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삼강 유적기〔昌寧曺氏三綱遺蹟記〕
사람에게 삼강(三綱)이 있는 것은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의 삼광(三光)이 있는 것과 같다. 삼광이 어둡고 흐릿하면 천지가 막히고 만물이 질서를 잃는다. 삼강이 무너져 느슨해지면 사람의 기강이 문란해져서 모두 금수의 영역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니 현명한 왕이 다스릴 때 반드시 인륜의 상도(常道)를 세우는 것을 급선무로 삼은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
호남 나주(羅州) 고을에 창녕 조씨(昌寧曺氏)의 삼강 유적(三綱遺蹟)이 있다. 나는 그 실기(實紀)를 읽은 적이 있는데, 한 가문 네 사람의 절개가 찬란하게 이어졌으니 얼마나 성대한가? 지난날 선조(宣祖) 임진왜란 당시, 송암(松庵) 조언수(曺彥壽) 공은 포의로서 떨치고 일어나서 대중을 고무시켜 군사를 모집했다. 나중에 조중봉(趙重峰) 선생과 함께 금산(錦山) 전투에서 순국하여, 포상으로 아경(亞卿)에 추증되고 곧 맹부(盟府)에 공훈이 실렸다. 공의 아들 참봉(參奉) 조성복(曺成福)의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남편이 병들자 손가락을 자르고 넓적다리를 베었으며, 남편이 죽자 맹세하여 스스로 절개를 지켰다. 자식을 가르쳐서 가정을 이루게 하고, 죽은 남편의 뜻을 이루었기에 정려(旌閭)의 포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부인의 아들 통정(通政) 순악(舜岳)은 효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효행에 감응하여 물고기를 얻는 이적(異蹟)이 일어날 정도였기에 고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일을 칭송한다. 순악의 아들 후건(厚建) 또한 효로 이름났다.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었다. 어사가 포상을 내려주십사 아뢰어준 덕에 특별히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조씨 집안에는 정려문이 이어져 백 년 동안이나 전해졌으며, 또한 향리의 모범이 되었다.
후에 무신년(1908, 융희1) 난리를 당하여 온 마을이 불타면서 정려문 또한 불속에 사라져 버리니, 종족과 향당이 모두 상심해하며 안타까워했다. 13년이 지난 경진년(1920)에 모여서, 옛 터에 누각을 세우고 잊지 않고자 하는 뜻을 내보이자고 계획하였다. 그해 가을, 공의 11세손 규완(圭浣)이 보따리를 짊어지고 상경하여 내게 글을 지어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그 일을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고 늙어 오래도록 필연(筆硯)을 멀리해 왔었다. 그러나 이 일만은 윤상에 관계된 터라, 감히 늙고 병듦을 이유로 사양할 수 없기에, 마침내 그 일을 대략 기록하고서 가지고 돌아가 문미에 걸도록 한다.
[주1] 조중봉(趙重峰) : 조헌(趙憲, 1544~1592)으로, 본관은 배천(白川)이며,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ㆍ후율(後栗),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금산 전투에서 순국했다.
[주2] 맹부(盟府) : 충훈부(忠勳府)의 다른 이름이다.
[주3] 물고기를 얻는 이적(異蹟) : 진(晉)나라 왕상(王祥)이 겨울철에 모친이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얼어붙은 강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얼음이 절로 녹고 그 안에서 산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昌寧曺氏三綱遺蹟記
人之有三綱。猶天之有三光也。三光晻翳則天地閉塞而萬物不得其序。三綱隳弛則人紀紊亂而胥淪於禽獸之域。是以明王之出治也。必以扶植倫常爲先務。良有以也。湖南羅州之鄕。有昌寧曺氏三綱遺蹟。余甞讀其實紀。一門四節。輝赫相承。何其盛哉。昔在宣廟龍蛇之變。松庵曺公諱彥壽奮起布韋。激衆募旅。後與趙重峰先生同殣於錦山之役。褒贈亞卿。勳載盟府。公之子參奉成福之婦淑夫人文化柳氏。夫病斫指刲股。夫死矢志自守。敎子成家。克卒亡夫之志。至蒙旌褒。夫人有子曰通政舜岳。竭誠奉母。致孝感得魚之異。鄕人至今稱之。舜岳之子厚建亦以孝聞。三年居墓。山君來護。因繡衣褒啓。特除童蒙敎官。以是曺氏之門。綽楔相望。傳至百年之久。而爲鄕閭之所矜式。後値戊申之擾。一村燒燬。綽楔亦入其中。宗族鄕黨。莫不傷惜。粤十有三年庚申。相謀建閣于遺墟。以志不忘之義。是歲秋。公之十一世孫圭浣裹足上京。謁余文以記之。盖重其事也。顧余癃耄。久謝筆硯。然惟事關彜倫。不敢以老病辭。遂畧記其事。使歸而揭之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