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배씨(興海裵氏) 沿革 (연혁)
흥해(興海)는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신라 때 퇴화군(退火郡)으로 부르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창군(義昌郡)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 경주부(慶州府)에 속했으며, 1896년 경상북도 흥해군이 되었다.
1914년 영일군(迎日郡)에 병합되었다가, 1956년 흥해면과 곡강면을 의창면(義昌面)으로 통합했다.
1973년 의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3년 의창읍이 다시 흥해읍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95년 영일군이 포항시에 병합되었고 북구로 신설되어 통합되었다.
흥해배씨(興海裵氏)는 고려조에서 검교장군에 오른 배경분(裵景分)을 1세조로 한다.
그의 6세손 배전(裵詮)이 충혜왕 때 조적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일등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흥해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흥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와 1764년(영조40)에 편찬된 갑신합보에는 배씨의 중시조인 배현경(裵玄慶)의 6세손 배오룡(裵五龍)을 파조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계대 소목(昭穆)이 자세하지 않고
각파의 이론(異論)이 있어 곡강세첩의 내용에 따라 배경분을 파조로 한다.
흥해배씨는 흥해군 배전의 아들 4형제 중 장남 배상도(裵尙度)와 셋째 배상지(裵尙志)의 후대에서가문이 크게 융성하기 시작했다.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한 배상도는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배둔(裵屯)은 조선 태조 때 형조참의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했다.
배둔의 아들 배처눌과 배지눌이 모두 대를 이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형 배상도와 함께 목은에게서 글을 배웠던 배상지는 고려 말에 벼슬이 판사복시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안동 금계촌으로 내려가 은거하면서 잣나무(栢)와 대나무(竹)를 심고 호를 백죽당(栢竹堂)이라 하였다. 조선조에서 수차례에 걸쳐 벼슬을 내렸으나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여흥부사를 지내고 원종공신에 올랐던 배효숭과 옥과현감을 지낸 배효건, 세조 때 언양현감을 역임한 배효사 3형제도 유명하다.
충좌위 부사과 배천석(裵天錫)의 맏아들 배삼익(裵三益)은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구제에 진력하여, 아우 배삼근(裵三近)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5명, 무과 3명, 사마시 8명 등 모두 26명으로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배용길(裵龍吉)- 문과(文科) 선조35년(1602) 별시 을과(乙科)/ 배상규(裵相奎)- 문과(文科)
헌종9년(1843) 식년시 병과(丙科)/ 배남(裵楠)-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동진사(同進士)/배소(裵素)- 문과(文科) 태종8년(1408)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배효숭(裵孝崇)- 문과(文科) 세종29년(1447)식년시 병과(丙科)/ 배상현(裵象鉉)- 문과(文科) 헌종15년(1849) 별시 병과(丙科)/ 배윤명(裵胤命)-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증광시 병과(丙科)/ 배둔(裵屯)- 문과(文科) 태조2년(1393) 식년시 동진사(同進士)/배덕문(裵德文)- 문과(文科) 명종8년(1553) 별시 병과(丙科)/ 배강- 문과(文科) 세종8년(1426)식년시 동진사(同進士)/ 파는 목사공파, 설현파, 문과공파, 지평공파, 관찰사공파, 감찰공파, 정랑공파 등이다.
경북 안동군 풍산읍 매곡동,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율리,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동, 황해도 신천군 문무면추능리, 경북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황해도 삼강면 청용리가 집성촌이다.
한편 우리나라 배씨(裵氏)의 본관은 경주(慶州), 김해(金海), 성주(星州), 대구(大邱),흥해(興海), 협계(俠溪),곤양(昆陽), 화순(和順) 등 10본 내외가 전한다. 그러나 모두 연원이 같은 동계 혈족이다.
모든 배씨는 신라 6부촌(六部村) 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漢祗部)의 촌장 지타공(祗陀公)에 연원을 둔다.
고려의 개국공신 배현경(裵玄慶)이 경주배씨의 시조이자 모든 배씨의 도시조이다.
그의 현손 배사혁(裵斯革)에게 네 아들이 있었다. 첫째 배원룡(裵元龍)은 김해, 둘째 배천룡(裵天龍)은 성주,셋째 배운룡(裵雲龍)은 대구, 넷째 배오룡(裵五龍)은 흥해로 각각 분적했다. 다시 흥해에서 협계로 갈렸다.
배현경의 초명(初名)은 백옥(白玉.혹은 白玉衫)이었는데, 뒤에 태조가 배성(裵姓)을 사성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김해배씨의 시조 배원룡, 삼별초의 항쟁을 총 지휘한 배중손(裵仲孫),대구배씨의 배정지(배廷芝)와 그의 아들 배천경(裵天慶)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개국공신 배극렴(裵克廉)이 대표적 인물로 영의정을 지냈다. 김해배씨의 배맹후(裵孟厚), 배대유(裵大維), 성주배씨의 배흥립(裵興立)과 그의 아들 배시량(裵時亮), 그리고 배진손(裵晉孫), 배신(裵紳), 裵명순(裵命純) 등도 가문을 빛냈다.
대구배씨에서는 배익신(裵益臣), 배진명(裵晉明), 배성유(裵聖兪) 등이 유명하다.
흥해배씨에서는 배삼익(裵三益)과 그의 아들 배용길(裵龍吉)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배씨는 조선시대에 47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첫댓글 '연역'은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요?
연혁(沿革)을 잘못 썼군요... 죄송...