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에게 올리는 제문 祭退溪文
오호라, 선생께서 이런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지극히 큰 도(道)와 지극히 자세한 말씀과 지극히 바른 학문과 지극히 높은 행실을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 버렸습니다.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임금의 덕을 성취하게 할 기국(器局)과 인재를 계발할 재능과 패도(霸道)를 물리치고 왕도(王道)를 실행할 법술(法術)과 나오기를 어려워하고 물러나기를 쉬워하는 절조(節操)를 끝내 어찌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 버렸습니다.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초년에는 섭윤(葉尹)의 물음을 면하였고 만년에는 요옹(了翁)의 지견(知見)에 독실하였습니다. 서액(西掖 승정원)에서 선생과 같이 근무할 때는 이택(麗澤)의 도움을 받은 시간이 많았고, 동호(東湖 독서당(讀書堂))에서 휴가를 얻어 함께 지낼 때는 한결같이 돌봐 주신 은혜가 그 몇 밤이었습니까. 도(道)를 논(論)하고 성(性)을 강(講)하는 일 외에는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선비를 사랑하는 정성뿐이었습니다.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만사를 하늘의 뜻에 맡겼을 때에는 저를 경책(警責)하여 그만두지 않게 하고 저를 권면(勸勉)하여 좌절하지 않도록 하셨으며, 백발로 돌아와 다시 후덕한 모습을 우러러보았을 때는 바야흐로 의귀(依歸)하여 의심나는 점을 질문하며 거의 따라서 허물을 보완하려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이렇게 부고가 이르렀단 말입니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 버렸습니다. 애통하고 애통합니다. 한 번 애통하고 두 번 애통하고 세 번 애통함에 그치겠습니까.
노모께서 당상(堂上)에 계시기 때문에 한번 임하여 곡할 기회를 영영 놓쳤으니, 이 마음 서글퍼 다시 한번 애통합니다. 멀리서 조촐한 전물(奠物)을 올리니 부디 흠향하소서.
祭退溪文
嗚呼。先生而至於斯。至大之道。至精之辭。至正之學。至高之行。今不可得而見之。已而已而。慟矣慟矣。成就君德之器。誘掖人材之才。黜伯行王之術。難進易退之節。終豈復得而聞諸。已而已而。慟矣慟矣。若余者。早免葉尹之問。晩篤了翁之知。聯被西掖。資麗澤之多時。偕暇東湖。受尋顧其幾夜。自論道講性之外。惟憂國愛士之誠。一敗塗地。萬事聽天。責余不止。勉余不挫。白首歸來。復瞻德範。方且倚而稽疑。庶可從而補過。何此計之莫遂。遽此訃之相及。已而已而。慟矣慟矣。一慟二慟三慟而止。有老在堂。永失一臨。此懷惸惸。又復一慟。遙奠綿漬。尙克歆思。
[주1] 섭윤(葉尹)의 물음을 면하였고 : 현자(賢者)를 못 알아보고 묻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섭윤은 초나라 섭현(葉縣)의 윤(尹)인 심제량(沈諸梁)이다. 심제량이 자로(子路)에게 공자(孔子)의 인물됨에 대해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공자가 이 말을 듣고 자로에게 이르기를 “너는 어찌 말하지 않았느냐, 그의 사람됨이 끼니를 잊을 정도로 배움에 열중하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워 근심도 잊은 채 늙어 가는 줄도 모른다고.”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주2] 요옹(了翁)의 지견(知見)에 독실하였습니다 : 현자를 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송(宋)나라 요옹이 당대의 대학자인 정호(程顥)를 몰라보고 범순부(范淳夫)에게 물었던 일을 부끄럽게 여겨서, 심제량이 공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몰라 자로에게 물었던 고사에 비의하여 자신을 책하는 내용으로 〈책심문(責沈文)〉을 지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책심(責沈)은 심제량을 나무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무지함을 책한다는 의미이다. 요옹은 송나라 학자 진관(陳瓘)의 호로, 자는 영중(瑩中), 호는 요옹ㆍ요재(了齋),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간관(諫官) 시절에 자주 극언하여 폄직(貶職)되었으며, 초주(楚州)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정(二程)의 고제(高弟)인 양시(楊時)와 교유하였다. 《宋元學案 卷35》 《宋史 陳瓘列傳》
[주3] 이택(麗澤) :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4] 일패도지(一敗塗地) :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천하가 바야흐로 혼란스러워 제후들이 모두 봉기하고 있으니, 지금 장수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하루아침에 전멸되어 간과 폐가 땅에 널리게 될 것입니다.[天下方擾, 諸侯竝起, 今置將不善, 壹敗塗地.]”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소재가 1547년(명종2) 순천(順天)으로 유배되었다가 같은 해 9월 양재역 벽서 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진도(珍島)로 이배(移配)되고, 그곳에서 19년간 귀양살이했던 일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