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학을 사직하는 소
삼가 아룁니다. 신이 이달 22일에 삼가 은지(恩旨)를 받들어 보니, 신을 관직(館職)에 제수하여 신으로 하여금 대궐로 달려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이에 너무도 놀랍고 두려워 마치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듯하였습니다. 신의 숙병이 줄곧 심한 상태가 이어져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실로 차가워지지 않은 하나의 시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명철하신 전하의 감식이 오히려 신의 이러한 정상을 통촉하지 못하시고 반년 동안에 총명(寵命)을 거듭 내리신단 말입니까. 은수(恩數)를 소홀하게 내리는 것이 이에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번에 신이 외람되이 본직(本職)을 맡았을 때에 마침 대행왕후(大行王后 장렬왕후 )께서 미령하시어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자 전하의 안색이 초췌하였습니다. 이에 대소 신료들이 근심하고 놀라서 궐내의 신하들은 경황없이 분주하고 궐외의 신하들은 모두 궐내로 들어왔는데, 신만 홀로 누추한 집에서 숨을 헐떡이며 누운 채 백료(百僚)의 뒤를 따르지 못하였고 사직을 호소하여 마지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천지(天地) 같은 덕을 지니신 전하께서 불쌍하고 가련히 여겨 미천한 신의 뜻을 곡진히 따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논한다면 만번 죽어도 그 책임을 조금도 때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갑자기 대상(大喪)을 당하였는데 신이 또 곡반(哭班)에 달려 나아가 지극한 슬픔을 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생각건대, 신이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만 못하고 신의 죄를 다스리자면 주벌(誅罰)로도 오히려 가벼운 것입니다. 그런데 유사(有司)가 처벌하지 않고 인자하신 전하께서 또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이에 신은 한 가닥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은혜에 감격할 줄 알아 두 줄기 눈물만 흘린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대행왕후께서 이 빈소에 있으매 성상께서 슬피 곡하고 백관들은 저마다 일을 정성스럽게 하여 조금이라도 직무를 잘못 수행하여 국법을 어길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에게 제수한 바는 직책과 지위가 전하와 친밀하니 조정의 반열 중에 이와 비교할 자리가 드문데 있어서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신의 구구한 분수로 볼 때 다시 어찌 감히 미천한 신이 죽고 사는 것을 돌보아 견마(犬馬)의 노고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작은 정성을 깊이 저버리고 큰 죄에 거듭 빠져서 형벌을 받아 다른 사람의 경곗거리가 되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신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아 실오라기 같은 목숨이 거의 다하려 하니 사지(四肢)와 백해(百骸)가 이미 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축을 받거나 들것에 실려 대궐에 나아갈 수 없기에 대궐을 바라보며 슬픔에 목멜 뿐입니다. 여기에서 신의 정상이 애처롭고 신의 근력이 억지로 나아가기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일월(日月)이 하늘에 있으매 빛을 용납하는 곳에 반드시 비추는 법이니, 부모와 같으신 전하의 은혜가 신을 사랑하여 살리고자 하신다면 신은 오늘 거의 가망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신의 간절한 정성을 살피시고 신의 쇠잔한 목숨을 가련히 여겨 주소서. 그리하여 신의 직명을 삭제하고 신의 죄를 다스리시어 한편으로는 미천한 신의 분수대로 살게 하고 한편으로는 나라의 법을 엄숙하게 하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1) 恩旨 : 임금의 뜻
2) 館職 : 조선朝鮮 시대에, 홍문관弘文館 부제학副提學 이하以下의 벼슬아치와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이하의 벼슬아치를 통틀 어 이르던 말.
3) 恩數 : 임금이 베푸는 은전의 정도
4) 聖明 : 임금의 밝은 지혜
辭副提學疏
伏以臣於本月二十二日。伏奉恩旨。除臣館職。令臣赴闕。惶駭震慄。若隕淵谷。臣之宿病。一向沈劇綴然。以俟朝暮。實爲未冷之一屍。奈何天鑑之明。尙猶 未燭。半年之間。再辱寵命。恩數之渫越。至此極矣。向臣忝叨本職。適當大行違豫。日臻彌留。玉色焦然。大小憂遑。在內駿奔。在外畢入。臣獨喘喘僵臥於蓬蓽之下。莫從百僚之後而祈籲不已。雖蒙天地之德。哀矜憫憐。曲循微物。論其釁負。萬死不足少塞其責。逮玆昊天不弔。遄降大喪。臣又不克奔趨哭班。伸展至哀。念臣之生。不如無生。正臣之罪。誅殛猶輕。然有司不加以法。而聖慈又示抆拭。臣一息未斷。猶知感恩。雙涕簌簌。不省所言。見今大行在殯。聖上哀疚。百司群僚。各虔其事。懼少不稱以干憲度。況臣所授。職親地密。在廷之列。鮮與爲比。自臣區區之分。復何敢恤此肖翹死生之命。不殫犬馬奔走之役。深負微誠。重陷大戾。斃戮而爲戒於他人也。顧以積痾嬰身。絲縷垂盡。四肢百骸。已非臣有。扶之不得。舁之不可。瞻望雲天。悲咽而已。於此見臣情之可哀而臣力之難強。日月在天。容光必照。父母之恩。愛之欲生。則臣於今日。庶有望矣。伏乞聖明察臣危懇。憐臣殘喘。削臣職名。治臣辜犯。一安微分。一嚴邦典。不勝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