일반적으로 《춘추좌씨전》은 사실관계에 치중하였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은 《춘추》의 의리적 측면을 중시하여 미언대의(微言大義)를 해석하는 데 힘썼다고 평가된다.
[주2] 필삭(筆削)의 의리 : 필삭은 ‘필즉필 삭즉삭(筆則筆 削則削)’의 줄임말이다. 노나라에 원래 《춘추》라는 역사책이 있었는데, 공자가 이 책에 의거하여 현재의 《춘추》를 지으면서 그대로 기록할 만한 것은 그대로 두고 삭제할 만한 것은 삭제했다고 한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3] 좌씨(左氏)는 …… 아니라 : 소왕(素王)은 제왕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얻지 못한 이를 일컫는 말로 보통 공자(孔子)를 뜻한다. 한(漢)나라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권27 〈정현(定賢)〉에 “소왕의 사업은 《춘추》에 있다.[素王之業在於春秋.]”라는 말이 있다. 또 공자의 뜻을 계술하여 《춘추좌씨전》을 지은 좌구명을 소신(素臣)이라 부른다. 《春秋左傳注疏 春秋經傳集解序》
讀春秋說
余童時。見從兄讀春秋左氏傳。愛其簡而文也。從傍竊誦之。及長。猶記其半。釋褐以來。廢而不復講也。頃年居憂少事。始取而閱之。句讀之間。舊業猶有存者。而亦覺意味之勝於前日也。世多謂左氏之浮夸。不及公羊穀梁之義理。此蓋不達於左氏之論者也。夫公羊,穀梁之生後夫子百有餘年。筆削之義。傳聞多訛。指趣旣晦。故精思奮勵。刱起雖設。寧質毋文。寧滯無濫。惟以合乎聖人之意爲心。此其不期簡而自約。不期古而自典者也。若丘明氏。親際夫子之時。義例辭事之正變同異。褒貶予奪之微顯婉彰。得以耳聞而心了也。故採取諸國之史。惟以鋪張紀實爲務。所以文不嫌其工。語不嫌其繁者也。左氏,公,穀之傳各異體。時世然也。而學者不究其故。主義理者。斥左氏爲好奇。專事實者。病公,穀爲執拗。豈理也哉。假使無左氏之紀實。公,穀雖賢。何從而求夫子筆削之意也。生於百年之後。得以窺夫子筆削之意。以就一部義理之書者。實賴紀實之力。是猶宋世性理之學。源於漢儒訓詁之功也。然則左氏不但素王之良臣。抑亦爲公,穀之私淑。讀春秋者。不可以不察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